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출신 사사 드보라의 헌신(삿 4:1-10)

본문의 말씀은 사사겸 여선지였던 드보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까지 450년간이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일곱 번 배반하였고, 일곱 번 환난을 당하였으며, 일곱 번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일곱 번 범죄 하였으나 하나님은 일곱 번 용서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사용 받았던 사람이 드보라였습니다. 드보라는 랍비돗의 아내였고 사사와 선지자의 사명을 겸한 이스라엘의 네 번째 사사였던 드보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드보라는 비록 여성이었지만 40년동안 깊은 통찰력과 예민한 판단력과 풍성한 하나님의 영감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재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풍속과 통념 속에는 많은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의 발언권이나 권위가 경시되었는데 드보라가 한 시대의 통치자였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남녀노소(男女老少),빈부귀천(貧富貴賤)을 따지지 않고 합당한 자라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여성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성들은 위대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자고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때로 부정적인 말로 쓰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성들에 관한 긍정적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익스피어와 같이 여성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서"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에 반대되는 말을 했는데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위대한 일들을 했습니다. 영국의 경제가 어려울 때 대처수상이 활약했고, 전쟁 중에 박애정신으로 환자들을 치료함으로 나이팅게일이 활약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금세기 최고의 성자로 불리웠던 인도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봉사한 마더 테레사가 있고,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3중장애를 딛고 일어선 헬렌 켈러,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스웨덴의 레나 마리아 등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인물들도 많은데 모세를 양육했던 그의 어머니 요게벳, 사무엘을 기도로 얻었던 한나,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등이 그들입니다. 우리는 이 수많은 여성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바울과 함께 하였던 브리스길라와 루디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누가복음 8장에는 예수의 12제자와 함께 여자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가 그들로 우리는 그들을 동역자로 인정해야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교회에서 여전도회의 회원 여러분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름다운교회에 여전도회 여러분이 없으면 어찌되겠습니까? 이러한 측면에서 어려운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였던 드보라처럼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여전도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드보라처럼 아주 평범한 주부도 얼마든지 사용받을 수 있습니다. 드보라는 평범한 주부 출신의 사사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선입관념]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진부(陳腐)하다는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비하시키면서 생각하기를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과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주목해야 합니다(고전 1:27)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와 같은 주부도 쓰시지만, 에훗과 삼갈 같은 사람도 사용하십니다.(3장)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홋은 오른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었습니다(3:21) 또한 삼갈은 지극히 평범한 농부였습니다(3:31) 그래서 삼갈에 대한 말씀도 한 구절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사사로 세우셔서 하나님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인간의 약점이나 평범함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방해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그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우리의 평범성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하나님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개인의 영성이나 충성심이 인정될 때 그를 택하시고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한 가정의 주부요 자녀들의 어머니였던 여자의 몸으로 사사가 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발언권이나 위상이 높지 못했던 구약시대에 나라의 통치자가 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옛날 왕이 없었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절대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하였던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여자들의 지위는 실로 노예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한 여인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일어선다는 것은 오늘날도 아니고 사사 시대에는 더욱 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범죄했고, 하나님은 범죄한 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 이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수하에는 시스라라고 하는 소문난 명장(名將)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軍隊)장관이었는데, 그의 군대는 철 병거 구백 승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탱크 구백 대의 병력(兵力)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보라는 이러한 가나안 왕에 대항하여 전쟁을 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드보라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과소평가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개인의 영적인 자질보다 성별을 앞세우지 않으십니다. 개인이 능력만 갖추고 하나님께 신임 받는 사람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들어 쓰시고 그를 통해 영광을 거두십니다. 자랑할 만한 가문이 못되거나 천성적인 자질에 자신감이 없다고 위축되거나 소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게 자만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업신여겨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신앙의 사람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보다 몇 갑절 유능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얼마든지 ꡒ하나님의 사람 아무개ꡓ로 평생 쓰임 받는 소중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크고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에 아주 필요하고 소중하게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는 성문제로 인해 자기 능력이나 자기개발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과 아내와 어머니의 사명과 함께 국정을 맡은 드보라처럼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확인하여 충성스럽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시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던 여인이었습니다.(4절) 
본문 4절에 보면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드보라를 소개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그가 선지자(先知者)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이미 그 사명은 끝이 난 것입니다. 엘리도 말년에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오히려 사무엘이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쓰임을 받으려면 주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선지자(先知者)란 어떤 사람입니까? 선지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그리고 그 음성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왕국을 건설할 때까지 백성을 다스린 지도자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락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6절)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난(苦難)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인에게 들려졌습니니다. 드보라는 가정주부의  자리에서 위기와 절망에 처한  한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있는 삶의 자리가 역경이라고 느껴집니까? 혹은 지금이 위기라고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난관에 부닥칠 때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그러나 사람의  말은 더 큰 낙심과 더 큰 절망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오히려 우리를 혼란(混亂)에 빠지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 

바로 이럴 때 주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가로막혔을 때 그들을 이끌고 가던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한 번 느껴 보십시오. 사람들은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 매장지(埋葬地)가 없어서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는데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적하고 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절규와 아비규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모세의 모습을 상기하십시오."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출14:13,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은 인생의 목표를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변 사람들의 훈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에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드보라가 비록 한 남편의 아내이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사사와 선지자로 부름을 입어 여성의 몸으로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드보라처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드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은 여인이었습니다.(7절)
본문 7절의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는 말씀은 드보라를 통해서 바락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20년간 식민지로 괴롭게 할 때에 하나님은 드보라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키로 하셨습니다. 드보라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에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의 손에 붙이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은 드보라의 말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드보라가 함께 올라가면 나도 전쟁터에 나가서 싸움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야빈의 군사력은 최강이었습니다. 특히 900승의 철병거 부대는 보기에도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특수부대와 맞설 수 있는 적수는 가나안 땅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에는 무기다운 무기가 별로 없었습니다.(삿5:8) 경험과 무기 면에서도 이스라엘은 야빈의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안 바락은 드보라에게 “당신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바락의 이러한 태도는 겁약하고 불신앙적인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락의 겁약과 불신앙이 아니라 겸손과 신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바락은 그 전쟁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존해만 승리할 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락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자는 여선지 드보라에게 함께 동행 해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락이 드보라에게 함께 동행해 주기를 원한다면 드보라를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보라와 함께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락은 드보라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드보라의 기도가 있다면 승리가 확실할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락의 행동에 대해서 성경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용기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는 신앙의 인물은 불안한 시대에도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며, 소망을 줍니다.(6-7절) 사도 바울은 지중해에서 유라굴로의 태풍을 만난 파선 지경의 위험을 만났지만 절망 중에 있었던 276명의 사람들에게 안심과 소망을 주었습니다.(행 27:23-25, 33-37)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안심과 소망을 줍니다. 그러기에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동행(同行)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에 드보라는 1만 명의 군사를 다볼산에서 이끌고 내려가 900승의 병거를 이끌고 기손 강가에 모여 있는 시스라를 공격하여 시스라의 군대를 치니 그들은 맨발로 도망하게 되었고, 드보라의 군대는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확신에 찬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으니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믿음은 적은 믿음이고, 확신에 찬 믿음은 큰 믿음입니다. 우리는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의 소유자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드보라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예화)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의 회장 자리에서 은퇴한 [리 아이아코카]는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삶의 승패는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만들어진 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좋으냐 나쁘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했습니다. 삶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삶을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삶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됩니다.

미국의 [윌리암 제임스]라는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사고(思考)하십시오.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불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불행한 사람처럼 사고하십시요. 불행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 최대의 절망이 닥쳤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이 절망의 자리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사로를 일으키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이 말씀에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믿으면…보리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순서를 바꾸려고 합니다."보여 주십시오.그러면 믿겠습니다.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 제가 믿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그때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아직 나사로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먼저 믿을 수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살아난 나사로를 볼  수가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좋아진 환경을  볼 수가 있느냐? 믿음으로 너희 장래를 볼 수 있느냐?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패배(敗北)를  확신하는  사람은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切望)을 예감하는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여러분의 가정의 미래에 대해서 절망합니까? 아니면 승리를 확신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여러분의 인생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과 안개 속에 헤매는 것 같은 방황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당신에게 주실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이 당신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3.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사람과 협력하였던 여인이었습니다.(6절)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부딪히면, 일단 포기부터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시대가 어둡고 위기와 절망에 처해 있었지만 드보라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 같은 가정주부가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사람들을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드보라는 바락을 발견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적임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바락을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함께 일어나 싸우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고 독려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상황이 급변하여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현장을 되새겨 봅시다(요6:1-15)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셨던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십시오.해는 져서 어두운데 군중들은 배가 고파 아우성입니다.제자들은 무리를 돌려보내자고 말합니다.예수께서는 무리를 다 먹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니다. 빌립은 당시 1년 치 월급인 200 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싸 온 도시락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 인 도시락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이 많은 무리를 어찌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안드레는 포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놓으신 어린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이 가져온 작은 도시락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 도시락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난감하고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역부족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찾아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사람이 있음을 깨닫고 그 사람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드보라가 하나님을 하고자 할 때에 바락만 준비시키지 아니하시고 또 다른 사람을 준비시켜 주셨는데 바로 그 사람이 야엘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17-22절)   

야엔은 가나안 왕과의 전쟁에서 드보라를 도왔습니다. 본문 17-22에서 말씀학 있는 것처럼 헤벨의 아내 야엘은 평소에 야빈의 부하 시스라와 친분이 있었는데 시스라는 드보라에게 쫓겨 도망을 가다가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있는 장막으로 도망하여 숨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야엘은 그를 숨겨 주는 척하면서 물과 젖을 먹이 우고 잠들은 사이에 몸에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야엘 이라는 여인이 한 일입니다. 시스라는 연약한 여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21절) 비록 연약한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시 62: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에 주변의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를 돕게 하셔서 승리하게도 하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롬 8:28) 우리는 엘리야와 삼손처럼 협력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협력하여 일함으로 말미암아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역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드보라는 자신의 장점으로 일한 여인이었습니다.(6-7절) 
드보라는 자신은 연약한 여성이기에 직접 시스라의 군대와 싸우지 않았스니다. 그래서 바락에게 가서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자신은 말씀을 받는 선지자였기에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어려움에 직접 뛰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개 어떤 사람이 어려움에 빠져 있으면 직접 뛰어 들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돈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으면 직접 돈을 빌려 주기도 하고 혹은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으면 불러다가 수학이나 영어도 가르쳐 주고 혹은 집을 여러 채 지어서 집 없는 사람에게 빌려주기도 하는 둥 그들의 어려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사사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옷니엘이라든지 에훗은 직접 칼을 들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들과 싸움으로 그들을 직접적으로 그 어려움에서 건져 내었던 사람들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말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회 현상에 직접 뛰어 들어서 어려운 자들에게 밥을 퍼 주면서 사람들을 선동했던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주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르치는 것이 삶이 일치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일은 함께 직접 그 일에 뛰어 들어서 모범을 보여주고 감당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드보라 종려나무’아래서 가난한 자들에게 밥을 퍼주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오직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일깨워 그들의 발로 직접 일어서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남이 다 해준 것을 얻어먹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말씀을 듣고 스스로 자기 발로 일어서서 직접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에 대하여 교회에서 직접적인 해결을 보기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사업으로 돈이 없어서 절쩔매고 있는데 돈이라고 거두어 준다면 너무나도 사랑이 많다고 하면서 감격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 말씀만 하고 스스로 알아서 해라고 하면 무책임하고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자기 발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남이 나를 대신해서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남의 손으로 행복을 얻어먹으려고 합니까? 그러나 자기 발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방법과 지헤를 사용하여 믿음의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저절로 입에 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본인 각자가 믿음으로 자신의 문제와 싸워서 승리는 쟁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드보라는 직접 싸우는 전사가 아니요 각자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코치하였습니다. 그는 돈도 없었고 싸울 힘도 없었습니다.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였고 아마도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워서 각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존귀함과 풍성함을 되찾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과 칼로 싸운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사용하였던 물맷돌 5개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여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엡 411) 받은 은사대로 봉사해야 합니다. 나의 장점을 가지고 봉사해야 합니다.

(예화) 레인이라는 의사에게 ‘경직성 분열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경직성 분열증은, 갑자기 몸이 굳어지는 증세를 보이는 병입니다. 의사로서 모든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그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현대 의술로는 고칠 수 없으니, 그 병을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살라. 그러나 경직성 분열증을 약점이라 생각지 말고, 장점으로 사용할 곳을 찾아보라”고 충고했습니다. 얼마 후 그에게,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데 필요한, 모델이 되었다는 감사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그 내용인 즉 자기 체질에 딱 맞는 직업이라서 너무 좋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꼼짝도 않고,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큰 고역이지만, 경직성 분열증 환자인 그는 한번 자세를 잡고, 힘을 조금 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보내기가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드보라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았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집중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새로운 힘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잠재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력과 장점을 모르고 사용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잘 활용하여 드보라처럼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드보라는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5:31)
삿 5:31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선지 드보라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으나 이 예언의 은혜는 기도의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여인 드보라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도하는 여성을 통해서 사회를 치유하고 가정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드보라는 기도로서 자기의 민족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에스더도 민족의 위기 앞에서 죽으려면 죽으리라는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여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처럼 여성이 기도할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원수가 아무리 강하여도(2-3 상반 절) 교회가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는 그 원수를 물리치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3절 하반 절, 마 18:19) 잠 21:31에서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승리의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홍해를 가른 모세의 승리도 기도로부터 온 승리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도로 요단강 물을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도로 태양이 머물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기도로 바알 선지450과 아세라 선지400과 싸워 갈멜산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로 3년 6개월 동안 하늘이 다치기도 하고 하늘이 열려 비가 오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기도할 때에 스올의 뱃속에서 구원을 얻고 다시 사명을 감당하는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는 기도로 승리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슬픔과 걱정과 염려 속에서 드보라는 기도함으로 믿음과 용기를 얻게 되었고 승리와 평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내 가정뿐만 아니라! 내 교회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구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민족을 가슴에 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6. 드보라는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5:2,4,5절) 
삿 5:2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나님에게 감사와 챤양을 드리는 드보라의 찬양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드보라의 찬양은 지도자를 각성시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12절) 둘째로 백성들에게 헌신과 분발을 일으켰습니다.(9,24-27절) 셋째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13,20-21절) 드보라는 이 가나안 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을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성도의 자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승리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도 홍해의 이적을 체험한 이후에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했습니다.(출 15:1-18), 한나도 기도의 응답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했습니다.(삼상 2:1-10)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사 35:10).

▶ 그런데 기억할 것은 우리가 찬양할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하나님께 찬양할 때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찬양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려지고 죄수들의 쇠사슬이 벗겨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찬양할 때 능력이 임했습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감옥의 죽음의 고통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찬양을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힘을 다해 찬양할 때 마귀의 사슬은 끊어지고 우리 영혼이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삼하6:16-23에 보면 다윗이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오면서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춤을 추며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때사울의 딸 미갈이 창밖으로 내다보며 다윗을 비웃었습니다. 이를 업신여긴 것입니다. 다윗이 춤을 출 때에 몸이 들어낸 것을 트집 잡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삼하 6:21-23) 미갈은 평생도토록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는 비극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찬양할 때에 복음이 증거됩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으로 감옥 문이 열려지고 죄수가 보이지 않자 간수는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자신은 도망치지 않음을 밝히고 그의 자결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간수장이 복음을 영접하였고, 그 가족과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16: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찬양하는 곳에 마귀는 물러갑니다. 어떤 성도님은 찬양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찬양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찬양할 때 복음이 증거 됩니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복된 일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할지라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이며, 주부지만 그는 선지자의 사명과 사사의 사명을 잘 감당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믿음의 여인이요, 충성을 하는 여인이요, 위기를 맞은 국가를 품고 기도한 여인이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인 여인이니 우리도 드보라의 영성으로 사단 마귀를 대적하는 패기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드보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사가 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과소평가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의식화 되어있는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없애야 할 것이다. 성차별이 살아진 그래서 국무총리가 아니라 여성 대통령도 나올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드보라와 바락이, 그리고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들이 생명을 내걸고 동역(同役)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군사로 부름 받은 목회자와 성도들(특별히 여전도회)이 하나가 되어 동역 할 때에 악한 마귀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놀라운 대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사 드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제일 먼저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찬송으로 영광 돌렸습니다. 사사기 5장 전체는 유명한 드보라의 찬송 시입니다. 우리는 입다와 같은 자기 의(義)에 충만하여 부끄러운 결과를 초래하지 말고 겸손히 주님의 은혜와 영광만을 구하면서 늘 찬양함 속에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드보라가 사사로 있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임하였습니다. 이는 그녀의 신앙을 대변하는 대목입니다. 사람이 성공할 때 넘어지는 것은 교만이나 불 신앙 때문입니다. 그러나 40년을 하루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드보라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성공적인 하루는 드보라의 40년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 승리하는 삶이 저와 여러분 속에서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