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13).”
안디옥은 BC 300년 경 수리아의 셀류크스 왕에 의해 세워진 수리아의 수도이며, 안디옥의 명칭은 셀류크스의 아버지인 안디오쿠스를 기념해서 붙여졌으며 BC 63년경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된 후 로마의 수리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시작되어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 구부로 안디옥 등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안디옥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 11:1920).
안디옥 교회 안에는 부흥의 핵심 주축인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교회이며(행 11:26), 기근으로 고통 받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였고(행 11:2730), 최초로 이방선교를 시작했던 교회(행 13:13)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방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대표로 예루살렘에 파송하였던 이방선교 지향적인 교회였습니다(행 15:2). 
오늘 본문을 통해 선교하는 안디옥 교회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안디옥 교회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부흥은 한 사람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데 주의 손이 함께 하여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나고 레위족으로 이름은 요셉이었고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였습니다. 그는 성품이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와 같이 사역을 하게 됩니다. 사울은 한때 잘못된 길을 선택했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고 열정이 있었고 주님이 선택하여 사도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두 사도 뿐만 아니라 유대인 루기오 로마인인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안디옥 교회 부흥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한 사람의 힘보다 여러 사람이 합력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더 힘 있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둘씩 짝지어 보내시듯 우리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손으로 나아갈 때 믿는 사람들이 주께 더해질 것입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예배를 중요시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를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상고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묻고 어디든지 하나님의 원하시는 곳이면 가고자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식했습니다. 금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애통하거나 회개하기 위해 금식했고, 하나는 계시를 받기 위해 즉,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했습니다.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 하나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시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으로 보내어 그곳을 복음화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가는 곳마다 예배와 사역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구브로에서는 대적하는 박수 엘루마가 소경이 되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강론하기를 청하고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치며 환상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유두고를 살리는 기적도 베풀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 찬양, 헌신이 일! 어나는 자리 이 자리가 진정한 예배의 자리입니다. 

3. 선교하는 교회는 후원하는 교회였습니다.

선교지는 영적 전쟁터와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며 이적을 행할 때 신으로 섬기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반대자들이 일어나서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게 역사하고 할 수만 있으면 방해를 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기도로 중보하고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의 신앙여정을 회상하며 고백하기를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428).” 
바울은 약한 것을 자랑하며 그 어느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니(빌 1:20)” 이 같은 바울의 정신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은 하나님의 손에 쥐어져 그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빌립보서 1:12에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육체와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복음전파를 위한 매개체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이 있는 동안 진정한 사도 정신 즉, 그리스도를 전하여 교회를 일으키고자 함이 그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고 보내는 교회나 나가는 선교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선교지가 멀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바로 내가 살아가는 곳이 선교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처음에는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또 5명의 믿음의 경건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성격이 좋고 지혜가 있고 예배를 사모하며 금식하며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뒤에서 중보기도하며 물질로 후원하는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구역과 선교회나 공동체들이 될 때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놀랍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