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13:33
제목 : 누룩의 철학

「누룩」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죄, 잘못된 교훈, 이단사설, 부패성 등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 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좋은 의미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적은 양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2. 내면에서부터 소리없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3. 전체가 변화된 모습을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런 세 가지 특성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면,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마치 가루 3말 속에 들어가 전부를 변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도 못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는 완악한 짐승의 본성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는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새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제임스 밀」이라는 공리주의자는 인간이 글을 배우고 고상한 고전을 읽으면 선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번민과 고통 속에서 더 악한 것밖에 없습니다(전도서 1장 18절, 12장 12절) 지식이 인간을 개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충격을 주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간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는 조용히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 오셔서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고, 서서히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누룩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 속 깊은 내면의 세계부터 변화를 일으킵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을 보면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죄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 과거에 하던 모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누룩이 가루 속에 들어가 서서히 부풀게 하는 것처럼 서서히 변화되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는 변화된 소수의 사람들이 누룩의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변화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급속도로 부흥되었으나 1세기가 지나면서부터 부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이 가정에 모여 성경을 배우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변화된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가 서서히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경건주의 운동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소수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되어서 누룩처럼 소수가 다수를 감당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사회에서 누룩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한국에 교회가 많다고 하지만 아직도 신자는 소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소수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교회는 사라지는 듯 했으나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갈수록 악해져 가며 권태와 불만으로 가득찬 이 사회에서 신자가 해야 할 일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룩입니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름다운 성도의 모범을 보여 줄 때 신자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 앞에 보여지도록 우리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 앞에서 완전히 개방되어 그들이 우리를 보고 변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