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힘써 알자 

(호6:4)"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가운데 감출 수 없는 끔찍한 범죄의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념되어야 할 '미스바'와 '길갈'과 '벧엘'은 돌이키지 못할 죄악의 산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백성으로서 형제들의 아내를 겁탈하고도 모자라 남색의 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정죄하여야 한다는 미명아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어나갈 베냐민 지파를 멸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이상 그들은 나아갈 곳이 없을 정도록 더러워졌고 병들어갔습니다.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기들의 더러움과 병을 알고도 그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데 있습니다. 

호세아는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지 못하리라"(호5:13)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구원자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야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6:1)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시원한 냉수입니다. 그들에게는 왕과 방밷들이 있었으며 제사장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병과 상처를 오히려 애굽이나 앗수르에 가서 고치려 하였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소니 노트북을 다시 작만하였습니다. 노트북을 두번이나 도둑을 맞고 더이상 노트북을 갖겠다는 생각은 접어 두었었는데 내 행색이 않되 보였는지 누님께서 할부로 구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이 도착하던 날 메모리를 업그래이드 하기 위해 옵션으로 딸려 온 메모리 카드를 장착하다가 그만 먹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기절할뻔한 순간이었습니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며 만사가 다 파괴되는듯한 순간이었습니다. 후회를 해 본들 소용없고 또 옵션으로 메모리를 장착하지 않고 또 주의사항도 알리지 않고 노트북을 배송한 대리점에 항의를 해 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노트북이 내손에 들어 온지 2시간도 되지 않아서 소니 수리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연락을 받고 찾아가니 보드가 타서 보드 자체를 통체로 바꾸었다 하였습니다. 그쪽에서는 나의 실수를 생각하면 수리비(30여만원)를 받아야겠지만 무료로 수리를 해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할 일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어떤 물건이 고장이 날때 그 물건을 만든 회사에 맡겨야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이스라엘의 범죄로 얻은 병과 매맞은 상처들을 누가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다른 곳에서 치료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는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호세아는 먼저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인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일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빛이시고 우리는 어둠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부르심에 나아가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아합의 처 이세벨에게 물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바알의 제자장 팔백명과 마주섰을 때 엘리야는 여호와와 바알 앞에 머뭇거리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열상18:21)외쳤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에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하였습니다. 여호와란 택한 백성들에게 주신 '구속주'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란 오직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만이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실 것이라"하였습니다. 

우리는 2장에서 남편을 떠나 음행한 여인 앞에 가시와 담을 두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발가벗겨서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목말라 죽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두번 다시 바알의 이름을 입에서 제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찢으시고 채칙으로 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로 다시 남편되신 구속자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애였습니다. 

호세아는 2절에서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려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을 가리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자기를 잊지말라"(벧후3:8) 하였습니다. 우리는 낮이 열두시간 밤이 열두시간인 시간의 한계속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루가 천년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세 삼 일에는 완전하리라 하라"(눅13:32)하셨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후에 살아 나셨습니다. 그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천년 동안 죽은 영혼을 살리시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그 앞에서 살아갈 언약하신 제 삼 일의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3절)전하였습니다.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다'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말씀은 예레미야로 하신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나니 "(렘5:24-25) 라고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4절) 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대표이며 유다는 남왕국의 대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한 사랑 즉 '인애'를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 보다 종교적 명목에 빠져 절기마다 제사를 드리고 또 헌신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한 이웃사랑의 '인애'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7절)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반역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피조물 중 최고의 영광을 입은 자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자신의 좋은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가리켜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발자취가 편만하도다"하셨습니다. 이것은 미스바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 죄의 문제를 다룰 제사장들이 세겜 길에서 살인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겜은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의 에브라임 산지에 속한 성읍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맹세를 한 곳입니다(수24장)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 가운데서 왜 이 모든 일이 생겨난 일일까요? 그들은 모두 제사와 번제를 드리는 종교적 속성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사와 번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역한 중에서 그들을 돌이킨 후에 추수할 일을 정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7:11) 그들을 다시 치료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이 거두어 드릴 추수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군이 없으니 추수하는 이에게 말하여 추수할 사람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의 열매를 추수할 백성들인지요? 혹시 당신은 당신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의 열매가 추수되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요? 절간에서 절하는 노모의 마음도 그렇답니다. 지금 당신이 드리는 헌물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고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좀더 교회성장을 위하여 교회를 증축하기 위한 헌금으로 쓰여진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인 '인애'가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