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를 기억하라 3 -김정서/ 제주영락교회

사도행전 17 : 22~31



오늘 말씀인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바울의 전도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즉흥적인 것인데, 이는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도시 전체에 우상이 가득함을 보고 설교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행 17:15­16). 아울러 바울의 설교는 다른 곳에서의 설교보다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며 기독교 변증 내지 비교 종교론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덴의 전도에 있어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방법을 착안하여 선교에 유익을 꾀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성과 철학에 대한 열정을 감안하여 거기서부터 주제를 끌어내었습니다. 그는 청중들 가운데 에피큐러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이 있음을 알고서, 다분히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스토아 철학을 통해 청중들에게 접근을 시도한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22절에서, 아덴 사람들의 종교성을 언급합니다. 그 이유는 아덴에 신전과 신상들이 많았던 때문이며 이 표현은 그들의 경건함이나 종교적 성향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무분별한 미신적인 태도에 대한 비난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을 참고해 보면, KJV는 ‘너무 미신적이다’(too superstitious)로 NIV는 ‘매우 종교적이다’(very religeou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23절의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제단의 비명은,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의 저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종교심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성’과 ‘알지 못하는 신’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전하고자 하는 바울의 접속 코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의 역사나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한 연결 코드보다는, 자연스럽게 헬라적 배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여기에서 그가 전파하려는 하나님과 제단 위에 새겨진 ‘알지 못하는 신’을 동일시한 것은 아닙니다. 아덴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신이 없다는 이야기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잡다한 신들, 이러한 거짓된 신이 아니라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신관이 24∼29절까지 명료하게 서술됩니다. 사도 바울은 무신론자들과 범신론자들에게 참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유를 지으신,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주권자이시며, 따라서 이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어떤 집에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어떤 제단에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며, 그것보다 더 뛰어넘는 초월자, 인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계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사람이 드리는 제사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며,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철학자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만든 신들에게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십시오. 신화의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이 인간적입니다. 그들은 사람같이 연애를 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초능력을 그들에게 주어서 자기들의 상상을 펴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울러 바울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건물에 계시는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시며, 인간의 도움을 받는 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현재 나와 연대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상이 아니며, 하나의 실제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위치는 하나님 아래서 그분으로부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젖줄을 통해서 자라나듯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자라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태아가 어머니로부터 생명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나듯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먹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이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존재이며,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30절의 ‘알지 못하던 시대’는 하나님의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 이전을 가리키며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는 하나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또 심판보다는 회개의 때를 기다리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우상숭배 행위까지 참고 견디시며 자신을 자연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셨으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복음의 메시지가 온 세상에 증거 되고 있기에 인생들은 회개를 통하여 삶의 근본적인 변화 속에 우상숭배를 멈추고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함을 요청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립니다. 



첫째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복음을 접하지 않았던 알지 못하던 때에는 하나님이 별로 허물하지 않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이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종말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못박혀 죽었지만 그분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심판을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언젠가 겪을 심판에서부터 우리가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지불해야 할 엄청난 죄 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의 삶 속에 더욱 풍성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