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돌봐주시고 형통케 하시리라  : 욥기 8:5-8 

먼저 우리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돌봐주심과 형통케 하시고 심히 창대한 축복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만물의 열매를 거둬들이는 이때가 되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는 말씀이 더욱 새롭게 느껴집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듯이 행한대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무던히 노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기까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마태복음 11장 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2장 25절에서 26절에 야곱이 압복강변에서 환도뼈가 위골 되었으면서도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끈기있게 붙잡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기였으므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신앙자세를 갖고 살아야 은혜와 축복을 받는지 교훈을 삼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거기서 얻어지는 바람직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미약하지만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 이방인들에게 바르게 살기를 바라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어떤일을 거창하게 시작하고 벌리려는 욕구와 야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로라도 시행하려고 한다. 순리적으로 흐르는 물을 교훈 삼아야 하는데 자기의 입신과 명예에 관련된 일이면 바른자세를 갖고 바른 원리에서 찾지 못하고 세속적인 입장에서 시작하고 인간의 편견과 편승에 의하여 자신의 위치마저 잃어가며 신앙인답지 못한 처사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리고성의 라합처럼 선견지명을 가져야하고 사도바울처럼 푯대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의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미약할수록 바르게함과 투명성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모습 그대로 드려져야 합니다. 과장되거나 회칠한 무덤같이 외식하는 자가 되면 안될 것입니다. 주님앞에서 정말로 진실하게 있는 모습그대로 작은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갖은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을 미화시키면서까지 작은데도 큰 것처럼 없으면서도 있는체 하며 불법인데도 정법인 것처럼 눈가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정직하고 청결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온통 거짓으로 물들어 가고 있으며 어떤 제품을 하나 사려고 해도 진짜인지 의심이가고 몇몇 정치인들의 거짓으로 정치계가 불신임을 당하고 그 거짓과 의식이 오늘날 교회와 또는 교계에서까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작고 미약해도 정직하고 청결하게 믿음으로 사십시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결과에 못지 않게 그 동기와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미약하게 시작한다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태도만 가지고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그것이 아무리 미약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끌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그 시작이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거창하며 화려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은 18장 20절에서 주님은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고 말씁하십니다. 처음부터 큰 건물이나 사람을 많이 끌어모으는 일에만 관심을 나타낸다면 그것처럼 우매한 짓을 없을 것입니다.하나님의 일은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하더라고 바른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고, 청결하고 정직함이 앞선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돌봐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먼저 믿음 안에서 모든 일들을 바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만 받는다면 욥처럼 하나님의 돌보심과 갑절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현대교회가 점점 첫사랑을 에베소 교회처럼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5절 말씀은 할 수 있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라 했던 그 신앙이 변질되어 가는 갈라디아서 교회를 염려하는 바울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또한 계시록 3장 14절에서 22절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 말씀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자칭부자이며 의인이라는 자화자천의 교만을 버리고 영안의 눈이 어두어져서 자신의 영적침체를 알지 못하는 벌거벗은 수치와 가련함을 깨닫고 열심을 내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부지런히 구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하신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큰 잔치를 배설하시고 많은 사람을 청하시지만 밭을 샀다고 핑계대고 소다섯겨리 샀다고 핑계대고 장가들었으니 못 가겠다고 이유와 핑계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요? 하나님을 먼저 구하며 찾아야 할 일이 먼저 이건만 세상일과 유혹을 핑계로 나태하고 안일함 가운데 빠져 살고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고 부지런히 구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도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은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으므로 정녕 하나님이 돌아보신다고 고백합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성취되어 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만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고 오히려 자신이 관리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분야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유가 나갈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앞에서는 불가능이란 장애물이 없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도 성공을 실패로 바꾸는 것도 바로 기도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못하심이 없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함이라고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기도에 매달리지 않는 성도들을 보면 한심하고 안타깝습니다. 

기도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큰자도 작은자도 무식한자도 유식한 자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리어 약하고 무능하고 가난한 자가 기도를 더 힘있게 할 수 있습니다. 산적해 있는 어려운 일들을 우리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무릎꿇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교회를 받들어 섬김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넘치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합심하여 진실되게 기도함으로써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입은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돌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하나님의 돌봐주심과 형통케 하여 주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