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시 118:5-9)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유치하고 보기가 흉한 것 중에 하나가 “내 편”, “네 편”하면서 편을 갈라서 싸울 때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힘이 들고 어려울 때에 아무나 우리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나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면 얼마나 힘이 납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강한 배경과 후원자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강한 배경과 좋은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를 편들어 하나님보다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심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17 하반 절에서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변하고, 세상의 인심은 다 변해도 결코 변화지 않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내편이 되어 주십니다. 나를 편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정확하게 누가, 언제, 어떤 배경과 상화  가운데 기록한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성경학자들은 대략 다윗이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능력을 찬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누가 언제 왜 기록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 6-7절에서 반복되고 있는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반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본문의 기자가 다윗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다윗이라고 가정한다면 본문의 말씀이 더욱 더 생생하게 이해가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윗은 내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삶의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여호와는 내편이시라”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다윗과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내편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화)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이며 목회자인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시편에 있는 150개 시 중에 118편의 시는 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펼전 목사님은 “시편의 모든 시가 다 아름답고 큰 영적 의미가 있지만 118편이야 말로 나의 가슴에 가장 많이 와 닿고 용기를 주고 힘을 준다. 시편 118편의 시는 나의 시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머리로만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편이 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은 내편이신 것을 믿습니까? 그분을 확신합니까? 그분을 의지하십니까?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의 인도하심에 만족하십니까? 

물론 대체로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 일을 어떻게 대처할까?' 하면서 몸들 바를 모르게 되어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 편에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거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 편에서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고,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십니다.(5절)  
본문 5절에서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본문을 통하여 내편이신 하나님께서 극심한 고난에 처한 자신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심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의 “부르짖다”라는 말은 간절한 기도를 의미입니다. 또한 여기의 “광활한 곳”이란 한정 없는 넓은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윗이 얼마나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십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특별 열쇠 곧 만능열쇠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 7:7-8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의 일입니다. 노예 해방을 내건 링컨 대통령이 북군(北軍)을 주재하며 남군과 대치했지만 ‘로보트 리’(Lee, Robert Edward)' 장군이 이끄는 남군(南軍)을 쉽게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남군에 의해 북군이 치명타를 입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던 링컨은 이 전쟁이 사람의 힘으로 종식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하루 세 시간 이상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기도에 매달리자 이를 본 측근의 각료들은 자신들도 “북군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달라는 기도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정색을 하고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그런 기도는 아예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던 각료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기를 원하느냐고 재차 묻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언뜻 비슷한 말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도의 중심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북군 측 사람들이 하겠다는 기도는 우리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우리에게 끌어오는 내용이었고, 링컨이 바랐던 기도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우리가 그 뜻을 따르겠다는 기도였습니다. 

남군과 북군에 속한 사람들은 제각기 서로 자기진영이 승리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요구대로 기도를 들어주시려면 남군편이 되셔야 하겠습니까? 북군편이 되셔야 하겠습니까? 모두가 다 하나님이 자기편이 되게 해 달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수많은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이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면 반드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올바른 기도라면 우리가 하나님편이 되게 해 달라고 해야 하나님께서 인류를 이끌어 가시는 모든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노예 해방이 하나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니 하나님께서 북군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자고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될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길 바라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편이 되고자 하는 이러한 믿음의 자세가 끊임없이 우리 가운데 쏟아져 나올 때 모든 시험과 환난을 다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이 없습니까? 사방이 막혔습니까? 위로 난 길을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만드신 길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사람이 기도할 마음만 먹어도 응답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작정만 해도 응답하여 주십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곳에서 기도하라, 부르짖으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안 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나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기도를 통하여 내가 먼저 하나님의 편이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2.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영어성경 [RSV]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돕기 위해 내 곁에 계시도다.” (The Lord is on my side to help me) 이는 하나님이 친히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내 옆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편이시고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고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하였기 나올 수밖에 없는 고백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는 성도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4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시 27:1, 56:4)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성도라면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수 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심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지라도 나를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이해해 주시고, 기꺼이 도와주십니다. 아낌없는 배려 속에서 주의 자녀들을 품안에 품으시고 그 넓으신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것은 내가 주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편에 선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줄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때는 주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주님 반대편에 서 있을 때도 있었고, 주님 편에서 일한다고 여겨 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을 위해 살아온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했지만 여전히 내 욕심만 채우고 있었던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또 일이 잘 풀릴 때는 주님이 내 편에 계시는 것 같지만, 일이 꼬일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모습이 이렇게 일그러져 있는 것은 우리의 심성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리도 생각하고 저리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우주의 자연 법칙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해가 떠오르고 햇빛이 비치면 "해가 떴구나" 하지요? 그리고 아침에 흐리거나 비가 와서 햇빛이 없으면 오늘은 해가 "안 떴다"고 태양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궂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태양은 언제나 동일하게 하늘에 떠 있습니다. 태양이 안 떠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태양은 언제나 일정하게 그 자리에 있습니다. 심지어는 깜깜한 밤에도 태양은 떠 있습니다. 

이처럼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같이 항상 변함이 없으십니다. 여전히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처럼 아침에 다르고 점심때 다르고 저녁때 다르듯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변함없는 모습으로 모든 일들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진행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분입니다. 실수도 없으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도 없으십니다. 일정하게, 정확하게, 균등하게 변함없이 섭리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편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여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를 삼으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항의합니다. 그때 하나님이그 사라를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편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시원찮아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한번도 책망치 않고 아비멜렉만 책망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기도로 살게 됩니다.  

솔직히 누가 잘못 했나요? 아브라함이 잘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공평치 않으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아버지" 이실 때입니다. 
 
판사는 공평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공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에 대해 갈등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일방으로 사랑하십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못났어도 못난 자식에게 사랑이 갑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무능해도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한편에 치우치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이며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항상 내편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26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한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는 없습니다.(마 7:9-10)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들어 죽을까 두렵습니까? 망할까 두렵습니까? 내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어 주심을 굳게 믿고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물질입니까? 건강입니까? 죽음입니까? 또한 자녀들의 장래 문제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 43:1-3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고 강을 건너고 불 가운데 행할지라도 이것이 우리를 해하거나 침몰하지 못하도록 함께 하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과 강과 불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31 이하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지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면 그 두려움이 결국 우리의 삶을 위축시키고 모든 것이 다 무섭게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벗어버리면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 6절 하반 절에서 “사람이 어찌할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벗어버리면 어떤 사람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고 그 모든 대적과 불의한 것에서 우리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는 세상의 음성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내편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삶의 모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용기를 가지고 승리적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7절)  
본문 7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報應)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내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의 기자는 1-3절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편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을 곧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내편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친히 보응하십니다. (삼상 23:38, 31:4)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정작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주변의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어렵고 힘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간구할 대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사람을 찾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다닐 때 또한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하여 다닐 때에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했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는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신앙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유랑과 피난 생활에 지친 다윗은 이스라엘 떠나 블레셋에 정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울의 위협을 받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 아기스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시글락에 일년 넉 달 동안 있게 되었습니다.(삼상 27:7) 그러나 아기스의 도움은 다윗은 영원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도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신임 받으려고 할 때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참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도움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내편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시편 40편의 기자가 17절에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시 33:20, 시 146:5)

4.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8-9절)  
본문 8-9절에서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낫고 내편이신 하나님께 피함이 방백을 신뢰함보다 낫습니다. 왜냐하면 내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피할 곳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었고 그 누구에게서도 평안을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그러나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편이 되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광활한 곳에 자기를 세워주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요 하나님의 품만이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하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5편의 기자는 9-11절에서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편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에 봉착하면 이리 뛰어보고 저리 뛰어보고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심지어 사람이 사람 자신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그러기에 위험이 닥칠 때 하나님께 피하고 고난이 찾아 왔을 때 기도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권세나 자식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해서 살아 왔을지라도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의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대통령을 만나서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당장 대통령 궁으로 달려갔습니다. 경비원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만나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애걸을 해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섰습니다.  "아! 이젠 어떻게 하지..."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 "아저씨!"하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아저씬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세요?" 그 사람은 그 꼬마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소년에게 자신의 문제를  남김없이 털어놨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소년은 "음... 그럼 절 따라오세요." 하고는 앞장서서 백악관으로 들어섭니다. 그 사람은 소년의 뒤에서 자신을 전혀 막지 않는 문지기를 의아하게 여기며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소년이 말합니다. "아빠, 이 아저씨가 아빠를 만나고 싶대."  알고 보니 그 소년은 대통령의 아들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미리하지 아니해도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편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편 46편의 기자가 1,7,1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피난처되신 하나님이 내편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분을 만나려면 그의 아들 예수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사람을 믿지 마세요. 사람은 다 변합니다. 

부모를 의지합니까? 세월 지나면 힘도 없으시고 다 떠나십니다. 자식을 의지합니까? 결국은 실망합니다. 그러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에게 든든한 배경이 있습니까? 권력을 갖은자가 있습니까? 돈 많은 형제가 있습니까? 그들을 의지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고 소망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문제를 해결토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보세요. 결국은 하나님이 원수들을 꺾어 주십니다. 사울도 꺾으십니다. 아들 압살롬도 꺾으십니다.  기도하시되 의심치 말고 기도하세요. 믿음의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동반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투자한 만큼 누리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데도 아직도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주심을 믿지 못하거나 하나님 편에 서기를 부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흔들립니까? 왜 의심합니까? 왜 불평합니까? 왜 좌절합니까? 아직도 하나님이 내편 되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통이 찾아오고, 누가 나를 대적하고, 정죄하고, 송사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을 도와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세력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하나님이 내편 되심에 확신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하십니다.(요 3:16)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그 사랑을 머리로서 이해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마시고 그 사랑을 삶으로 경험하는데 까지 나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에게 도든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늘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단 한 순간도 여러분을 잊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분주하게 살면서 잠시 하나님을 잊는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한숨을 쉬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잠을 자는 그 사이에도, 절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내편이신 하나님은 여러분에 곁에서 여러분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응답하여 주시고 여러분의 두려움을 다 제거하여 주시고 또한 삶의 모든 것을 다 도와주시고, 언제나 우리가 피할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 내편이심을 깨닫고 본문에 나오는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곁에 게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하나님은 항상 내편이 되어 주시나 때로는 내편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그때 우리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있지는 않는지요? 그때는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도록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 우리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