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사람

-류철량목사/ 부천동광교회
갈라디아서 2 : 20


교회 안에 세 가지 습관성 난치병이 있습니다. 첫째, 습관성 예배 지각증입니다. 언제든지 예배 시작하고 5분 뒤에 옵니다. 둘째, 습관성 제발 저림증입니다. 찔리는 설교를 들으면 “또 나를 씹는군 씹어라 씹어” 합니다. 셋째, 습관성 만사 삐딱증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삐딱하게 받아들입니다. 이 병 걸리면 약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병자가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심기증(心氣症)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자기가 병이 있다고 생각하며 아픔을 느낍니다. 그는 병이 없는데도 실제로 병자처럼 시달립니다. 공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건강한 몸을 병들게 합니다. 그렇게 되고 보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내일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믿음(faith)이란 믿다(believe)의 명사형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신뢰하고 신용하는 것입니다. 말이나 약속은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하여 심판하는 형틀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오직 하나 죽는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나의 죄 값을 청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나도 죽었습니다. 즉,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동참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인간은 죽어서 비로소 태어납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식이 바로 죄를 장사지내는 의식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죽는 것으로 돌아가신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세례는 옛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빌리그래엄 목사님이 운전을 하다가 과속으로 경찰에 잡혔습니다. 법원에 출두하여 판사 앞에 섰습니다. 교통위반 사실을 시인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였고, 벌금 10달러가 부과되었습니다. 판사가 보니까 얼굴이 눈 익은 사람이어서 서류를 살펴보니 유명한 빌리그래엄 목사였습니다. 판사가 말하기를 목사님이 법을 어겼으니 벌금은 내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벌금은 제가 대신 내 드리겠습니다.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서기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판사는 목사님을 식당으로 모시고 가더니 최고급 안심 스케이크로 저녁 대접을 했습니다. 빌리그래엄 목사님은 자기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 판사가 내게 행한 일은, 하나님이 회개한 죄인에게 행하셨던 일과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나의 죄를 대신해 주십니다. 내가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대신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저 놈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 안에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예수와 연합한 자입니다. 연합은 ‘union’ 둘이 어울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남편으로 결혼한 여자와 같습니다.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결혼의 신비와 같습니다. 영적인 부분 정신적인 부분 그리고 육체적인 부분까지 인격적인 결합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생명적으로 연결된 자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잎은 가지에 붙어 있고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고 줄기는 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줄기는 가지에게 생명의 근원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에게 붙어 있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생존도 불가능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붙어 있으면 뻗어 갈 수 있고 아름다운 꽃도 피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진액을 받아 향기도 낼 수 있고 열매도 맺습니다. 그분과 연합하면 게으른 자가 부지런해집니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던 사람이 용서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고 인내하며 오래 참게 됩니다. 자기를 컨트롤하지 못하던 사람도 그분에게 붙어 있으면 자기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삽니다. 사람은 들은 것을 말하고 입에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수녀원에 나이 많은 수녀가 노환으로 누워있는데 젊은 수녀가 수발을 했습니다. 젊은 수녀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잔소리가 많습니다. 젊은 수녀가 속이 상할 수밖에요. 문을 꽝하고 닫고 “저 늙은이 빨리 죽으면 좋겠어”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앵무새가 듣고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문 닫는 소리만 들으면 “저 늙은이 빨리 죽으면 좋겠어” 하고 흉내를 냅니다. 노인이 들으면 어쩌나 고민하다가 신부님께 상의를 했습니다. 신부님이 키우는 앵무새를 주면서 친구처럼 지내다보면 그 말을 잊어버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앵무새를 한 새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방문은 조심조심 닫았습니다. 어느날 방심하여 문소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수녀원의 앵무새가 “저 늙은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하자 신부님의 앵무새가 이어서 말하기를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더랍니다. 신부님이 기도하는 소리를 흉내 낸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한 자란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십니다. 실수하고 잘못해도 오래도록 참아 주시고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분의 눈에는 우리의 허물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나가서 맞아주시고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찾았다고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분을 믿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자기는 죽으셨습니다. 나를 높이시려고 자기는 낮아지신 분입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려고 자기는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 ?병을 고쳐서 건강하게 하시려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 짐을 가볍게 하려 무거운 짐을 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옷을 입히시려고 자기는 벌거벗으셨습니다. 내 손으로 지은 죄 때문에 손에 못박히셨습니다. 

오스카 써번티스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문제 속에서 자랐습니다. 강력 범죄로 열일곱 번이나 교도소를 드나들었습니다. 오스카는 누가 보더라도 구제불능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소에서 전도하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오스카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는 변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스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서 예수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오스카는 재소자들에게 간증을 하기 시작했고 그의 찬송은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교도소에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피그말리온 효과(phigmalion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믿고 기대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키푸르스의 왕자이자 뛰어난 조각가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했습니다. 그 조각을 제단 앞에 놓고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달라고 기도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조각상이 살아 있는 여인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에 쏟아 부은 사랑과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조각하고 그 조각품을 주님 앞에 내 놓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신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산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땅으로 가셨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쇠사슬로 매어도 풀어버리고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스스로 무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를 괴롭히던 귀신이 떠나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어떻게 큰일을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습니다(막 5장). 

거기서 말하는 데가볼리라는 말은 10개의 도시를 가리킵니다. 그 사람이 살던 거라사와 다른 9개 도시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전파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복음 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곧 내가 살고 흥하는 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연합하십시오. 그것이 풍성한 삶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십시오.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전파하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십시다.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