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들어야 할 음성”(사 41:10-14) 

현대인의 특징 중 하나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죄의 결과이며(창 3:1-10), 우리를 지배하려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계속 두려움을 줍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한 번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그것에 묶여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욥이 시험을 받은 것도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두려움은 인간을 파괴하고 성공을 가로막는 적입니다. 

본문은 바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암울한 것도 주목해야 할 사건이지만 바로 이때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 45:15에서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숨어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통하여 영육 간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로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지 아니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두려움 때문에 저들은 몹시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그들은 “하나님! 왜 우리들의 고통을 들어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하면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 40:27)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진정한 자유와 평안, 그리고 승리를 맛보는 생활을 하도록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음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기도의 제목을 삼기를 원합니다. 

1.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사 41:10 상)
본문 10절 상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가 들어야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워 말라”는 음성입니다. 본문 말씀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지 한참 후, 모든 것을 포기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요구하시 는 것은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명령을 하시는 이유는,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만 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만 살라는 것입니다(눅 8:50).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사단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안겨주지만,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담대함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딤후 1:7)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매일"같이 말씀하십니다.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6번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2.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사 41:10 중)
본문 10절 중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가 들어야 할 두 번째 음성은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동시에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항상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나와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바로와 대결할 힘도 의지도 없는 모세를 보내시면서, “내가 정녕 너 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굴복시키고 출애굽 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군사력이나 엄청난 돈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 입니다. 
엘리사와 사환이 아람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 도 불 말과 불 병거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왕하 6:16-17).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자 문제 해결의 능력입니다. 물질, 명예, 권력으로 일하면 실패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승리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이 밤에 기도회로 나오신 여러분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상기하면서 결코 방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시 23:4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는  말씀입니다.(사 41:10 중)
본문 10절 중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가 들어야 할 세 번째 음성은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선포이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선언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이 약속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과 핍박이 와도, 사람이나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의심하면 안됩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 40:31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4.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사 41:10 중)
본문 10절 중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가 들어야 할 네 번째 음성은 “내가 너를 굳세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특징은 담대함입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굳건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들어 강하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곧 하나님의 강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들어 쓰셔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12:10)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강하고(엡 2:1), 성령의 충만함으로 강건해집니다. 엡 3:16에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세게 만드시는 것은 "거룩한 사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될 때, 거센 풍랑과 폭우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4). 

하나님은 사명자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하십니다. 사명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사명이 있으면 어떤 유혹도 뿌리칠 수 있으며, 핍박, 고생, 아픔, 슬픔도 다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어떤 사명을 받든지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는 말씀입니다.(사 41:10 하)
본문 10절 하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가 들어야 할 다섯째 음성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이 약한 우리들을 "돕는 자"(시 55:4)이십니다. 그래서 본문 13-14절에서 “이는 나 여호와 너 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조금만 교회 생활을 오래하고 직분자가 되면, 이 진리를 잊어버리고, 자기 경험과 능력에 의지해 봉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힘도 없고, 무기도 없는 "지렁이"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 뿐입니다. 야곱도 절망에 부딪쳐서 환도뼈가 위골되고 자아가 부서져서 항복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문제 해결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유일한 생명 줄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렘 33:3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야곱과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은 죄의 결과이며,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창조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 힘과 능력을 주셔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① 두려워 말라 ②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③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④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고 말씀하셨던 말씀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음성인줄 믿고 비록 우리의 현실이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상기하면서 다시금 믿음의 주가 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복된 기도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