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 "풍요로운 결실에 감사하자"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감사절은 종교박해를 피하여 1620년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 미국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이 이듬해 11월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에 유래한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정착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이미 숨을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추위와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이 계속됐다. 이듬해 봄에는 거의 절반이 죽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밭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첫 번째 수확물로 감격적인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첫 열매를 그분께 드린다.” 이것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었다. 가장 고통스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었던 백성들이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것이다. 감사는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1621년 가을에 플리머쓰(Plymouth) 정착지에서는 경작법을 가르쳐준 인디언들을 초대, 야생 칠면조(turkey)를 잡아 나눠먹었다. 이후 칠면조 요리는 추수감사절의 단골메뉴가 됐고 이날을 ‘터키 데이(turkey day)’로 부르기도 한다. 17세기 말 이전에 이 추수감사절은 코네티컷주와 매사추세츠주의 연례적인 성일이 되었으며, 이 관습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이 추수감사절은 특별한 종교적 절기(비록 나중에는 종교적 색채를 지니게 되었지만)가 아니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관습이 보다 확고한 기반을 갖고 남부지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자 각 주의 정치가들은 이 추수감사절을 각 주의 연례행사로 정하는 문제를 정식으로 토의하게 되었다. 

한편 1840년대에 “Godey's Lady's Book”의 편저자였던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는 추수감사절(11월 마지막 목요일)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지킬 것에 대한 캠페인을 벌였으며, 1863년 9월 28일에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서신을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링컨에게 보냈다. 그로부터 4일 후 링컨은 추수감사절을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절기로 공포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감사일이나 기도 일에 대한 대통령의 선포는 연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추수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1863년 이후로 모든 대통령들은 링컨의 전례를 따랐으며 행정부도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따라서 1941년까지 추수감사절의 날짜는 대통령의 연례적인 선포에 따라 각기 달랐으나, 1941년에 미국 의회는 대통령과의 합의 아래 11월 네 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다. 비록 의회는 이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이날을 휴일로 공포하였다. 비록 의회는 이 추수감사절 날짜를 확정지어 놓고 있으나 대통령은 계속하여 링컨이 1863년에 시작한 전례에 따라 매년 추수감사절 날짜를 선포해 오고 있다. 

한국의 추수감사절 
  
한국 교회에서 감사절을 지키기는 1904년부터이다.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한국교회에서도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하였다. 우선 다른 교파 선교부와 협의하여 그 날짜를 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정하여 장로교 단독으로라도 지키기로 하였다. 
 
그후 1914년 각 교파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제 3주일 후 3일(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사업에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 일각에서는 한국농촌의 실정에 맞는 시기인 중추절(추석)을 전후해서 한국교회다운 추수감사절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와 교파도 있다. 그후 수요일을 주일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늘에 이른다. 

 성경의 추수감사절(초막절) 

추수감사절은 메이플라워 이후에 제정된 날로,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날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큰 기쁨을 갖고 지키던 삼대 절기 가운데 하나로,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지켰으며, 40년간의 광야에서의 유랑을 상기하면서 계약을 갱신하는 절기가 초막절이었다. 그 절기는 일반적으로 추수가 끝날 즈음이었다(출 4:22). 보통 장막절로도 알려져 있으며(참조 대하 8:13), 초막절의 다른 이름으로 성서에서 나오는 것들로는 「수장절」(출 23:16), 「여호와의 절기」(레 23:39, 삿 21:19)라고도 하였다. 

초막절은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밭에서부터 거두어 드릴 때”, 즉 추수기와 연관되어 있었다. 땅의 소산을 풍성한 수확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대대로 기억나게 하기 위함이었다(레23:34-4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였으며, 그 후로(혹은 그 전에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왔다. 

추수감사절을 따로 정한 것은 미국 이주자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즉 이 관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또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들은 반카톨릭 성향이 매우 강하여, 크리스마스 절기를 카톨릭의 절기로 간주하여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를 영국의 식민지에서 절기로 지키지 않게 되자,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절기 대신에 청교도들의 절기로 지키게 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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