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사회에서의 설교

1. 포스트 모던 사회란?
13세기에서&nbsp16세기까지 이탈리아의 신흥 시민계층에 의해 주도된 르네상스와 독일의 루터를 중심으로 전개된 종 교개혁은 세계와 인간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근대 자본주의가 중세적인 여건 하에서 태동되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대 중 민주주의, 학문적으로는 인문주의(humanism), 문학과 예술에는 사실주의(realism)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계속된&nbsp17세기의 계몽주의(enlightenment,&nbspAufklaerung)는 영국 과 프랑스, 독일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의 틀을 발전 시켰다. 신학이나 문학 그리 고 학문의 전반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논리이었다. 신학 역시 철학이 기본이 되어 소위 말하는 스콜라철학적 신학이 대 두된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논쟁(argument)이었다. 논쟁을 통해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이론을 제시하면 된다는 사고에 젖 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근대주의(modernism)의 사고의 틀이다.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발전된 논리적인 학문은 급기야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켰으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인간의 사고의 산물들 을 인쇄 매체와 발달된 통신, 교통을 통해 급속도로 전 세계에 파급시켰다. 인간은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되면서 이상사회 (Utopia) 건설에 대한 꿈에 젖게 되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전망 은&nbsp19세기 후반에 많이 보여지며 사회학적인 이론은&nbsp1920년대에 미국과 독일에서 철학적 통찰을 갖 게 하였다.

2. 해체주의와 가상공간
인류는 과학의 힘을 빌어 유토피아 건설에 부풀어 있었으나 세계 제1차,&nbsp2차 대전이라는 대학살 (Holocaust)을 경험한 후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한 근대주의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 후 기 근대주의(postmodernism)이며 해체주의이다. 기존의 가치와 기준을 넘어서서 이성적 논리대신에 감성과 영성을 내세우 며 전통이나 권위보다는 자유와 변화 그리고 도전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근대주의에서의 의사소통 방법은 직접 대면하여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다가 전화나 라디오 등 전파를 통한 매체를 사용 하여 왔으나 후기 근대주의 에서는 멀티미디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쌍방적인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 지고있다. 인간의 일상생활이 거 의 모두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사고 역시 가상 공간적인 틀을 가질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생활이 가상공간이라면 우 리의 신앙생활 역시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장을 마련해야 되지 않을까? 
특히 리모콘과 인공위성을 통한 수 십 개의 체널에 익숙한 사람들의 순간적인 취향선택에 사고를 고정 시켜야하는 현대인에게 논 리적인 설교는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 요인이기도하다. 또한  교회가 갖고 있는 음향 시스템이 각 가정이 보유한 것들 에 미치지 못한 다고 할 때 설교의 효과는 더더욱 낮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nbsp1960년대에 이미 논란이 되었었 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 새로운 설교 운동이 일어난다. 이 운동은 '이야기로 말하기 '(story&nbsptelling)이다. 설교가 논리를 통해 되던 것이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바꾸어지 며 설교의 형태는 귀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설교의 형태
지금까지의 주제와 대지를 가진 설교는 연역적이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이유를&nbsp3-4가지로 들어서 본 문을 설명하여왔다. 눅&nbsp15장&nbsp11절 이하의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전제 한 후 하나님은 주시는 분, 용납하시는 분,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등을 본문에 근거하여 들었다. 그러나 귀납적 설교는 본문을 이끄 는 경험이나 세상이야기를 하면서 결론부분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강조하며 말하는 것이다. 이야기에는 발단과 전개, 클라이막스와 결론 이 있다. 

눅&nbsp10장&nbsp30절 이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어려움을 당하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만 난 후 역전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아하 점(Aha-point)경험을 하게된다. 이것을 설교자와 청중이 공유하는 것이 연역적 인 설교의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이야기에 중독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당면한 어려움은 우리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지형적으로나 상황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장이 다르다. 그러 나 우리 주위에 있는 사업의 이야기로 본문을 이끌 수 있다. "어느 가정이 음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잘되어 대규모로 확장 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하루아침에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본즉 이상스러운 헛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집 고기 는 영국에서 온  수입 소고기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음식점에 가겠습니까? 저라도 가지 않겠지요..... '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 다.
이분은 이 문제를 놓고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불우 독거 노인에게 음식 사업을 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도시락을&nbsp500 여개 씩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무조건 돌렸습니다. 도시 락 내용물은 물론 소고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저 집은 자신이 번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집이다. 그 주인이 불우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 하고 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깐 지금까지 났던 헛 소문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습니 다.&nbsp.........."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언어의 사용은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이해 할 수 있는 단순한 그림언어 (picture&nbsplanguage) 이어야한다. 이것을 상상언어 (imaginative&nbsplanguage), 은유적인 언어(metaphorical&nbsplanguage)라 고 한다. 성경의 모든 사실을 상상화 시키는 작업이다. 

이런 면에서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설교는 수평적 그리고 상호 양 방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는 마치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 서 내어오는 천국의 서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마&nbsp13:52)이 후기 근대사회에서의 유능한 설교라고 볼 수 있 다. 

문제: 성경의 한 본문의 제목을 잡아서 연역적인 설교와 귀납적인 설교를 동시에 작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