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수 14:6-15) 

성공학의 실천자 폴. J. 마이어 박사에 의하면 “사람마다 가까운 목표는 있지만, 인생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사람이 60%이고, 목표를 정해놓기는 했으나 생각만 하는 사람은 10%, 목표도 없고 생각도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사는 사람이 27%, 그리고 목표를 써놓고 행동하는 이는 3%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100명 중에 단 3명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2004년을 출발했습니까?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2004년을 출발했습니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느 만큼 노력하고 있습니까? 목표(目標)가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아서 아무 데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격히 말해서 전진이라기보다는 그냥 떠밀려 다닌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초(浮草)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겨냥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맞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달라야 합니다. 성도가 가져야 할 비전은 불신자와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 인생의 푯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 12:2 상반 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가 되시고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푯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 때에 거기에 비전이 있고, 인생의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 3:14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푯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참된 비전을 가질 수 있으며, 참된 만족과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한 기억할 것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 필요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전제되지 아니한 목표 설정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올비전과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그 땅을 분배하는 과정 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제비뽑기를 통해 위치를 선정한 후에 각 지파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성읍을 나누었습니다. 그렇지만 헤브론 땅은 아무도 분배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헤브론은 가나안 정복 전쟁 후에도 여전히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성읍이었고, 그 땅에는 50여 년 전 가나안 정탐꾼들이 그 장대함을 보고 크게 놀랐던 거인 족속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헤브론 땅은 분배 받기를 원치 아니했던 것입니다. 

▶ 그런데 갈렙은 본문 12절 상반 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주소서!...”라고 말씀하고 바로 이 땅을 분배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10절 하) 갈렙은 이전에 가나안의 정탐할 때에 40세의 젊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갈렙의 이러한 요구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갈렙은 육신의 한계를 믿음으로 극복한 청년 신앙과 전투적인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갈렙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갈렙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6-7절)  
본문 6-7절에서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성실하게 보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갈렙이 성실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성실”이란 말은 “에메트”라는 말로서 “바르다.”(창 24:48), “확실하다”(신 17:4),“견고하다.”(사 39:8)이라는 뜻입니다. 갈렙은 이와 같이 바르고, 확실하고 견고한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냉엄한 현실이 우리들의 실망시킬 수도 있지만 성실한 믿음으로써 그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또한 신앙의 선각자(先覺者)갈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일을 위하여 일을 하시되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십시다. 사도 바울이 롬 12:11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산지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비전을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갈렙처럼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사람이었습니다.(8-10절)  
본문 8절을 보면 갈렙의 신앙의 결단이 나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라는 말씀은 갈렙의 신앙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말씀인데,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기로 결단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좇는다”라는 말은 “톰”(히)라는말로서 “완전한다.”(시 26:1), “끝까지”(신 31:30), “마지막까지”(민 8:23)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라는 “전심을 다하여 끝까지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되 하나님의 말씀에 목표를 두고 완전한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신앙을 인정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그 말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은 민 14:24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갈렙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신앙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시는 것은 성도들이 마음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열중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고 믿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히 11:6) 즉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는 생활과 믿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을 할 때에 갈렙과 같이 우리에게 비전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까? 
본문 10절을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이 사십 오년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은 45년 동안 시종일관(始終一貫)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는 길은 변함없는 한 가지를 통해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때 기적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설교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말씀에 대한 무지이고, 두 번째는 말씀을 알아도 그 말씀을 주장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지적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갈렙의 신앙을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갈렙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일수록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만 눈을 들어서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3. 갈렙은 무대 위에 섬긴 사람이었습니다.(10절) 
갈렙의 위대함은 그가 무대 뒤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하신 사람은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람의 마음에는 여호수아에 대한 질투심도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敵愾心)도 없었습니다. 그는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그리고 기꺼이 열등한 직분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갈렙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결코 섭섭하게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뒤에서 일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찬사나 칭찬과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때 쉽게 질투하거나 섭섭해 할 수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충실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격을 결정짓는 진정한 테스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의 시험하심으로 우리가 아무도 인정해주지도, 보아주지도 않는 자리에서 충실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더 집중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 모두는 앞에 나서기를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앞장설 때는 그 일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얘기를 하다가도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면 도리어 비협조적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무대에 주연으로 서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를 좋아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기보다는 보이는 곳에서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타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뒤에서 그를 조력하려는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남이 하는 일에 조력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사람이 싫어지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싫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도 서로 시기하고, 서로 방관하고, 서로 폄론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뒤에서 협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억할 것은 들어나서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사람이 하늘에서 상급이 더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에게 그를 좋아하는 팬 한사람이 물었습니다. “번스타인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그러자 그는 재치 있는 말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 2 바이올린입니다. 제 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프렌치 호온이나, 플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 연주자는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 2 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대에 서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의 박수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곳에서 섬기기보다는 보이는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퍼 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수퍼 서번트 즉 슈퍼스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제1 연주자가 되기를 원하지 제2 연주자가 되길 원치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ꡔ무대 뒤에서 섬긴 신앙의 영웅ꡕ이었습니다. 그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그늘에 있었던 갈렙은 유명하지도 않았지만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갈렙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안정적으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첫 번째이지만 갈렙과 같은 좋은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에도 가능했습니다.

민 13장,14장에 말씀처럼 갈렙은 분명히 여호수아와 같이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여호수아의 그늘에 가려져서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갈렙과 같이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처럼 뒤에서 여호수아를 도왔던 사람이 갈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 우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 바로 갈렙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헤브론을 달라고 기업으로 달라는 갈렙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그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갈렙이 좋은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할지라도 여호수아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많은 공로를 가진 사람입니다. 인정적인 측면으로 볼 때에, 공로적인 측면으로 볼 때에 갈렙은 당당하게 좋은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기업으로 받지 아니하려고 하는 헤브론 땅 곧 거인 아낙 자손이 있는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갈렙입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 10절 말씀을 통하여 갈렙이 얼마나 충성스런 사람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갈렙은 45년 동안 변함없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무대 뒤에서 섬겨왔습니다.  사실 신앙의 영웅은 무대에 선 사람이라기보다는 무대 뒤에서 무대를 빛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도 갈렙과 같은 마음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갈렙과 같이 무대 뒤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특별히 무대 뒤에서 섬기는 사람들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충성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딤전 1:12) 

4. 갈렙은 도전과 확신 속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의 청년 정신과 도전 정신은 그의 나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사실 85세이면 안전과 편안한 은퇴만을 꿈꾸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넘치는 확신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전 정신이고 청년정신입니다. 
본문 10절 후반 절에서 12절까지를 보면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를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은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의 나이는 지금 85세이었지만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던 40세 때나 일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노련미와 있고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나이 85세에 갈렙이 가장 어려운 산지, 아낙 사람이 있고 크고 견고한 성읍을 향해 도전하기 위하여 여호수아에게 그 산지를 달라고 말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갈렙으로 하여금 나이 85세에도 그로 하여금 청년 신앙으로 도전하고 전투적인 삶을 살게 하였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그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1절에서 “나의 힘이 그때나 일반이라”고 말씀처럼 갈렙은 자기 확신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혹시’라는 말은 ‘만약’이라는 말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라는 표현은 갈렙의 의심스러운 표현이기보다는 그의 겸손한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믿는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 4:13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31명의 왕을 정복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하늘의 태양을 멈추고, 달을 멈추게 하셨던 그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우리는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젊다는 것으로도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나이가 많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을 지라도 얼마든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그의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본문 12절 상반 절에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헤브론 땅은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갈렙 본문 12절 하반절에서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헤브론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는 인생은 결코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민 14장을 보면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열명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고 그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하라"(민14:24,신1:36)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갈렙은 바로 그 땅을 내게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리의 산지는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영적인 가나안 하늘나라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중에 비전을 주시고 약속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고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확신할 때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말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믿음이 성장하고 확신에 찬 마음으로 매일매일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확신하는 그의 신앙 때문입니다.  
갈렙은 45년 동안 약속의 비전으로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갈렙은 지난 광야생활 40년과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거민들과의 싸운 5년 동안에도 내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비전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비전을 이루고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탐지했던 땅, 그가 비전으로 보았던 땅이 하나하나 정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정복하리라 믿고 꿈꾸던 헤브론 땅, 아낙 자손이 사는 땅은 정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산지에 위치한 전략적인 도시 헤브론은 아마도 그 땅 중에서 가장 좋은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묻혀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갈렙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이 가장 좋은 땅을 얻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갈렙은 “가장 좋은 것은 아직 남았다”는 확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갈렙을 위해서 축복해 주고(13절) 헤브론 땅을 갈렙의 기업이 되게 하였습니다.(14절)
 
비전(vision)이라는 말의 일반적 의미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전망"을 말합니다. 이 말은 라틴어 '비지오(visio)'에서 온 말입니다. 비지오는 "내다 본다"는 단어에서 왔고, 문자 그대로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다. 신앙적인 의미로 비전은 믿음의 눈이고, 믿음의 눈은 어떤 것이 오기 전에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는 없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이루어 질 줄로 믿고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래서 히 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비전을 담은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비전과 꿈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막연하게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해 주시겠지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하여 올바른 목표와 비전을 품으셨다면 갈렙처럼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꿈이 있습니다. 세계 선교의 비전과 꿈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성전도 아름답게 건축해야 하고, 앞으로 교육관, 선교관, 노인 복지를 위한 문화 센타, 청소년 문화관을 지어야 하고, 학사관을 통하여 예수의 일꾼을 양성하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이 나라의 주역들이 될 청소년과 청년을 바르게 키우는 것이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교인들이 세상 장소에 가서 사람 만나지 말고 교회에 와서 만나도록 아름다운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오대양 육대주에 나가서 세계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도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어려운 미자립 교회를 더 많이 지원하는 것도 우리의 꿈이요 비전입니다. 미래에는 노인 인구가 늘어갈 것인데 노인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비젼이요 꿈입니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렙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 전도하는 사람, 헌신자가 더 많아져야합니다. 

대상 4:9-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나의 영토를 넓혀 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시어 불행을 막아 주시고, 고통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야베스라고 하는 이름은 고통(苦痛)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는 야베스가 출생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도저히 자기의 삶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아주 열심히 간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야베스는 “영토를 넓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갈렙의 말로 표현을 하자면 산지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주셨고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인생을 도전하며 삽니다. 갈렙처럼 나이 85세라도 청년 정신을 가지고 “내게 이 산지를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갈렙의 신앙에 대하여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갈렙은 ① 성실한 사림이었으며 ②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이었으며 ③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하였던 사람이었으며 ④ 도전과 확신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갈렙은 비전을 성취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 도전과 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갈렙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5년동안 한결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갈렙을 보고 계신 것처럼 우리도 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기며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가는 신앙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45년 동안 계속 무대 뒤에서 섬겼던 갈렙처럼 살아가는 신앙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오늘 우리 시대에 갈렙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갈렙같은 하나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 안전보다는 기회를 따라 나아가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무대를 빛나게 하는 신앙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갈렙 같이 청년 정신과 도전 정신을 가지고 금년 한해를 살아가심으로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