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을 입으라/엡4:17~24 

<서론> 
오늘의 본문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가 삶 속에서 두 가지를 행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Put away your 
former way of life) "새 사람을 입는 것"(To clothe yourselves with the new self)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 사람이 되겠습니까? 
먼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매우중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분들이 있으면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 부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다 해도 우리에게는 옛 성품이 남아 있어서 자꾸 옛날로 돌아가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새 사람이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 성품 가운데 옛 사람으로 돌아 간 부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늘 그것을 청산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중요=옛사람 설명> 
여기 본문에서 말하는 옛 사람은? 옛 사람, 이것은 그 속성이 영 주도적 인간에서 떠나서 육체 주도적 인간으로 타락된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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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던 옛 인격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들의 부끄러운 옛 모습이고, 우리들의 과거의 생활방식이고, 우리들의 비뚤어진 가치관들입니다. 이것들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위주, 공로 위주, 인간중심 위주, 학연, 지연, 혈연 위주, 자기 위주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빨리 벗어야 할 옛 성품, 옛날 기질, 옛 기억의 옷들을 훌훌 벗어 던질 수가 있어야 새로운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새롭게 사는 삶의 그 다음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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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들이 벗어 버려야 할, 청산하여야 할 옛 사람의 속성(본성)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즉,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을 일곱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해석> 
17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첫째, 우리는 허망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Walking in the futility of their mind)에 떠나야 합니다. 

허망하다는 말은? '방향이 없다''목표가 없다'는 말입니다.목적을 상실함을 의미합니다.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주 허무하고 허망한 세상, 허우적거리기만 했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 지를 모르고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사업을 하나 결혼을 하나 목적이 없어요. 의미가 없어요. 허망함에 빠져듭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바를 마음에 담고 그 마음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행동 
은 늘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의 결과는 그 사람의 생각패턴(thinking pattern)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두움가운데 사는 옛 사람의 자아는 그 마음이 허망해져 
서 (futile,하찮은, 쓸데없는 - 이 단어는 '공허한', '비어 있는'의 뜻인 emptiness와 동의어 
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후서2장 17절에서 마음이 허망해져서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두는 사람을 가리켜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며,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만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찮은 일들, 열매 없는 일들,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것 자체가 빈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기 전에는 다 이렇게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 방향이 없는 삶,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그 방향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고 그런 삶을 사는 동안 얼마 안 되어 나도 모르게 또다시 그런 방향이나 목표를 잃어버리고 다시 옛날과 같은 허망한 삶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현대의 특징이 이렇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인데, 그런 시대를 살다 보니 나도 거기에 동화되어서 허망한 삶을 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삶을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 

<성경구절-참고> 
롬1:21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였고,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목적 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18절 해석> 
18절-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둘째, 우리는 총명이 어두워진 것 (Darkened in their understanding)에서 떠나야 합니다. 

여기 총명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그런 총명, 그런 지혜에 어두워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이나 삶의 경험에는 밝았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무식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마음은 아예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되었고 말씀에 대해서도 감각을 잃었으며 죄를 짖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굳은살이 박인 마음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중요)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진정한 지혜를 갖게 되었다. 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잠언의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잠 9:10)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게 되었고, 성경도 열심히 읽게 되었으며, 그 말씀 가운데서 살아가려고 애쓰고 그렇지 못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또다시 세상에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께는 어둡게 되었고 말씀에 대한 감동이나 깨달음도 무디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양심의 가책마저 별로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이런 무지함이나 완고함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셋째로, 우리는 무지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무지함이란? 아그노이안 이라는 말은 도덕적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선악이 모호해 짐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하질 못하는 그런 상태에 빠집니다.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네 번째로, 우리는 마음이 굳어짐에서 떠나야 합니다. 
마음이 굳어짐은? 
'굳어짐'(헬라어 'porosis' <완악함>는 '돌'을 의미하는 'poros'에서 파생된 단어)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능력들에 대하여 전혀 깨달음이나 감격 등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중요)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도 아무도 춤을 추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국 이런 무지와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를 가져옵니다. 

<예화> 
이것은 마치, 어린 생명을 태내에 갖고 있는 산모가 무지해서 아무런 조심성 없이 약을 복용한다거나, 태내 아기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음식을 마구 먹거나 심한 운동 등을 한 나머지, 태내에 있는 어린 생명이 결국은 유산 또는 사산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엄마의 무지와 굳어진 마음 
때문에 결국 어린 생명은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의 분리는 인간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탯줄이 
끊어진 태아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빛이 차단된 곳에 있는 꽃나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 
습니까? 탯줄로부터 끊어진 태아. 빛이 차단된 꽃나무의 생명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 
님과 분리된 인간의 생명은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19절 해석> 
19절-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다섯째, 우리는 도덕적, 영적 무감각(Moral & Spiritual Numbness)에 떠나야 합니다. 

본문 19절에는 빛을 잃은 옛사람이 타락의 길로 접어든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각 마비증에 빠집니다. (Lost sensitivity), 자신이 지금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 
락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지, 
추한 것인지, 전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술을 마신 사람이 운전을 하게되면 지금 자신이 차선 
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속도감각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술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십니다. 간음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기회만 나면 그것을 계속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져올 파멸과 심 
판을 알지 못합니다. 

<예-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다-죄의 반복성에 떠나라-토한 것을 또 먹는다.> 

<예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던 한 청년에게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사탄은 자 
신이 들고 온 열 개의 병을 내 보이며 청년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 열 개의 
병중에 단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 있고 나머지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있네. 만약 자 
네가 꿀물이 들어있는 병을 고른다면 엄청난 돈을 주겠네." 청년은 이 사탄의 제의를 받아 
들여, 병을 하나 골랐습니다. 그리고는 마셨더니 너무도 맛있는 꿀물이었습니다. "와 살았다. 
자 어서 약속한 돈을 달라." 의기양양한 청년에게 사탄은 약속대로 많은 돈을 건네주며 말 
했습니다. "언제라도 돈이 필요하거든 날 찾아오게." 

청년은 쉽게 많은 돈을 벌게되자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술과 도박 
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술과 여자와 도박으로 인해 몸은 극도로 나빠졌고, 가정 
도 모두가 파탄이 났습니다. 그런 중에 점점 나이만 먹어갔습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마 
다 스스럼없이 사탄을 찾아가서 게임을 하고 돈을 가져왔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노인이 되었고, 이제 사탄의 병은 두 개만 남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은 두 개의 병중에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그것 역시 꿀물이었습니다. "내가 이겼어. 마 
지막까지 내가 이긴거야. 자, 어서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돈을 모두 내놔라." 

기뻐하는 그 노인의 모습을 비웃듯이 지켜보던 사탄은 마지막 남은 병을 자신이 들이켰습니 
다. "자 이래도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애당초 몇 개의 병중에 독약이란 건 있지도 않았 
어. 하지만 너는 꿀물이라는 독약으로 인해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내가 준 턱없이 많은 돈으 
로 인해 너의 인생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나는 돈으로 네 인생을 산 거라구." 

이 젊은 청년의 타락은 조금씩 조금씩 이어져 왔기에 전혀 자신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죄 
의 무서운 세력 앞에서 피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의 모습을 그대 
로 갖고 있는 한, 이처럼 죄는 세상적인 쾌락과 즐거움으로 위장한 채, 우리에게 접근해와 
우리의 눈을 멀게하고, 양심을 무디게 만들어 우리들 자신을 방탕한 생활로 내몰아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게 만듭니다. 급기야는 양심과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귀 멀고, 눈 멀게 
만들어 타락의 길로 가게 합니다. 곧 파멸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여섯번째는 방임이라고 했습니다. 
방임, 이것은 영어로 말하면 Give up, 포기상태입니다. 거기다 기대를 걸 수가 없습니다. 인간 됨을 포기한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의지함으로 우리의 인생과 모든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매우중요> 
왜?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목숨, 생명, 피 값으로 나(우리)를 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예수님짜리인 것입니다. 존귀하고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 우리가 떠나야 할 옛 사람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 
일곱 번째로, 우리는 세상의 욕심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방향감각을 잃었고,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하게 되고 완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욕심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의 삶은 한 마디로 욕심을 좇아 사는 삶이었습니다. 육체의 욕심,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이 세상 것을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버렸습니다. 더 이상 욕심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다른 면의 거룩한 욕심들이 생겨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널리 전파할까, 어떻게 하면 남을 더 섬길까 하는 거룩한 욕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한 욕심도 살아가면서 점차 약해지고 오히려 세상의 욕심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때가 얼마나 많으냐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이런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옛 사람에서 떠나라. 벗어버리라=요약 중요> 
이렇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은 옛 사람에게 속한 
1. 목표가 허망한 마음, 
2. 하나님을 아는 총명이 어두어짐, 
3.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함, 
4.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능력을 깨닫지도 느끼지 도 못하는 마음의 굳어짐, 
5. 죄에 대한 영적 무감각, 
6. 나의 인생과 삶을 포기하는 방임, 
7.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더 좋아하고, 좇아가는 욕심.... 
이런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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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을 입으라 해석> 
이렇게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벗어버려야 할 것이 있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여기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일과 아울러 새 사람을 입는 일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닮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점을 닮도록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닮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다 이렇게 새 사람을 입게 된 것입니다. 
갈 3:2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 사람의 하나님을 닮은 성품들도 가만히 있으면 자꾸 사라지는 것입니다. 옛 성품들은 자꾸만 살아나고 새 성품들은 자꾸만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한번으로 다 되었다 생각하지 말고 계속해서 벗어버리는 작업과 입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습니까? 
22절-24절을 읽으시겠습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엡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어떻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고 했습니까?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롬 12:2에서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중요합니다. 잠 23:7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사람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자는 말은 결국 마음으로 새로워지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새로워지는가?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외부적인 단정으로 새로워 질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결심으로만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빛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절 해석 - 새사람의 삶=> 20절-21절 > 
20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 성령의 은혜(새 사람을 입어라, 새사람이 되라)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워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20) 
여기서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인품, 품성 
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 
격을 알지 못하고는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1단계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20) 여기 새사람의 
교리적인 근거가 나옵니다. 이방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옛사람에서 새사람 
이 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에 허망한 
것들을 행함같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본래 에베소교 
인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가치관으 
로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 혹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들을 우리가 행하는 것 
입니다. 이 말은 좀 더 쉽게 말하면 믿은 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거룩 
하시다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 믿은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신행일치 
라고 말합니다. 언행일치가 아니고 신행일치입니다. 

<21절 해석> 
21절-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 성령의 은혜(새 사람을 입어라, 새사람이 되라)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야 합니다.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4:21중) 
그에게서 듣는다는 말은 예수님에 관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듣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듣는 것입니다. 새사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는 삶입니다. 

*** 성령의 은혜(새 사람을 입어라, 새사람이 되라)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셋째, 예수 그리스도안에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4:21) 
그리스도 안에라고 하지 않고, 예수 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역사 속에 
나타나신 그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안에서 가르침 
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교사도 되시고, 가르침의 내용도 되시고, 목적도 
되시고, 또한 그 자신이 학교도 된다는 뜻입니다. 

21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순종이 나오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전부 말 
씀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시게 되면 몇 가지 
구분을 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구분을 시키시는 분입니다. 

1) 하나님과 무신론 사상을 구분시킵니다. 내게서 무신론사상을 없앱니다. 
2) 하나님의 계획과 우연을 구분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연이라는 말은 사용 
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이 경륜이요 계획입니다. 
3) 진리와 무지를 구분시킵니다. 무지가 진리를 흐리게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리 
스도가 오시게 되면 우리가 배움으로 인해서 진리와 무지를 구분하게 됩니다. 
4) 생명과 망각상태를 구분합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얻어야 할 생명 
은 얻게 됩니다. 
5) 축복과 저주를 구분시킵니다. 축복의 삶과 저주의 삶의 혼돈 속에서 살면 안됩 
니다. 

<22절 해석> 
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앞에서 지적한 모습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회개해야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잘못되고 우리교회가 잘못되고 내가 잘못되는 것도 모두가 내 탓입니다. 모든 갱신은 자기(나)로부터 되어야합니다. 

<예화> 
수피 바야지드가 쓴 자신의 회고록에 보면 청년시절에 "주여 저에게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하였고, 중년시절에"주여 제게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였는데, 노년시절에는 "주여 저에게 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어야합니다. 

이제 이 과거의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의 모습은 갖는 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서 새 사람이 되는 법은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습 
니다.(22절) 그런데 이 새 사람의 옷을 입으려면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옛사람을 버려야합니다. 
옛사람이 무엇입니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 죄악된 생활을 멈추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옛사람입니다. 

또한 못된 습관들이 옛 생활입니다. 
잘못된 습관과 못된 습관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못된 습관들은 새해에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옛사람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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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절 해석> 
23절-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심령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새 사람, 새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려면-중요 설명> 
어떻게 심령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심령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거듭나야합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바라새인 니고데모에게 선언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광명이 찾아옵니다. 
실패가 물러가고, 성공이 찾아옵니다. 
절망이 물러가고 소망이 넘쳐납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납니다. 
죽음이 사라지고 생명과 구원을 얻습니다. 
염려 걱정 근심,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습니다. 

(요14:27)"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 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 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영접하면)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있습니다. 
첫째,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둘째,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그리스도로 새사람을 입으라!(24절) 

<새사람이 됨의 증거- 중요>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 새롭게 되어라는 동사를 문법적으로 말하면 현재 부정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매일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속 사람이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고, 바라봄으로 새로워질 때 우리도 새롭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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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나오는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항상 위로부터 오는 힘을 통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신앙의 위인들이 자주 기억한 말씀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당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사40:31)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자나 자기 힘을 믿는 인본주의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있는 자는 알아듣는 말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이 말은 영적으로 깨인 사람들만 알아듣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24절 해석> 
24절-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이란 말은 앞에서 나온 옛사람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새사람'은 문자 적으로 '갓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통해 재창조 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된 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듭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것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과 삶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한번 남으로 영원히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거듭나는 것은 일생 계속되는 거듭남입니다. 영적으로는 새 사람이 되었는데 삶이 따라 주지 않기에 교인들이 세상에서 비난받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영적으로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은 생활로 거듭나자는 말입니다. (중요) 

우리의 본 모습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는 우리의 육체를 만드셨고, 우리의 마음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만드셨습니다. 
의와 진리는 올바르고 충실한 삶을 말하고, 거룩함은 죄악과 구별되어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성결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본 모습을 변질 시켜 놓았습니다. 
의대신 불의를, 진리대신 거짓을, 거룩대신 추함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것들로 우리의 본 모습을 변질 시켰습니다.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불의, 거짓, 추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불의, 거짓, 추함은 사회와 세상을 파괴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불의하고, 거짓되고, 추하고, 하나님을 떠나 산다면 가장 가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이 어떤 만물보다도 존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합동하여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창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중요) 

이 말씀 속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모아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땅에서 솟아나 것도 아니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요, 
박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진화된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귀한 것입니다. 
어떤 만물보다 존귀하고, 천사보다 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죄악으로 부패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마음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회복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본 모습이 회복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본문 24절 말씀 다시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만이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예화-김유신-옛 사람을 버리라> 
우리가 잘 아는 신라의 김유신 장군 은 모든 면에 훌륭했으나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기생집에 다니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의 어 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기를 "치국평천하"를 꿈꾸는 사람이 주색 잡기에 빠져서야 되겠느냐고 간곡히 타이를 때 그는 굳게 결심하고 다시 는 그 기생집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전쟁터에 나갔다가 승전하고 돌아오는데 너무 피곤하여 마상에서 졸고 있을 때 영리한 말이 전에 다니던 기생집 앞에 와서 다 왔다고 몸을 털더랍니다. 눈을 떠보니까 전에 즐겨 다니던 기생집이었습니다. 웬만하면 결심도 좋지만 이 런 때에는 좀 쉬어가자고 할 수 있 었을 터인데 김유신 장군은 말에서 뛰어내려"누가 나를 이리로 데려오라고 했느냐!"고 호통을 치고 큰칼 을 뽑아 애마의 목을 치고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나 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다 어떤 계기나 동기가 올 때 무심하게 보내 지 않고 단호한 결단과 굳은 결심을 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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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입니까? 무엇으로 옛사람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바꾸어 입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 24절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하나님의 형상)으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잘 짜여진 새 옷을 입어야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 거짓된 양심이 있다면 고쳐 먹어야합니다. 속된 안목을 가졌다면 영적인 것으로 돌려놓아 새 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