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설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둘째날 새벽예배에 최인모 목사님(신광교회)께서 하신 설교입니다. 
  
성경 : 역대하 25:5-13 
제목 : 승리의 요건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다가 실패를 했다면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1) 욕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실패의 원인입니다. 
2)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 자기 일생을 걸만한 확실하고 확고한 부동의 목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 내가 세운 목적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아무리 목적이 옳고 확실했다 해도 거기에 따르는 수고,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4) 자기 자신을 너무 믿었다는 것입니다. -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힘만 쓰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지식, 감정, 판단, 경험, 능력을 믿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은 유다왕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을 치르는 내용입니다. 아마샤는 2절에 기록된 대로 정직을 하였으나 온전한 사람은 못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제사를 빠뜨리지는 않았으나 신앙심이 깊고 전적으로 헌신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을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준비를 잘한다는 것은 성공의 비결이요 승리의 지름길이 됩니다. 힘이 클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준비가 안 되면 그 자리는 큰 화근이 됩니다.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를 힘들게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 중에도 준비 안 된 채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된다는 것은 가장 슬프고 위험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목사와 장로가 철저한 준비 없이 주일을 맞이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가 될 것입니다. 덜익은 과일은 떫기 마련이고, 덜익은 음식은 배탈을 일으키고, 덜 굳은 콘크리트는 무너집니다. 

아마샤가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전쟁에 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은 닭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 같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기로에 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평범한 사람들입니까? 대강, 대충 살아도 되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전쟁터에 부름받은 군사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휘관들입니다. 전쟁을 이기게도 할 수 있고 패하게도 할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를 흥하게도 하고 쇠하게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까? 

아마샤 왕이 준비는 철저하게 했으나 큰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샤의 실수가 흔히 우리들도 저지를 수 있는 내용이기에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Ⅰ. 아마샤 왕은 군사의 숫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실수 큰 착각이었습니다. 아마샤 왕은 전쟁에 승리하려면 우선 군대의 숫자가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자기의 백성 중 20대 이상으로 모집하니 3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는 이 숫자로는 강력한 에돔의 군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스라엘 나라에 은 100달란트를 주고 10만 명의 군대를 보충했습니다. 물론 수가 많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적은 수 보다는 많은 수가 훨씬 더 유리하고 좋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전쟁에서 같은 조건이라면 군인의 수가 많은 것이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다수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에 다수가 옳은 것도 아니고 전쟁에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류 역사의 전쟁사를 보더라도 반드시 군사의 수가 많은 나라가 이긴 것은 아닙니다. 아마 그 대표적인 예가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군과의 6일 전쟁일 것입니다. 불과 몇 백만의 수가 1억이 넘는 다수를 이겼던 전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시작 세 시간만에 아랍전투기 400여대가 폭격에 맞았으나 이스라엘은 19대에 불과 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력의 차이는 상당하여 비행기 280:720대, 전차 800:2500대 였다고 합니다. 다수가 곧 승리는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다수의 횡포라고 생각합니다. 수만 많으면 무슨 일이든 밀어 붙이고 통과시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하나님은 다수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수라고 항상 의롭게 보시거나, 액수가 많다고 다 선하게 여기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소수라도 의로우면 선이요. 정직이 능력이요. 성실이 재산입니다 . 

아마샤 왕만 아니라 현대인은 성공을 말할 때 흔히 다수와 다액(多額)을 꼽습니다만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시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더욱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삼상 17:47, 대하 20:15). 


Ⅱ. 아마샤는 돈으로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6절). 

아마샤 왕은 자기네 군사의 수가 적군에 비하여 적다고 생각하니 불안했을 것입니다. 궁리 끝에 북쪽 이스라엘에서 은 100달란트를 주고 용병 10만 명을 데려 왔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다 대동소이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도 용병제도가 있었던 것을 보니....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다른 일도 아니고 전장(戰場)에 나가는 사람이, 생사가 걸린 싸움터에 나가는 사람이 전쟁하는 목적도 잘 모르고, 자기 민족을 위한 싸움도 아닌 상황에서 무슨 큰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전쟁에 이기려면 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한 정신력과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또 애국심도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돈을 너무 좋아 합니다. 돈이 많은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승리의 조건은 아닙니다. 돈이 늘 의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돈에 팔려 다니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돈의 위력도 알고 돈의 필요성도 알지만 돈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은혜를 배신하고 의리를 깨뜨리는 사람들은 이내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돈에 노예 된 사람들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이 의로우냐, 불의하냐보다는 돈이 우선되고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 보다도 돈을 따라간다면 실패자입니다 . 

“주여! 아마샤 왕처럼 돈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Ⅲ.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과 손을 잡았습니다(7절).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옳은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성공적으로 마감되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길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손해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승리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인간이 혼자 가는 길. 인간이 인간끼리 손잡고 가는 길은 안전하고 옳게 보여도 필경은 멸망의 길이라고 했습니다(잠16:2, 20:24, 21:2).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 

여러분! 아무하고나 손을 잡지 맙시다. 아무하고나 동업하지 맙시다. 아무리 겉보기에 좋아 보이고 훌륭해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 손을 잡는 것은 바벨탑에 불과합니다. 

세계 대전 때, 이태리, 독일, 일본이 같이 손을 잡았지만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가 “우리 독일은 하나님 말고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말하니까 일본 수상은 한술 더 떠서 “우리 일본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결국 일본도 패전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잠11:21).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10명이 없어 망했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뛰어난 면이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면 손을 잡으십시오. 동업하십시오. 그 길이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백부장 율리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가(11절), 큰 풍랑을 만나 하마터면 276명의 목숨까지 다 잃을 뻔 하지 않았습니까? 276:1이었으니...... 또한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어 가는 바울이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왜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배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운행 하실 때가 가장 안전하고 순항하게 됩니다. 

조금 늦어지고 당장 손해가 따르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말을 듣고 손을 잡으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 너무 세상적인 전문가, 배운자, 가진자를 의지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중심이 된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교회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는 “예루살렘에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단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고 사59:1-2).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류대학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가! 입니다. 진실한가!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자인가! 말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의 무덤에는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뿐 결코 인간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여기 잠들다” 얼마나 멋있는 묘비명입니까? 

요한 웨슬레 목사가 87세때 알렉산더 메즈어라고 하는 분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 말고는 두려워 할 것이 전혀 없고, 하나님 말고는 원하는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전도자를 내게 백 명만 주십시오. 그 사람이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관계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지옥의 문을 부술 수 있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말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사람 칠백 명만 주십시오. 그러면 미국을 살리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Ⅳ.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9절). 

아마샤 왕은 이미 이스라엘에 은 100달란트를 주고 용병 10만 명을 사왔는데 이제 와서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즉 은 100달란트를 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아마샤 왕이 이의를 제기하자 하나님의 사람은 만일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다면 이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여기에서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돈이냐! 말씀이냐! 하나님이냐! 군대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태복음 19장 29절의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영국의 청교도들은 고국산천과 재물과 친척, 친구를 다 잃었으나 새로운 America를 얻지 않았습니까?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크고 많아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댓가를 지불하는데 인색하지 맙시다. 희생을 겁내지 맙시다. 자주 머뭇거리면 진짜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판단이 흐려집니다. 일본의 기독교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좋은 일이 제일 좋은 것을 가로 막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악이 가로 막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선이 최선을 가로막습니다. 덜 중요한 일이 더 중요한 일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정신 차려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 손해를 볼지라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마샤 왕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두 가지를 걱정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많은 경제적 손실이요 다른 하나는 전쟁에 지지 아니할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아마샤 왕이 과감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두 가지가 다 하나님 말씀대로 성취 되었습니다. ①우선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11-13절). ②그리고 큰 손해 볼 줄 알았던 물질을 몇 배나 더 얻었습니다. 역대하 27장 5절에 나타났는데 아마샤의 손자인 요담 때 입니다. 손해는 이스라엘에서 봤는데 수입은 암몬 나라에서였습니다. 투자는 은 100달란트 뿐 인데 얻은 것은 은 100달란트 외에 밀 만 고르와 보리 만 고르를 3년 동안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심고 내일 거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밀알이 썩기도 전에 추수하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심고 내가 못 거두면 내 후손들이라도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또 하나 요담 왕이 점점 강성하여 졌다고 했습니다(대하 27:6). 

여러분! 역사는 누가 운행하십니까? 내 교회를 누가 주관하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물질의 주관자는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하고 성공하는 삶이 되려면 1) 무엇이나 숫자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다수가 다 진리도 의도 아닙니다. 2) 무슨 일이든 돈에 매력을 느끼지 마십시오. 돈으로 만사를 판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3)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과 손잡지 마십시오. 4) 먼저 희생하고 댓가를 치르십시오. 간혹 교회를 통해 무슨 유익을 보려는 사람들을 봅니다. 총회를 통해 덕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댓가를 치르십시오. 희생하십시오.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