평강이 있으라 
성경본문  요 20:19-23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20:19-23) 

스텐리 존스 선교사가 인도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전도를 듣고있던 회교도 한사람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외쳤습니다. 

"우리 회회교는 당신이 기독교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 
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메다니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를 넣어둔 무덤이 있소. 그것은 마호메트가 역사적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무덤이 없지 않소." 
그때 스텐리 존스가 손뼉을 치며 외쳤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신을 섬기거나 죽은 교주를 신격화 해 섬깁니다만 기독교는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부활의 종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에서 주님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성현도 나는 부활이다 생명이다, 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20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달음질한 제자들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는 날 새벽. 평소 주님을 사랑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텅 빈 무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굳게 닫았던 돌문이 열려 있고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제자들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보고를 받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같이 달음질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달음질한 제자는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보다 젊은 탓으로 먼저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먼저 들어간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먼저 도착했다고 먼저 무덤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신앙생활을 달음질과 비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했습니다. 
달음질 경기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정해진 코스를 달려야 합니다. 
제아무리 제트기처럼 빨리 달려도 정해진 트랙이나 코스를 달리지 않으면 헛수고가 됩니다. 
둘째, 빨리 달려야 합니다. 
단거리건 마라톤이건 맨 먼저 선착하는 사람이 상을 받게 됩니다. 
셋째,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정한코스를 제아무리 빨리 달려도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제멋대로 달리면 안 됩니다. 말씀대로 믿음의 길을 따라 달려야 합니다. 정해진 법이 있고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벗어나 제멋대로 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기분 따라 한다든지 변덕을 부린다든지 환경에 따라 하는 것은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끝까지 완주해야 합니다. 
바울은 완주자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7을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보다 달음질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먼저 무덤 속에 들어간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중단하지 맙시다. 끝까지 달립시다. 절대로 포기하지 맙시다.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믿는 예수 끝까지 사랑하고 섬깁시다. 

2. 막달라 마리아가 만난 예수 
20:1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맨 먼저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렸던 여인이었는데 주님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을 정성으로 따르며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20:11을 보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본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무덤 안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들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때 마리아 등 뒤에 다시 사신 주님이 서 계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줄로 알았습니다. 
"당신이 옮겨갔거든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고 마리아는 "랑오니(선생님)"라고 불렀습니다. 

이른 새벽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는 최초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다시사신 주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산을 향해 떠난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창22:3)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 승리한 증표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창 32:31) 한나가 하나님께 눈물 뿌리며 기도하고 응답 받은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삼상 1:19) 

시편 57:8을 보면 "다윗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잠든 대지를 깨우고 잠든 왕궁을 깨웠습니다. 새벽을 깨운 뒤 그는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14: 26~27을 보면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시간도 새벽이었고 여호수아 6:15을 보면 여리고성이 다이나마이트 한방 터트린 일 없이 무너진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시편 48:5을 보면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5을 보면 주님도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했고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하고 회개한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 

구로사와 마사츠쿠는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자격증과 민간단체가 주는 자격증을 60개나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를 걸어 다니는 자격증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일본 아카리 방역회사의 전무인데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난다고 합니다. 
본래 그는 야행성 인간이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집근처에 "아침을 여는 모임"이라는 간판을 건 사무실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 고통 받고 있던 어느날 일찍 일어나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바른 자세로 앉아 강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즉시 일어나십시오. 새벽에 일어나면 대자연의 리듬을 탈 수 있습니다. 이 리듬을 타는게 중요합니다."라는 그의 말에 감동한 그는 회원으로 가입했고 그 뒤로부터 그의 인생경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구로사와는 말합니다. 
"인생은 단 한번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입니다. 매너리즘을 깨고 한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것입니다."라고. 
아침형 인간을 쓴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고 현명해진다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천 냥, 밤에 깨어있는 것은 백 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을 모른다.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 받을 얻어먹는다. 가난뱅이는 늦도록 안자고 부자는 일찍 일어난다. 술과 늦잠은 가난의 지름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납시다. 기도하고 찬송합시다. 

3.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19~31을 보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도마를 만나 주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 이하를 보면 두려워 문을 닫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찾아 오셨고 그들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9절을 보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했고 21절에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사람에게 평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 늘 편치 못한 사람에게 평강은 큰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 셋이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밟고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습니다. 
불안해진 두 아이는 벌벌 떨며 울상을 지은 채 건너고 있는데 한 아이는 신이 난 모습으로 태연히 걷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물었습니다. 
"얘 넌 겁도 안나니" 
"왜 겁이 나니 이 다리는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단다.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우리 아빠가 설계했는데 뭐가 겁나겠니." 
평강은 쥐어짠다고 물처럼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라틴어로 평화를 팍스(pax)라고 합니다. 팍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피스(peace)입니다. 본래 팍스라는 말의 뜻은 쟁취하는 평화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정복하고 무찌르고 짓밟고 이겨서 얻어내는 평화가 팍스인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후세인을 악의 축으로 보았습니다. 그 축을 제거해야 중동에 평화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을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라크엔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는 평화 즉 팍스는 또 다른 분쟁의 불씨. 불안의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샬롬(shalom)은 그 뜻이 전혀 다릅니다. 

샬롬의 뜻은 넓고 다양합니다. 안전하다, 잘있다, 행복하다, 정답다, 건강하다, 번창하다, 평화롭다, 번영하다, 쉬다, 평안하다 등 좋은 뜻을 다 담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당신은 고칠 수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 당신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평강을 주는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누가 안전을 보장하고 행복과 평화 건강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못합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예수, 죽음을 이기신 예수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평강이 있으라, 평안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싫증나는 종교가 있고 깊이 들어갈수록 힘이 솟구치고 기쁨이 샘솟는 종교가 있습니다. 
일본 속담에 "미인을 사흘 보면 싫증나지만 추녀는 사흘 보면 익숙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교주는 깊이 빠질수록 싫증나고 불행해집니다만 예수그리스도는 믿을수록 좋고 깊이 빠질수록 행복하고 오래 만날수록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는 22절을 보면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7을 보면 아담에게 숨을 불어 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서 37:9을 보면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군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지키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항상 계셔야 내가 항상 기쁘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보았고 베드로도 요한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고 보았습니다. 
의심하던 도마도 예수님을 보았고 만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본 일도 만진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20:29을 보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은 훌륭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은 위대합니다. 
평강을 누리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시 살아났노라 너희에게 평강 있으라 성령을 받으라! 
주님을 향해 고백합시다. 다시 사심을 믿습니다. 평강을 주옵소서.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