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도를 통해 주시는 교훈”(엡 1:15-23)

본문은 바울의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3-14절의 말씀의 말씀을 통하여 성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성부 하나님은 예정과 선택에 대한 은혜를 주시고(3-6절), 성자 하나님은 구속(救贖)의 은혜를 주시고(7-12절), 성령 하나님께서는 인을 쳐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13-14절)

그리고 이러한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본문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으며,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도 그 축복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편지 하면서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영적인 축복(祝福)을 이미 받은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큰 축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실 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②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에게 예배를 드린다는 것] 이 모든 일들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를 분명히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의 기도 동기는 무엇입니까?(15-16절)
그 이유는 본문 15-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자기 자신의 열정과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더욱 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과 교회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 되려면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때에 만이 가능합니다. 생명(生命)이 있는 것은 무었이나 성장(成長)하고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신앙은 곧 새 생명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장과 변화와 성숙이 따라와야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상 교회는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는 아직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있고, 거듭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러가지로 부족한 면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교회는 주님의 진리의 터 위에 존재하면서 진리를 선포하는 주님의 몸이기에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가져야 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5-16절)
첫째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 끼리 서로 사랑하는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행 19:23-24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에 우상숭배(偶像崇拜) 곧 [아데미 여신]을 숭배(崇拜)하는 무리들과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합세(合勢)하여 일으킨 소요로 인하여 고난(苦難)을 겪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이후 그곳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이 성장하여 본문에서 보듯이 바울이 그들의 신앙을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그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믿고 진리를 믿고 산다고 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문제가 많을수록, 문제가 어려울수록 성도들은 교회를 향해서, 형제된 성도들을 향해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진실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교회의 문제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도 차거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라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16절)  
본문 16절에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숙한 성도라면 마땅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섬겼던 모든 교회를 염려하면서 언제나 부지런하고도 지칠줄 모르는 기도를 드렸습니다(롬1:9, 골1:3,9 살후1:11) 특히, 그 교회들이 거짓된 교훈으로 유혹을 받아 고난 가운데 있거나, 성도들 사이에 분쟁이 있을 때에 바울은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권면하고 기도하였습니다(고전 1:11, 빌3:18). 더우기 그가 감옥에 갇히는 처지 이면서도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은 쉴새없어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역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성도들은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성도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교역자은 그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역자와 성도들이 서로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 할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바로 서게 됩니다.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비난만 한다면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종들과 성도들을 손가락질  하는 일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다시 손가락을 들고 조롱하고,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서운 일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사도 바울의 기도 내용은 무엇입니까?(17-19절)
①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7절)
본문 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영적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신(神)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 왔습니다. 옛날에는 비, 바람, 천둥, 번개가 무섭고 불이 무섭고 괴암(怪岩)절벽(絶壁)이 무서우므로 그런즉 자연현상들과 자연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 종교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나하나 대자연의 비밀들이  벗겨졌고 그로인해 더 이상 자연이 인간의 경외의 대상이 될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마침내 신은 없다!”라고 선언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신흥 종교를 만들어 내는 등의 변화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을 알게된 종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을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칭찬하시면서도 “이를 네게 알게 한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마16:17).  자연 만물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 계시] 혹은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범죄(犯罪)한 이후에는 그 마음의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하나님을 깨달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롬1:19-2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가득 담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딤후3:15-16).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성경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의 심령에 솟아 부어 주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17절 하)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섬긴다는 이 사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저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즉 영적인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즉 영성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고져 하는 열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이렇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풍성히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얼마나 놀라운 분인가를,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분인가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때 우리의 삶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며 복받쳐 오르는 기쁨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참맛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으며 하나님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만이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8절)
본문 18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과 , 풍성한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실로 놀라운 영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 즉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며 나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일평생을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즉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의 특징은 <부르심의 소망><소명받은 백성>이라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면,우리는 대단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사실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도 못하는 연약하고 게으르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치 질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화를 담았습니다. 그 보화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내가 휼륭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불러 주셨기에 무가치한 나의 삶에서 참다운 가치를 찾았고,허무한 삶에서 보람을 찾았으며,절망에서 희망을,죽음에서 생명과 영생을 얻은 것이었습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히 떠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풍성한 기업의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을 다른말로 하면 <상속>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고 마음의 눈을 밝히 떠서 부르심의 소망을 알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즉 <하나님의 상속>입니다. 바울은 지금 너희가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라는 것을 분명히 알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우리에게 기업을 그것도 풍성한 기업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우리는 더이상 가난하지 않습니다.이 땅에서의 슬픔과 절망과 좌절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즉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져야만 합니다.

③“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9절)
본문 19절에서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기를 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하나님의 능력은 측량할 수 없이 큰 능력입니다. [측량할 수 없다]라는 말은 우리의 계산법으로는 헤아릴 수 조차도 없는 [큰 능력(能力)]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의 힘을 알기에 돈을 그토록 사랑합니다.  북한은 원자폭탄의 가공할 힘을 알기에 핵무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힘을 알기에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18:1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힘은 인간을 파괴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사람을 살리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래서 롬 1:16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떠한 능력입니까?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20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능력은 죽음을 이기신 능력입니다.
본문 20절에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신 능력입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는 능력입니다.(21-23절)
본문 21-22절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한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두셨습니다. 이 능력의 주님이 우리의 대장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무기력하게, 무력하게 사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 즉 우리의 대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우리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23절) 즉 이 말은 교회는 능력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인들은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주 무력(無力)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답답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저희로 알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대단히 불쌍한 사람입니다.그러나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알지못하는 사람은 더욱 불쌍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좌절하고 실망도 합니다. 진정 어찌하여야 좋을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사도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받고,충만한 능력을 받고나서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꿈을 가지고 전진하여 합니다. 원대한 꿈과 비젼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저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능력을 가지고 전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 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자면 끝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막 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빌 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말씀과 같이 성숙한 성도라가 되려면 교회를 사랑해야 하며, 교회를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바울의 기도처럼 ①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  합시다. 즉 분명한 소명 의식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③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