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싸움 

에베소서 6:10-13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구도자 여러분, 오늘 본문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 간단히 앞부분을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처음 세 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는 위대한 교리를 성도들에게 회상시켰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 신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서 얻는 영광스런 특권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여,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에베소 성도들에게 주옵소서. 그리하여 에베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해주옵소서.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그
들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옵소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그 영광스런 기업을 향해서 우리로 비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능력인지 알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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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까지 이 위대한 교리를 먼저 말한 다음 4장부터 그 특유의 적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위대한 부름에 따라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4:1). 권면의 말을 시작하고 나서도 아직도 그들에게 들려줄 진리의 대한 설명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4장 전반부는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4장 17절부터 본격적인 적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안에서 증거 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4:17).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모를 때 살던 것처럼 너희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신앙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에게 그 생활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5:1-2). 세상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이 되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성경책 읽는 것 봤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이 누군지 우리를 통해서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들처럼 살아가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처럼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가
운데서 행동하라. 그것이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랑 가운데 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7). 빛의 자녀들의 특징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열거한 다음에 5장 18절부터 6장 9절까지 새로운 문단에서 성령충만한 삶을 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면은 어떻게 공동체가 달라지는지  성도의 가정 속에서 또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부부 사이에서 자식과 부모 관계에서, 종과 상전 관계에서 어떻게 달라질수가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처신해야 할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종말로  하는 부분에 도달합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읽어봅시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영적 전투에로의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도움과 풍성한 격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자로 남기 위해서 우리는 맨 먼저 1) 상황 인식 (전황 파악) 2) 적군 파악 3) 아군 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맞붙어 싸워야 하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악의 영들에 대한 전면전이 시작된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싸움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한 번도 휴전 상태에서 성도들은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155마일 휴전선을 남북은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런 휴전상태에 있지를 않습니다. 언제나 전쟁중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는 휴가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싸울 준비를 갖추고 살아야만 합니다. 쉽고도 평안한 길을 걸어간 하나님의 군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현대전은 첨단 병기의 싸움이고 전면전이 그 특징입니다. 영적 전쟁의 양상도 보다 심각한 전면전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 한 50년전 - 가정은 어느 정도 세상과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사립문을 닫고 나면 더욱 세상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아파트의 철문을 닫아걸었지만 세상은 갖가지 경로로 우리 가정 안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뉴스를 보겠다고 TV리모콘을 누르는 순간 세상은 우리 가정 안으로 직송됩니다. 매월 배달되는 잡지 뿐 아니라 양서라고 여러분이 서점에서 고르는 책을 통해서도 침투합니다. 그것들이 전부겠습니까? 다만 대표적인 것을 몇 개 열거했을 뿐입니다. 길거리를 나서면 볼 수 있는 선전 포스터도 세상을 우리 뇌리 속에 주입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함께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 속에서도 세상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황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전황의 바른 인식이 없으면 패배는 자명합니다. 바울은 앞 문단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영역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의 현황 공동체를 이 세상에 침투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영역 거기가 바로 우리가 싸워야 할 영역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안전한 영역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 현대전의 특징입니다. 급하면 임금님께서 북한산성에 가서 피하던 시절은 그래도 낭만적인 전쟁이었습니다. 문닫아 걸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전쟁이 터지면 여러분의 아들이 가 있는 전선만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폭탄은 울산 한복판에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대동포에 사전거리 안에 남한 전역은 다 포함되어져 있지 않습니까? 터졌다하면, 전선이 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지 싸움입니다. 그것이 현대전의 특징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전선에서만 치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터지는 즉시 온 국토가 전쟁 아래 들어갑니다. 

왜 죽음이 서로를 나누기까지 서로를 사랑하기로 한 부부들이 마치 대리석에 떨어지는 접시마냥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까? 왜 혈연의 정으로 특징 지워진 부모 자식 관계에 그처럼 쉽게 금이 가고 있습니까?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식들 만나보는 것이 마치 천연기념물 찾는 것처럼 어려워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태어난 자식들이야 부모 속 썩이는 것은 인류가 시작되고 언제나 있어 왔죠. 속안썩이고 자라온 사람이 여러분 중에 있습니까? 올챙이적 시절을 잊어버렸으면 손들 수 있지만 손 못드잖아요? 자식은 속썩이는 것 당연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특징은 자식 속 썩이는 부모의 출현이 말세의 특징입니다. 자식의 마음은 종종 그 부모를 떠났지만, 이제는 부모의 마음조차 그 자식을 떠난 지 오랩니다. 

이전에는 여인이 어찌 자기 태에서 난 자식을 잊겠느냐고 말하면 여자들이 가슴이 뭉클했지만 이제는 그 호소가 더 이상 여인들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태 속에 있는 자식을 버린 여자가 한 둘이 아닙니까? 끔직한 죄악을 행했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가정이 그런 삭막한 공간이 되었다면 일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성실한 일군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공정한 주인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사 분규는 아귀다툼으로 쉽게 전락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구도자 여러분, 부부 관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까? 배우자 얼굴만 증오하지 마십시오. 그 배후에 있는 악의 영을 감지하십시오. 자식에게 시달리는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시달리는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후에 역사하는 악의 영을 간파하십시오. 직장에서 인간 관계 때문에 괴롭습니까? 아니면 일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합니까? 악의 영은 그 배후에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퇴근하지만 악의 영은 언제나 활동합니다. 
퇴근이란 없습니다. 원한을 품은 부부 관계 속에도, 멀어진 부자 관계 속에도 그리고 노사 분규의 현장에도 악의 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전보다 심각한 전면전이 시작된 상황입니다. 어디든지 한부분이라도 안전지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도 부자관계도 일터에도 신앙공동체에도 어디든지 적의 공격은 감행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전황의 바른 인식이 우선 필요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2) 우리의 싸움은  악한 날 (13) 너희가 너희를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너희에게 서기 위함이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악한 날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여러분이 파악하실 일은 대적의 실체를 아는 일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영적 싸움에도 해당됩니다. 

우선 여러분은 적장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는 배후의 적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마귀는 여러분보다 강합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보다도 힘과 지혜가 뛰어납니다. 마귀야말로 Superman입니다. 초인적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공중에 권세 잡은 자 라고 에베소서 2장 2절은 표현합니다. 다른 곳에는  이 세상 신 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는 사도 베드로의 표현 속에도 그의 잔인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단 이란 계시록의 표현들도 모두 그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주님도 그를 가리켜 무장한 강한 자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는 하나님 다음 가는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힘과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싸울 마귀의 전략을 알아두십시오. 그래야 그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그의 특징적인 전략 첫째가 무엇입니까? 욕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중상 모략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을 즐깁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열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 나와서 예배시간에 졸고 있으면 그는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 자라  그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마귀가 바짝 긴장을 합니다.  호사다마 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선한 일이 되어질 때마다 짓이겨 버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의 기본 전략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남을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남을 모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이라면 성도들을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칼끝을 동료 신자를 향하게 하지 마십시오. 총구를 아군을 향해 겨냥하지 마십시오. 시험에 빠져 자중지난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영적 전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휘 체계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싸워야 합니다. 군인들이 자기 산상을 향해서 총질을 해대면 싸움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 본문은 마귀의  궤계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전략입니다. 아니 그의 전략의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표준 새번역은 악마의  간계 라고 번역합니다. 아주 교묘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그 거짓말 구사능력이 아주 탁월합니다. 얼핏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거기 함정이 있습니다. 진리의 일부를 가지고 진리의 전부를 왜곡시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 라고 주님께서 밝히셨습니다. 

마귀는 성도 사이를 이간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비난하게 되는 시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입술이, 귀가 성도를 이간시키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우리보다 영리합니다. 그의 전략에 놀아나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또한 그 나름의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 체계의 일부분을 본문 12절은 공개합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  계시록 4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그 주위에 둘러선 네 생물과 24 장로와 수많은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그처럼 영적 질서가 있듯이 악마 역시 하나님을 흉내내기 좋아합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등으로 조직된 군대처럼 그도 싸움을 위해 그의 졸개를 편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그 부하들을 파송합니다. 그 졸개와 추종자들을 통해서 자기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그 천사와 그 백성을 통해서 그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가듯이 마귀도 그 졸개들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통해 자기 영향권을 점점 넓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략과 방법을 한 번에 모두 다 살필 수 없습니다.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라는 표현만 좀 더 살펴봅시다. 어두움은 마귀의 특색입니다. 
그는 어두움 가운데서 활동하기를 좋아합니다. 뒤에서 전을 폅니다. 뒤에서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기 좋아합니다. 뭘 모르도록 하기에 능수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둡도록 합니다. 욕망에 눈이 어둡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면 나머지 모두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마귀를 기쁘게 하는지 생각조차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자기 영혼에 유익할 것인지 유해한 것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인 호소도 모르고, 죽음도 직면하지 못하고 죽음 너머의 세계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 사는 기쁨도 모르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엄숙한 진리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의 어두움 속에 사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를 구출하기 위해 필요한 대가를 기꺼이 대신 지불하십시오. 공동체를 비난하고 공동체를 괴롭히고 공동체를 이간시키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배후에 활동하는 악의 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끝으로 이제 적을 아는 동시에 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결코 마귀의 맞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그의 맞수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 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피와 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맞대어 싸우는 싸움을 우리가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입니다. 땅에 있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령에 대한 싸움에 우리는 부름받아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힘과 우리의 지혜로는 그를 맞붙어 싸울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역전의 노장이 말하는 바를 잘 들어보십시오. 바울은 영적 싸움의 경험이 풍부한 노장답게 두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주안에서 강건 하여지라 고 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고 말합니다. 오늘은 그의 첫째 명령만 고찰하고 설교를 끝내려고 합니다. 둘 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양자 택일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 순서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주안에서 강권해져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적무장을 해야만 합니다. 믿기만 하고 주님만 의뢰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도 안됩니다. 무기만 갖추면 된다고 해도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역전의 용장답게 두 가지 명령을 합니다. 

우선 주 안에서 강건해지라고 명령합니다. 영적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전쟁의 상황이 어두워질수록  주안에서 싸우는 싸움 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간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한 분을 바라보는 것만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 대장 주님께서는 전능자 이십니다.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 분의 힘찬 능력을 공급받을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주님의 힘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적군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총체적인 싸움, 전면적인 싸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싸움 후에 건재하기 위해서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으로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싸움에 져서 죄를 짓고 괴로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적으로 주의 명예가 달려 있는 하나님의 군사들이기 때문에 패할 수 없습니다. 실패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자신 개인의 명예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명예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그의 힘의 강력으로 강권해져야만 합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죄를 대적하라 베드로 역시 그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어린양의 피, 예수 사랑으로 승리합시다. 어린양의 피, 예수 권능으로 승리합시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면전의 한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으로 힘을 공급합니다. 그 분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으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합합시다. 기도는 영적 전투의 일부입니다. 동시에 기도는 전투력을 배양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받아 말씀을 읽고 기도에 주력하는 한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 침체를 떨쳐 버리십시오.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소성케 되는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기도로 승리하는 개개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교회로 우뚝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