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歲月)을 아끼라”(엡 5:15-18) 

몇 해 전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당신의 인생은 성공했는가?”라는 내용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겨우 3% 만이 “매우 만족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럭저럭 만족한다.”라는 응답이 30%에 달했고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느 한쪽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안된다.”라는 대답은 무려 67%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매우 만족한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서 주목할 만한 공통점(共通點)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이들 모두가 구체적인 목표를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 관리에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간 관리는 경쟁 우위의 원천”이라고 말한 피터 드러커의 주장은 옳은 것입니다. 

24시간은 1440분입니다. 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성취 정도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1,2분이라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배열하면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는 십 수년 전에 “정보사회가 성숙되면 세상은 빠른 자와 느린 자로 나뉘어진다.”고 예고했습니다. 이는 시간을 잘 관리하는 자는 빠른 자가 되고, 시간 관리에 실패한 자는 느린 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명심할 것은 빠른 자가 느린 자를 지배하는 것이 정보사회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귀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교인들을 향하여 주신 권면입니다. 바울은 본문 16절 상반 절을 통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최대한 선용하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영어성경(NIV)에서는 이 부분을 ‘모든 기회를 극대화하라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라고 해석하였다. 
▶ 또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삶을 농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지내고 나서 내가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살았다면 아마도 그 하루는 실패한 하루라 불러도 마땅할 것입니다. 시간을 밀도 있게 살아가는 것, 삶을 밀도 있게 살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Chronos)란 그냥 흘러가는 양으로 규정되는 계량적 시간을 말한다면, 카이로스(Chronos)란 의미와 내용이 있는 질적 시간을 말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2007년 새해를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책무입니다. 우리는 세월을 아끼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허비하지 말고 최대한 선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무런 생의 목표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깊은 허무와 가책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어떤 건전한 생의 목표를 향해 선택과 결단 가운데서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은 돈과 같이 귀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오늘은 현금이고, 어제는 취소된 수표요, 내일은 약속어음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화 / 어떤 사람이 경영하는 서점에 한 손님이 들어와서 정가가 붙은 책 한 권을 들고 "이 책 얼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1달러입니다" 손님이 "싸게 안 되나요?" 말하니 "1달라 15센트입니다" 손님은 서점 주인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아니 좀 싸게 해 주시라는데 값을 더 부르면 어떻게 합니까?"말하니 "그 책값은 1달러 50센트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이것 참 이상하네요. 책값이 점점 더 비싸져 갑니까?"하며 투덜대자 서점주인은 "여보시오, 손님,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합니다, 손님이 시간을 소비하였으니 그 책값에 다 시간의 값을 더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은 돈입니다. 그러나 사실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벤쟈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생명이다(Time is life).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생이란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함께 우리의 생명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물러야 할 시간들이 점점 더 줄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월을 생명처럼 아껴야 합니다. 시테크는 인생의 총체적 설계인 생(生)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과표의 매 장에다 이런 글귀를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맨 위에다 “오늘은 어떤 선행을 할 것인가?” 맨 아래에는 “오늘은 어떤 선행을 하였는가?”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하는 시간 관리가 바로 인생 관리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당하는 그 날을 우리 일생의 최후의 날과 같이 알고 살라” D.L.무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최후의 날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날 그날을 우리의 최후의 날로 알고 살게 하려는데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지나가면 오늘은 영원히 다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렸던 돈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 타이어는 재생을 시킬 수 있어도 시간은 재생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쉬운 이별을 해도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소리 없이 흘러가는 이 세월은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그리고 모세도 시편 90:10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화살과 같습니다. 세월은 광속처럼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월을 ① 베틀의 북(욥9:26)처럼,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처럼(렘18:19-23) ② 빠른 배처럼(욥 9:26) ③ 옴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처럼(욥9:26) ④ 신속하게 날아가는 새처럼(시90:10)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이 "인생을 70년으로 가정(假定)하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잠자는데 20년, 일하는데 20년, 밥 먹는데 6년, 노는데 7년, 치장하는데 5년, 전화하는데 1년, 담배 피우는데 2년, 잠시 쉬는데 2년 반, 사람 기다리는데 3년, 신발 끈 메는데 반년, 기타 3년 

이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자료 분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정도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시간을 어떻게 선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시간을 선용한다는 것은 일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의 목적가치와 관련됩니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 근심, 가책에 묶여 있을 때 그러한 것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부지런함, 근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시간의 선용은 일할 때 일하고, 휴식할 때 휴식하고, 베풀 때 베풀 수 있고, 배워야 할 때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선용해 가는 일은 우리의 내적 자유함에서 이루어집니다. 내적 자유함 없이는 시간을 선용해 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시간의 선용과 관련해서 몇 가지 중요한 안내(Guideline)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15절)
본문 15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세월을 아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낍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의 기회 곧 세월을 낭비한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단 한번 주어진 칠십 년, 팔십 년의 인생을 최상의 값진 인생으로 만드는 방법은 육신에 주어진 시간을 영혼의 때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간(時間)을 “하나님께서 주신 한 순간 ”혹은 “하나님의 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왔다"”(마 26:18) 또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막 1: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고 낭비한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인생을 성실(誠實)하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비로소 생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하나님의 주신 바이니 아껴 쓰고 귀중히 쓰되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데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주신 봉사의 기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證據)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천시(天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하늘의 때" 혹은 "하늘이 준 기회"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에스더가 이스라엘 민족의 절대적인 위기 앞에서 자기를 왕비로 세우신 것은 이때를 위함이라고 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가지고 금식함으로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시간을 어리석게 낭비했다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쳐버렸을 것입니다. 

좋은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3:1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 모든 범사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때입니다. 곡식을 심을 때가 있는가 하면, 곡식을 거둘 때가 있고, 공부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배운 것을 사용할 때가 있는 것처럼 천하만사가 다 중요한 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인 줄 믿고 잘 선용하는 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 지금은 악한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16절)
본문 16절 하반 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여기에서 “악하다 ”(포네리아)고 하는 말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때가 점점 타락해간다. 무가치해간다. 추악해져간다. 흉악하여져간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때가 악하다는 것은 주어진 때를 선용할 수 없도록 많은 유혹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촉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긴박한 그런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 때와 세상이 온통 타락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악한 것과 세월을 아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4:7) 만물의 때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귀중한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시간을 낭비한다면, 할 일 없이 허송세월(虛送歲月)한다면 결국 실패하는 인생으로 끝날 밖에 없고, 엄연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악한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남과 다르면 불안한 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고, 성별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결국 세속에 물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유행에 둔감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따라는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넓은 길은 찾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시대의 풍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풍조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타락한 세상에서 시간을 아끼는 자세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을 한탄하셨던 시대에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것처럼 이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바로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간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딤후 4:2) 가장 가까이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말로 우리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직 때가 되지 아니했다고 하면서 다음으로 미루는 분이 계십니다. 이러한 자세는 결코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주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다면 그 사람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때를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시간을 탓하면서 주님께서 오실 이 악한 시대를 그저 허송세월하면다면 그분은 참으로 불행한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은 분명하게 보여줄 때입니다. 신앙생활은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할 일이 없을 때,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는 일이라면 때가 악하든 바쁘든 상관없이 시간을 만들어 만나고야 맙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최우선시 하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악한 시대에 지혜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일예배시간, 구역예배시간, 기도시간, 성경공부시간을 내어서 드려야 합니다. 한가한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지금이 악한 시대이고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3.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17절)
본문 17절에서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는 세월을 아낍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월을 낭비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의 뜻 ”이란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뜻합니다. 또한 “이해하라 ” 말은 통찰(通察)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월을 아끼는 이유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분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올바로 서기 위함입니다.

‘죠지 트루엣’이란 사람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산다는 것만큼 복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를 분별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에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신지를 분별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좋을 때, 불행한 때, 부요할 때, 가난할 때, 젊을 때, 늙을 때, 약할 때, 강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른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영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한 메시지에 귀를 기우려 듣고, 순종해 갈 때 모든 순간이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어느 것이 선하고, 악하다고 규정 지을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그 때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드리면 선한 때며,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건강할 때, 부요할 때보다 오히려 약할 때, 불행할 때, 가난할 때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있으므로 해서 시간을 더욱 선용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계획을 더 우선시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더 우선시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계획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배가 나침반이 없이 마음대로 항해하면 표류되고 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표류하는 인생이 됩니다. 자동차는 출발과 정지, 우회전, 좌회전, 유턴 신호를 따라 운행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실 때에 우리에게 청신호도 주시고, 적신호도 주시며, 때로는 우회전, 좌회전의 신호도 받게 하고, 가서 안 될 곳은 즉시 유턴을 하게 하십니다.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내가 갖고 싶은 대로 다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싶은대로 아무것이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내가 욕하고 싶은 대로 욕하고, 내가 저주하고 싶은 대로 저주하고, 원망하고 싶은 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싶은 대로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활이 아무리 분주하고 바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멋진 도구로 사용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 자신을 불의 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롬 6:13) 하나님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깨닫고 그 일을 먼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힘쓰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은 다음에 하라고 말하는 마귀에 말에 너무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내일부터 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 일은 다음 기회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귀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에 힘쓸 때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방탕한 삶을 살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본문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세상의 술에 취하고 방탕한 생활(生活)]로 전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시간을 주신 허송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술 취하여 세상의 쾌락과 육체의 욕심을 따라 방탕하며 사는 시간은 정말 인생을 마구 낭비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더라도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반드시 성경을 상고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로 그것을 확인한 후에 일을 착수하는 일은 결코 시간의 낭비가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마다 큰 일이 닥치거나 바쁜 생활을 하게 될수록 더욱 많은 시간을 드려서 성경을 상고하고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먼저 깨닫도록 힘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患亂),시험(試驗) 곤고의 때를 만날지라도 주님의 뜻을 발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를 만날지라도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전 7:14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곤고할 때에는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방탕한 자가 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18절) 
본문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방탕한 자가 되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한 자가 되어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여기서 '방탕'이란 술 취함의 현상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로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 방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눅15:13) 
옛날 이방인들은 그들의 시간을 거의 세상적인 쾌락을 위해 소모했습니다.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이유는 도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삶의 권태와 싫증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쾌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의 얽힌 복잡한 갈등의 문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쾌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탕한 삶의 특징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유익이 될지, 덕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내 정욕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끌려가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은 허송세월을 하는 것이요, 바로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요,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낭비하는 삶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엄청난 힘을 주시면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힘으로 자신의 정욕을 위해 살았습니다. 딤나에 사는 불레셋 여인에게 빠져 있더니 가사의 기생에게 빠져 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완전히 빠져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힘을 다 잃어버리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 잡혔습니다. 그들은 삼손의 두 눈을 빼고 블레셋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큰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삼손은 민족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사가 오히려 그들의 놀림거리,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의 방탕한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나중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함으로서, 집을 무너트려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었지만 그 속에서 자신도 같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은 것입니다. 방탕한 삶이 그의 인생을 망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탕은 우리의 시간을 헛되게 사용하게 만듭니다. 방탕한 사람은 인생을 망칩니다. 어디인가 취해서 방탕으로 허비한다면 결국 그의 인생은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무런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시간을, 인생을, 아니 생명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방탕한 일에서 벗어납시다. 어두움의 일, 술 취함의 일, 무언가에 빠져 정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는 그런 무익한 일에서 끊어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삶을 언제나 희망과 긍정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생의 권태와 허무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줍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찬송을 부를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모든 닫혀진 상황을 희망의 지평으로 안내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하거나 마비시키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나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깨어 있도록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전자제품의 건전지가 다 소모되면 그 제품을 사용할 수가 없듯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의 충만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시간을 아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세월을 아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똑같이 살아갑니다. 여기서 잠자는 시간, 쉬는 시간, 식사시간, 쇼핑하는 시간, 화장실 출입하는 시간, 여러 모임시간들을 빼면 과연 하루 몇 시간을 영적인 일에 몰두하고 사는지 자신들을 살펴볼 때입니다. 
우리는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롬12:11). 또한 무질서한 생활을 경계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잠잘 시간에 자지 않고 생활의 리듬을 깨뜨리면 다음날 활동하는데 많은 지장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악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눈을 팔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묻힐 수밖에 없는 화려하고 유혹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으로 세월을 아낌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드릴 수 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잘 선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언제나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봉사하고 헌신할 시간을 주실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을 거두어 가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제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월을 아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모습을 버리고 2007년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과거의 실패와 아픔을 다 잃어 버리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똑같은 실패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최대한 잘 선용하여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