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와 같은 성도”(왕상 18:1-6)

본문의 말씀은 생명력의 신앙을 소유하였던 [오바댜의 신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주목할 수 있 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오바댜]는 비록 선지자로 부름을 받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평신도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이스라엘 북 왕국 아합 왕 때의 궁내대신으로 분명히 드러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여호 와를 섬기는 사람"이란 이름의 뜻을 가진 사람답게 하나님을 잘 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도구로 훌륭하게 쓰 임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역사 가운데는 정말 모든 사람들의 각광을 받으며 살아가는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의 역 사 가운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참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엘리야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 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의 이러한 명성 때문에 중요한 한 모퉁이에서 역사를 감당하던&nbsp7,000명 의선지자들의 이르은 은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평신도들의 이름도 은닉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능력의활동을 하던 때에 이름 없이 빛 도 없이,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하고 살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의 의무를 감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바댜가 그런 사람 중 에 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오바댜]가 살던 시대는 결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결코 용이한 시대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하나님을 일을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아합 왕은 "여호와 신앙"을 표방했지만 신앙적으로 줏대가 없는 마마보이였다. 아합은 시돈 사람 엣바알의 딸 이세벨 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바알을 숭배하는 여인이었기에 온 나라가 바알 숭배로 가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 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바댜는 궁내대신으로 있으면서 여호와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가 임해서&nbsp3년&nbsp6개월이나 가뭄 기근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이 모든 재앙이 여호와의 선지자들 때문이 라 하여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바댜는 일 백명의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숨겨 놓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공급해 주었 다. 참으로 그는 선지자보다 나은 평신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선지자들을 도운 사실이 왕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오바 댜가 왕에게 얼마나 인정받은 사람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오바댜]와 같이 같은 믿음이 좋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 다. 우리는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아합왕의 궁내대신 오바댜와 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 을 감당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나라의 구속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남겨두신 거룩한 백성 중에 하나였습니 다. 오바댜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 앞에 굴복하지 아니하였던 하나님께서 남겨두신&nbsp7,000명과 같은 그루터기였습니 다. 그러면 본문을 통하여 오바댜의 신앙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오바댜는 환난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었습니다.(2절)
본문&nbsp2절에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 럼 오바댜는 분명히 환난 날에 살던 자입니다. 본문의 "기근"이란 "굶주림"을 뜻합니다. 이는 오바댜는 배고픈 때 살던 사람임 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배고픈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죽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 댜는 결코 믿음의 색깔을 탈색시키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댜의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오늘을살아가는 우리들 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댜에 살던 시대에 있던 기근의 특징은 어떠했습니까?
첫째로, 육신적인 기근이었습니다. 
오바댜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기근 가운데 생활하였습니다. 본문&nbsp2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 그때에는 기근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 기근은 한발의 결과입니다. 이는 하늘이 문을 닫고 비 를 내리지 않는 결과입니다. 또한 이 기근은 왕상&nbsp17:1에서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야합 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고 엘리야가 예언한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였습니다. 한발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래 서 신&nbsp28:20-24에서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 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바댜가살던 시대의 기근은 아합과 그 백성의 죄 값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징치하는 방법 중의 하나 로 한발(旱魃)이나 기근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의 기근의 때를 만날 때에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 다. 이 민족이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징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온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서 철저히 하나님께 회개한 것처럼 제2의 미스바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영적인 환난이었습니다.
본문&nbsp4절에서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때에 있었던 환난은 분 명히 영적인 환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인 환난의 내용은 내용이 어떠합니까? 왕상&nbsp19장&nbsp10절 과&nbsp1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릴 때에 영적인 환난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존사회는 언약관계를 떠나서는 꽃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에서 그 국가라는 집단 이 구성되고 성원들이 결합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적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항상 언약관계를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아담과 의 언약,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시내산에서의 모세와의 언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언약의 내용은 생명적인 것입니 다. 그 생명의 성분은 피로써 성립됩니다. 이 피는 제단을 통하여 증거되었습니다. 아담과의 언약에도 피가 그 주성분을 이루었던 것 입니다.(창&nbsp3:15). 노아와의 언약에도 피가 주성분입니다(창&nbsp9:13).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도 모리아 산의 어린양의 수풀에 걸렸었는데 이 양이 예수의 그림자였습니다(창&nbsp22:13). 모세와의 언약에서도 유월 절 어린양의 피로써 언약을 했으며 시내산의 언약 역시 피로써 된 언약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붉은 줄은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이 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 언약의 피가 약속되었습니다(사&nbsp7:14). 갈보리 산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예루살렘 을 적시고 유다와 사마리아와 로마와 온 세계를 적시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언 약관계를 맺고 삽니다. 언약의 주성분이 피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언약을 저버렸다고 함은 곧 생명을 버렸다는 결론입니다. 핏줄 을 끊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학이요 자살행위입니다. 피를 버렸으니 그것은 굶주림 정도가 아니고 바로 죽음입니다. 계약 은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활력입니다. 

② 하나님의  제단을 헐을 때에  영적인 환난이 있었습니다. 
제단은 제물을 올려놓는 곳입니다. 그 제물은 피입니다. 피를 담은 그릇을 파괴했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의 자기 임재의 장소입 니다. 이 제단은 이스라엘의 동맥입니다. 이 제단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유산이요,산실이요, 활력입니다. 저들의 조부 아브라함을 위하 여 시작된 가나안 운동은 온갖 세대의 온갖 파란 가운데도 이 제단을 통하여 그 역사가 가동되어온 것입니다. 이 제단은 저들 생활 의 위로의 근거지요, 단결의 근거지요, 새 결심의 산실이요, 경건 운동의 산실이었으며, 새 소망의 센터였습니다. 이 제단운동은 이 스라엘의 멀고도 먼 유랑생활의 온갖 아픔을 감수하는 생명의 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합은 이 제단을 헐어 버렸습니 다. 피를 담은 그릇을 파기하여 버렸습니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없는 죄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환난입니다. 

③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학살할 때에 영적인 환난이 있었습니다. 
본문&nbsp4절에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라고 말씀하셨고,&nbsp19:10,14에는 "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고 학살할 때에 영적인 환난이 있습니다. 하나 님의 사람이 하는 일은 언약의 주성분인 피를 제단 위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피의 옷을 입고 제단을 출입하는 자들입니다. 선지자들 은 이 피의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을 아합과 이세벨이 칼로 죽였습니다. 이는 진리에 대한 인간들의 어둠이 극에 달한 상 태를 표시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극에 달한 환난의 때에 오바댜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결코 신앙의 색깔을 탈색시키지 않 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었던 생명력이 있는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2. 오바댜는 환난 중에서도 크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3절)
본문&nbsp3절에서 "...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바댜는 환난 날 에도 크게 하나님을경외했던 사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성경 저자에게 오바댜의 신앙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도록 성령으로 주장하였습니 다.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한 그 장면(왕상&nbsp18:2)과 이세벨이 선지자를 멸한 그 장면(왕 상&nbsp18:4) 가운데 밝은 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크게 굶주리고, 이세벨이크게 여호와를 노엽게 하던 어두운 환 경 속에 가장 밝은 한 장면입니다. 사방의 어둠이 오바댜의 이 밝음의 장면을 휩싸여 있습니다. 큰 기근, 큰 살인 가운데 큰 신앙 이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두움과 기근, 살인 등이 오바댜를 어둠 가운데 가두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바댜 는 여호와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던 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바댜는 악한 시대에 살면서, 악을 행하는 왕궁에 있으면서도 당당히 관직을 가지고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죄 악과 타협하지 않고 악인들과 마찰을 피해 가면서 지혜롭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모습은 엘리야처럼 모든 사람에 게 드러내 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이 모르는 가운데서 일사각오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을 위 해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바댜는 이세벨의 무리가 득실거리는 아합의 왕궁에서도 여호와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바알 숭배의 심 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아합의 궁중에서 고위직에 근무하면서도 아합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5~6절). 
오바댜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그 지위를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오바댜는 지위에 연연하여 아합에게 아첨하거나 굽실거리지 않 았고, 타락한 궁정에서 생활했을지라도 자신만은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물론 어떻게 오바댜가 선지자들 이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시대에 살면서 궁내 대신의 직분에 올랐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바댜가 환난 의 때에도 크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였고, 또한 그의 정직과 근면 그리고 성실함에 있었을 것입니 다. 오바댜는 그는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도 여호와를 크게 경외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라는 의미는 어떤 뜻입니까?
첫째로, 비범하게 여호와를 잘 믿은 자라는 뜻입니다.
오바댜는 최악의 시대에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후 이세벨을 따라 바알과 아세 라 우상을섬겼지만 오바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였습니다. 어려운 시기, 나쁜 환경에서 하나님께 대 한 경외심을 가지는 성도야말로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본문&nbsp12절에 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에 대한 그의 신앙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녀의 신앙을 위한 부모의 책임은 아무 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모든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 다. 세상적인 것은 혹 뒤쳐진다 할지라도 여호와 신앙을 위해서라면 한치의 양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지금까 지 여호와 신앙으로 일관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요동함이 없이 돈독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오직 푯대를 향하여 지칠 줄 모르고 전진 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오바댜의 신앙이 하나님을 크게 경외함으로 생활 속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우리도 생활 속에서 우리의 모든 일들 을 철저히 하나님 맡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크게 하나님을 경외했다"라는 것은 크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뜻입니다.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던 자였습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 다. 히&nbsp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오바댜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과 그의 백성이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가장 노엽게 하고 가장 섭섭하게 하던 때, 오바댜는 믿음 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숨은 성도입니다. 

셋째로, 크게 하나님께 순종하였다는 뜻입니다.
삼상&nbsp15:22-23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과 같이 좋아하시겠 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를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 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바댜처럼 크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습니다. 아합과 이 세벨과 그 백성이 크게 불순종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를 거역하던 때, 오바댜는 저처럼도 여호와 목소리의 순종에 그 인격을 기울였습니 다. 

넷째로, 크게 하나님만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소망을 하나님께만 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바로 시&nbsp62:1-2과&nbsp5절에서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 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 는 것처럼 우리는 오바댜처럼 크게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얼마나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마&nbsp10:28에 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 씀처럼 오바댜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크게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진정 무엇을 두려워하십니 까?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렵습니까? 알지 못하는 여러분의 미래의 일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불치의 병으로 사랑하는 이 들을 남겨 두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습니까? 우리에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섯째로 크게 열심을 내었다는 뜻입니다.
크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면 사도 바울이 롬&nbsp1211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 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열심을 품고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열심을 품고"라는 말씀을 "성령에 불타서"라 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크게 경외할 수 있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열심을 품고 주님 을 섬기는 힘쓰는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왕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면 본인에게도 매우 유익합니다. 분명 한 것은 열심히 성경을 많이 읽으면 진리를 더욱 많이 터득하게 되고 기도를 많이 하면 더욱 신령해지고 죽도록 충성하면 하늘의 상급 이 큽니다. 그러므로 기왕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열심을 다해 야 합니다. 그런데 오바댜는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열심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오바댜는 이렇게 큰 신앙, 큰 순 종, 큰 회개, 큰 소망으로 살던 성도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오바댜는 환난 중에서도 은밀한 중에 선한 봉사를 하였습니다.(4절) 
본문&nbsp4절에서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인을 가져 오십인씩 굴에 숨기 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바댜는 환난 중에서도 은밀하게 하나님의 선지자 일백 명에게 떡과 물을 공급하였 던 선한 봉사자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가 숨어서 주님의 종들을 위하여 봉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 기는 사람들은 말로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행동으로도 보여줍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말로만은 알 수 없습니다. 행동이 뒷받침 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nbsp2:22에서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 케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의 종들을 해롭게 하지 아닙니다. 말이 그렇지 백명이 나 숨겨두고 떡과 물을 먹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아도 됩니다. 그런데 오바댜는 해냈으니 보통 사람이 아님 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악한 아합 왕과 아세라의 폭정 속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그의 신앙이 얼마나 담대하며 용기 있으며 훌륭한 것인 지 가히 짐작을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접하기를 좋아하되 은밀한 중에 주님을 대접하며 사람들을 대접한 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구제를 하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한 중에 하라" 말씀하십 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본문&nbsp13절을 통하여 주목할 수 있는 사실은 오바댜는 선한 봉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 코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고, 자신의 자랑을 일삼는 일을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 를 죽일 때 그가 가진 지위와 부(富)로 선을 베풀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바댜는 선지자들의 생명을 살리는데 자기 의 권력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位)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 가 아느냐"(에4:14)라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바댜는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자기의 생명을 걸 고 실천하는 선한 일이었습니다. 부귀 영화를 누리기 위해 움츠리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신앙이 행동으로 나타나 환난의 시대 에 선지자를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세벨의 극악한 행동에 오바댜는 선지자 중 일백 명을 오십 인씩 두 개의 동굴에 숨기 고 떡과 물을 공급하였습니다. 당시 북왕조 이스라엘 갈멜산에는 석회굴이 많은데 약&nbsp1000개쯤 된다고 합니다. 하나 님은 엘리야를 위해서는 까마귀를 동원했지만, 일백 명의 선지자를 위해서는 오바댜를 통해 생명을 살리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의 적합한 방법이었습니다. 일백 명의 선지자에게도 엘리야처럼 까마귀를 동원했다면 까마귀의 무리로 인하여 쉽게 발각이 되었을 것입니 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각 사람마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방법으로, 어떤 이들 에게는 저런 방법으로 역사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바댜의 시대에 닥친 환난은 극심한 가뭄과 여호와 신앙에 대한 도전이었 습니다. 분명히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17:1). 그래서 아합왕과 오바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 근원과 목초를 얻으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를 똑똑히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화난의 때를 만날지라도 하 나님의 사람은 보호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던 영적 환난의 때에 오바댜는 이런 비상한 환난 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선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댜는  얼마든지 모든 것을 외면하고 평안한 삶을 추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울 만한 우리의 지 위와 여력이 있다면 오바댜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4. 오바댜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을 믿었습니다.(7절)
오바댜가 환난 중에서도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굳게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바댜는 말씀의 존귀성을 절 감한 결과입니다. 본문&nbsp7절에서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 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바댜가 물을 구하러 다닐 때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바댜 는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자로서 최대의 경의를 가지고 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존귀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바댜 는 하나님의 신이 엘리야를 주장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 선지가자 "자기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아합에게 고하 라"고 했을 때에,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 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12절) 정말 오바댜는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고발하여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또 혹시 왕에게 고하 러 간 사이에 하나님의 신이 엘리야를 옮겨갈 경우에 허위 고발자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하나님 의 말씀을 능력을 믿었습니다. 오바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며, 기적을 행하시는 크신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수없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 로 천지를 창조하신 일,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신 일,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일, 풀무 불에서 믿음의 세 청년을 구원하 신 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 등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 합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숨었을때 누가 까마귀를 통해서 양식을 공급할 줄 알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 력을 수없이 많이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바댜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존귀성을 알았던 사람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를 알았던 사람 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바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 선지자를 존귀히 여겼던 것입니다. 이는 주의 교역자들을 대하는 성도 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훈하시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주의 교역자들이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이유는 그분들이 가지 고 있는 인격 자체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숙하고 고귀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는 주의 교역자들을 대할 때에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요 예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여호사밧에게도 나타납니다. 왕하&nbsp3:12에서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 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의 지배를 받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감격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 시는 주의 교역자들을 존귀함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권위를 믿습니까? 왕상&nbsp17:1에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 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고, 왕상&nbsp17:5에 "여호와의 말씀 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고 말씀셨고(왕상&nbsp17:8,&nbsp18:1), 왕상&nbsp19:1 에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왕상&nbsp17:&nbsp5),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처럼 엘리야 선지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이 비를 주장했습니다. 말씀이 엘리 야 선지자를 주장했습니다. 말씀이 그릿 시냇가로 까마귀를 주장합니다. 말씀이 사르밧 땅의 과부를 주장합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삽 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바댜처럼 환난 중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믿는 말씀 중심 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환난 중에서도 ① 믿음을 굳게 지키었고 ② 크게 하나님을 경외하였 고 ③ 숨어서 선한 봉사를 하였고 ④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바댜는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었습 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오바댜의 생명을 아합과 이세벨의 칼날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바댜는 분명히 평신도이었습니다. 그는 모범적 평신도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로서 자기에게 주어 진 비상한 환난의 때를 깨어 주시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은총의 분량을 체험했습니다. 크게 여호 와를 믿음으로 살아야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식에 철두철미한 자입니다. 직무한계를 바로 깨달 은 자입니다. 자기의 신분, 자기의 위치, 자기의 존재가치를 바로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필요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경에 오바댜의 인물에 대해서 많은 할애를 하지 는 않았지만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던 자요, 단순히 지식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차디찬 사람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았고, 그는 환난의 시대에 살면서도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선지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하였습 니다. 환난의 때는 사탄이 활동하는 시기입니다. 오바댜의 시대에는 아합과 이세벨의 독무대였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구속사 운동 을 막아 보려고 악독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서 남겨 둔 자들을 통해 구속사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러므 로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환난의 때는 성도들이 영적인 재미를 보는 시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대 에 오바댜 같은 신실한 종을 찾고 계십니다. 모두가 신자라고 자처하는 이 시대에 오늘의 오바댜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 분이 이 시대의 오바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