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딤후 2:20-22)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卒業)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에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시고 은혜를 주셨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졸업예배를 드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축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졸업이란 것은 한 과정의 마침이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졸업(卒業)이란 ‘커멘스먼트’(commencement)라고 하는데, 이는 ‘시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졸업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의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졸업예배는 단순하게 한 과정을 마친 것에 대한 축하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졸업예배를 통하여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자기반성과 함께 자기 발전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을 갖는 날입니다. 따라서 졸업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잘 받고 결심하고 결단하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잘 듣고 잘 받으면 그 말 속에 있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훈의 말들을 의미 없이 받는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처럼 불안하고 보장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본래 땅콩 농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좋은 농촌 아저씨같이 생겼는데, 그 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원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군대 생활할 때에 상관이 심부름을 시켰는데, 상관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놀고 있다가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 때 상관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으냐”(Why not the best?)라는 말 한 마디가 지미 카터를 평생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맡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메시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성경 말씀에 의해서 말씀을 주는데, 졸업생 여러분이 의례히 말하는 목사의 말로만 그냥 받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박힌 못처럼 가슴에 새기고 품고 사는 학생들에게는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이고,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어 줄 것이고, 여러분이 가는 길에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의 가치(value)를 업그레이드(up grade)를 시켜야 합니다.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 따라서 그 사람의 장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정으로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고 살 때에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햇빛을 모으는 돋보기는 초점을 맞추어 그것으로 물체를 태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비전을 태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주시는 본문은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그릇과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릇이 주인에게 귀히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20절에서 “큰 집에는 금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와 질 그릇 이 있어서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이는 것도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의 그릇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잘 진열된 화려하고 좋게 보이는 그릇이 있는 반면에 주방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여러 모양의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큰 집”이란 교회를 말합니다. 성경학자 ‘크리소스톰’이 말한 것처럼 “큰 집”을 넓은 의미로 “세상”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앞뒤 문맥을 볼 때에 칼빈이 말한 것처럼 “큰 집”은 “교회”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한 해석입니다. 

아무튼 큰 집이 세상으로 해석하든지 아니면 교회로 해석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질이 좋은 그릇이 주인에게 귀히 쓰임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주인에게 귀히 쓰임을 받는 그릇은 좋은 재질의 그릇이 아닙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있지만 그 재질에 따라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참으로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초인(超人)이 아니라 범인(凡人)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 의사, 세리장 등과 같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제자들은 그저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거센 폭풍을 대단히 무서워했습니다.(막 437,38) 기도하라고 했더니 기도하기보다 금세 잠이 들어버릴 만큼 의지가 굳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눅 22:39-47)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자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고 헛소리나 하는 도무지 영적 센스라고는 없는 자들이었습니다.(요 12:3-6), 떡 가져가는 것도 매번마다 잊어버리고(막 8:14), 누가 가지고 오겠지 하는 부주의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수 연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마을에 들어가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해버리자는 저주의 말까지 서슴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눅 9:50)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고 그것이 부모의 죄냐, 자기 죄냐 하는 그릇된 생각을 품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요 9:1,2) 참으로 우둔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좋은 아이디어(idea)가 없다고 신문사에서 쫓겼 났던 사람입니다. 그는 편집국장에게 자신이 그른 그림을 보여주었지만 “이것도 그림이냐?”는 타박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연거푸 실수를 저지르던 디즈니는 신문사에서 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 세계 어린들의 꿈이라는 디즈니랜드의 창설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결점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점 때문에 우리를 사용하지 아니하시지는 않습니다. 고전 1:26-29에서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자들을 폐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결점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약해도 얼마든지 쓰임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외면을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21절)
본문 21절 상반 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자기를 깨끗케 한다.”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엑카 다이로 아우톤'라는 말인데 이 말은 '완전히 자기를 정결케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완전히 자기를 정결케 해야 합니다.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금 그릇, 은그릇이라도 그 안이 더러우면 귀히 쓰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나무그릇, 질그릇이라도 그 안이 깨끗하면 귀히 쓰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재능이나 지식, 재산이나 명예와 같은 외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복음의 순수함을 간직한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룩하고 구별되고 경건(敬虔)되고 성결(聖潔)된 삶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의 깨끗함보다 마음 중심의 깨끗함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이 깨끗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가까이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한강에는 물이 많이 있지만 그 물을 다 음료수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깨끗해야 음료수로 쓰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볼 품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깨끗해야 합니까?
첫째는 청년의 정욕으로부터 깨끗해야 합니다.(딤후 2:21 상, 창 39:9) 
본문 22절 상반 절에서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청년의 정욕으로 깨끗하여야 합니다. 
정욕은 깨끗한 마음의 그릇을 더럽게 하는 부패한 찌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정욕이라는 찌꺼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갈 5:24에서  "정과 욕까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젊어서부터 이러한 온갖 더러운 정욕을 극복하는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됩니다. 

그런데 왜 '청년의 정욕'이라는 말을 썼습니까? 이는 청년 때 가장 정욕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마치 자석과 같아서 모든 유혹에 마구 끌리는 느낌을 금치 못합니다. 잠깐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면 하나님께 쓰임받기는커녕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을 받으려면 그러한 정욕으로부터 깨끗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깨끗한 인물로 유명한 요셉의 삶을 주목해야 합니다.(창 39:1-) 요셉은 물질에 깨끗해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자기 집의 살림을 모두 맡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성 문제에도 깨끗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적으로 문란했던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집요하게 유혹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순결함을 지키었습니다. 
창 39:9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요셉은 이성 문제에 깨끗했습니다. 
이성 문제처럼 더럽고 우리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나실인 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문제를 바로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결국 두 눈을 꼽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 문제에 깨끗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결국 살인죄까지 짓게 되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지만 성결치 못함으로(아비 야곱의 서모 빌하와 통간, 창 35:22)와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창 49:4) 그러므로 청년의 때에는 특별히 이성 문제에 깨끗해야 합니다. 

둘째로 물질 문제에 깨끗해야 합니다.(삼상 12:3)
물질 문제에 깨끗한 대표적인 사람은 사무엘 선지자였습니다. 삼상 123에서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 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무엘 선지자는  물질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깨끗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뇌물수수(賂物授受) 문제 아닙니까? 청탁용 뇌물, 깨끗하지 못한 정치자금, 공금횡령(公金橫領) 문제 등 이 모든 것들이 다 물질 문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문제 때문에 교회가 혼란되어지고 문제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예화) 미국의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불린 이는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를 하나님이 그처럼 강하게 쓰신 것은 그의 학벌이나 실력, 정치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아울러 정직한 데 있습니다. 링컨은 한 때 법률사무소(法律事務所)에서 함께 일했던 헨리라는 사람은 링컨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833년 링컨은 잠시 ‘일리노이주 뉴사렘’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우체국장을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우체국은 폐쇄(閉鎖)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법적으로 정부가 수금해 가야할 잔액이 18불이 있었습니다. 링컨은 그 후 대단히 어렵게 살면서 여기 저기 조그마한 부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한 체신부 관리가 스프링필드에 있는 링컨 법률사무소 갑자기 들여 닥쳐서 18불의 잔액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링컨은 즉시 자기 하숙집에 가서 트렁크 안에 간직한 낡은 양말짝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그 안에는 동전 한 푼 틀리지 않는 정확한 금액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쪼들리면서 남에게 돈을 빌려 쓰는 형편에 있을지라도 나라의 공금(公金)은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링컨과 같이 깨끗한 인물을 강하게 사용하사 일국의 대통령까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셋째는 음식 문제에 깨끗하였습니다.(단 1:8-9)
단 1:8-9에서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 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니엘처럼 음식 문제에 깨끗하였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주초(酒草)와 마약에 깨끗해야 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중에는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이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 문제에 철저하게 깨끗해야 합니다. 

넷째로, 진리 문제에 깨끗해야 합니다.(딤후 2:15,18)
진리 문제에 깨끗한 대표적인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딤후 2장 15절과 18절 상반 절에서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바울처럼 진리 문제에 깨끗해야 합니다. 
고후4:7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스스로를 질그릇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속에는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기에 그는 진리 문제에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믿는 사람들을 죽이면서도 하나님이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었습니다.(행9:15) 그러므로 자기를 정결케 하는 사람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빌4:8-9)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헌신할 때, 깨끗하게 바쳐질 때, 하나님께서 가장 값지게 쓰신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세탁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돈 세탁은 할 줄 알면서 마음세탁은 왜 안 할까하며 아쉬워하게 됩니다. 양심세탁, 인격세탁을 해야 합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회개하여 정직을 찾고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깨끗하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끗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깨끗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깨끗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개인이든지 교회이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 깨끗해져야 쓰임 받게 됩니다. 오늘 졸업하는 졸업생뿐만 아니라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도 올 한 해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마음을 가진 성도와 교회를 찾아 축복을 베푸시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해야 합니다.(21절 중)
본문 21절 중반 절에서 “...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모양새가 좋은 그릇일지라도 쓰기에 불편하면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볼품은 없으나 쓰기에 좋은 그릇은 많이 사용합니다. 주방에 있는 그릇은 보통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그릇은 모양도 화려합니다. 비싸 보입니다. 그러나 들어서 쓰려면 깨지기가 쉽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찬장이나 문갑 위에다가 놓고 장식용으로만 사용합니다. 커피 잔도 많은 것 중에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릇 중에 늘 손이 가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비록 결점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모양새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외모가 좋아 보여도 외모로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결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간음한 사람이요, 살인한 사람이요, 거짓말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결점과 단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용하신 이유는 우리의 기준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에 다윗은 다른 일곱 형제보다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언제나 들녘에서 양을 관리하는 데 소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13:22)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까?
본문 22절 하반 절에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 있어야 합니다. 
행 4:36과 행 11:24 이하에 보면 ‘바나바’가 나오고 있는데, 바나바는 남을 잘 권면하고 잘 위로해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권위자(權威者)로 불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했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항상 좋은 의도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처음 다메섹에서 회개했을 때 초대교회는 그에게 곁을 주지 않고 경계할 때에도 바나바가 찾아가서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일 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성경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또한 안디옥교회의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는데 동행하고 나중에는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하는 선교사의 길에도 함께 갔습니다. 남들이 다 외면하고 따돌릴 때라도 바울을 사도로 만들도록 힘쓴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또한 저는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인지, 행13:2까지는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왔으나 행13:46에서는 바울이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결코 불만을 품지 않고 남을 나보다 높이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바나바였기에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교회는 무슨 어려운 일만 있으면 바나바에게 의뢰했던 것입니다. 그는 정말 쓰기에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일군이 절대 필요합니다. 목회 하다 보면 남의 잘못에 대해서 옳고 그른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아도 남이 무슨 잘못을 할 때 그 허물을 감싸주고 싸매 주면서 격려함으로 인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은 적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 가운데 바나바같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합니다.  

(예화) 슈바이처 박사는, ‘나의 생활과 사상’이라는 자서전(自敍傳)에서 자신은 아프리카 밀림으로 갈 때 하나님을 위해 세 가지를 포기하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그는 바하의 음악을 포기하기로 했고 둘째는, 유명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했고 셋째는,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장된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위해서 평생 희생과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는 그의 자서전(自敍傳)에서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포기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축복과 은총으로 보상해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① 슈바이처 박사는 음악을 포기했지만, 바하 협회로부터 열대지방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대형 페달 오르간을 기증 받아 계속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②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의 강의는 포기했지만, 세계 여러 대학에 명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③ 슈바이처 박사는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나의 생활과 사상'이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오히려 그가 더 넉넉하게 아프리카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기만 하면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상하여 주십니다. 물질을 포기하면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인생을 포기하면 인생의 축복을 주시고, 재능을 포기하면 더 좋은 재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생을 멋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여, 주의 뜻대로 쓰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운동경기 중에서 신앙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경기는 야구입니다. 야구 선수들은 경기에 나가기만 하면 감독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립니다. 감독이 치라는 사인을 보내면 치고, 달리라는 사인을 보내면 달립니다. 야구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대로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학생들도 우리성도들도 우리교회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학생, 성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독 삼아‘하나님, 우리에게 사인하여 주시옵소서. 달려야 합니까, 멈춰야 합니까? 사인만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의 사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인을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크게 들어 쓰실 줄로 믿습니다. 

3. 모든 선한 일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21절 하)
본문 21절 하반 절에서 “...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선한 일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여기서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고 준비(準備)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했던 웃시야 왕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에 온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암울한 조국(祖國)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전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놀라운 장면이 성전 가득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부르는 천사들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사야는 지금까지 자기는 사람만 의지하다가 낙심이 할 뿐, 만군의 왕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너무나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불인두(火箸)가 이사야의 입술을 대면서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 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지체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부터 이사야는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힘으로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기 일을 맡길 그릇을 찾으시면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하십니다. 그 때 여러분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여야 합니다.  

(예화) 한국 순교사를 보면 박관준 장로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제가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때의 일입니다. 새벽기도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의사인 박관준 장로님은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피 흘릴 자가 누구냐?" 이에 박 장로님은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써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군병을 뽑을 것이다'라는 음성과 함께 거룩한 천사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펴지는데, 많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제일 첫 번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감격하여 '나의 생명을 바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겠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신문에 「신사참배 문제로 기독교에 위기가 도래(到來)했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것을 본 박 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즉시 서울로 올라가 일본 국회에 신사참배의 부당성(不當性)을 주장하는 격문을 뿌리고 총독을 면회하여 신사참배를 중지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투옥되어 결국 옥중에서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선한 일에 쓰여 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화평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주님께서 부르시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방에서 쓰임 받는 그릇은 준비된 그릇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라도 쓰시기에 적합하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 자체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 그릇들이 깨끗하게 비어 있어서 주님이 사용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가를 보십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교만(驕慢)과 이기심(利己心)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들을 제거하고 준비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때때로 시련을 주시고 기도 응답을 지연시키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을 훈련하십니다. 

첫째, 기도로 준비시키십니다. 사무엘의 기도로 미스바 부흥을 준비하셨습니다. 3년6개월 동안의 가뭄에도 엘리야로 하여금 기도로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알과의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 연단과 고난으로 준비시키십니다. 그래야 그릇이 쉽게 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욥의 연단은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모세의 80년간의 연단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도록 하였습니다. 

셋째, 말씀을 담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간직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깨달아서 실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건강으로 준비된 자, 학문으로 준비된 자, 지혜와 덕으로 준비된 자, 기술로 준비된 자, 경륜과 경험으로 준비된 자, 여러 가지로 준비된 자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졸업생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도로 준비시키시고, 연단과 고난으로 준비시키시고, 말씀으로 준비시키셔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잘 훈련받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쓰여 지기 위해 준비하는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 하려 하십니까? 선한 일에 쓰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뭐 하시겠습니까? 지식을 가지고 선한 일에 힘쓰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 재능을 통해서 선한 일을 하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재능 모두가 하나님께 쓰여 지기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며 영적으로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 뿐인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면 변화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하나님을 위해 예비 된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저를 통해 하나님의 선이 널리 전파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그릇은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의 유익을 위하여 쓰이는 것입니다. 이왕에 부름 받아 하나님의 교회의 그릇된 우리들은 겉모양만 치장된 진열장 안에 진열 되어있는 장식용 그릇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인에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우리교회를 쓰시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교회의 멤버로서 일할 가치가 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귀하게 쓰시기 원하십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금년 한해동안 여러분들은 깨끗한 그릇되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이는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부족해도 결점이 많아도 문제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 모든 선한 일에 예비(豫備)된 그릇이 되어야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확장과 나라에 크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