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이란?  

이처럼 아직도 헬라적 영지주의 사고가 우리의 세계관을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긴 가장 심각한 결과는 객관적인 진리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코람데오-하나님의 얼굴앞에서 

코람데오 (Coram&nbspDeo:Before&nbspthe&nbspface&nbspof&nbspGod) 는 우리의 조상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이 말은 라틴어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을 가지 고 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듯이 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지금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의 얼굴 을 의식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코람데오의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여자 분은 '예배는 하루에 세 번씩 이 장소에서 드려집니다." 하고 쓰여진 액자를 부엌에 걸어두었다. 그녀 는 단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부엌에서 식사를 차리고, 요리를 할 때도 하나님께 예배로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떤 목수는 자신이 만드는 의자와 탁자를 통해서 코람데오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재료를 선택하고, 만들고, 합당한 가격 에 팔기까지 그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 여러분이 만약 의자와 탁자를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제품보다 이 목수가 만 든 것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자와 탁자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일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 고, 매일매일 가정과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하나님인 동시에 이성과 사고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이 세상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우리 삶 전체의 주인으로 모시는 성경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한 세계관이다. 

성경적 세계관과 세속적인 세계관 

한편, 약250년 전 유럽에 계몽주의가 성행했을 때, 많은 신학자들은 지성을 강조하는 자연신론을 소개했다. 이것은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더 이상 세상일에 관여하거나 계시를 보이지 않으며, 세상은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는 이성적 인 종교관을 말한다. 이런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오직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질 수 있는 물질만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 는 것이다. 하나님은 없고, 천사와 마귀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윈을 이것을 기초해서 가설을 설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이 이론이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사실이라고 가 르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인양 우기고 있을 뿐 사실은 아니다. 이런 다윈의 진화론 때문에 세속적인 세계관이 유럽,미국,남미 그리 고 한국에까지 확산되었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믿고, 학술이나 예술,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적용하고 있다. 또한 이 이론은 신학교 에까지 들어와서, 많은 신학생들이 성경적인 세계관을 잃게 만들었다. 
당신은 타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타조는 굉장히 크고 , 강하며 빨리 달리는 새지만 사자가 나타나면 사자를 보자마 자 도망친다. 그러다가 구멍을 발견하면 자신의 머리를 그 구멍에 처박고는 안심한다. 타조 눈에는 더 이상 사자가 안보이기 때문 에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사자에게 잡혀 먹히고 만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이 타조와 같이 안전한 교회의 성 벽 안에 파묻고 "그냥 믿으세요!(Just&nbspbelieve)"라고 외치기만 했다. 

교회에 들어온 세속주의 

세속주의가 교회로 들어오자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냈다. 한편의 지도자들은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 도 세상의 것을 받아들여 뒤처지지 말고 세련된 신앙을 만들어 가자"라고 했다. 이들은 이런 세속주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 독교 가치체계를 정립해 나갔고, 이것을 통해서 많은 교단들이 자유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반면 세상적인 것을 거부한 기독교인들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너무나 완강하게 세상을 거부하고 성경적인 근본만 지킬 것 을 주장하였다. 지금의 복음주의, 오순절, 은사주의 사람들이 바로 이 근본주의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잘 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근본이 정확히 성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는 헬라 적 영지주의로 치우쳐버렸다. 이렇다보니, 신앙과 이성이 분리되고, 심지어 이성적이지 못한 신앙이 존경을 받게 되었다. 
믿음, 신앙, 윤리, 헌신, 경배, 복음주의는 더 높은 영적 단계로 인식된 반면, 이성, 과학, 사업, 경제, 법, 정 치, 예술, 사회사업과 같은 현실세계의 모든 활동은 저급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간주되 버렸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한 대 부분의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전임(Full&nbspTime)사역자가 되겠습니다."라며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 면 일반 직업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시간제(Part&nbspTime)사역자들이란 말인가? 이렇듯 예수님의 주권 이 종교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는 허용되었지만, 그 밖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는 상실되었다. 

진리상실의 시대 

이처럼 아직도 헬라적 영지주의 사고가 우리의 세계관을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긴 가장 심각한 결과는 객관적인 진리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진리라고 받아들인 것이 다.&nbsp1994년 기독교 통계학자이자 여론조사가인 조지 바나(George&nbspBarna)의 조사에서도 이것 이 잘 나타난다.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라는 질문에 미국 성인의&nbsp28%가 믿지 않는다고 응답하였 고, 단,&nbsp16%만이 이 질문에 믿는다고 응답하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기독교인 중에도 오 직&nbsp25%만이 절대적인 진리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대로우 밀러 / 기아대책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