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삶의 모습이다. 성도들은 누구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일단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판단을 내렸을 때는, 모든 노력을 체념하고 거기에만 집착하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1. “하나님의 뜻”의 의미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이 마음이나 생각을 높여 부르는 말로, 특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주의 뜻”,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원”이라고도 불렸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음을 받아서 존재하고 움직인다(계 4:11). 사람의 생명과 땅의 경계(행 17:26,28), 국가의 흥망성쇄, 동식물의 생명 등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키가 한자도 자라지 못하고,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크고 넓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 

한편, 하나님의 뜻은 영원 전부터 정해져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변경되지 않는다. 성경에는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셨다”(출 32:14)는 말씀이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뜻을 바꾸셨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편에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성경에는 이러한 표현들이 많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해가 떠서 지는 것이 아니다. 해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돌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동자와 발등상을 말한다. 모두가 하나님을 사람 편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인동성동형적(神人同性同形的) 표현 방법이라고 부른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우리는 다음의 방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1) 계시, 특히 성경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시면, 즉 계시를 해주시면, 그 계시의 범위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현상, 역사(歷史),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구조와 같은 일반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알게 하신다. 그러나 일반계시만으로는 사람들이 구원에 관한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특별계시를 통해서 구속주이신 하나님, 구원을 받는 방법, 구원받은 사람이 해야 할 일 등을 알게 해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기록을 해놓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의 안내를 받는 것이다.(롬 2:18)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어느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등에 관한 하나님의 뜻에 더 많이 쏠려 있다. 성경에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까지 다 밝혀져 있지는 않다. 이것은 성경에서 알려주신 기본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아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를 가지고 성경이 말씀하는 선한 방법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을 때는 다음 몇 가지 방법들을 더 고려해 보는 것이 좋다. 

2) 기도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은 주로 기도를 통해 알려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을 가르치셨다(마 7:7).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기도의 응답은 연관된 성경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깨달아지는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구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거나,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 등으로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모든 응답이 기이한 현상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무당들에게서나 보는 것 같은 건전치 못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한다. 

3) 강한 의욕과 기쁨 
사람을 인격체로 만드신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인격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그 사람에게서 강한 의욕을 불러일으켜 뜨거운 사명감이나 의무감을 가지게 하신다. 또 그 일을 통해서 큰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어떤 강한 감정이 일어난다면, 먼저 인간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느낌이 아닌지를 살펴본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감정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선한 소원을 두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빌 2:13). 

4) 감당할만한 재능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부여되어 있는 재능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축구선수나 가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달리기나 노래를 못한다면,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 잘하는 아론을 보내 모세를 돕게 하셨고(출 4:14), 수금을 잘 타는 다윗을 통해 악신이 물러가게 하셨고(삼상 16:23), 가말리엘 문하에서 많은 공부를 했던 바울을 사용해 복음의 도리를 기록하게 하셨다(행 22:3).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가진 재능을 감추어두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도록 그 재능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재능을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이 될 수 있다. 

3) 길이 열려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때에는 그 길이 계속 열려지게 하시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 길을 강제로라도 막으신다. 주인 아들의 아내를 구하러 갔던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길이 순적하게 열리는 것을 체험했다(창 24:27). 사도 바울께서는 전도의 여행을 하면서도 늘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셨다(골 4:3).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발락을 찾아가던 발람이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의 길은 칼을 빼든 여호와의 사자와(민 22:23) 풍랑으로 가로막히고 말았다(욘 1:12).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성공이나 실패가 아닌 계속적인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5) 다른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참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물속에 던져 넣으실 때나, 일곱 집사를 세우실 때, 제비(투표)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도록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제비는 사람이 뽑아도 그 일을 작정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했다(잠 16:33). 아무리 장로나 집사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도 선거 때마다 실패를 한다면, 그 길을 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겠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는 것을 제비뽑기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듣는 것도 매우 주요한 일이다. 주변에 이런 사람을 많이 가진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3.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체념적인 생각을 가지기가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실 때,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방법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자연법칙이나 사람의 노력이라는 제이차적인 요인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동안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부지런히 일하여 얻은 소득으로 음식을 먹음으로서 유지가 되게 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지 못해 얻은 병이나 나쁜 음식으로 죽음을 맞게 하신다. 부자나 학자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은 그에 합당한 사람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신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노력이 없으면 부자나 학자가 될 수 없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체념하고 하나님만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맡기신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체념적인 태도는 좋은 믿음의 자세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만드는 악이 되기 쉽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 하신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은 구하는 과정을 통해 주어진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약 4:2).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복을 주고 큰 민족과 부자가 되도록 뜻하셨다. 그러나 그 뜻은 20년 동안에 걸친 야곱의 지혜롭고 근면한 수고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에 보내 자기 민족을 구원하도록 뜻하셨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동생을 팔았던 형들은 죄책감 속에 살다가 마침내 동생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제이차적인 요인들을 사용함 없이,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경우도 있다. 엘리야에게는 직접 까마귀를 보내 음식을 먹이셨고(왕상 17:6), 빈들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히 적은 량의 떡과 물고기로 배불리 먹이셨다(마 14:20). 빌립 집사님은 수고하여 걷지 않고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하셨다(행 8:39). 그러나 우리들이 이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러한 경우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형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실 때 사용하시는 예외인 사례이다. 하나님께서 예외적으로 사용하시는 이적을 우리 편에서 일상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위치를 바꾸는 큰 잘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 익숙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서 성경만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간절한 기도, 그리고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강한 의욕과 기쁨, 자기가 가진 재능,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다른 사람의 생각 등을 종합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의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노력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