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어야 할 감사 (엡 5:20-21) 

  예수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언제나 무슨 일이든 '감사합니다' 하시기에 붙여진 별명이 감사할아버지입니다. 하루는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오시다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갑자기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한 일입니까? 돌에 걸려 넘어졌고, 비싼 돈주고 사온 고기도 개에게 빼앗겨 버렸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그때 감사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라고 하시더랍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과연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의 고통 이였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받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의 회복입니다. 비록 우리가 농사를 직접 지어 추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래 추수감사절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감사를 드렸던 청교도들의 감사정신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뿐 아니라,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중증 뇌성마비 환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는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감사는 평생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계속 되어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어느 마을에 네드 헌트라는 허약하고 겁이 많은 8살짜리 아이가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 친구들과 절벽타기 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절벽 중간쯤 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겁이 나고 어지러워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절벽을 기어오르는데 성공하여 꼭대기에 올라갔지만, 헌트만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아이를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친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헌트는 공포와 피로에 지쳐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주위가 캄캄해지자 헌트는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절망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손전등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아버지는 흐느껴 우는 헌트에게 침착하게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한 발짝 아래 내려딛는 것만 생각하는 거야. 너는 할 수 있어. 자 네가 있는 곳 바로 밑에 바위가 하나 있지?”“네 보여요.”“좋아, 그러면 왼발을 그 바위 위에 내려놓으렴. 다음 일을 걱정하지 말고. 잘했다. 이제는 오른쪽 발을 좀더 아래쪽으로 내려라.” 헌트는 아버지가 손전등으로 비춰주는 바위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려와, 마침내 아버지의 가슴에 안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네드 헌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질 때마다 절벽 위에서 얻은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인생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헌트가 아버지의 말씀과 손전등의 지시에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전하게 안긴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넓은 품에 안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은 순종되어져야 합니다. 해도 좋고 하지 안 해도 좋은 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명령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까? 더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불평과 원망이 있는 곳에는 꼭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불평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늘어갑니까? 불평의 조건만 늘어갑니다. 입만 열면 원망과 불평입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늘어갑니까? 감사의 조건이 늘어갑니다. 감사의 삶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 목사님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 값비싼 물건들을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메튜헨리는 그 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처음으로 도둑을 맞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 날 만일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생명까지도 도둑맞았을 것인데, 내가 집을 비움으로써 생명을 도둑맞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둑이 되지 않고 도둑맞은 사람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무엇을 감사하십니까? 어떤 이유로 감사하십니까?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것 때문에 감사합니까? 아니면 사업이 잘 되는 것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밥 굶지 않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감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감사로 말미암아 그는 실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말씀하셨는데 '범사’는‘모든 일에’라는 의미의 ‘in everything’ 혹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는 의미의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사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자녀교육으로 인해, 부부관계로 인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버틀러(C. F. Butler)는 찬송가 495장에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즉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감사절에만 그치는 감사가 아니라 언제나 계속되는 감사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