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가운데 드리는 기도”(시 6:1-10)

시편 6편은 역경 가운데 드리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우리가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여러 책을 통하여 배운 규칙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전쟁과 같아서 항상 뜻하지 않는 변수가 발생하게 되고, 문제와 역경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 역경은 우리가 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역경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를 느꼈을 때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은 어떤 방법으로 역경을 극복하였을까요? 성경을 읽을 때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그리고 성경기록시대 이후인 교회시대를 보아도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정하고 약속을 의지하여 인내하며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구약시대에 아주 위대한 믿음의 인물 가운데 한 분이었던 다윗의 시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을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왕이 되기 전에는 사울의 핍박으로 인하여 여러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후에도 당시 군부의 실권자였던 그의 누이의 아들 요압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그의 아들들의 반역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 당시의 역사를 배경으로 쓴 그의 시들은 그 상황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시편은 다윗이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서 이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편적으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역경에서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였으며,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의 표제어에서도 이 시가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시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 영장으로 현악 스미닛에 맞춘 노래"라고 하였는데, 이 표제을 보면 시의 저자가 다윗이며, 모든 청중들이 함께 부르도록 지은 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현악 스미닛'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여덟 번째'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현악에서 저음을 내는 악상기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의 표제 자체가 톤이 깔린 저음임으로 시의 분위기가 무겁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본문 6편의 주제는 「역경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다윗이 받았던 고통의 심각함에 대하여, 두 번째로는 이 상황에서의 다윗의 기도에 대해서, 세 번째로는 다윗의 확신과 하나님의 응답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의 고통(1-3절) 
다윗은 이 시에서 어떤 문제로 그에게 고통(苦痛)이 찾아왔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당하는 고통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攝理)」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다윗은 자신의 고통이 주님의 "견책"이나 "징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견책"이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법정적인 용어로 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그리고 "징계"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고 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 다윗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그가 지금 당하는 고통은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책임을 화를 내면서 묻지 말고, 적절하게 바로잡으시고 가르쳐 달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은 지금 자신이 당하는 역경의 이유가 죄(罪)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단순히 이유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혹시라도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역경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가르치려는 목적이 있다면 화를 내지 말고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 달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상황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표현에서 다윗은 "뼈가 떨린다"라든지, "영혼이 떨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에 "뼈"는 신체적이고 외적인 것으로, "영혼"은 내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둘 다 합하여 한 인격적인 존재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결합되어 한 인격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에서는 신체의 부위를 통하여 그 신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뼈는 몸 전체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뼈가 떨린다"는 것은 몸 전체가 지탱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영혼"은 그 "생명"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혼이 떨린다"는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린다"는 표현은 다윗이 지금 극심한 고통으로 큰 두려움 가운데 있고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다윗이 이 시에서 뼈가 떨리게 하고, 영혼을 떨리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압살롬이 모반을 일으켜 쫓기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큰 질병에 걸려 고통 가운데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상황을 현대적인 상황에 적용하면 육신의 질병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또는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사업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자녀들의 문제로 인하여 곤경 가운데 있는 경우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우리가 잘 아는 중국의 고사성어로 바꾸면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태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본문 3절 하반 절에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이 말은 언제까지 이 고통스러운 상태가 계속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상황을 간섭해 주시지 않는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2. 다윗의 기도(4-7절)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일을 했습니까? 하나님께 엎드리어 기도했습니다. 본문 4-7절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본문 4-7절에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직면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미 그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언제 주님께서 그 존재를 나타내시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인지를 탄식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간절한 기도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다윗이 "돌아와"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가 고통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 계시거나,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돌아와 주셔서 그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개입해 주셔서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너무 힘들어서 말하기를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 역경을 감당하지 못하여 죽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하면서 그 상황을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여기에 "곤핍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탈진하다" 또는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그의 고통으로 인하여 완전히 탈진상태가 되어 밤마다 눈물로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울어야 그 눈물로 침대를 둥둥 뜨게 만들며, 깔고 자는 요를 적시게 될까요? 그래서 이 표현은 시적인 메타포(metaphor)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당하고 있는 고통으로 인하여 크게 고통스러워하고 눈물로 지새우는 밤이 많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다윗은 그에게 임한 고통이 너무 심하여 모든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기의 "눈이 쇠한다"라는 뜻은 히브리어 관용구인데 온 몸의 기력이 떨어져 간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근심을 인하여"라고 하였고, 그 댓귀로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다윗의 이 표현은 이 세상에서 살 때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심이 많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면 기력이 떨어지고 실제로 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지금 기도로 자기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우며, 그 상황이 긴박한지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의 응답(8-10절) 
다윗은 즉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8-10절을 보십시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이 세 번째 연에서 지금까지의 톤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자들을 가리켜 "행악하는 자"라고 하였고, 이들은 자기에게서 다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의 시제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라는 말과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라는 말을 서로 비교해 보십시오.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문법으로는 완료형과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으나, 영어식으로 바꾸면 현재완료형과 미래직설법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고 계시기 때문에 조만간에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기도가 완전히 응답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는 강한 확신(確信)을 가지고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생명의 위협이나 파산상태에 놓인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다윗은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문제로 인하여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리는 무서운 상태, 생명 자체가 위협을 받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문제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의 고통이 너무 심하여 밤마다 눈물로 그의 침대를 띄워 그 요가 젖을 정도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부분적이지만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성도의 생명선이요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윗과 같이 하나님 성전에 나아서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 다음 주일부터 우리 교회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의 생존문제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의 문제이거나 경제적인 문제이거나, 자녀들의 문제이거나 진로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생존문제와 아이들의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달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세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지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당신과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시는가?'가 아니라 '내가 진실로 기도하느냐 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능력을 맡겨주셨는가에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기도는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한다면 그 모든 답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며 기도할 때 질병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물론 때때로 기도하여도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도 낙심하지 말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동대학교 교수로 있는 한홍 목사님이 쓰신 「거인들의 발자국」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위기관리능력은 기도하는 무릎일 것이다. 당신도 위기가 닥칠 때 그 분 앞에 엎드려 성실하게 기도하면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명철과 힘과 지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살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겸손하게 기도하는 도리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모든 일이 잘 풀려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항상 좋도로록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존 뉴톤(John Newton) 목사님은 쓴 「영적 도움을 위하여」라는 책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도 없고 문제도 없다면 완전한 천국을 소망하는 욕망을 상실하게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주신다. 그리고 그 고통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살 때 고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시로 다가오는 고통을 부정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대로는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치료하시기 위한 약으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믿음을 훈련하시는 기회로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 고통과 시험이나 역경을 당할 때 그것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실존을 보여주시며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도 자라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무리 큰 역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윗처럼 솔직하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