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의 교훈(敎訓)”(신 16:9-17 

오늘은 맥추(麥秋)감사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맥추절을 지켜야 합니까? 그것은 본문 9-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1년에 3차에 걸쳐서 꼭 지켜야 하는 3대 절기를 명령하셨는데, 첫째 절기가 유월절(무교절)이고, 둘째 절기가 맥추절(칠칠절, 오순절)이고, 셋째 절기가 수장절(추수감사절)입니다. 
그 중에 맥추절은 여름곡식을 거두어 먹게 된 것을 감사하며 함께 기뻐하는 여름축제로서 유월절이 지난 50일째 지키는 절기로 오순절이라고 하고,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씩, 7주간이 지난 후에 지키는 절기라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모든 절기가 그러한 것처럼 맥추절은 단순하게 여름곡식을 거두어 먹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맥추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 되심을 믿게 하시고, 본래는 빈손이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케 하고, 희생이 있는 제사나 누룩 없는 제물, 최상의 것을 바치게 하심으로 하나님에게 바른 예배를 드리게 하시는데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맥추절에 십계명을 받았으며, 신약시대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오시어 교회가 탄생한 날로서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연례행사의 하나로 정도쯤으로 생각하면서 피상적으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맥추감사절의 교훈을 바로 알고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시고,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여 주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깊은 감동과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지나간 일을 감사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자세입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간에 알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태어나, 단 하루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것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에 많은 이들의 도움과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며, 그 관계는 무엇보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더욱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肉身)만이 아니라 믿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지혜로 성경을 터득하고 하나님을 알고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구원함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임은 물론 주변에 누군가 나를 위해 오래 동안 기도해준 사람들과 교회로 인도하여 성경의 진리를 깨우쳐주어 오늘에 이르게 한 사람들의 사랑의 보살핌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며 하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더욱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아름다운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사랑과 감사가 넘쳐야 할 인간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갈수록 사랑과 감사가 식어져가면서 정반대로 제거되어야 할 갈등과 미움과 증오가 전염병처럼 만연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자(歷史學者) ‘닐 퍼거슨’(Niall Ferguson)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유럽을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산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삶의 철학, 방향, 태도에 관한 문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신앙 윤리적인 면에서 근면한 기독교 윤리가 미국의 성장과 유럽의 퇴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피거슨 교수는 “미국과 유럽간의 이 같은 차이점은 어떻게 생겼을까? 북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 감소(減少)는 교회에 가는 횟수의 격감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10%미만의 인구만이 최소 한 달에 한번 교회에서 예배(禮拜)를 드린다. 최근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민 약 50%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사람의 경우 82%가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유럽은 계속해서 미국에게 뒤처질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는 나라 사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러한 열매를 거두게 만들었던 그 근본요인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개인과 민족을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절기(節期)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재조정하기를 원하시고 신앙의 순수한 면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너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점점 감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비극은 감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요즈음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독감의 종류도 많고, 한번 걸리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 불만의 바이러스입니다. 바로 이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에 걸리면 누구나 예외 없이 다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각박해갑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영적 상태를 진단해보면서 요즈음 유행하는 불만 바이러스를 치유하기 위해서 맥추감사절의 교훈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불만 바이러스에서 치유함을 받아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맥추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맥추감사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절기입니다.(10절,12절,17절) : 본문 10절과 17절에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본문 12절에서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가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서에는 “기억하라”는 단어가 16번이나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신명기서는 출애굽을 경험(經驗)하지 못한 출애굽 이후의 세대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교육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인데, 그 중심적인 강조점을 보면 “여호와 네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신 8:11-20).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일의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조금 잘되면 교만해지고, 조금 어려우면 낙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세월이 오래 지나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지난 과거에 대해서 잊어버리게 되고, 감사가 희석이 되고 변질이 되어서 감사는커녕 불평, 불만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께서는 1년에 3차에 걸쳐서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① 유월절(무교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절기이요  ② 맥추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첫 수확을 거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리는 절기요 ③ 수장절은 한해 농사를 다 추수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3대 절기는 공통점은 받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감사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각 절기마다 의미가 다르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共通點)은 세 가지가 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라는 공통된 주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가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존재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많은 형제들이 있는 집안에 막내둥이처럼 강대한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그의 후손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내셨기 때문에 세상 역사 속에 햇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인큐베이터 속에서 숨을 몰아쉬는 미숙아처럼 특별한 보호 속에서 온갖 시련을 견디고 태어난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한 귀퉁이에 불과한 고센 땅에서 강대한 이집트 사람들에게 무려 430년 동안이나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난을 다 당했던 약소(弱小)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자력(自力)으로는 도저히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없는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지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심으로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여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불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시고, 불 뱀에 물려서 죽어갈 때에 놋뱀(구리뱀)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살게 하시고, 마라의 고통에서 엘림으로 축복으로 인도하여 주셨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도록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신 8:1-20)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셔서 그 땅에서 첫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곧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감사하는 것보다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기뻐하다고 금방 불평하고 원망하고, 원망하다가도 좋은 일이 금방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변덕(變德)이 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민족 특성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지키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갈 것을 명령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00편의 기자는 4절에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화) 영국의 제레미 테일러(Jereme Tayler) 교수는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만약 세무서의 직원들이 교수님의 모든 재산을 차압해도 감사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습니까?"
제레미 테일러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저의 재산을 다 빼앗았다고요? 그러나 빼앗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늘의 해와 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도 여전히 나의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내 친구들과 내 마음에 있는 신앙의 고백도, 말하는 입도, 글을 쓰는 손도 차압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약속과 천국에 대한 소망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잃었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물질(物質)을 잃어버리면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낙심(落心)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란 우리 인생에 있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방황함으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에 주목함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소원을 묻자, 솔로몬은 겸손하게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솔로몬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까지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나이가 들면서 받은 은혜와 감사를 점점 잃어버리고 이방 여인들에게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솔로몬처럼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면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삶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왜냐하면 과거를 기억하면 현재를 올바르고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감격이 희미해지면 그의 삶은 반드시 역동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결국 영적 패인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던 다윗은 비록 한때 순간적인 정욕과 마귀의 유혹으로 인하여 엄청난 죄를 지울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 철저히 기도하면서 간구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왕권(王權)도 아니었습니다. 건강(健康)도 아니었습니다. 명예(名譽)도 아니었습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의 성신(聖神)을 거두어 가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즐거움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51편 11-12절에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철저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면 오늘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가정, 섬길 수 있는 직장, 믿음으로 교제할 수 있는 공동체인 교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 1031의 말씀처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면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분주함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이나 죄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3:12-13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罪)의 유혹(誘惑)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모든 죄의 출발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은혜의 출발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나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부족한 나에게 일마다 때마다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인생의 비참(悲慘)함은 잊어버림으로써 발생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잊어버리면 불효자가 됩니다. 조국의 사랑과 보호를 잊어버리면 매국노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면 불신앙자가 되어서 자신도 남도 망하게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후대하셨는가에 대해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첫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는 절기입니다.(출 23:16 상, 출 23:19) 
본문의 말씀에는 첫 열매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맥추감사절에 대해서 다른 성경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출 23:16 상반 절과 출 23:19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첫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라고 명령의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땅에 들어서 정착한 후 파종하여 첫 번째 추수를 하자마자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그치고 첫 열매의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수확에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사실 첫 열매이기 때문에 그 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물량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열매”란 “으뜸가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순서상의 첫 번째만이 아니라 첫 수확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으뜸 되게 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 열매는 수확한 것 중에 제일 좋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큰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헌신의 자세가 곧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좋은 첫 열매를 맥추 감사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것을 하나님이 잡수셨습니까? 민 18:12-14에서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정성만을 받으셨을 뿐이지 결국 그 첫 열매는 그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맥추절에 크고 좋은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 감사제를 해마다 계속하게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제일 좋은 첫 번째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모든 소산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게 함으로 우상 앞에 제사하는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수고하게 하시고 땀의 열매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아십니다. 땀을 적게 흘리고 많은 유익을 받겠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자신이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수고했다고 열매가 항상 거두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복을 주실 때 우리는 열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 우리의 가치 중에 하나입니다. 그 땀과 수고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오늘 주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누릴 분량이 있습니다. 오늘 성실하지 못한 자가 내일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여 믿음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미래를 더 영광되고 아름답게 하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절기입니다.(출 23:16 하) : 출 23:16절에서 "수장절(收藏節)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미래가 더 영광되고 아름답도록 절기를 지키는 날입니다. 
유월절이나 맥추절이나 수장절은 구원의 역사 가운데서 연속성(連屬性)을 가집니다. 유월절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우리 주(主)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실 것을 예표(豫表)합니다. 수장절은 우리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천국의 알곡으로 모아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실 것을 예표 합니다. 주님은 과거에 주신 은혜를 보아서 미래에 받을 은혜도 기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대 절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맥추절 감사절은 유월절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으로 살리셨을 뿐 아니라 육적으로도 자유를 주신 것이 유월절입니다. 중생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유월절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맥추감사절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정말로 유월절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맥추감사절의 은혜도 계속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맥추감사절은 신약의 오순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유월절 없이 오순절이 없고, 오순절이 없이 유월절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유월절을 통과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오순절의 당사자입니다. 교회의 오순절은 사도행전 2장인데, 여러분 개인의 오순절은 언제입니까? 

2.어떻게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합니까?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합니까?

첫째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대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10절, 16-17절) : 본문 10절과 16-17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대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맥추감사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것을 은혜로 다시 주님 앞에 돌려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에게 풍성히 갚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정성담긴 봉헌을 기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마음만 드리면 되지 꼭 물질을 드려야만 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우리 인간은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이 보이는 행동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그 사람과 대화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사람과 물질을 거래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사랑이 없는 사람이 남을 구제하고 도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즉흥적(卽興的)으로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마음으로 드려야 하고,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9:5-7에서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세대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서로 나누며 즐거워하는 날입니다.(11,14절) : 본문 11절과 14절에서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세대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서로 나누며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복 주신 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내어드릴 뿐 아니라 주님 앞에 즐거워하는 축제의 공동체로 사는 것이 주님의 기대와 소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맥추감사절은 하나님께 대하여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는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구별된 레위인이 있습니다. 신분적으로는 주인이 있고, 노비가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있고 자녀 세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열린 교회, 열린 성도가 되어서 서로 기쁨도 함께 나누고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개인적으로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공동체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맥추감사절의 의미를 오늘에 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맥추감사절을 통하여 마음껏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셋째는, 이미 주신 복에 대한 감사 뿐 아니라 앞으로 복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해야 합니다.(15절) : 본문 15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복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복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그것은 과거의 은혜입니다. 과거의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매일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에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빛을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햇빛을 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햇빛도 소용없는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빛이 밤낮으로 비췰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만의 고유한 축복입니다. 감사(感謝)는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위대한 영광의 수단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사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명령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잃어버린 감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멀어진 감사를 다시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생활 속에서 원망과 불평을 내버리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험난한 인생길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복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를 계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하면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수준은 아주 미약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발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건전하게 성장하고, 가문을 세우고,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결단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기억합시다. 우리의 땀과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거둔 삶의 열매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립시다. 과거에 주신 은혜를 보아서 미래에 받을 더 아름답고 영광된 은혜를 기대하는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각자가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대표자로서의 사명을 재확인합시다. 우리 각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가정과 교회를 믿음으로 세우고 민족을 하나님백성답게 세우는 은혜와 축복의 당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면서 맥추절을 지키면 하나님 말씀과 은혜로 마음의 창고를, 재물로 땅위의 창고를, 하나님의 상급으로 하늘의 창고를 가득히 채워주십니다. 또 새 포도즙이 넘치게 됩니다. 이제 바라기는 맥추절을 바르게 지켜 하나님이 주신 박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