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10)] 믿음에 부요한 사람 김근수 목사(한울교회)
2011년 01월 15일 (토) 11:30:22 기독신문 ekd@kidok.com

   
  ▲ 김근수 목사  
요절: 야고보서 2장 1~7절

야고보는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게 한다. 첫째는 세상에 부요한 사람이다. 재물과 재산이 많아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둘째는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순종한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다. 셋째는 세상과 믿음에 다 부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성경은 세상에 부요한 사람이 꼭 되어야 하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지혜자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잠 30:7-9)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믿음에는 꼭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믿음의 부요

바울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고후 8:9).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믿음으로 부요케 하심을 뜻한다. 그는 귀족과 부자의 신분, 율법학자의 삶을 배설물같이 거절했다.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에서는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됐다. 춥고 배고픈 사람이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어떠한 고난과 고생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빌 4:12,13).

여기에 믿음의 부요가 있다. 믿음으로써 가난의 고뇌와 고생과 고통을 이길 수 있음을 뜻한다. 야고보는 이렇게 믿음으로 부요케 된 사람은 성도를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그 내면의 중심을 보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아름다운 옷으로 내면을 감춘 외식하는 자를 특별 우대하는 당시 회당의 윤리를 책망했다. 바울사도에게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백성의 장로들이나 율법사들이나 서기관들의 부요함이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물질에 부요한 가문에서 출생하고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지만 믿음의 부요를 더 갈망하고 있다.


물질의 부요

야고보는 물질로 세상에서 부요한 자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괄시하고, 압제하여 법정으로 끌고 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당의 랍비들은 짖지 못하는 개처럼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기는커녕 그들을 회당의 “좋은 자리”에 앉으라고 아첨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다. 이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에 역행하는 범죄이다. 물론 물질 자체가 악한 것이라고 정죄할 수는 없다. 신실한 기독자들은 신앙적 방법으로써 재물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재물을 사랑의 밑천으로 사용한다. 이는 귀한 것이고 더 큰 복을 받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재물이 들어올 때 교만과 시험과 심지어는 죽음까지 따라 들어오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근심 없는 재물이 하나님의 축복이지 근심이 따라 들어오는 재물은 위험성이 크다(잠 10:22).

야고보는 새로운 종말론적 공동체요,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유대 민속 종교에 지나지 않았던 유대교 회당 윤리가 스며들까 경고했다. 한국 교회 안에는 과연 천국윤리가 시행되고 있는가 아니면 회당윤리가 관행으로써 자리 잡고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의 문턱을 가난한 자들에게 높여놓고 있는가 다시 살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