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에게 피하는 자”(시 5:1-12)
시편 5편은 「다윗의 시」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성전의 성가대를 관장하는 대장」을 말합니다. 곧 성가대장의 지휘에 따라 특별히 관악기에 맞춰 노래된 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편 5편의 시는 관악에 맞춰 주로 아침에 하는 노래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윗이 매일 아침이면 일어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였던 것 같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그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신다」라는 것은 아침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의 기도가 주로 아침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곧 아침에 주님께서 저의 기도소리를 듣게 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그리고 하루를 마치는 저녁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대제사장이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린 것처럼 그는 이스라엘의 대리 왕으로서,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대제사장으로서 아침에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다.”(막 1: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백성의 중보자요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도 아침이면 일어나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대리 왕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도 중보자처럼 기도했습니다. 

특히 본문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자신이 처한 형편을 헤아려 알아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당한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마음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로 다윗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1절)  
본문 1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억울한 심사를 통촉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눈물 흘리면서. 고통스러우면 소리 지르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외치면서 그분께 나아가는 솔직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답고 자녀답고 성도다운 모습입니다. 엘리야 같은 불의 선지자, 권능의 선지자도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 19: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솔직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2절)
본문 2절에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면서도 나의 왕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애원을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에게 찾아와서 애원하듯이 다윗도 하나님께 애원하였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라는 고백이  이것은 다윗의 신앙 고백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를 존재케 하신 분이시다. 나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며 나의 간구에 귀 기울이는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성령을 파송 해 주신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십니다. 나의 간구를 기다리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선물을 가득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응답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3절)
본문 3절에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응답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상쾌한 아침에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활을 쏜 사람이 그 화살이 맞았는지 맞지 아니하였는지 살펴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참음과 기다림이 항상 동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즉각적인 응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응답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섣달그믐에 결혼하고 정월 초하루에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열 달이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기도응답을 늦추시며 우리의 인내심이 얼마나 되는가를 시험(試驗)하실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좋은 때를 기다리며 응답을 늦추실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응답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윗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기도를 언제든지 귀 기울여 들으시고 자신의 심사를 통촉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풀어주지 못하는 억울한 일이 있으십니까? 의로운 왕이시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기를 포기하지 마십십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거나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억울한 일과 우리를 공격하는 어떤 악인들도 그분께 고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재판(심판)하시고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직접 원수를 갚으려 하기보다 나를 무고히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다윗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분문의 말씀이 명확하게 말씀해 주지는 않고 있지만 그러나 본문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어렴풋이 그 내용이 무엇이었겠는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신앙 고백하듯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서는 주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는 분이시기에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고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고, 본문 5절과 6절에서 주님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는 분이시며, 피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다윗의 고백하는 내용 속에서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이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만한 자 또는 행악자로 인하여 당하는 모든 고통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 오만함, 그리고 온갖 악행들이 다윗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적들이 다윗을 모함하는 거짓말을 하고, 오만함을 떨고,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기를 즐겨하며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합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저희 입에는 신실함이 없고, 마음 속에는 심히 악한 것이 가득하며, 목구멍은 열린 무덤처럼 더러운 것을 쏟아내며, 아첨하기를 쉬지 않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실함이 엿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고 범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럽고 썩어 냄새나는 것들입니다. 온갖 아첨과 모함과 거짓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다윗을 대적하고 잇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다윗의 형편은 그러한 자를 징계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드러내놓고 보란 듯이 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거만한 눈을 들고 오만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거짓말로 다윗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기를 즐기는 악함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이로 인하여 다윗은 큰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 아뢰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심사를 통촉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통촉해 주시고 이러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다만 평안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만 그를 경배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여호와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심판하고 자신을 신원해 주실 이는 오직 한 분 여호와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 통촉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누구도 내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알고 이해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친히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친히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몸을 입고 우리같이 되셔서 연약함을 친히 겪으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이해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만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본문 7절에서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믿고 다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응답을 믿음으로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크신 인자하심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분께서 악과 선을 감찰하시는 자로서 선악(善惡)간에 판단하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간에 자신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상황에서도 목자처럼 자신을 인도해 오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위험 가운데 있을 때 크신 구원의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가 주의 집에 들어가 칩거하며 기도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쩌면 가장 뚜렷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현실을 헤쳐 나갈 가장 지혜롭고 선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요,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원수들을 보시고, 자신을 주님의 의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길을 자기 앞에 곧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행자의 모든 시험과 올무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다만 주의 의를 쫒아 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의 뜻을 분명하게 알리셔서, 끝까지 그 뜻을 쫒아 의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붙들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악한 자들의 악과 반대되는 의의 삶으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을 좇아 악한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을 좇아 주의 뜻을 구하는 길을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악을 악으로 보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일 것입니다. 자기도 악한 방법으로 보복하고 싶은 것이 죄인들의 속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은 악인의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에 설 수 있게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의의 길로 자기 삶을 인도하시고 그 길을 좇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세상영광과 자랑의 길을 가고, 온 세상이 육체의 정욕을 좇아 범죄의 길을 가며, 거짓과 속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행악자의 길을 갈지라도, 다윗 자신만큼은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그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길을 갈지라도 오직 자신만은 주의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경배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자신이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기도할 것뿐 아니라 대적의 심판을 위해서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악한 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시고 도리어 그들로 자기 꾀에 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많은 악행을 인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추방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한자를 심판하므로 모든 의인들을 신원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의 원수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을 배반하므로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의 왕권을 시행하는 자입니다. 그러하기에 다윗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악인들을 멸하시므로 신실한 종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나라의 대리 왕으로 신실한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그같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원수들을 향해 그같이 기도해야 하는가? 
원수들을 저주하고 쫓아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는 원수를 저주하고 심판하므로 세우는 나라였지만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도리어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므로 세워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원수를 정복하므로 세워야 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를 자기 원수로 알고 싸워야 하는 경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를 저주하는 것이고, 그들의 멸망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본문 11절에서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유일한 피난처요, 방패요,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여 있겠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에 그의 인자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의 품에서 안식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악인처럼 칼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악한 꾀에 의지하지 않고 다만 주를 의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본문 12절에서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하고 하면서 자신의 칼과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께 피하는 자만이 주의 보호를 인하여 영영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을 말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 주를 사랑하기에 끝까지 의인의 길을 떠나지 않는 자만이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자기를 의뢰하는 자의 보호자요, 방패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피하여 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여호와는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 주를 사랑하기에 주의 뜻을 쫒아 의의 길을 가는 자를 은혜로 호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피하여 오는 자를 날개로 덮으실 것입니다. 성소에 계신 하나은 넘치는 인자하심으로 그런 자를 받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겸손히 자신을 의뢰해 오는 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를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도록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넘치는 은혜로 우리를 호위하십니다. 그를 의뢰하고 그의 풍성한 인자를 힘 입고자하는 자, 주를 따라 의의 길을 걷기를 기뻐하는 자, 이 땅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구하며 믿음으로 걷고자 하는 자를 그는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모든 시험과 악으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의의 길,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의인의 방패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의 은혜로 다윗을 호위하셨습니다. 비록 다윗이 범죄하여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었어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하나님이셔서 자기를 의뢰해오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비방하기를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할자라고 비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할 자라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다윗을 보좌에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기뻐하도록 그의 걸음을 인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우리의 대표자로서 그는 모든 악한 비방과 모함과 핍박 속에서도 의의 길, 순종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악인들은 다윗을 모함하고 비방했던 것처럼 예수를 모함하고 비방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예수께선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만을 피난처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시므로 그는 하늘보좌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고 우리의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교회를 자기 몸으로 지으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원히 교회와 능력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상 중에 있기에 세상의 비방과 핍박을 받지만 예수께서 은혜로 호위하실 것입니다.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호위하시는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친히 우리의 형제가 되셔서 모든 것을 체휼하셨기에 우리의 심사를 통촉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우리를 아시고 도우십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를 의뢰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보호를 인하여 기뻐 외치며 영영한 즐거움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저를 호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한 자의 권세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주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심사를 통촉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로 악인의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을 좇아 주의 길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모든 시험과 악에서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를 의뢰하는 자를 주께선 기뻐하시고 넘치는 위로와 기쁨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영영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삶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며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