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 되었습니다”(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시편 149:4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던 그 순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목격자로 그 자리에 계셨고 우리의 출생에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이라는 감정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통해서 기뻐하길 원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교감되어지는 기쁨으로서 인간과 서로가 기쁨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은 감정을 깊게 느끼시는 분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슬픔, 질투, 분노, 기쁨, 동정, 연민... 등의 수많은 감정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기쁨이라는 감정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시길 원하십니다. 이것은 특별히 인간과 나누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익,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존재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1:5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의 모습을 기뻐하십니까? 
시 147:11에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기쁨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예배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은 욕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각 나라와 문화에서 종교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왜냐햐면 예배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입니까?(예배의 바른 정의) 
첫째로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나라와 문화에서 그리고 그 안의 종교에서 예배라는 이름으로 많은 행위들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비록 ‘예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체물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우상숭배이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예배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되어져야만 예배입니다. ‘예배’라는 단어에 속아선 안 됩니다. 

둘째로 예배는 음악 이상의 것입니다. 예배는 음악보다 먼저 생겼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창 4:21절에 유발의 출생 전까지 음악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예배시간에 행해지는 모든 부분이 예배의 모습입니다. 기도, 성경 봉독, 찬양, 고백, 침묵, 잠잠히 하는 것, 말씀을 듣는 것, 필기하는 것, 헌금, 세례, 성찬식, 등록카드 작성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까지도 예배입니다. 

셋째로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스스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에게 영광과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의 오류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면, 세 번째의 이야기 되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오류입니다. 예배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움켜잡기 위해서 나옵니다. 만일 여러분이“오늘 예배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그것을 잘못된 이유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잘못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을 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예배의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전통이 아닌 열정과 헌신으로 감동을 받으십니다. 
이사야 29장에서 하나님은 예배에 온 마음을 쏟지 않고 위선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불쾌함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메마른 기도, 입술만 움직이는 찬양, 무의미한 설교 등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넷째로 예배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입니다.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의식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정의는 어떤 의식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모든 모습 ’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라는 말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시 105:4)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집에서, 전쟁터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심지어 침대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처음 하는 행동이어야 하고, 밤에 눈을 감을 때 하는 마지막 행동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시편 5,63,119,147) 하나님은 우리의 전체의 모습을 통해서 기뻐하십니다. 의식도 예배이지만,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일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에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체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삶은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0:31에서“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유 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젖을 짤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이런 모습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습니까? 그 비밀을 딱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하듯이 하면 됩니다. 또한 그것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 3:23에서“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삶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일도 예배가 됩니다. 그분의 임재를 느끼면서 산다면 우리의 삶의 모든 일상은 예배가 됩니다. 매일의 일상생활, 잠자는 것, 먹는 것, 일하러 가는 것, 그리고 걸어 다니는 것 모두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삶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쁘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행동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위한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이제 나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자녀로 이 땅에서 더욱 더 귀한 존재로 쓰임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기쁨을 비롯한 감정을 주님 앞에서 절제한 적이 있습니까? 왜 그렇게 했습니까?
2. 예배에 만족을 느끼지 못할 때 기분이 상하십니까? 그날 하나님도 마음이 상하셨을까요?
3. 마치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 하듯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