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12)] 행함이 없는 믿음 김근수 목사(한울교회)
2011년 01월 27일 (목) 11:20:28 기독신문 ekd@kidok.com

   
  ▲ 김근수 목사  
요절: 야고보서 2장 14~19절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 각각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교훈 한다. 믿음은 나무의 뿌리라면 행함은 그 줄기와도 같다. 결국 믿음과 행함은 하나의 양면성임에 틀림이 없다.


율법주의적 행함

예수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자들로 책망을 받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율법을 지킴에 있다고 교훈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율법의 온전한 정신보다 그들의 상류계층이었던 바리새파, 사두개파, “백성의 장로”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유리하도록 율법을 해석한 율법해석집이었던 “할라카”를 지키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하였다.

이 “할라카”에 의하면 안식일법을 해석하기를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집안에서는 이 법이 적용이 되지 않고 집 밖에서만 적용이 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안식일의 정신보다 그 문자적 시행을 강요하였다. 이같은 베후에는 당시 집안에서 사는 상류계층의 기득권을 집 밖에서 노동하는 하류계층으로부터 지키려는 시도가 숨어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율법의 창시자이신 그분은 율법의 온전한 해석자이시며 그 완성자이시다. 율법의 정신에 순복하여 율법을 지킴이 아니라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할라카”를 성문율법과 동일한 율법으로 간주하고 사실상 유대사회의 통념에 불과한 것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강요한 것은 율법주의적 행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울 사도에게는 “율법의 행위”요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하였다(갈 1:6 이하).


반율법주의적 신앙

율법주의에 반대한 율법무용자들이나 율법폐지론자들은 율법 자체를 옛 시대의 유물처럼 취급하고 그 유효기간이 다 지났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구원받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믿음이 행함과 같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책망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사죄와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참 믿음의 사람이라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 믿음이 참믿음이겠느냐고 힐문한다. 사실상 그는 스스로 믿음이 없는데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속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께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는 언제나 “율법의 행위”란 어휘로 율법주의적 행위를 거절한 것이지 믿음의 “행위”를 부정한 적이 없다.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율법에서 주어진다.

야고보는 지금 믿음과 “율법의 행위”가 공존함을 교훈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가 공존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력 있는 신앙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의 씨가 발아하기 전과 같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싹이 난다. 표현되지 않은 행위라도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표현된 행위와 똑같이 여김을 받을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