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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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대하 34:14-21)
일본의 내촌감삼(內村鑑三)’가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다. 또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의지의 종교다. 더구나 일을 하려고 하는 의지의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의지의 종교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기쁠 때에 슬플 때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모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의지(意志)”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바타흐”라는 말로 “...에게 매달리다”(cling to)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라는 말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변명이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 4:5에서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 115:9-11절에서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말고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은 ① 거미줄과 같고(욥 8:14) ② 부서된 이와 위골된 발과 같고(잠 25:19) ③ 상한 갈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왕하 18:21) 그러기에 사람을 의지하는 저를 받을 것이니(렘 17:5-6) 방백을 의지하거나(시 146:3-4)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사 22:220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반드시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와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문의했고, 다윗 왕과 여러 신실한 왕들은 전쟁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묻자왔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도 그러했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말씀하셨고 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는 자신의 버리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합니까? 이에 대해서 ‘존 칼빈’은 롬 7:18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원함이 내게 있으나 우리 죄성이 있기 때문에 원치 하는 악을 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안에 과오를 범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놓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도와주시려 하나 이들은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자기 나름대로 계획하고 계산하고 모든 것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들의 문제와 걱정을 어떻게 해결하고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처리하려 하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고 우리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자기의 기분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로슨’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기분이나 생각이나 경험 혹은 지식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여러분의 삶의 계획을 넘기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순결할 때 우리의 의욕과 감정과 사상과 언행은 광명으로 가득 차 우리의 나갈 길은 뚜렷해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지해야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① 무력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사 31:1)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시 44:6).
② 재물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 11:28)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③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④ 인생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 222)
⑦ 진실치 못한 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잠 25:19)
⑧ 자신의 명철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⑨ 자기의 의도 의지 말아야 합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겔 33:13)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눅 18:9)
⑩ 거짓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렘 7:4,8)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된 자니 여호와 하나님께 피함이 방백을 신뢰함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시 118:9) 그러므로 우리는 거미줄, 부서진 이, 위골된 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의지하다가 실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다가 복을 받은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요시야 왕에 개혁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시야 왕은 8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즉위 8년째만 16살 때에 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조부 므낫세 통치 55년과 선왕 아몬의 1년 통치 등 거의 56년 동안 행해진 우상숭배와 성전 파괴 운동의 결과 요시야 당시 유다 왕국은 거의 우상 천지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미 2대에 걸쳐 계속된 우상 숭배를 완전하게 뿌리 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요시야 왕은 비록 젊다 못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조상들의 죄악된 행실을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젊은 혈기를 부리고, 자칫 그릇된 질로 나가기 쉬운 나이였지만 그는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3절) 즉 성전 정화 운동과 우상 타파 운동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요시야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요시야는 천하를 다스리는 엄청난 왕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젊은 혈기나 세속적 권세로 하나님의 일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위대한 발견을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의 말씀을 보니 요시야 왕은 개혁기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다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14절)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발견은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는 천문학적 발견도 있고, 첨단 지식을 발견하는 과학적, 생물학적, 생태학적 발견도 있을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도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로,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9절)
19절 말씀에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므낫세 왕의 통치 하에서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어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 것입니다.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모세오경을 서기관 사반이 요시야 왕에게 읽어줄 때에 웃시야 왕은 곧 감동과 죄를 깨닫고 회개케 된 것입니다. 한 지도자의 회개는 한 국가와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아세라 목상을 찍고,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근 60여년 어간 방치해버렸던 성전을 다시 보수하게 되었고 백성들이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요시야 왕은 농지개혁을 수행하여 백성들을 선친 므낫세 왕의 악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했습니다. 한 심령이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 일은 이 말씀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②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습니다.(35장 1,7절)
내려가서 35장 1절과 7절을 보면 발견된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읽혀준 후에 이 백성들이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는 므낫세 통치이후 반세기 이상 출애굽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다시 기념케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출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사단과 죄악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 양식과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던 기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암 8:11). 잃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한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자신의 요시야는 죄를 발견했습니다.
①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19,27절)
왕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였고,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통곡"(19, 27절)하였다고 했습니다. 죄를 애통 하는 모습입니다. 말씀의 발견은 죄와 악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애통하는 것은 말씀의 조명과 감동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같은 회개 운동으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33절하)고 했습니다.
②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죄를 깨닫고 복종하게 되었습니다.(30절)
30절 말씀에는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난 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좇게…"게 되었습니다(32절). 더 나아가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 하였더라"(33절하)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애통하게 하고, 그 죄에서 떠나게 합니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곧 말씀에 복종하게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도, 가정에도 이 같은 말씀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3.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①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말씀 거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았습니다.(21절)
21절 말씀에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되고 알게 됩니다. 특별히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게 합니다. 이것은 의인되게 하는 길입니다. 죄가 없어서 의인이 아니라 죄를 깨닫지 못하여 악인으로 남습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사랑과 사죄를 누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섭섭케 하고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매 맞은 흔적뿐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고 권고했습니다. 악인은 걸려서 넘어져도 왜 넘어졌는지 원인사색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말씀의 조명 곧 성령의 조명이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 그 징계하심과 심판하심이 다가오기 전에 회개하는 일은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고난과 고통을 피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발견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알게 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합니다.
②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말씀에 복종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28절)
28절에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고 죄에서, 우상에서 돌이키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저들이 죄 가운데서 홀연히 망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때 진노를 그치시고 재앙을 중지하십니다. 말씀의 발견 곧 말씀의 회복은 축복의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바로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결국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두 제자들은 다시금 마음이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비극은 말씀이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면 재앙은 없습니다. 재앙을 피하는 지름길은 우리의 생활에서 말씀을 발견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말씀이 멈추라 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결코 믿음 안에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계 1:3) 우리가 평일 3장, 주일 5장씩 성경을 읽으면 1년에 신구약 성경을 일독하게 됩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종일 묵상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꿀과 송이 꿀과 같이 달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시1:2, 119:103, 105).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을 받은 요시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재앙은 피하고 계속해서 축복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시 31:19에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 26:3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 32:10과 잠 3:6에서“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견고한 심지를 가지고 있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을 받으시되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도 발견하고, 재앙도 피하고 계속해서 축복된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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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내촌감삼(內村鑑三)’가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다. 또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의지의 종교다. 더구나 일을 하려고 하는 의지의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의지의 종교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기쁠 때에 슬플 때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모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의지(意志)”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바타흐”라는 말로 “...에게 매달리다”(cling to)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라는 말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변명이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 4:5에서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 115:9-11절에서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말고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은 ① 거미줄과 같고(욥 8:14) ② 부서된 이와 위골된 발과 같고(잠 25:19) ③ 상한 갈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왕하 18:21) 그러기에 사람을 의지하는 저를 받을 것이니(렘 17:5-6) 방백을 의지하거나(시 146:3-4)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사 22:220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반드시 응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와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문의했고, 다윗 왕과 여러 신실한 왕들은 전쟁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묻자왔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도 그러했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말씀하셨고 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는 자신의 버리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합니까? 이에 대해서 ‘존 칼빈’은 롬 7:18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원함이 내게 있으나 우리 죄성이 있기 때문에 원치 하는 악을 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안에 과오를 범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놓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도와주시려 하나 이들은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자기 나름대로 계획하고 계산하고 모든 것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들의 문제와 걱정을 어떻게 해결하고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처리하려 하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고 우리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자기의 기분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로슨’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기분이나 생각이나 경험 혹은 지식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여러분의 삶의 계획을 넘기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순결할 때 우리의 의욕과 감정과 사상과 언행은 광명으로 가득 차 우리의 나갈 길은 뚜렷해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지해야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① 무력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사 31:1)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시 44:6).
② 재물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 11:28)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③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④ 인생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 222)
⑦ 진실치 못한 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잠 25:19)
⑧ 자신의 명철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5)
⑨ 자기의 의도 의지 말아야 합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겔 33:13)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눅 18:9)
⑩ 거짓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렘 7:4,8)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된 자니 여호와 하나님께 피함이 방백을 신뢰함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시 118:9) 그러므로 우리는 거미줄, 부서진 이, 위골된 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을 의지하다가 실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다가 복을 받은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요시야 왕에 개혁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시야 왕은 8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즉위 8년째만 16살 때에 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조부 므낫세 통치 55년과 선왕 아몬의 1년 통치 등 거의 56년 동안 행해진 우상숭배와 성전 파괴 운동의 결과 요시야 당시 유다 왕국은 거의 우상 천지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미 2대에 걸쳐 계속된 우상 숭배를 완전하게 뿌리 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요시야 왕은 비록 젊다 못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조상들의 죄악된 행실을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젊은 혈기를 부리고, 자칫 그릇된 질로 나가기 쉬운 나이였지만 그는 “다윗의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3절) 즉 성전 정화 운동과 우상 타파 운동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요시야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요시야는 천하를 다스리는 엄청난 왕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젊은 혈기나 세속적 권세로 하나님의 일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위대한 발견을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의 말씀을 보니 요시야 왕은 개혁기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다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14절)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발견은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는 천문학적 발견도 있고, 첨단 지식을 발견하는 과학적, 생물학적, 생태학적 발견도 있을 것입니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도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로,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9절)
19절 말씀에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므낫세 왕의 통치 하에서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어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 것입니다.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모세오경을 서기관 사반이 요시야 왕에게 읽어줄 때에 웃시야 왕은 곧 감동과 죄를 깨닫고 회개케 된 것입니다. 한 지도자의 회개는 한 국가와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아세라 목상을 찍고,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근 60여년 어간 방치해버렸던 성전을 다시 보수하게 되었고 백성들이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요시야 왕은 농지개혁을 수행하여 백성들을 선친 므낫세 왕의 악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했습니다. 한 심령이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 일은 이 말씀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②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습니다.(35장 1,7절)
내려가서 35장 1절과 7절을 보면 발견된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읽혀준 후에 이 백성들이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는 므낫세 통치이후 반세기 이상 출애굽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다시 기념케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출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사단과 죄악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 양식과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던 기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암 8:11). 잃어버렸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한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자신의 요시야는 죄를 발견했습니다.
①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19,27절)
왕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였고,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통곡"(19, 27절)하였다고 했습니다. 죄를 애통 하는 모습입니다. 말씀의 발견은 죄와 악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애통하는 것은 말씀의 조명과 감동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같은 회개 운동으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33절하)고 했습니다.
②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죄를 깨닫고 복종하게 되었습니다.(30절)
30절 말씀에는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난 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좇게…"게 되었습니다(32절). 더 나아가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 하였더라"(33절하)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애통하게 하고, 그 죄에서 떠나게 합니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 곧 말씀에 복종하게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도, 가정에도 이 같은 말씀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3.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①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말씀 거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았습니다.(21절)
21절 말씀에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되고 알게 됩니다. 특별히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게 합니다. 이것은 의인되게 하는 길입니다. 죄가 없어서 의인이 아니라 죄를 깨닫지 못하여 악인으로 남습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사랑과 사죄를 누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섭섭케 하고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매 맞은 흔적뿐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고 권고했습니다. 악인은 걸려서 넘어져도 왜 넘어졌는지 원인사색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말씀의 조명 곧 성령의 조명이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 그 징계하심과 심판하심이 다가오기 전에 회개하는 일은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고난과 고통을 피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발견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알게 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합니다.
②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말씀에 복종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28절)
28절에 "…내가 이 곳과 그 거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고 죄에서, 우상에서 돌이키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저들이 죄 가운데서 홀연히 망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때 진노를 그치시고 재앙을 중지하십니다. 말씀의 발견 곧 말씀의 회복은 축복의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바로 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결국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에 두 제자들은 다시금 마음이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비극은 말씀이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면 재앙은 없습니다. 재앙을 피하는 지름길은 우리의 생활에서 말씀을 발견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말씀이 멈추라 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결코 믿음 안에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계 1:3) 우리가 평일 3장, 주일 5장씩 성경을 읽으면 1년에 신구약 성경을 일독하게 됩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을 종일 묵상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꿀과 송이 꿀과 같이 달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시1:2, 119:103, 105).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을 받은 요시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재앙은 피하고 계속해서 축복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시 31:19에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 26:3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 32:10과 잠 3:6에서“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견고한 심지를 가지고 있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을 받으시되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도 발견하고, 재앙도 피하고 계속해서 축복된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