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청년이 되는 길

-김명기목사/ 신기촌교회


디모데후서 2 : 22~23



18세기에 가장 두드러진 교회사의 특징 중에 하나가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주요 인물로는 조나단 에드워드, 휫필드 같은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였는데, 이들의 적극적인 부흥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일으켰고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청년들에게 회심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사역에 동참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흥운동에 동참한 많은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 전세계로 흩어져서 선교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장로교의 언더우드나 감리교의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도 모두 이러한 영향으로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청소년 때의 사람은 가치관의 혼란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무슨 일을 만나면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기에 부족한 때입니다. 그러나 청년의 때가 이르면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때이기에 더욱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시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의 시기에 올바른 가치관과 하나님께 향한 순종이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일평생 하나님께 향한 마음이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함께하기로 작정한 청년이 늘어날수록 나라가 올바로 세워지게 되고,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전세계적으로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시대의 청년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아니하고 오직 육신의 정욕을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청년의 사역자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디모데후서 1:5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독실한 믿음으로 자라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품에서 잘 양육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인정받고 그의 영적 아들로 택함받기도 한 젊은 청년의 사역자였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에 선교하러 온 젊은 선교사들과 같은 불타는 신앙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적 아비 된 사도 바울은 그에게 지도자로서, 그리고 한 청년으로서 더욱 자기 자신을 주의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편지는 디모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청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것을 알림으로 주의 나라의 확장을 이루기 위한 큰 뜻을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모든 청년을 대표하는 디모데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년의 정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강한 육적인 욕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나친 성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 또 물질에 대한 욕구, 명예에 대한 욕망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적인 욕망들은 혈기왕성한 청년들에게 있어서 가장 빠지기 쉬운 현상들입니다. 이러한 글을 읽었던 디모데의 당시 환경은 성적으로 심하게 타락한 에베소지역이었습니다. 에베소는 어마어마한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는데 그 곳이 상업적으로 발달하다 보니까 도시는 온통 우상숭배와 그리고 성적인 타락이 가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젊은 청년 디모데를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대는 어떻습니까? 낮 문화보다는 밤 문화가 더 발달되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변에는 건전한 문화들이 사라지고 술과 춤의 문화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모텔들이 들어서고, 특히 원룸이라고 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원룸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독신을 의미하고 또한 성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얼마나 많은 범죄가 일어납니까? 바로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것이 요즘의 우리 주변, 특히 청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청년의 때에 육신의 정욕을 피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청년의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쓰임받을 수 있는 길이며, 좋은 청년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이 청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만나느냐? 아니면 악한 사람을 만나느냐? 바울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깨끗한 마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의에서 떠나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늘 준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을 이렇게 깨끗하게 정비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함께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혹은 직장 가운데 신우회 모임으로도, 또는 대학교의 기독교단체를 통해서 모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되고 순결한 사람들을 모이도록 하여서 주님의 크신 일을 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주의 청년들은 언제나 좇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언제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며 그것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운 청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겸손을 의미합니다. 또 ‘사랑’은 원수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는 형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 연합하고 완전한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에 요구되는 것은 언제나 주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에 비추어 내 모습을 정결케 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 비추어서 사랑으로, 그리고 화평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특징 중의 하나가 철학의 발달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우상숭배입니다. 특히 이 두 가지를 함께 발달시키려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이단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변론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많은 청년들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청년들의 모습 가운데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지적인 능력이 생겨나니까 그것으로 계속 연구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지면 금방 함께하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지면 바로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말하고 있는 변론들은 결국 한 공동체의 분란을 만들어내고 불건전한 사상을 전파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잘못된 말로써 서로 변론하기를 좋아하지 마시길 원합니다. 이러한 말은 결국 교회 안이 분열을 일으키고, 깨끗한 마음속에 먹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변론하기를 좋아하기보다는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서로를 향하여서 덕을 끼치는 말을 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를 세우고, 좋은 청년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의 사회는 좋은 청년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혼란 속으로 빠지고 있고, 부패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회는 언제나 옳은 것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좋은 청년들의 부재로 인해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였던 이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을 피하고, 선한 양심을 가진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며,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는 청년들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