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과 생명 윤리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가 암양의 유전자를 다른 양의 난자와 결합시켜 원래의 암양과 똑 같은 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81년 스위스의 실험실에서 복제 생쥐가 탄생했습니다. 미 과학자들은 80년대에 올챙이, 90년에는 생쥐를 복제하는데 성공했으나 성장한 동물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유전자 공학의 발달로 언젠가는 복제 인간도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이번 실험의 성공으로 인간 복제도 현실화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 복제]를 이론적으로 가능케 하는 이 유전자 복제 기술과 관련, 유럽 국가들은 올해 초 미래의 인간을 변화시킬 어떤 유전자 실험도 엄격히 금지하는 생물 윤리 강령을 마련, 인간 복제를 원천적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아직은 이러한 복제 인간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 미국에서도 이 소식을 접하고 클린턴 미대통령은 대통령 생명 윤리 자문 위원회에 동물 복제의 {법적-윤리적 문제}를 검토해 90일 안에 그 결과를 보고토록 긴급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정부가 법적 제제를 가한다 할지라도 이 기술은 각 나라로 서서히 파급될 것이고 윤리적 강령을 채택한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복제 기술이 실용화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윌머트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고, 그 특허를 사들일 영국의 제약 회사 PPL 세라퓨틱스 쪽은 이 기술로 의학용 유전자 복제 동물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혈우병 환자에게 필요한 혈액 응고 인자가 풍부한 젖을 생산하도록 하는 양의 유전자를 유전자 변환을 통해 만들어내고, 그 유전자로 그런 특성을 가진 양을 무한대로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질병과 유사한 질병을 앓도록 만든 동물을 만든 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동물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현재 생산량의 3배 이상의 젖을 짜낼 수 있는 슈퍼 젖소도 무한대로 만들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위스콘신 대학 유전 공학과의 닐 퍼스트 박사는 이런 점에서 "이는 50년대 인공수정의 성공에 이은 낙농업계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대의 과학적 성과"라고 극찬했습니다. 무엇보다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리라는 전망입니다.  

예를 들면 돼지의 장기에 사람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이식에 전혀 지장이 없는 장기를 생산해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인류에게 혁명적 희소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제 인간 문제는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미국 내 7백 개 생물 공학 기업 및 연구소를 대표하는 미 생물공학 산업 기구 칼 펠드 바움 회장은 동물 복제는 식량 공급, 생물 약제 생산, 이식 및 연구용 장기 제공 등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이 기술이 인간에 적용되기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고 말했습니다.  

남가주 대의 알렉산더 케이플란 교수는 “민간 연구소들이 이 세상의 온갖 과대망상증 환자들로부터 자신과 똑같은 자식들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시달리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였습니다. 

 히틀러나 후세인,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를 양산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 먼로, 양귀비, 마이클 조던, 차범근과 같은 인간도 복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복제 인간은 상업적 대상으로 쓰일 것이고 중병을 앓는 환자는 부작용 없는 장기 이식을 위해 자신과 똑같은 클론을 만들어달라고 할 것이고 파렴치한 흥행업자는 자신이 키운 스타를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남게 하기 위해 그의 클론을 10년 단위로 하나씩 만들어낼지 모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벨상 수상자나 슈퍼모델,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유전자가 밀거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초유의 윤리적,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관이 파괴되는 무서운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기를 자연 임신해서 낳는 태아 시대에서 대량 배양 시대로 옮아감으로써 엄마도 아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짐승과 같은 사회의 출현을 예상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내장을 서로 간 저항 없이 이식할 수 있기에 장수하게 되고 마음 맞는 사나이를 못 만나면 처녀 출생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아이가 죽어 상처가 깊으면 똑같은 아이를 다시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멋진 신세계'에서 말한 대로 사회가 인간의 출생을 지배하는 세계가 도래할 지도 모릅니다.  

복제 인간과 원본 인간과의 문제도 있겠지만 똑같은 복제 인간이 수백, 수천 명 거니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이냐”는 인간 존재론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가치관의 혼동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복제 인간 생산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던지는 최대, 최후의 도전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주관자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한계 상황의 한계선을 극복한 인간이 인간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떼 인류 문명의 바벨탑은 무참하게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생명 출생에 대하여 인간의 창조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 139:13)”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사 44:24)”라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생명 창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생명 창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에 따른 무서운 재앙이 인류에게 임박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 한계도 인간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령 복제 인간이 인류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신앙인은 결코 복제 인간이 문명의 거리를 누비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