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세우는 사람

-임화식목사/ 순천중앙교회

베드로전서 3 : 1~7



「아내를 알면 세상이 새롭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런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필자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야말로 여자의 운명은 어떤 남자를 만났느냐에 따라 인생행로가 결정되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며, 또한 이 말은 우리 사회가 한마디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답니다. 대법원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1985년부터 이혼을 청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해, 1992년에는 여성들의 이혼 제기율이 55퍼센트로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가슴에 한을 품은 채라도 참고 지내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고분고분 인내하고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일본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황혼이혼’을 당하는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참으로 미래를 꾀뚫어 보는 혜안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내를 뒤웅박에 비유했는데, 베드로 사도는 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릇은 그릇인데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랍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릇은 그릇 안에 어떤 내용물이 담기느냐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집니다. 꿀이 담기면 꿀단지, 된장이 담기면 된장단지, 보물이 담기면 보물단지가 됩니다. 그런 뜻에서 아내라는 그릇에 담길 남편이 어떤 남편인가가 그 아내의 신분을 좌우하게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아내를 왜 조금 더 연약한 그릇에 비유했을까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에 담길 남자 또한 실상 연약한 존재라는 역설적 표현인 줄 압니다. 남편도 약한 존재라는 점에서 오십 보 백 보라는 표현입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는 말씀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의 지식, 즉 ‘그노시스’는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인간들의 감성, 통찰력을 지칭하지만 이 본문 가운데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결혼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서로 도우며, 의지하며 살도록 동등한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단지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할 그릇으로 좀더 섬세하고 부드럽고 유약하게 지음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마치 여자들이 생래적으로 약한 것처럼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데, 착각하지 말고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존재이니 귀히 여기는 바른 지식으로 생활하라는 분부입니다. 바울 사도의 견해도 그렇습니다.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가위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두 개의 날이 똑같이 움직여야 가위질이 됩니다. 날 한 쪽만으로는 아무리 좋은 쇠라도 가위가 되지를 않습니다. 또한 두 개의 날이 있더라도 간격이 있어서는 가위질이 안 됩니다. 바싹 붙어 조화를 이루어야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도 그렇습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는 남편이라면 여성으로서의 아내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여성은 특별히 무드에 약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장미꽃 한 송이에도 그만 가고 마는 것이 아내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은 시각적인 면에 쉽게 쏠리지만 아내들은 청각적인 자극에 감정이 더 잘 움직여, 달콤한 밀어에, 아름다운 음악에 여성의 기분이 상승할 수 있음을 남편들이 왜 몰라주느냐 이겁니다. 이런 기본이 되 있지 않은 목석같은 남편들 기껏 한다는 말이 정해져 있다면서요. ‘얘들 잘 있나’, ‘밥 묵자’, ‘자자’ 저도 남편입니다만 요즘 여성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보니까 베드로 선배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내들이 제일 많이 마음속에 입력하는 말이 하나 있답니다. “늙었을 때 보자.” 사실 이러한 말이 두려워서, 아니 말년에 천덕꾸러기 될까봐 마음에도 없는 제스처와 말로 아내에게 잘해 준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죄악이며, 내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쓰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이 복된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사실 정작 어려운 일 당했을 때 상대적으로 강한 것은 아내라는 사실을 부정할 남편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남편은 어떨까요? 어떤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미울 때마다 은행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를 할 때에는 더욱 큰 못을 쾅쾅 소리 나게 박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때리고, 욕을 할 때에도 못은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불렀습니다. “보세요, 여기 못이 박혀 있는 것을. 이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하나씩 박았던 못입니다.” 은행나무에는 크고 작은 못이 수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은행나무를 안고 울었답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착한 남편이지요. 그 후부터 남편은 변했습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부르더랍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내 말이 “여보, 이제는 끝났어요.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못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아직도 멀었소. 못은 없어졌지만 못자국은 남아 있지 않소?”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고마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만 해도 복! 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겠지요.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아내들을 귀히 여겨야 할 또 다른 이유로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십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경하지 않고 애정이 없이 함께 산다거나 아니면 남편이 아내를 경멸하고 박해한다면 그런 마음에서 어떻게 진정한 기도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권면입니다. 신앙이 있는 부부와 그렇지 못한 부부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구별되곤 합니다. 

행복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좋은 직장에 다니며 인정을 받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열심히 가정을 꾸려나가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름모를 병으로 인하여 남편이 몸에 마비 증세가 생기면서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못 쓰게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잃었고 병을 치료하느라고 재산도 날려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더랍니다. “나는 더 이상 병신인 당신과 살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조금만 더 고생하고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가출을 하였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살았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내가 교통사고로 두 발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말했습니다. “나는 두 다리가 없는 아내와 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아내가 울면서 당신 없인 못 산다고 사정하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올 때 전 남편에게 어떻게 했다고 했나. 병신인 남편과 살 수 없다고 했다며, 나도 그래.” 아내는 후회하며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죄와 벌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 都求? 

저는 이런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제가 시무했던 서울 모교회의 어느 신앙인의 가정에서 되어진 일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교구 식구인데 남편이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사실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사일생 하신 것입니다.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지만 손과 발을 사용하는 게 불편한 상태라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남편이 불안스럽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여보! 내가 불구자가 된 것 아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느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내는 침착하게 말했답니다. “당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설령 당신이 불구자가 됐다고 합시다. 또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도 좋아요. 그러나 내가 당신을 불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이것이 진정한 부부가 아닐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했습니다. 아! 신앙이 있는 부부는 이럴 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기적을 낳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러한 가정에는 시간이 다소 더디 걸릴지 몰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치유함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의 인? 뺨?남편을 살리고, 남편의 인내는 아내를 명예롭게 할 것입니다. 부부는 가정을 세우는 대들보와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