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의 신앙과 축복”(수 14:6-15)  

오늘의 시대는  "누구나 주인공만 하고 싶은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누구나 주인공을 할 수 없습니다. 조연이 없는 주연은 없습니다. 주연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그 뒤에 조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연이든, 조연이든 무대 뒤에서 이들을 돕는 스탭들이 있기에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에게 그를 좋아하는 팬 한사람이 물었습니다. “번스타인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그러자 그는 재치 있는 말로 “제 2 바이올린입니다. 제 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프렌치 호온이나, 플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 연주자는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 2 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대에 서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의 박수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곳에서 섬기기보다는 보이는 곳에서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슈퍼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슈퍼 서번트 즉 슈퍼스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제1 연주자가 되기를 원하지 제2 연주자가 되길 원치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화) 몇 년 전에 방송국에서 그 해의 연기 대상을 받은 한 탤런트가 인터뷰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는 평생 동안 주연을 해 보지 못하고 조연에만 머물렀던 사람이었습니다. 기자가 그녀에게 “탤런트로서 연기 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의 연기 철학은 화합하는 것입니다. 혼자 돋보이려고 하면 극이 엉망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아무도 돋보일 수 없게 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 이러한 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비단 이 시대와 우리 사회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에서도 꼭 필요한 정신일 것입니다. 혼자 돋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맡은 일을 묵묵히 감당함으로 전체가 돋보이고, 전체가 성장하고, 전체가 승리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이라고 하는 연극 무대에서도 주연과 조연이 필요합니다. 맡은 배역은 다 다를지라도 다 소중한 것입니다. 자신 하나쯤이야 라고 생각하고 소홀히 한다면 전체가 제대로 살아날 리가 없습니다.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 역할에 따라 어느 것은 중요하고 어느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체를 총괄하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릅니다. 모든 배역들이 어느 한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며, 목회자가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주연이냐 조연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배역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비전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기울일 때 그러한 영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성경과 인류의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연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맡은 배역을 거부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을 잘못된 것이요,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뛰어난 안목과 신앙과 용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주연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무대 뒤편에서 살아온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이 바로 그런 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무대 전면에서 주역을 감당했다면 갈렙은 무대 뒤편에서 섬긴 조역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갈렙은 그 이름조차 별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신앙적 영웅이었음을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수아를 여호수아 되게 한 인물입니다. 여호수아가 마음 놓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운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데 보이지 않게 기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무대 뒤편에 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가나안 땅을 지파대로 분배해 주는 과정에서도 다른 지파 사람들은 좋은 땅을 분배받기를 원하지만, 갈렙은 아무도 분배받기를 원하지 않는 헤브론 땅을 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땅에 아낙 자손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크고 견고한 성읍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5세의 노장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렙의 위대한 점입니다. 갈렙은 가나안 정복하게 하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아무도 분배받기를 원하지 않는 헤브론 땅을 달라고 말합니다. 탁월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여호수아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한번도 뒤에서 여호수아를 돕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섭섭한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여호수아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85세된 갈렙의 모습은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전도회 회원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많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 속에서 도대체 그는 어떤 생각과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아름다운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갈렙의 믿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갈렙은 성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6-7절,14절)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갈렙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리고 본문 14절 말씀에서도 역시 갈렙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표현됩니다. 갈렙은 원래 에돔 족속이었던 '그니스 사람'으로 정통(正統)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민족감정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갈렙이 믿음이 좋고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믿음 좋고 성실한 사람은 반드시 쓰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화) 작년에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파월도 흑인 이민가정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육사 출신도 아니고 ROTC(학사장교) 출신으로 군 최고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연, 학연, 혈연이 출세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입니다. 그런데 성실한 사람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謙遜)입니다. 본문에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겸손히 헤브론을 요청하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원래 갈렙은 45년 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정탐 동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 앞에 나아가 헤브론을 당당히 요구하지 않고 겸손히 청원합니다. 결국 갈렙은 무릎을 꿇고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고 그의 허락 하에 헤브론을 차지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라이벌 의식을 가질 위치임에도 오히려 여호수아를 높여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갈렙을 기뻐하셨습니다. 갈렙은 원망과 불평, 섭섭함과 인간적인 감정을 다 이기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연장자(年長者)이자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모세를 충성스럽게 받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 밑에서 같이 활동한 동료 여호수아를 이렇게 받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갈렙의 위대한 점입니다. 갈렙은 둘째 자리라도 기쁘게 그 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정말 잘 믿는 사람은 첫째의 능력을 가지고도 둘째 자리에 있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셋째, 넷째 자리보다 둘째 자리에서 시험에 잘 빠지는 이유는 경쟁심(競爭心)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경쟁심보다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사람의 보상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음에 하늘을 품고 있었던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스타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스타보다 썩어지는 밀알을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서 성실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여기의 “성실하게 보고하였다”라는 말은 사실대로 보고했다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정탐한 12명 중에 10명은 "가나안이 강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사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보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시켰습니까?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는 충분히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실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성실함은 단순히 정직하고 충성하는 것 이상으로 그 행동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실한 믿음과 헌신적인 열정을 반드시 기억하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결국 갈렙은 그런 성실한 믿음으로 가나안 땅의 핵심인 헤브론 땅을 얻게 됩니다. 

2. 갈렙은 온전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8절)
본문 8절에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의 이 말은 자기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하나님께서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좆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에 근거하여 고백한 것뿐입니다. 그의 이런 고백은 결코 자만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성실히 순종한 자로서의 자기표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좇는다”라는 말은 “톰”(히)라는말로서 “완전한다.”(시 26:1), “끝까지”(신 31:30), “마지막까지”(민 8:23)라는 말입니다.  또한 '온전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말레'라는 말은 '만족시키다'는 뜻입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만족할 정도 충분히 순종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오직 여호와의 뒤를 충실히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갈렙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빈틈이 없도록 가까이 따랐음을 의미합니다. 참된 신앙은 온전한 순종과 복종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순종과 복종이 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변해도 나만은 결코 하나님을 놓지 않겠다는 갈렙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멀리해도 나만은 늘 하나님을 따르며 그 분과 함께 하겠다는 갈렙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죽는데 까지 순종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데 갈렙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까?
본문 10절을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이 사십 오년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은 45년 동안 시종일관(始終一貫)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실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성실함은 단순히 정직하고 충성하는 것 이상으로 그 행동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실한 믿음과 헌신적인 열정을 반드시 기억하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결국 갈렙은 그런 성실한 믿음으로 가나안 땅의 핵심인 헤브론 땅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는 길은 변함없는 한 가지를 통해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때 기적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설교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말씀에 대한 무지이고, 두 번째는 말씀을 알아도 그 말씀을 주장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적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갈렙의 신앙을 우리의 신앙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갈렙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성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일수록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만 눈을 들어서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자를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되 하나님의 말씀에 목표를 두고 완전한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갈렙의 신앙을 인정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그 말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은 민 14:24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갈렙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신앙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시는 것은 성도들이 마음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열중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고 믿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히 11:6) 즉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는 생활과 믿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을 할 때에 갈렙과 같이 우리에게 비전과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갈렙은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산지'는 헤브론 산지로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정복하기 힘든 땅을 나이 85세에 달라고 하는 용기를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는 환경을 초월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불꽃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개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핑계하는 자가 되지 말고 환경을 극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루를 피하면 범을 만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피하면 쇠 십자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반드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 어려운 환경이 생길까요? “대가를 치르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은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지만 왜 어떤 사람을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할까요? 성공하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기 위해서 과감히 결단하고 대가를 치릅니다.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으면 반드시 더 큰 축복이 준비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갈렙에게는 헤브론 산지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월(歲月)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도 극복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45년 전과 비교해서 몸은 약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더 강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겸손함은 필요하지만 결코 나약한 모습, 자신 없는 모습은 없어야 합니다. 항상 담대하고, 용기 있고,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고 꿋꿋이 나아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약해져도 믿음은 강해져야 하고, 꿈과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을 따라 몸은 늙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늙지 말고 더 새로워져야 합니다. 믿음이 늙지 않고 꿈을 잃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환경을 극복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면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예화) 18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지 휫필드는 복음 전파에 열정을 바쳐서 30년 동안 일주일에 평균 50시간을 설교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해지자 사람들이 조금 쉬라고 했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1770년 9월 29일, 병약한 상태에서 전도집회를 마치고 보스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엑스트라는 작은 마을에 묵는데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날만은 쉬라고 말했지만 휫필드는 몰려온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전했고, 그날 밤 집회는 은혜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식사하라고 휫필드를 깨웠지만 그는 이미 천국에 간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몸은 늙어가도 꿈과 열정만은 결코 잃지 말아야 합니다. 

4. 갈렙은 거룩한 비전을 품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기서 '그 날에'라는 말을 보면 갈렙은 45년 전의 꿈을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의 일생을 건강하게 지탱시켜주었던 것은 바로 거룩하고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갈렙이 85세가 되도록 건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갈렙이 지나왔던 광야의 삶을 포함한 45년의 삶은 참기 힘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물과 양식은 부족했고, 추위와 더위, 전쟁, 뱀, 전갈, 전염병의 공격까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까지 들어갔지만 갈렙은 45년 전의 꿈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더 훌륭한 점은 꿈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바로 그 꿈이 그의 믿음과 건강을 지켜주었고, 마침내 그는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중도에 포기합니까? 꿈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꿈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희망을 지켜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적인 꿈은 점차 희미해지지만 거룩한 꿈은 더 선명해져야 합니다. 
천국의 꿈이 더 선명해지고, 그 꿈을 기초로 거룩한 일에 대한 꿈을 선명하게 가지면 마음은 항상 건강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 그 꿈을 이루지 못해도, 그 꿈을 가지고 사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예화) 서울에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이 50이 넘어 북한 선교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부동산을 하나씩 포기하면서 북한 선교를 위해 후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꼭 그런 식으로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그는 말합니다. "지난 50년 동안은 남을 생각하며 살지 못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헌신하면서 그분은 이제껏 몰랐던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돈을 벌고, 왜 그토록 열심히 자녀를 키우고, 왜 그토록 열심히 삽니까? 인생의 보람과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과 환상과 비전을 가지고 나갈 때 진정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꿈이 거룩한 꿈이 되게 할 때 그것이 복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오히려 "이 산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85세에 노인마저 요단강 변 기름진 땅을 원하지 않고 험난한 헤브론 산지를 원했습니다. 뭐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갈렙은 대접받으며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험난한 산지를 달라고 하면서 자기 인생을 다시 새롭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틀림없이 아낙 자손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처럼 85세의 노인이 희망이 잃지 않았다면 우리도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큰 실패(失敗)는 입시 실패나 사업 실패가 아니라 희망(希望)을 잃어버리는 것이 실패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길은 활짝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화) 독일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너무 공부를 못해 부모는 그 소년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선생님도 그 소년을 가망 없다고 보았고, 친구들은 '바보'라고 같이 놀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쥬리히 공대에 입학시험을 쳤는데 그 시험에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수해서 쥬리히 공대에 들어간 후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시작했습니다. 그가 26세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42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건강한 믿음이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산이 있으면 산을 오르면 됩니다. 오르기 힘들면 산을 깎든지 터널을 뚫으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사실상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의 빛을 비추고 전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선교란 희망을 감염시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거룩한 일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죄는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땀을 흘려도 우리 인생은 황무지처럼 변해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망을 전하는 삶입니다. 세상일에 짓눌려 희망이 줄어들고, 더불어 마음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그들의 장점을 깨우쳐주고, 격려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우리가 돈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가 바로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거룩한 비전이라도 포기하면 그것은 헛된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아무리 거룩한 비전을 세워도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역시 헛된 몽상이 됩니다. 비전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도 기도 후의 행동이 없으면 역시 헛된 몽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대가를 치르면 반드시 그 비전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편안하고 쉽게 예수님 믿으려고 하면 우리의 비전은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갈렙이 비전의 성취를 위해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준비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40세에 비전을 받고 45년이 지난 8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비전을 성취하지 않습니까? 그 45년 동안 갈렙은 비전이 늦게 이루어진다고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갈렙처럼 비전을 이룰 때까지 너끈하게 기다릴 수 그런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써도 참고 삼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비전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비전을 이루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더욱 확신을 가지고 그 비전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든지 성급히 판단하며 비전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원래 신앙적인 선택이란 처음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시작했지만 점차 창대하게 되는 길이 바로 신앙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넓은 길만을 찾는 것은 아무리 해도 신앙적 선택이 아닙니다. 

갈렙처럼 나이 85세에도 "이 어려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면서 어려운 길에서 축복의 씨앗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단 땅과 같은 벌판만을 구하지 마시고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용기 있게 선포하고 그 산지를 향해 도전하여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그 어려운 산지가 어떻게 됩니까? 그곳이 팔레스타인의 중심지역이 됩니다. 그리고 그 헤브론 지역에 예루살렘이 건설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서게 됩니다. 현실의 눈으로는 정복하기 힘든 땅이지만 정복하면 놀라운 은혜의 터전이 됩니다. 어려워도 용기 있게 선택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곳을 축복의 땅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돈이 없고,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보십시오. 그의 도덕정치는 성공하지 못해서 현직에 있을 때 정말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결국 다음 번 선거에서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에게 비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에 기초한 정치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있는 정치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습니까? 그에 대한 평가가 날로 높아지지 않습니까? 

그분의 나이가 지금 81세가 되었습니다.(1924.10.2) 그분은 60세에 히말라야 정복을 시도했고, 64세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봉을 정복했습니다. 또한 분쟁과 어둠에 있는 곳에 가서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항상 말합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할 때 인생은 늙기 시작한다." 그래서 카터는 후회할 시간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것을 꿈꾼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맨 날 후회만 하고 탄식만 하면 그 인생은 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얼마든지 인생을 젊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렙처럼 거룩한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갈렙처럼 거룩한 품고 사는 것입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조금 인내하면서 비전을 반드시 성취하는 그날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5. 그러면 갈렙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갈렙의 축복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의 결과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갈렙은 건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11절에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이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은 85세가 되었어도 오히려 더 강건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나이에 비해 아직도 일할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아직도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기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갈렙의 육신적 건강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인 영적 건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건강이 있기에 노년에도 불구하고 헤브론 산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건강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갈렙은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의 신실한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요청에 어떠한 거부나 조건도 없이 축복하며 흔쾌히 허락하였습니다.
결국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는 그 땅에 살던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수15:14),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습니다. 그리고 여러 성읍과 샘 근원을 확보했습니다(수15:15-19). 

셋째로 갈렙은 평화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분문 15절에 "헤브론의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는 말은 여호수아 11장 23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 의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대항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이 평화를 느끼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갈렙은 헤브론을 점령하여 평화의 꽂을 피웠습니다. 죄악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지배하는 곳은 분쟁과 다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염려와 걱정으로 범벅이 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평함으로 하늘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진정 복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 갈렙의 신앙과 그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성실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 담대한 믿음의 사람, 거룩한 비전을 품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갈렙처럼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되 한결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건강의 축복과 함께 물질적인 축복과 평화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둡고 혼란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갈렙과 같은 신앙을 소유하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