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실 예수님


- 주연도목사/ 동성교회
사도행전 1:4~11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40여 일 동안 제자들에게 신령한 몸을 보이시고 500여 명이 보는 가운데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전 15:6). 하늘에 올라 가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오신다. 초림의 예수는 구세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제물이 되셨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 주님은 여러 번 아버지께 가셨다가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시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되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고 하셨다. 그러니 시한부종말론을 믿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언제 오신다고 그 날을 발표하는 이단 사이비들이 많은데 현혹당하지 말아야 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오직 믿음의 영안을 지닌 성도만이 볼 수 있다. 제자들은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잠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구름이 주님을 가려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본문의 구름은 저 창공에 있는 보통 구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세키나’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성막에도 나타났었고(출 4:34), 성전에서 기도 드리던 이사야에게도 나타났으며(사 6:1), 변화 산상에서 주님이 영광스럽게 그 용모가 변화되었을 때에도 나타났던 바로 그 구름이다(마 17:5, 눅 9:34­35). 그러므로 구름이 가려서 더 이상 제자들이 육안으로 주님을 볼 수 없었다는 말씀은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세계로 승천하신 까닭에 더 이상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둔다.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아무나 볼 수가 없다. 죄인 된 인간의 눈,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주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불신앙인들은 영광과 생명의 구주를 보지 못하고 죄 중에 죽어 가는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도무지 뵐 수 없는 분일까? 그렇지는 않다. 주님은 육신의 눈으로는 뵐 수 없으나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눈으로는 얼마든지 뵐 수 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눈을 지녔다. 육신의 눈으로는 사물의 겉모습을 보고 이성의 눈으로는 사물의 본질을 본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다. 오직 거듭난 성도들만이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본다. 영안을 가진 성도들만이 영광의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흰옷 입은 두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0­11절)”고 하였다. 예수님의 생애는 천사들의 고지로 시작해서 천사들의 고지로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할 것을 알려 주었다(눅 1:26­33). 그리고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렸다(눅 2:13). 또한 부활하셨을 때에도 천사가 여인들에게 부활하셨다고 알리었다(눅 24:4). 그리고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에 대한 사실까지 선포하였다. 이는 과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주님의 승천을 보고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라고 하였다. 저들은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신들만 남은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두 천사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무덤에 있던 천사들이었을 것이다(눅 24:4, 요 20:12). 이 천사들은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 24:5)”라고 책망하였다. 천사들이 제자들을 사도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왜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렀을까? 주님이 명하신 일은 생각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다”라는 말은 정신없이 열중하여 몰입한 상태로 계속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천사들이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은 너희는 아직 사도의 자격이 없다. 어부와 세리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깃들여 있다. 일은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성도는 주님의 책망을 받는다. 하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우선 현실에서 자기의 의무는 행치 않고 천국만 고대하고 사는 것을 뜻한다. 또 하늘의 주님께 기도만 하? ?주님의 계명은 실천하지 않는 생활을 말한다. 또 노력은 하지 않고 하늘의 은혜와 축복만 받으려는 자세를 말한다. 

물론 우리의 영혼의 눈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일도 열심히 행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과 가정과 사회에서의 의무도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편 선한 일도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영생과 영광에 소망을 지니고 살지만 오늘 내가 주님께 받은 사명에도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다. 일은 안 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기복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다. 진정한 신앙은 눈과 입으로만 하늘의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노력하며 섬기는 것이다. 오늘 주님을 위해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 일한 성도만이 장차 진정한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약 2:20).”주님의 재림 영광은 승천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이다. 천사들은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 鏶굅?알려 주었다. 이 말의 뜻은 주님이 영광 중에 승천하신 것처럼 영광 중에 재림하신다는 뜻이요,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이 하늘로 오라가시는 모습을 본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볼 수 있도록 재림하실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주님은 승천하실 때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우리 가운데 오실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의 그 영광은 승천 때의 영광과는 비교 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승천하실 때에는 500여 명만 보았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허다한 성도의 찬양을 받게 될 것이다(살전 4:14). 또 승천 때는 두 천사만이 주님의 승천을 시중들었으나 재림하실 때에는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들을 동반하시고 함께 오실 것이다. 또 승천하실 때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셨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누리라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주님은 하늘의 큰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이요, 우리 각 성도가 영접할 수 있도록 오실 것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영광과 안식을 주시려고 오실 것이다. 

그 재림의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적일까?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날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이 땅에서 슬프고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인내와 소망으로 이기며 성도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