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이 잘 되는 복을 받는 가정”(시 112:1-6) 


후손이 잘 되는 복을 받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으로 여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는 땅의 복이고 둘째는 후손의 복이고 셋째는 장수의 복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의 후손이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한 비결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어제까 지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 받을 복을 기대하며 또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 한 축복은 오늘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보다 장차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현세보다 내세 가 잘 되는 것, 더 중요한것입니다. 비록 현재가 어렵고 고달프다 하더라도 우리는 미래에 잘 될 것을 기대하면서 삽니다. 더군다 나 나보다도 내 후손이, 내 후대가, 내 자손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더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토마스 칼라일]이 "자녀들에게 비판하는 것보다도 모범을 보이는 것이 더 필요함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 는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에게 복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려면 우리가 영육(靈肉) 간에 범사에 모범적인 신앙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야 합 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사랑하면 우리 자손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손들이 복을 받는 것은 결코 우연 이 아니라 부모의 경건한 모습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부모님의 경건한 신앙을 모습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기 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후대가 잘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 은 약&nbsp1,5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나라로 보면, 인구로 보면 이건 아주 작은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께서 “그 후대를 복 주셔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나 경제적으로나 금융이나 모든 분야에 뛰어나게, 과학으로나,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자손들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노벨상 을 받은 사람이 상당수가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오늘날처럼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nbsp1621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 로 건너온 청교도 신앙을 본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정말&nbsp377년 전에 미국은 참으로 어려운 나라였습니 다.&nbsp377년 전에 미국은 아주 부족했습니다. 인디언만 우글대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 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았던 청교 도 후예답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힘썼던 미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으뜸이 된 나 라. 정치, 경제, 군사, 물질, 사업, 모 든 분야에 으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개인이 되었던지 나라가 되었던지 모두가 모든 후손이 복을 받습니 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더욱 우리가 잘 되고, 오늘보다 미래 가 잘 되고, 나보다 후대가 잘 되고, 현세보다 내세가 잘 되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 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이 후손이 잘 되는 복을 받습니까? 

1.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가정이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1절 상) 
본문&nbsp1절과&nbsp2절 상반절에서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 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께 복을 받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경외하다”라는 말은 “두려워하다.”혹은 “존경하다”라는 뜻 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1절에서 "할렐루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 다. 하나님을 위대한 창조주(創造主)로 믿으며, 우리가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크고 높으신 주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사람 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nbsp112 편&nbsp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 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할렐루야"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②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후대가 잘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 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귀 를 기울이고 경청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 말씀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롬&nbsp1017) 하나 님이 지금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가? 성경을 통하여 뭐라고 말씀하실까? 설교를 통하여 뭐라고 말씀하실까? 하나님이 무 슨 말씀을 나에게 하실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경청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잘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뜻과 구원 과 은혜와 능력이 그 말씀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 는 새로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힘을 얻 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nbsp5:18 이하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어요.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예수님 을 배에 타시게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절망했던 베드로, 낙심했던 베드 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던 베드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 못 잡았어요. 이 제는 낙심할 수 밖에, 절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 없던 베드로에게 믿음이 생겼어요. 용기가 생겼어요. 소망이 생겼어요. 자신감 이 생겼어요. 사랑의 큰 힘을 얻게 되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예수님, 어제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 못 잡았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 니 그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라" 하고 가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자기 배 도 가득 채우고 동무의 배도 가득 채웠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마자 믿음이 생 겼어요. 소망이 생겼어요. 사랑의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묵상할 때 우리 는 믿음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의 힘을 갖고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셨습니 다. 요&nbsp14:15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잘 섬기 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온전히 주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 고 있습니까? 혹 말로는 계명을 지킨다고 하면서 주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근심하며 돌아간 한 부자 청년의 모습이 아닙니까? (마&nbsp19:16-22)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에 순종함으로 우리와 우리의 후대가 복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의 명령과 계명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속에 모두 담겨 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구약의 "십계명", 또 예수님의 "산상수훈",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명령과 권고에 귀를 기 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뭐라고 명령하실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내가 듣기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실천하는 그런 삶이, 우리가 꼭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삶이요 나도 잘되고 내 후대가 잘되는 그런 삶 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복도 내리고 저주도 내리시는 분이 바 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다 주관하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누가 주관하시느 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주님의 뜻을 잘 따르게 됩니다. 또부 모 말에 항상 순종하며 효도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 아들 이삭은 자기 아버지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 아들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효하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만 복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이삭을 복 주셨습니다. 이삭은 "그 해 농사를 지었더 니 백 배가 되었다"라고 그랬습니다.(창&nbsp26:12,13) 우물을 파면 파는데 마다 물이 솟아 나왔다고 그랬습니 다. 하나님께서 이삭에 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이삭은 형통하게 되었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 에 이삭의 신앙이 이어받게 되었고,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에 그 아들 이삭이 축복 을 받아서 창대 하게 되고, 마침내 거부가 되 었다고 그랬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아들 이삭이 복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가 다 복을 받았습니 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명령과 게명에 순종하는 자는 성도는 환난 가운 데서도 담대하게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시 편&nbsp347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용기와 담대함을 주는 생명력을 공급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 종하는 자는 아무리 어려운 환난을 당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담대함을 갖고 그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말씀을 의지함으로 영육간에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2절 하-&nbsp4절) 
본문&nbsp2절 하반 절에서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 이 있으리로다.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 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정직한 사람의 후손은 복을 받는데,그 후손이 ① 땅에서 강성합니다. ② 부요 와 재물이 넘칩니다. ③ 하나님의 의가 영원토록 그 집에 있습니다. ④ 어두움 가운데서도 빛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강성]이란 말은 [가바르]라는 말로서 [강력하다. 이기다]라는 뜻을 지진 전쟁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한 이 단어는 위대한 전사의 힘 또는 생동력 있는 생명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단어는 특정 사회계급의 사람 들 즉 왕을 위해 무장할 특권을 가졌던 귀족(貴族)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출&nbsp21,삼 상&nbsp9:1)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이 단어는 [전쟁에서 이기다]라는 뜻보다는 "재물과 사회적 지위가 든든하다"라는 의 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측면에서 시인은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 로 볼 때에 의인의 자손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인과 그의 자손들은 현세의 복을 받을 것이며 만일 그렇 지 못할 경우라고 할지라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구원의 축복(祝福)에 동참하게 될 것을 믿고 결코 의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nbsp28:1-6) 뿐만 아니라 시편&nbsp37:25에서 “의인의 가정은 걸식하지 아니한다”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정직한 심령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에게 후대가 잘되는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은 출&nbsp20:6에서 하나님을 정직하게 경외하는 심령에게 천대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 은 강성케 하십니다.(시&nbsp105:24) 그러기에 정직한 사람은 그 후대가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후대까지 복 받 는 두 번째 비결이 뭡니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는 정직한 자나 진실한 자가 언제나 수 난 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시고 복 주시는 분이 누구시냐?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그들만 이 누리는 하늘의 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정직하게 경외하는 심령에게 부요와 재물이 넘치도록 하십니다. 
그러기에 정직한 사람은 결국은 부요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여기에 서 "부요와 재물"은 물질적 재산만이 아닙니다. 물질적 풍부만이 아닌 것입니다. 영적인 부요도 말합니다. 성령 충만함 받아 성령 의 열매를 맺는 그런 삶도 말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삶입니다. 그리고 범사가 잘됩니다. 강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과 그 후손들에게 많은 재물로서 축복하십니 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 할 때에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창&nbsp26:23) 부요함은 단순히 재물이 많음이 아니라 아무리 재물이 많은 재물을 소 유하여도 계속적인 탐심으로 재물을 긁어 모른다면 그는 부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서 자족함을 배 워서 부요함을 누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정직하게 경외하는 심령에게 하나님의 의가 영원토록 그 집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직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영광을 얻게 되고 존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nbsp64:10에서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정직하게 경외하는 심령에게 흑암 중에서 빛을 발하는 빛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주석가 [멘튜 헨리]는 "여기에서 흑암이란 어려움, 역경, 환난, 질고 등을 비유한다면 빛이란 하나님의 은총 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흑암 중에서 일어난다는 말은 고난 중에 위로 받게 된다는 말이라"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직한 성도는 흑암과 같은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빛과 같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승리자 가 될 수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흑암(黑暗) 중에도 빛을 발합니다. 참으로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도 마침내 밝은 빛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정직하게 살면 때가 되매 흑 암 중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환경에 유혹이 많고 핍박이 많고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 악이 지배하 는 세상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정직하게 살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의 후손이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러 한 관점에서 본문&nbsp4절을 통하여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라 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의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전혀 빛이 없는 캄캄한 자리에서는 아 무 것도 보지 못합니다. 더듬거리고 말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덫에 치이고,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함 정 에 빠지고, 늪에 묻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빛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 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정직한 사 람은 후손이 잘 됩니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라는 후손이 잘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다 강성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다 복을 받게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 렇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 때, 우리의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 세상 은 거짓되고 헛되더라도, 세상은 유혹이 많고 핍박이 많다고 하더라도, 정직하게 살다가 때로는 손해를 볼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 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후대, 나의 자손이, 여러분의 자손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부모로부터 자손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부모의 경외심과 정직함과 신앙심이 자녀들에게 전수된 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 음&nbsp6장&nbsp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 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고, 정직하게 살고, 우리가 기도하고 산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여 러분의 자손이 다 축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고,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는 것처 럼 여러분의 자녀들의 인생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3. 은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5-6절) 
본문&nbsp5절에서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 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은혜와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가정은 후손이 복을 받는 데, ① 범사에 형통합니다. ② 공의를 행하게 됩니다. ③ 요동치 않습니다. ④ 영원히 기념됩니다. 여기에서 "은혜"란 [어질 고 자비하고 의로자의 행실]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어려움을 돌보며 풍성하게 베풀고 꾸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 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nbsp28:12-13 상반 절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 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 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 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恩惠)를 베푸는자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으로 타인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됩니다. 그래 서 잠&nbsp11:24-26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 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 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는 복을 더 받게 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후대가 복을 받는 비결입 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씨앗은 본인은 물론이고 이를 통하여 그의 후대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은 혜를 충만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사해바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계속 물을 받고 난 후에 흘 려 내려보내는 갈릴리 호수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합니다. 유리알처럼 깨끗하다고 합니다. 많은 깨끗한 고기들이 많이 산다고 합니 다. 그러나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지만 해면보다&nbsp400m나 내려가 있는 사해는 물을 받았지 내 줄 수가 없습니 다. 그 물은 죽은 바다입니다. 물고기가 하나 살수가 없다고 합니다. 수목 한 그루도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은 그 은혜를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 다. 안식년 제도(레&nbsp251-7), 희년 제도(레&nbsp28:8-55), 추수시의 규칙 (신&nbsp24:19-22), 십일조 제도(신&nbsp26장) 등을 보면 궁핍한 자들을 멸시하지 말고 은혜를 베 풀 것을 명령하시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꾸어주는 것"은 고리대금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탐욕이 없는 순수 한 자비로 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신&nbsp2410-13) 
이와 같은 모습은 여호와 앞에서 바른 모습으로 공의 가운데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 터 큰 은혜를 받아서 혼자만 풍족하게 누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진 것을 주위에 없는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어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헤를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 곧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 이 곧 우리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입니다. (마&nbsp10:42, 막&nbsp9:41)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의 은 혜 받고, 치료의 은혜 받고, 축복의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 받았다면 우리가 주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 의 확신이 있다면 내가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물질을 많이 받았다면 내가 나보다 더 어렵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후대까지 복 받는 사람은 "은혜를 베풀며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수고와 은혜를 갚아주십니 다. 우리는 이런 믿음 속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내 주위에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멸시받는 사람, 천대받는 사람 찾아가 주어야 됩니 다. 또 병들은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입혀주는 그 런 삶, 은혜를 베푸는 삶. 부모가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 손, 그 후대를 잘되도록 복을 주신다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본문&nbsp5절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해당하는 말씀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 심이 풍부하십니다. 또 예수님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nbsp20:35) 눅&nbsp638에서 "주라. 그리하면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 여 너희에게 도로 안겨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기를 좋아하시는 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기를 좋아하시는 분.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을 다 만드셔서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간직하지 못하고 범죄했습니 다. 이로 인하여 인류가 다 멸망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밖 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또 보내셨습니다. 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그렇게 가난하 게 되셨고, 그렇게 매 맞으시고, 그렇게 가시관을 쓰시고, 그렇게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셔서 물과 피 를 다 쏟으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 독생자 예수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뿐 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굴 닮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닮아야 돼요.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 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시 편&nbsp112편&nbsp9절에서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 이 들리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개인과 교회는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해 베푸는 친절과 봉사 는 [산울림의 법칙]과 같이 나에게로 돌아오고, 그것도 여러 갑절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nbsp111-6) 내 가&nbsp10을 주었으면&nbsp30배,&nbsp60배,&nbsp100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우리 후대가 잘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은혜를 베푸 는 사람은 자손이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편&nbsp37편&nbsp25절,&nbsp26절 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 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잘 되게 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 다.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다 누리지 못한 복까지도 자손 만대까지 누리고, 누리고, 누리고, 또 드리고, 드리 고, 드리고 사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사랑 받았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현세 뿐만 아니라 장차 미래를, 다가오는 세대, 세대,&nbsp21세기를 하나님은 분명 히 새롭게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 짜 더 귀한 복은 뭐냐? 오늘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잘되는 겁니다. 현세보다 더 중요한 건 뭐냐? 내세가 더 중요한것입니 다. 내가 잘 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의 자손, 나의 후대가 더 복을 받는 것,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정직한 삶,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기를바랍니다. 그리하면 본인은 물론이 고 후손에게까지도 복을 끼치는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살려면 날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 충만할 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고,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범사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기 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