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를 낚으신 예수님 [눅 5:1∼11]   
정성구 목사 (대신대학교 총장) 

이 본문의 핵심은 사실상 고기를 잡게된 베드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부를 낚으신 예수님께 초점이 있다. 베드로는 고기를 낚았지만 예수님은 어부를 낚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성경을 관찰할 때 단순히 윤리적 접근이나 교훈 위주로 성경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를 찾아오시다

첫째, 예수님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실패자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다. 사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일꾼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예수님께서 구속의 사역을 완성한 후 초대교회를 세우는데 일꾼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사역을 위해서 함께 일할 제자들을 찾으셨다. 그런데 베드로를 쓰시기로 하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의도와 계획에 쓰임받을 만한 그릇은 아니었다. 우선 베드로는 유대사회의 기본교육은 받았지만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또는 지성적으로 지도할 만한 자격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쓰시기로 작정하셨다. 베드로는 어장을 잃고 파산상태에 있었다. 수십 년 쌓아온 고기잡이 기술이나 실력도 어장이 형성되지 않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베드로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절망적인 베드로에게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이미 삶의 실패자로서의 베드로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어부가 고기의 길을 알고 뱃길을 알 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의 영적인 삶의 고뇌와 육체적 곤고, 경제적 실패까지도 환히 아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모범생, 착한 사람, 성적 우수자, 기술자, 고득점자, 고학력자만 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한 것을 가지고 강하게 하여 쓰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도 부족도 약점도 이미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을 가지고 쓰시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말씀으로 찾아오시다

둘째,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개인적인 접촉과 대화가 있기 전에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이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누가복음 5:1에서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라고 했고 4절에는 “말씀을 마치시고…”라고 했으며 5절에는 “말씀에 의지하여…”라고 쓰고 있다. 누가의 관심은 예수님의 말씀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를 빌린 것도 그렇고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고 뱃머리를 강단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베드로의 생애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그전까지의 과격하고 다혈질적인 그의 성격을 꺾어 누그러뜨리고 온순하게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삶이 바닥에 서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의 소망이 없어진 때였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사람을 낮추신 후에 고요히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는가? 기도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영적 기갈이 있는가? 기도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면 문제의 해결이 있다.

영광 위해 이적을

셋째,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기적을 일으켜 주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지시한대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힌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만선의 기쁨을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권능으로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주님의 이런 기적을 보이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기계시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적을 베푸신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를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로 낚아버리기 위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실 이 본문을 살펴보면 철저하게 주님의 구속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즉각 순종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은대로 순종하는 삶이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는 잘 듣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거나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 옮겨놓는 일에는 무심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베드로의 반응을 보면 이러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인해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물질을 얻었다는 기쁨보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체험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죄인인 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권면할 때 순종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 때 비로소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정리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장차 사람 낚는 어부 곧 전도자로서 소명을 주셨다. 그리고 베드로는 즉각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우리 모두가 베드로와 같은 전도자의 소명과 사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각각 소명을 주셨다. 역사는 소명자와 사명자가 이끌어간다. 옛 생활, 옛 세계관, 옛 구조 속에서 뛰어나와 우리의 남은 한평생을 말씀에 순종하며 전폭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큰 일을 감당하는 소명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 아 멘 -



□설교노트

우리가 익히 아는 이 말씀은 흔히 베드로의 위대한 순종과 결단, 그리고 회개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 중심 시각에서 봐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베드로의 영웅적 신앙의 결단보다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가에 눈을 떠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3년 후에 있을 교회운동과 성령운동을 내다보시면서 베드로를 일꾼으로 부르시고 계신다. 그래서 베드로를 낚아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배후에서 그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된다. 

기독신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