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대로 거두리라”(갈 6:6-10)

파종의 달 4월 달을 맞이하여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심은 대로 거두리라”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씨를 뿌릴 때입니다. 그래서 요즘 농부들이 가장 분주하고 바쁠 때입니다. 그런데 만약 씨 뿌리는 파종 시기를 놓쳐버리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심어야 미래에 열매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지 않으면 절대로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콩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심은 만큼 거두게 됩니다. 내가 얼마만큼 수고 했는가? 땀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씨앗을 많이 부려 놓으면 그 다음에 많은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링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링컨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꽃이 있어야 될 자리에 엉겅퀴가 있으면 비판하고 원망하지 말고 그 엉겅퀴를 뽑고 꽃을 심으면 된다.” 저는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만 '안 된다',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꽃을 심는 자가 꽃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심으면 거둔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엉뚱한 행동을 하는데 첫째, 심지도 않고 거두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고 도박(賭博)심리입니다. 또 하나, 엉뚱한 것을 심어놓고 전혀 다른 것을 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콩 심어 놓고 팥이 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입니다. 심어야 거둘 수 있고 올바른 것을 심어야 올바른 것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심는 자가 거두고, 심은 종류대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도대체 신앙(信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신앙(信仰)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올바른 것을 심고 올바른 것을 거두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短期的)으로는 한 달 전에 심은 것을 거두게 되고 장기적(長期的)으로는 1년 전에 심은 것을 거두게 되고 더 크게 본다면 10년 전에 심은 것을 지금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거두게 됩니까? 바로 심는 자가 거두게 됩니다. 단순한 얘기이지만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 그런데 기억할 것은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는 것처럼 아무 때나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부지런한 농부들이 씨 뿌리는 시기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이 우리가 묵은 땅을 지경하고 영적 씨앗들을 파종할 때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믿음의 저력을 가지고 영적 씨앗을 많이 심을 때입니다.

(예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산정현교회에 유계준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유장로님은 참으로 모범적인 장로님이셨는데, 염전(鹽田)사업, 나무 파는 사업을 해서 돈을 잘 벌어서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과 주의 종들과 순교자의 가족들을 잘 돌보다가 결국 자신도 순교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자손들이 다 한결같이 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첫째 아들인 유기원 박사가 전에 메디컬센터의 원장이었습니다. 둘째 아들, 유기형 박사도 치과의사였고 셋째는 유기선 박사로서 의사였고 넷째는 유기천 박사로 서울 법대 학장이었고 다섯째도 의사인데 유기진 박사이고 여섯째도 의사인데 유기옥 박사이고 일곱째도 의사인데 유기숙 박사이고 여덟째도 의사인데 유기묵 박사입니다. 그 유 장로님의 자손들 108명이 의사, 박사, 교수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부모가 복 받을 씨를 심으며 사니까 그 후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화)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경건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의 후손 400명을 조사해 보니까 대학 총장이 14명이 나왔고 교수가 100명, 복음사역자와 선교사가 100명, 판사 변호사가 100여 명이 나왔고 그 옛날에 박사가 6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복 받을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매일 미래를 위한 씨를 심으며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한 씨를 심으면 고통과 저주의 열매를 거두고 선한 씨, 복 받을 씨를 심으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씨를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큰 바보입니다. 매일매일 자신과 후손을 위해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권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7-8절) 
본문 7-8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본문 7절 하반 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육체의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여기에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콧방귀를 끼며 무시한다.”는 뜻입니다. 심은 것 보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한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어떻게 이렇게 비웃을 수가 있습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비웃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뿌리지도 않고 열매가 적다고 불평합니다. 나쁜 열매를 뿌리고 좋은 열매가 안 맺혔다고 불만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풍성한 열매,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려면 씨앗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심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것들을 심고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을 거두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화) 톨스토이의 단편인 “바보 이반”의 이야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훌륭한 농부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군인을 꿈꾸었답니다. 왜냐하면 그 것이 출세의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군인이 되었고 출세를 했지마는 더 크게 출세하기 위하여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다가 마지막에는 부정이 들통이 나서 망하게 되었답니다. 
둘째아들은 사업가를 꿈꾸었답니다. 결국 그도 사업가로 성공을 했지마는 더 크게 사업을 일으키려고 무리한 방법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다가 망해 버렸답니다. 
셋째 아들은 그냥 요령을 부리지 않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일구면서 땀을 흘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처음에 그의 형들은 그러한 동생을 바보라고 놀리며 바보 이반 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망한 뒤에 동생에게 자신들도 고향 땅에 내려와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이반은 쾌히 승낙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곳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은 손으로 일을 많이 해서 손에 굳은살이 제일 많이 박힌 사람이 제일 상석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이것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우 평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바보 이반의 말처럼, 손에 굳은살이 많이 박힌 사람이 상석에 앉아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에게도 통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심는 대로 거두리라, 행한 대로 받으리라는 법칙을 따라, 많이 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와 복을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전도서 11:1에서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위하여 의와 믿음으로 살면서 남을 긍휼히 여길 때에 언젠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또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내일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되고 화평을 심으면 원수가 친구로 변하는 열매를 거두게 되며 자비를 심으면 우리가 힘들 때 자비를 열매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약 3:18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무엇을 심어야 합니까? 
본문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라는 것은 갈 5:16의 말씀처럼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옛 사람으로 제 멋대로 행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만 알고 이 세상만 상대하고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결국 석어진 것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①이 세상이 헛된 것이고 썩은 것이니만큼 그것을 목표하고 일하는 결과는 썩은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② 이 세상을 목표하는 일은 성령의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일 자체가 썩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위한 것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말합니까?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갈 19-21절에서 15가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음행 ② 더러운 것 ③ 호색 ④ 우상 숭배 ⑤ 술수 ⑥ 원수 맺는 것 ⑦ 분쟁 ⑧ 시기 ⑨ 분냄(혈기) ⑩ 당 짓는 것 ⑪ 분리함 ⑫ 이단 ⑬ 투기 ⑭ 술 취함 ⑮ 방탕함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갈 5: 21 하반 절에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의 “성령을 위해 심는다.”라는 말은 성령으로 하여금 그 뜻대로 행하도록 자신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을 따라 순종하며(516),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5:18) 그리하면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따라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5장 22-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① 사랑 ② 희락 ③ 화평 ④ 오래 참음 ⑤ 자비 ⑥ 양선 ⑦ 충성 ⑧ 온유 ⑨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을 심어야 합니까? 
첫째로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말씀을 심어야 말씀의 열매인 생명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씀을 심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태(母胎)신앙인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우리의 가슴 가운데, 마음 가운데 말씀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믿은 분도 누군가가 전도했기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4절을 보니까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합니다. 말씀을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말씀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교제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통해가 아닙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전부 다 말씀 때문에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變化)시켰고 말씀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심으니까 전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사람이 성장해서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 받는 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귀는 할 수만 있다면 전도의 길을 막으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하라! 그러나 말씀 증거하는 것만은 중단하라”는 유혹(誘惑)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교회가 살고, 우리교회가 살고, 내가 사는 길은 말씀을 심는 일입니다.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하님의 전신(全身)갑주(甲紬) 중 세 번째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복음의 예비한 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복음의 신을 신고 복음을 전파하는 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를 통해 보았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가슴에 심으면 됩니다. 40살에 말씀을 심었던 갈렙, 45년 동안 말씀을 품으니까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기독교(基督敎)명문가정으로 만들려고 하면 말씀을 심으면 됩니다. 우리가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심어야 변화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의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왕성하게 하나님 말씀 증거 하는 일에 힘쓰고 말씀의 부흥을 놓고 기도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를 심어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심어야 기도의 열매를 거둡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6절에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하는 힘이 많다! 기도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로 일을 하는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혼자 뛰어서 모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도와 함께 일하는 사람만큼 강력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쌓여있던 기도의 능력이 현장 속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합니다. 어떤 때는 육체적인 연약함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갈 수 있습니다. 기도로 강력하게 일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강력하게 기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도 변화시키시고 심지어 악한 것도 선하게 변화시키십니다. 
저는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은 변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세울 때, 사람들을 쓸 때 '좋은 사람을 쓰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경우도 많이 있고, 나를 넘어뜨리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예화) 19세기말 러시아에 아주 방탕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공격하자 이 방탕한 황제가 쌍트 페테르부르크, 예전의 레닌그라드였던 그 곳의 큰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성도들이 우리 황제가 변화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폴레옹의 공격을 통해서 황제가 변화되었습니다. 이 황제가 얼마나 타락한 황제였느냐 하면 자신의 타락함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주 타락한 성직자를 대주교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아주 타락한 사람을 세워 놓으면 자기를 공격 못할 것이니까…… 그런데 이 타락한 성직자가 대주교가 된 다음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릅니다. 갑자기 '나 마음잡았어!!!' 하고 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그 시대에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길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우리 주변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과 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 변화시켜 주십시오.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 사람 회개한 주의 종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다 변화(變化)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실 만능(萬能)입니다. 연약한 자가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능력 있는 자가 됩니다. 죽은 자가 있을 때 그 죽은 자를 놓고 기도하면 생명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지 않습니다. 정말 어느 때에는 삶의 고난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기도해 보면 고난이 축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픔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해 보면 아픔 때문에 우리가 더 성숙해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그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의 동역자가 되고 우리의 친구가 되고 우리의 평생의 은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을 체험(體驗)하는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선행을 심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어려운 형제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려운 형제를 도와주는 것은 선행을 심는 일입니다. 내 육신의 안락과 평안을 위해서 물질을 쓰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어찌하든지 우리의 미래와 자손을 위해서 물질로 복의 씨를 심으며 사는 것이 참 신앙이요, 영적인 지혜입니다. 물질은 원래 썩어 없어지는 것이지만 영적인 것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영원한 상급을 받고 현세에 있어서도 후손들이 복을 받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콩이 한 말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볶아 먹고 두부를 만들어 먹고 된장을 만들 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심어서 열 배, 백 배 농사를 지어 먹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항상 우리는 물질을 심어서 장차 복의 열매를 거두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9:6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하늘에 투자하는 것이 은행에 맡기거나 아파트나 땅에 투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투자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안 믿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눅 6:38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의 역사는 순종해본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드리고, 도와줘야 할 때 내가 못 써도 구제도 하고, 선한 일에 써야 할 때 쓰면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누르고 흔들어 우리에게 안겨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 6:19-20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씨를 심는 것은 곧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의 씨를 심는 것은 도둑맞는 법도 없고 부도나는 법도 없고 세상에 투자했다가 손해 보는 것과 같은 손해도 없고 불타 없어지는 법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운 형제들을 도와주어야 할 절대적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마 25:34-46)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27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신불신자를 막론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움을 주는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온정의 손길을 주어야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같은 교회의 교인들끼리만 도울 것이 아니라 그 도움의 폭이 사회적으로 더 넓혀져야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기회 있는 대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기회가 주어질 때는 언제나”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선을 행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그 때에 재빨리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어 버리면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선도 행할 기회에 행해야 합니다.(요 9:4, 12:35) 

넷째로 복된 말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말에“말은 씨앗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진리입니다. 그 사람이 평상시에 복 받을 말을 하느냐, 악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으며 살 수도 있고 불행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은 찬양도 잘하고 인물도 좋은데 별명이 “면도칼”입니다. 남을 비판(批判)하고 책망(責望)하고 쪼아주는 말을 잘해서 어떤 분은 그 분의 입이 무서워서 같이 앉아 식사도 안 하고 피해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 18:20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악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남을 깎는 말을 하지 말고 칭찬하고 높여주는 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어서 나쁜 인상을 가졌는데 가만히 지내보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잘 칭찬해 주다가 “그런데 한 가지 나쁜 것은…” 하고 깎아내리는 말을 덧붙일 때가 있는데 그러면 칭찬한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갑니다. 가급적 비판하고 혹평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3:10-12절에서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K.W)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성령의 위하여 심는 일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시편 126편 5절에서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고,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약속하시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이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릴 때입니다. 희생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수고의 눈물, 회개의 눈물, 인내의 눈물, 사랑의 눈물, 기도의 눈물이 뿌릴 때입니다. 
요 12:24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희생(犧牲)과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심정을 가지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둘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눈물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가장 진실한 자기표현입니다. 눈물은 진실과 능력의 원천입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솔직하고 깨끗한 사람입니다.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기에 눈물을 흘린 사람만이 그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물과 기쁨은 정비례합니다. 눈물 없이는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미래를 위하여 수고의 눈물을 흘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되 눈물로 뿌려야 합니다. 인생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진지하게 살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의 눈물이 많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만났습니다. 이 시대는 정말로 깨끗한 눈물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눈물은 하나님을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린 사람만이 그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은 원하면서도 눈물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눈물과 기쁨은 정비례합니다. 눈물 없이는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울면서 씨를 뿌리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서 우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멸망해 가는 이웃들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복음을 듣지 못해 병들고 약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며 울어야 합니다. 울며 씨를 뿌려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기도의 씨앗을 심으러 눈물을 흘리며 교회당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봉사의 씨앗, 헌금의 씨앗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예배의 씨앗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축복을 거둘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9절) 
본문 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거둘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수고는 비록 그 일이 숨어서 남들 모르게 행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상급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된 선행과 위선적인 선행을 구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7절)
성의 재물이 주의 일에, 이웃을 돕는 일에 쓰여 지는 것은 진정 값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선행에 대해서 분명히 상급을 약속하시고 있습니다.(마 10:42) 때때로 성도의 선행이 사람들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더 한 외면과 몰이해를 당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면서(히 12:30 끝까지 수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란 칼과 같은 것이어서 선한 일에도 무익한 일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급과 우리 자신에게 물질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주의 일에 그 재물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그 재물을 통해 자신의 신앙에 유익과 성장을 가져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씨를 뿌렸다고 금방 열매가 맺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곡식을 심으면 한 철을 기다려야 하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면 3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인삼 농사는 5,6년을 기다려야 좋은 인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열매로 거두려면 최소한 2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려면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허송세월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열매를 맺혀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9절 하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피곤하지 아니하면 뿌린 씨앗은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은 농부의 기다림을 좇아 기다리되 열매를 거둘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은 꿈을 심은 사람입니다. 요셉이 자기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자기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꾼 것은 열일곱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창 37:2).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은 삼십 세 때의 일입니다(창 41:46). 꿈을 심어 그 열매를 13년 뒤에 딴 것입니다. 욥도 오랫동안 인내했습니다. 그래서 약 5:11에서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 5:7-8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농부의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늦더라도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거두지 못하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가도 중간에 포기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 뜻대로 목적을 성취하려다 크게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선을 행할 때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혹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을 경험하였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연약한 육신 때문에, 낙심을 잘하는 마음 때문에, 나쁜 환경 때문에, 속히 거두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종의 미를 거둘 때가지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를 기다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전 31) 하나님의 때가 있고 하나님이 거두시는 방법이 있기에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거둡니다. 현세적인 것, 육체적인 것, 눈앞의 만족만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선을 행하면서 어떤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꾸준히 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리되 열심히 일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는 무더운 여름 내내 약을 치고, 비료를 주고, 벌레를 잡고, 가라지를 뽑으면서 추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우리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하면서 좋은 열매와 결과를 기대하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생각을 심어서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어서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어서 운명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씨앗을 많이 심어서 언젠가 추수할 때에 아름다운 결실들을 많이 거두는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소욕을 따라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종자를 심는, 즉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곳에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1절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막 10:29-30). ‘이 세상’에서 100배나 도로 축복을 받고, 또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금세와 내세에서 축복을 거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전 성경은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는 바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고, 피곤 속에서도 인내했던 성도들에 의해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은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신자 수(數)에 있어서 그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 남긴 축복의 유산들이 그러하고, 저들이 받는 빛난 명예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세계 역사를 선도하며 주도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비록 짧은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선을 심고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교회를 축복해 주셔서 역사의 도상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성령으로 심고, 기도로 심고, 봉사로 심고, 연보(물질)로 심으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30배, 60배, 100배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령으로 심는 성령 역사의 밭입니다. 아니 이 세계는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경륜을 이루어 가는 복음 선교의 현장, 곧 성령 역사의 큰 밭입니다. 밭에 종자를 심는 일(파종)은 참으로 고된 일입니다. 땀이 나고, 눈물이 나고,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심은 하나님 자신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씨, 예수 구원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가능한 한 많이, 넓은 밭에 뿌려야 합니다. 적기에 뿌려야 합니다. 울면서라도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희생하면서 소망 중에 뿌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뿌려야 합니다. 죽기까지 뿌려야 합니다. 그 결과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교회는, 바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거룩한 성령의 밭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맙시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에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여 갈 것입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자신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파종의 달을 맞이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씨를 파종하여 놀라운 영적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눈물로 심지만, 지금은 울면서 씨를 뿌리지만 이제 언젠가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그때가 꼭 올 줄 믿고 그 때를 바라보면서 최선을 다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앞에 충성하되 시종여일한 모습으로 끝까지 헌신하셔서 주님에게 꼭 칭찬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