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건강한 가정”(빌 4:7-11)

  
오늘은 건강한 가정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마음이 건강해야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으로서 은혜의 좌소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모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마음은 생활의 모든 행동과 작용의 원천이며 샘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13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입니다. 건강한 마음은 우리의 생활을 활기 있게 만들지만, 병든 마음은 우리의 생활을 의기소침(意氣銷沈)하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예레미야 애가 5:17에서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가 점점 더 전문화되고 다변화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더욱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로 인해 마음의 건강을 심하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영적 우울증(憂鬱症)에 빠지게됩니다. 그래서 많은 현대인들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신경정신과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화병 크리닉이 생길 정도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물질, 건강, 자녀, 사업, 가정 문제로 인하여 근심, 걱정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삶이 복잡해지고 템포가 빨라지며 인간의 사생활이 전반적으로 침해받고 조종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마음의 건강은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인간관계가 메말라지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삭막하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병든 마음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긴장 속에서 살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몰고 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마음의 건강의 회복할 수 있습니까?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4절) 
본문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의 건강을 얻기 위해서 주 안에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을 잃게 되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인생은 본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과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하는 인생은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6장 11절에는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칩니다.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며 사는 사람들은 기쁨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 속에도 기쁨이 충만하고 주변에도 기쁨이 충만한데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남으로 그때부터 인간에게는 기쁨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사람들의 가슴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갈급해 하면서 찾는 것이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기쁨을 찾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노력으로 기쁨을 찾고자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찾는 기쁨은 참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참된 기쁨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노력을 다해서 기쁨의 샘을 파더라도 그것은 기쁨의 물을 채워 넣을 수 있어도 터진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기쁨의 근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경험하는 기쁨은 언제나 슬픔과 허물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기쁨의 근원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12장 2절로 3절에 "보라 하나님은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기쁨과 구원의 우물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물에 나아갈 때 기쁨의 물을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우리 죄를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고 의의 의복을 입을 때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아 버립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그 막힌 담을 헐어 버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서 넘쳐 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의를 얻게 되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마음 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이유와 가치를 얻을 때 기쁨이 넘쳐 납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 인간의 삶이 아닙니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 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얻고 천국이 마음속에 들어와 삶에 기쁨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16편 8절로 10절에서 "내가 여화와를 항상 내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기쁨과 영광이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는 35분마다 1명식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분에 1명씩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정신적인 불안정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요 10장 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절망감만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은 정신적인 안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뻐로 마르게 하느니라"는 말씀처럼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면 오늘날 현대의학도 치료할 수 없는 병들도 치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을 잃게 되고 근심을 들어오면 뼈가 마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치료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의 성경의 은혜로 즐거움이 넘치면 우리 몸에 있는 모든 병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치료의 놀라운 효과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의 기쁨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에 기쁨을 가지고 일어나 보십시오. 생기가 넘치고 하루종일 기쁨이 있으면 모든 일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4편 7절로 8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합니다. 그리고 환경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성령으로 넘쳐나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쁨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다 제하여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30편 11절에서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슬픔 대신에 춤을 추게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춤을 춘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변하여 춤을 추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기 때문에 춤을 추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히고 기쁨의 띠를 띠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주 안에서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얻으면 마음에 건강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에게 관용해야 합니다.(5절)
본문 5절에서 "너희 관용을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마음에 건강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마음에 관용을 가지고 너그럽게 생활하는 것은 마음의 건강을 소유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왜소하고 각박하며 무정하고 적대적이며, 자기 합리화에만 급급한 사람은 불행하게 되고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고혈압 환자들의 특성 중 하나가 마음에 원한(怨恨)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해서 용서(容恕)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이 고혈압으로 변회되고 결국은 심장병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그 외에도 각종 병의 70%는 그 원인이 마음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내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큰 마음을 먹고 말했던 것입니다. 일곱 번 용서하는 것은 굉장히 큰 마음입니다. 남편을 일곱 번 용서하고, 아내를 일곱 번 용서할 수 있으면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가만히 보시더니 "이 사람아 하루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容恕)한다는 것, 마음에 관용을 갖는 다는 것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좋습니다. 관용은 자기에게 평안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관용을 베풀며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관용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들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며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관용을 가지고 살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미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관용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럴 때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주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나에게 관용을 주시고 너그러운 마음을 주셔서 이 모든 환경을 용납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힘을 주지 아니하면 관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세상 인심이 너무 각박해지고 우리의 마음도 너무 황폐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관용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6절에 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관용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시며 마음속에 여유를 부어 주십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그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용을 베풀지 아니하고 상대와 똑같이 물고 찢고 싸우면 우리에게 손해가 너무나 많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관용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강림이 가까우시다"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늘로 들려올 날이 짧아 졌으니 훨훨 털어 버리고 떠날 세상에 미련을 두거나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묶이게 되면 세상 속에서 싸우고 관용을 가질 수가 없는데 세상에서 기대를 버리면 마음이 훨씬 편해 질 수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는 사람보다 관용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의 것에 집착하게 되면 관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면 땅에 있는 것을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확실한 천국이 있습니다. 눈물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고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생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이미 집을 갖고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러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6-7절)
본문 6절에서 "아무 것도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는데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염려와 근심 없이 살수가 없습니다. 항상 염려와 근심이 구름과 안개처럼 우리에게 덮여 있습니다. 

(예화)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병사는 약 2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고 염려하던 부모들 중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2백만 명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의 총칼보다도 마음의 근심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병균은 약으로 멸할 수 있으나 염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질환으로 병균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마음속에 굉장한 긴장감을 일으키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호르몬을 생산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염려와 수고를 맡아 주실 주님이 우리 앞에 서서 손을 활짝 내밀며 "수고하고 무거운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1장 28절-29절) 마태복음 6:26에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눅 1224에서는 "까마귀를 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부정한 새까지 보호하시는 것처럼 하물며 성도는 보호하십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주님께서 안 보이는 손길을 내밀고 하신 말씀이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나와서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간구를 하되 감사를 하면서 주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이 실패해도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께 나와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주님이 능력이 우리를 향해서 풀려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거이니"라고 말씀했고 마태복음 6장 31절과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는 성경의 여러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짊을 덜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짐을 밑기면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을 뛰어 넘어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 마음속에 평안으로 가득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마서 8장 28절) 또한 골로새서 2잘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의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 마음속에 주님께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건강 없이 행복은 없습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온다"라고 했는데 생명의 근원이 병들어 버리면 우리에게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주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관용과 기도와 간구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넘치도록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든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건강한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데, 주님은 우리에게 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②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라 ③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께서요 14:1,27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활기 있게 생활하며 영육간에 승리하는 복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