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히 3:7-19)

히리서는 기자는 본문 8절에서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은혜롭게 하려고 하면 꼭 시험에 들어 마음이 강퍅케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마음의 병에 걸리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외모에 특별히 신경을 썼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유행하는 신종어(新種語) 가운데 '외모산업'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사업 계획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외모 사업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용실, 피부관리실, 스포츠센터, 각종 화장품회사, 이 모든 것들이 다 외모를 관리하는 외모산업입니다. 최근 가장 호황을 맞는 병원 중 하나가 성형외과입니다. 옛날에는 흉터 정도를 고쳐주는 병원이었지만, 지금은 멀쩡한 것을 다 고치는 공사를 합니다. 물론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쳐서 예뻐진다면 공사하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옷도 깨끗하게 입고, 자기 가진 것에서 최고로 예쁘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몸매도 가꾸어야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보일 권리가 있고, 어떤 면에서는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외모에 신경을 쓰는 만큼 마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상당한 돈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여 외모를 가꾸지만, 마음을 가꾸는 사람은 참으로 발견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잠언 말씀에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생명의 근원이 외모와 육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얼굴은 아름답고, 몸매는 누구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외모를 가졌지만, 그 마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고통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영적 성숙을 방해하는 질병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에 대해 알았고, 오늘은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이 성숙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의 중요한 질병 하나를 고쳐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입니다. 

도대체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이 무엇일까요? '강퍅하다'는 단어는 '딱딱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4장 2절)에서 유사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양심에 화인(火印)맞은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의 양심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가진 반면 어떤 사람은 화인 맞은 양심을 가졌다는 겁니다. 여기서 '화인'이란 단어는 화상입니다. 
피부에 심하게 화상을 입으면 흉터가 생깁니다. 그 흉터는 감각을 잃어버려 만져도 잘 모릅니다. 바로 이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말은 무감각해진다는 말입니다. 감각이 없어져 버려요.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음이 완전히 굳어져 버리는 겁니다. 주의 말씀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어도 내 마음이 무디어져 버린 것입니다. 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때때로 하나님 앞에 애통해져야 하는데, 무감각해져 버리는 겁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들려오는 겁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마음의 강퍅함입니다. 

여러분! 간경화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입니까? 간은 원래 부드러워서 영양분을 잘 저장하고 자기 기능을 잘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이 어떤 연유로 인해 딱딱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 기능을 못하는 상태를 간경화라고 합니다. 병중에서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강퍅함은 이런 간경화와 비길 수 없는 중대한 질병이라고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간이 딱딱해질 때, 우리는 긴장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이 강퍅한가, 질병에 걸려있지 않은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응답치 않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시장에 나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지금 마음이 강퍅하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요. '피리를 불어도 저들이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안에서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말씀이 나를 꾸짖고 질책할 때 주님 앞에 나아와 애통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려야 함에도 우리의 눈에 눈물이 다 말라져버린 상태! 이것을 마음이 강퍅한 상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1. 마음이 강퍅하면 어떤 결과가 생깁니까?  
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강퍅하게 되면 두 가지 엄중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12절) 
마음이 강퍅하게 되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을 잃는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이 말은, 구원은 받았지만 이 땅을 살아갈 때 생명 되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소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전혀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아무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자입니다.  
겨울에 산에 가보면 나뭇가지가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겉은 똑같아 보이지만, 속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가지들이 한 나무에 달려있습니다. 한 가지는 생명이 있는 가지요, 한 가지는 생명에서 떨어진 가지입니다. 그것이 언제 결판이 납니까? 봄이 되면 납니다. 우리 눈에 똑같이 보여도 생명 있는 가지는 봄에 싹을 내는 법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가지는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마른 채로 있습니다. 농부가 나아와 그 가지를 잘라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열매 없는 가지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저와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이 강퍅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는 드리는 것 같은데,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하나님의 생명과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11절을 보세요.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는 19절에서도 강조합니다.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마음이 강퍅해지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안식'은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겁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잘못 해석하여 '가나안'을 '구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했을 때 이미 구원은 받은 겁니다. 그러면 이 가나안은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이후에 이 땅에서의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축복의 삶입니다.  

히브리서 4장을 읽어보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너희는 이미 안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또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참 안식은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의 신분이 안식에 들어간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떤 안식일까요? 이 땅에 사는 동안 구원받은 기쁨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놀라운 삶인 줄 믿습니다.  

우리 마음이 강퍅하게 되면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구원받고 교회에 나오고는 있지만, 이 땅에서의 삶에 전혀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없는 삶! 이것이 우리 마음이 강퍅하게 될 때 생겨나는 무시무시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는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가끔 기뻐합니다. 이유는 사업이 잘되어서 기쁜 겁니다. 낙심합니다. 이유는 사업이 망했어요.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불행한 삶입니다.  
마음이 강퍅한 병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이 병에 걸리는가? 예방을 위한 병의 원인을 하나님은 정확히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2. 마음이 강퍅케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① 마음이 미혹될 때입니다.  
10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우리의 마음이 미혹될 때, 마음이 강퍅해진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미혹된다'는 말은 방황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다스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관심이 없어요. 그저 환경에 따라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마음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웃고, 나쁜 일이 생기면 낙심하고,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스림이 없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조금만 괴로움이 와도 원망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낙심하고 짜증냅니다.  

이 미혹되는 마음을 출애굽기 17장의 예를 들어 히브리기자는 설명해 줍니다. 이곳에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 르비딤으로 가는 과정에 물이 떨어졌어요. 목이 마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모세 앞에 나아와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목이 마르게 하면, 목이 마른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바라보아야지, 어찌하여 나와 싸우려 하느냐!" 두 번째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렇게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세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겁니다. "모세야! 우리를 어찌하여 애굽에 그냥 두지 않고 이곳까지 데려와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너무나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신기한 해결책을 주십니다. 거기에 큰 바위가 있었나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야, 내가 바위를 향하여 설 테니 홍해를 갈랐던 그 바위로 나를 치라!"라고 하십니다. 바위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서 계십니다. 지팡이로 그 바위를 치면, 바로 하나님을 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바위를 쳤더니, 거기서 물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훗날 고린도전서에서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진정된 후, 모세가 그곳의 이름을 두 가지로 짓습니다. 맛사와 므리바입니다. 
맛사(Massa)는 히브리어로 '시험'이란 뜻이며, 므리바(Meribah)는 '다툼'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싸우려고 했고,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에 맛사와 므리바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미혹된 마음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려울 때 그 남편의 인격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미혹되었는지, 아닌지가 나타납니다. 잘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우면 집에 와서 애들을 달달 볶고 난리를 피웁니다. 심지어 교회에 와서 목회자에게도 시비를 겁니다. 미혹된 마음입니다. 

여러분, 일이 잘 될 때 즐거워하는 것, 누가 못합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내 목이 마르고,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있어 잠시 환란을 줄 때에 그 교훈을 감사함으로 받기보다는 그저 원망하고 사람들과 싸웁니다. 그리고 나가 "하나님이 정말 계셔! 내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주무시는 거야! 뭐 하시는 거야! 하나님은 안 계신가 봐! 목사님 기도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 하나님을 원망해 버립니다. 맛사와 므리바! 
여러분 삶에 이런 현상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미혹된 마음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이런 미혹된 마음을 갖게 되면, 언젠가 우리 마음은 간경화와 같이 강퍅하며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②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입니다. - 불신(不信)  
12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 의뢰하지 못할 때 -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4장의 예를 들어주십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데스바네아는 이스라엘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하지 않았다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죽지않고 열 하루만에 가나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어요. 열두 명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열 명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보고합니다. "그 땅은 우리를 삼키는 땅이야! 늪이야, 늪! 가면 다 죽어! 그 땅 사람들이 얼마나 건장한지, 우리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더라!" 단 두 명인 여호수아와 갈렙만 나서서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민수기 14장 1절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연합하여 웁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통곡을 하며 웁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 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낙담하고 억울해서 운 겁니다. 백성들이 낙담하여 "어떻게 하나! 거기에 거인들이 많다는데..."하고 웁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뛰어나와 설교합니다. "왜 우는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들어가면 저 땅을 얻을텐데, 왜 낙심하고 있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은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줄 믿습니다. 불신의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내가 저들보다 건강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무기가 나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군사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 땅을 우리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말씀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가기만 하면 저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때 백성들이 울다가 울음을 그칩니다. 손에 돌을 잡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죽이려고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40일,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리라!"  불신의 대가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그곳을 헤매다가 다 죽었습니다.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와 앉아있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합니다. "아멘!"합니다. 그러나 사업을 할 때, 가정 생활을 할 때, 운전을 할 때, 이 교회 밖을 나가서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내 경험과 내 방법대로 사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불신입니다. 주의 말씀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③ 죄의 유혹에 넘어질 때입니다.(13절) 
13절을 보세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유혹은 누구에게나 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유혹에 계속해서 넘어짐으로 죄를 지어 버릴 때, 우리의 마음은 강퍅해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죄를 한 번 짓고, 두 번 짓고, 거짓말을 자꾸 하고, 성령께서 찔러주는 죄를 결단함으로 끊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진다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성령님의 X-ray 앞에 찍어보지 않겠습니까? 외모만 신경 쓰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진단해 보십시오. 내 마음이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 저울의 바늘이 어느 쪽에 가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우리의 마음이 강퍅한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헤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구체적인 방법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3.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고칠 수 있습니까?

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7,15절)
7절과 15절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7절) ...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15절)”   
여러분, 마음은 무엇으로 수술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퍅해지고 딱딱해져 버렸어요. 감동이 없고 무감각해졌어요. 구원이란 말을 들어도, 십자가 노래를 불러도 옛날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죄를 짓고, 죄에 대한 설교를 들어도 나에게 와 닿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강퍅해진 겁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수술할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수술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세상 어디에 가도 구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 우리의 영혼을 유일하게 수술하고 치유할 수 있는 이 귀한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암송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깊이 숨겨져 있는 죄의 종양의 뿌리를 치유하고 수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탕자 어거스틴을 성자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마음이 강퍅해지셨나요? 마음이 간경화와 같이 굳어지는 것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②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12절)
12절 말씀을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삼가 염려할 것이요. 성경에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염려하라고 하는가? 사도 바울은 비슷한 단어를 쓰면서, 근심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사망을 이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영혼을 살린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말합니다. 직역하면 '주의하라' '조심하라'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라는 겁니다.  

브라이언 카바로프가 쓴 '내 마음의 정원'이란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우리의 마음을 정원에다 비유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어요. 정원을 가꾸다 보면, 심지도 않은 잡초는 너무나 잘 자랍니다. 그러나 키우려고 하는 화초는 조금만 관심을 게을리 해도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다는 겁니다. 나쁜 생각, 음탕한 생각, 죄에 대한 생각은 공부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서 너무나 잘 자라납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 사랑과 신앙에 대해, 게으름에 대해,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좋은 절제의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그냥 자라지 않아요. 애써 키워야 합니다.

③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13절)   
본문 13절에서 “말씀하고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강퍅한 병이 걸려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이 병에서 치유 받기 원하시면 당신의 마음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도들과 교제함으로 피차 권면해야 합니다.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권면(勸勉)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얼굴은 좀 못생겨도 많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로 마음을 가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에 잡초가 났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도와주세요!" 기도제목을 낼 때마다 내 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제목보다 "형제님, 내 마음에 지금 시험이 들었어요. 미움이 싹트고 있어요. 시기가 자라납니다."라는 마음을 솔직히 오픈(open)하는 기도! 목장에 가지고 가서 이런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마음을 가꾸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주의 말씀으로 마음을 가꾸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 옥토 밭이 되어 주님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