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共同體) 가꾸기”(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보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선포, 교제, 봉사입니다. 성도의 사귐은 두 번째 교제에 속합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적이면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공동체와 다른 점은 이 세 가지가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인간적인 교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거룩함에, 그리스도의 은총에, 성령의 은사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공동체들은 인간이 고안해낸 어떤 사회적 이념, 경제적 이해관계, 정치적 이념, 학연, 지연으로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분열, 갈등, 계층 간의 적대감을 만들어 냅니다. 이 세상 공동체는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넘어섭니다. 성도의 사귐은 '수직적'인 것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해 요인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헌신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진정한 교제를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우리의 선택과 헌신을 사용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엡 4:3에서“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성령의 역사와 힘써 지키는 인간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교제에 대해서 어색해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오늘 우리의 문화일 수 있습니다. 외국 사람에 비해서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제를 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식적(假飾的)인 교제를 그만두려 한다면 이제 성경이 증언하는 교제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공동체를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공동체를 가꾸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덮거나 무시하고 싶을 때에도 사랑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침묵(沈黙)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결코 사랑의 행동은 아닙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아서 계속 자신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엡 4:15) 정직함이 없이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덮어놓은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비밀스런 분위기는 소문을 타고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거짓과 핑계는 이제 없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엡 4:25)  

그러기에 성도 중에 죄를 범하고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때는 사랑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이야기 해줄 때 계속 죄를 짓거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파멸의 구덩이에서 건짐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부도덕함이 퍼질 때까지 침묵했던 것에 대해 책망했습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2) 

그런데 기억할 것은‘솔직함’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하는 것이 아니며, 무례함도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와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딤전 5:1-2에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 든 남자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모진 말을 사용하지 말고 아버지께 하듯 하며, 어린 남자들에게는 형제처럼 해야 합니다. 나이 든 여자에게는 어머니께 하듯 하고, 나이가 어린 여자들에게는 자매를 대하듯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상대방도 나의 마음을 압니다. 사랑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2. 공동체를 가꾸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독선적이며, 고집스럽고, 교만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그 교제를 파괴합니다. 교만(驕慢)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습니다. 교만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다리를 놓고 관계를 부드럽게 하며, 더 온화하게 해주는 기름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통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5:5에서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의 약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에 인내하며,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세워줌으로써 가능합니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겸손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에 인내하며,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세워줌으로써 가능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3. 공동체를 가꾸려면 공손해야 합니다.  
‘공손함’이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며,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2) 
모든 교회, 모든 소그룹 안에는 적어도 한 명이상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특별히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안정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버릇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술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우리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가족은 우리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이지 계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처럼 서로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최대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롬 12:10) 오히려 그를 거리를 두지 말고 더 가까이 가보아야 합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를 알수록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공동체를 가꾸려면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고,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가장 깊은 곳의 상처, 필요 그리고 실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다른 이들의 죄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그룹 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구성원들만이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험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문을 싫어하십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기도제목’이라는 이름하에 전해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잠 16:28에서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소문은 악한 사람들에 의해 퍼집니다. 그들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친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소문은 항상 상처를 낳고 분열을 초래합니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어떤 개인보다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이 공동체에선 훨씬 더 무섭습니다. 우리는 말쟁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5. 공동체를 가꾸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그룹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히 10:25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합니다. 만남의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의 교제의 깊이가 얕은  것입니다. 세상 친구들과의 관계를 주님 안에서의 가족들에게로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휠씬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내가 가고 싶을 때에만 가는, 그런 편리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지 않을 때에도 만나야 합니다. 초대교회 크리스천은 매일 만났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상대적으로 우리의 만남의 시간이 너무 적지 않은가? 만남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교제를 위해서 여러분의 삶에서 바꿔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인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하지만, 그것을 통해 누리는 유익함은 우리가 치르는 비용보다 훨씬 큽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해서 천국을 맛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동체라는 말은 공동 사회, 운명과 생활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그것이 하나가 되고 생명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려면 말로만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섬김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교회 식구들이 서로 바빠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습니까? 초대교회 공동체는 떡을 떼고 기도에 힘쓰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한 몸으로 성장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여 자아를 내세우지 않는 모임이었습니다.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또한 떡을 떼며 성찬을 나누는 "밥상 공동체"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치유해주고 서로의 사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칭송을 받는 "열린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귀한 주님께서 우리를 일원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고, 인류와 각 사람을 향한 그 분의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공동체는 아주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사로잡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서로 자라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고 서로 돌봐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이 시대의 메시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삶을 나누는 것을 지향하는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본래의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우리교회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요소가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내가 속한 교회가 위한 일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내가 속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