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길/여호수아서 24:16-1
 
 

- 우리가 행한 모든 길 - 


‘모든 과업을 끝마쳤을 때는 죽음이 즐거운 여행이 된다.’고 E. W. 윌콕스는 말하였습니다. 이제 선민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는 새로운 한 전기를 맞게 되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행군의 두 번째 지도자 여호수아 시대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세는 느보산 산정에 올라가 가나안 경내의 여리고성을 쳐다보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전, 그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의 두 길을 선포하였습니다(신 28: ). 그의 뒤를 이은 광야교회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예외가 없이, 그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축복받는 선한 길과 저주를 받는 악한 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고 있다…」(수 23:14)고 그의 이 세상 마지막 여로를 예고하면서,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좇는 선한 길과 다른 신(우상)을 좇는 악한 길의 저주를 설교하였습니다(수 23: ). 그리고 여호수아 24장에 와서 이스라엘의 대표들을 세겜에 모으고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하며, 그 백성을 향한 미래적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여호수아의 마지막 훈계, 곧 고별설교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거룩한 이스라엘의 전통적 역사를 계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Ⅰ. 그는 먼저 이스라엘이 걸어온 역사의 길을 회고하였습니다(수 24:1-13). 

1. 먼저 족장시대의 역사를 회고하였습니다. 
그것은 선택과 소명이었다고 하였습니다(수 24:2-4).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수 24:2), 그의 주권으로 그를 가나안 땅으로 이끄셨다고 하였습니다(수 24:3). 그리고 거기서 그를 번성케 하시고, 이삭을 그의 씨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수 24:3). 그 후 이삭에게 야곱과 에서를 주사 열국을 이루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수 24:4). 그리고 야곱의 후손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택한 백성을 번성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수 24:4). 
2. 그 다음 출애굽 시대의 역사를 회고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원과 인도였다고 하였습니다(수 24:5-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다고 하였습니다(24:5). 애굽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심판 중에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구원(이끌어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적 인도와 보호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수 24:6-7). 
3. 그리고 가나안 정복시대의 역사를 회고하였습니다. 
그것은 승리와 축복이었다고 하였습니다(수 24:8-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요단을 건너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수 24:8). 발람의 저주를 막으시어 축복케 하시고(수 24:9-10), 여리고성과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게 하시고(수 24:11), 왕벌을 보내사 이스라엘의 대적을 쫓아내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수 24:12).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어 현재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고 있는 승리와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수 24:13). 놀랍게도 이 모든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歷史)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인 일이라고, 여호수아는 말마다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조부시대의 역사에도 「내가…」(수 24:3), 출애굽 시대의 역사에도 「내가…」(수 24:5, 5, 6, 7, 7), 가나안 정복시대인 현재에도 「내가…」(수 24:8, 8, 10, 12, 13)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했고(족장), 하나님이 구원했고(출애굽), 하나님이 축복(가나안)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 선민역사의 본질적인 정체(正體)였다는 사실입니다. 

Ⅱ. 이스라엘이 계승하고자 하는 역사의 길입니다(수 24:14-28). 

이제 저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그 백성을 향한 미래적 역사의 길을 선택할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의 신앙역사의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수 24:14-28). 여호수아 자신과 자신의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저들의 행방을 분명히 선언하였습니다(수 24:15).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만을 향한 신앙동맹의 결단을 고백하였습니다. 저들의 동맹적 고백은 지난날의 여호와 구원역사에 기초하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분명한 사실이 24장 17절 중에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라고 하는 저들의 고백 중에 담겨있습니다. ‘저들이 행한 모든 길’이란 바로 족장이 걸어갔던 과거 역사의 길,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한 40년의 길 그리고 현재 여호수아 영도 아래 걷고 있는 여호와 구원역사의 길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이러한 지난날의 여호와 구원역사에 기초하고, 몇가지 신앙동맹의 고백적 결단을 여호수아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고백이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동맹입니다. 
24장 16절에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한 사실입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저들의 오늘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능하신 구원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수 24:17-18). 
두 번째 고백 역시 우리가 정녕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사실입니다. 
24장 21절에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공동고백은, 다른 신을 섬기면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가 저주를 받는다는 여호수아의 설교의 반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수 24:19-20). 
세 번째 동일한 고백을 또 보게 됩니다. 
24장 24절에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도 여호수아의 거듭되는 여호와 신앙에 대한 설교의 반응이었습니다(수 24:22-23). 이렇게 세 번이나 여호와 신앙의 결단적 고백이 끝이 나는 그 날에, 여호수아의 고별설교가 행하여진 그 역사의 현장인 세겜에서 ① 백성들로 더불어 언약을 세웠습니다(수 24:25). ② 그 모든 여호와 신앙의 동맹결의를 율법책에 기록하였습니다(수 24:26). ③ 큰돌을 취하여 세웠습니다(수 24:26). 그리고 이르기를 “보라 이 돌이 오늘 우리들의 맹약의 소리를 들었도다, 이 돌들이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함으로(수 24:27), 여호와 신앙을 향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불변적 언약신앙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도하를 백성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게 하기 위해서 기념석을 세운 일이 있었습니다(수 4:9, 20). 큰돌을 취하여 세운 후, 백성들은 각기 기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수 24:28).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이름으로 110세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수 24:29). 이스라엘 백성은 저들의 지도자의 시신을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습니다(수 24:30). 성경은,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겼다고 함으로, 그의 영적 영향력이 그 시대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였는가를 생각나게 합니다(수 24: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2001년 12월 30일이라고 하는 역사적 시간의 지점을 만나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2002년이라고 하는 새로운 미지의 역사를 맞게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이 행한 모든 길’을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에서 다시 보게 되고, 듣게 되고, 또 느끼고 있습니다. 족장시대의 길이나 출애굽 시대의 가나안을 향한 광야길이나 가나안 땅에서 받은 쟁취의 모든 길은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지난날의 저들의 조상과 그 후손들이 걸어왔던 모든 길의 걸음이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공동체의 역사요, 역사의 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이스라엘의 길은 하나님 자신께서 미리 정하여 놓으신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길은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닌, 맹목이 아닌, 무의미가 아닌, 허실과 허상이 아닌, 무상이 아닌 목적적인 길이 아닌가! 
이스라엘 선민의 광야 길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길이 아니었던가! 바로 그 길을 광야교회의 길(행 7:38)이라고 하였다면,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길, 곧 구원의 길이 아닌가! 그래서 예수님 자신은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로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지 않았던가(행 4:12)! 예수 자신만이 아버지 하나님께 이르는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요 14:6)! 그 구원의 길은 믿음, 오직 믿음으로만 얻고, 믿음으로만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렘 10:23). 오직 그 걸음, 구원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였습니다(렘 32:19). 불신앙의 길은 보응받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넓은 길이요 멸망에 이르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마 7:13).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맹세시키고, 또 맹세시킨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은 후손들에게 계승되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고, 또 확인하고, 증거를 세운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세 번이나 신앙의 결단을 강조했고, 백성들은 세 번이나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동체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맹세하고, 기록하고, 돌을 세워 증거를 삼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길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계속하여 계승하는 일이 선민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경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길은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요, 신앙의 역사요, 계승해야 될 전통의 역사입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향하여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 46:9)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길, 곧 여호와 구원의 길, 이스라엘이 행한 모든 길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행한 길, 곧 하나님이 작정하신 구원의 길,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의 길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는 거룩한 구원사의 전통계승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미 걸어온 2001년이, 그리고 새로 받은 2002년도 예외 없이 선민을 구원하는 역사의 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이스라엘의 구원역사의 전통을 물어보고 또 배워서, 이것을 유산하고 계승하는 그리스도인의 길, 아니 기독역사의 길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호반이 한 말은 정말 멋이 있습니다. 그는 ‘만일 과거가 현재를 가르칠 수 없고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 역사는 더 계속할 필요가 없고, 세상은 많은 시간만을 허비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위대한 예수 십자가의 과거는 현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에게 배운 구원의 진리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오늘의 아버지가 있고 오늘의 교회가 있다면, 2001년은 분명히 주의 해, 주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