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이하면서 개혁의 원동력: 경건과 거룩!!!  
송삼용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을 제외하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다. 그는 당대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았던 최대의 지성인이요, 기라성같은 카톨릭 신학자들을 무너뜨린 최고의 신학자요, 제너바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뛰어난 개혁자요, 영혼을 뜨겁게 사랑한 참된 목회자요, 성경을 바로 주석하여 삶에 옮긴 실천적인 주석가요, 삶 전체로 메시지를 증거한 살아있는 설교자였다. 프랑수아 방델에 의하면, 그는 실로 “한사람의 사상가를 훨씬 뛰어넘는 인류의 지도자였다.”

▲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 리폼드뉴스
「칼 빈의 삶과 종교개혁」을 집필한 김재성 교수의 찬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칼빈은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가장 탁월하게 구사한 최고의 지성인이요, 제너바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목회자이자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요, 성경에 능통한 주석가이자 설교자요,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던져 준 영혼의 목자”였다.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노용에서 태어나 약 55년을 세상에 머물렀다. 오늘날의 수명에 비하면, 그는 매우 짧은 연수를 보낸 불행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가 세상에 남겨둔 유산은 미화로 2천불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에다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장례식에 화려한 치장을 하거나, 묘비도 만들지 말도록 유언했다. 그가 평생 동안 삶의 목표로 삼았던 하나님 영광의 정신을 사후까지도 실천하려는 의미에서 그런 유언을 남긴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칼빈의 숭고한 신앙과 정신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금년 은 칼빈이 탄생한지 5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하면서 총회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고하니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숙연함을 감출 길이 없다. 지금도 묘비조차 없이 제너바 변두리의 공동 묘지에 쓸쓸히 안장되있는 위대한 개혁자를 생각할 때 부끄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개혁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도 우리는 칼빈의 목회와 신학 및 삶과 사상의 주변을 맴돌 뿐 어떤 빛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드러낸 태양같이 찬란한 빛에 비하면 우리는 희미한 반딧불을 깜박거리고 있는 듯하다. 더욱이 실종된 목회 능력, 생명력을 상실한 신학, 세속화된 삶, 그리고 변질된 사상 등이 오늘의 교회 현실들이다.

최근에는 그런 현실들에 대해서 교회 밖에서조차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가령, 언젠가 KBS 방송국에서 한 여론 조사 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20세 이상의 성인 남녀 1200명 중에 59.3%가 한국 교회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불신자들조차 교회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는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이면서 우리 모두 심기일전(心機一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강력한 빛을 발하고, 그 본질을 회복하여 세상을 선도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칼빈이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개혁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된 개혁의 방향성을 찾아 보고자 한다.
 
흔히 역사가들은 칼빈의 개혁은 시대가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혹자는 그의 천재적인 학문성에 공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칼빈이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개혁의 원동력은 그가 평생 동안 쌓았던 경건성이다. 칼빈의 위대성은 학문적인 업적보다는 경건한 삶에 있다.

원래 칼빈의 저술 의도는 기독교인들에게 경건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삶 역시 저술들의 이론을 실천한 경건의 삶이었다.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금식과 묵상으로 일관하면서 경건을 추구해 나갔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절제된 삶으로 일관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시간이나 물질도 허비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았다. 설교나 저술 작업을 위해서 밤새도록 연구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극심한 가난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책을 내다 팔 정도였지만 철저하게 경건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

끊임없이 육신을 괴롭히는 질병의 고통 가운데서도 철저한 절제와 금식을 통해 자기를 훈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칼빈의 건강 상태는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일생 동안 코감기, 천식, 소화불량, 두통, 관절염, 궤양성 치질, 결석병, 악성 폐렴, 늑막염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루에 8차례씩 정기적으로 드렸던 기도생활, 말씀 연구에 파묻혀 경건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탁월한 경건한 삶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인이 된 것이다.

칼빈의 뛰어난 경건 생활의 기초는 말씀에 있었다. 그의 사상도 철저하게 말씀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가령, 「기독교 강요」는 성경을 농축한 신학 대계이다. 그는 탁월한 통찰력과 지력으로 성경에서 엑기스를 뽑아내어 작품을 만들어냈다. 당시에 금지되었던 성경 원어를 비밀리에 습득해서 자유자재로 인용했다.
 
대학 시절에 성경을 공부하면서 허리뼈가 휘어지도록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에 묻혀 살았다. 카톨릭 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는 그렇게 준비한 탁월한 실력으로 라틴어로 된 교부들의 작품에 수록된 성경들을 정확하게 페이지 수까지 인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작품에 인용된 성경 구절만 해도 무려 신약 4,330번, 구약 2477번이나 될 정도였다.

칼빈은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인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생 동안 성경을 한절 한절 강해하면서 성경 사랑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성경이 삶의 뿌리가 되었다. 그가 매일 실천에 옮겼던 삶의 거룩성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경건의 열매였다. 칼빈의 경건 생활은 밤낮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돌보는 목자의 삶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른바, 야고보가 제시해준 참된 “경건”(약1:27)의 실천이 목양의 현장에 잘 드러났다.
 
그 는 자기의 몸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위로했다. 심지어 흑사병이 유행할 때조차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새벽까지 병자들을 찾아가 격려했다. 제너바에 몰려온 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와 과부들까지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제너바와 스트라스부르그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부은 참 목자였다.

칼빈 시대에 제너바에서 목회했던 콜라동은 이렇게 증언했다. “칼빈은 자기 몸을 사르지 않았으며 건강의 상태를 돌보지 않고 힘에 지나도록 일하였다. 그는 격주로 매일 설교하였고, 매주 세 번 신학 강의를 하였다. 그는 반드시 병자를 방문하였고, 개인적인 충고와 권면, 그외 목회 활동 중 통상 생길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진력하였다. 그 모든 일들로 인해 칼빈은 특별한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고, 탁월하고 유용한 책들을 많이 저술하지 못했다.” 그렇게 뜨거운 영혼 사랑의 목양이 캐톨릭의 전통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개혁에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칼빈의 종교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그의 경건 생활과 거룩한 삶에 있었다. 일생 동안 죄를 멀리하고 말씀에 붙들려 살던 실천적인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개혁에 성공한 것이다. 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이하면서 모든 교회들이 칼빈의 경건으로 돌아가야겠다. 목회자들 역시 시급하게 삶의 거룩성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을 삶의 각 분야에 드러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 삶의 경건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 개혁의 출발선이요, 현대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길이다.

글/ 송삼용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