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티 포스트모던 그리고 복음 

글쓴이 윌리암 에드가 / 옮긴이 김종철,박진숙

 
  "모더니티의 기획(보편성의 실현)은 포기되었거나 잊혀진 것이 아니라 붕괴되었고 파산되었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붕괴를 보 여주는 여러가지 양식, 상징과 이름들이 있지만 '아우슈비츠'야말로 모더니티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이름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던적 조건』 이라는 책으로 우리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인식시켜 주었 던 한 프랑스 철학자의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는 말로 특징지우려는 사람은 장-프랑스아 리오타르 뿐만 이 아니다. 저마다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 하고는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포스 트모던이라는 말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모순 어법이다. 왜냐하면, 포스트post라는 말은 뒤(後)를 가리키고 모던modern 이라는 말은 지금(現)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적인 용어 사용은 의도적인 것으로, 한 시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 하여 단어 하나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모던 사상을 둘러싼 여 러 논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 게 접근해야하는가? 소위 '포스트모던적 조건'이라고 불리우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어떤 면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모더니티의 거짓된 주장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므로 우리 기독교에게는 환영받을 만 한 것일 수도 있다. 모더니티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더니티야말로 고도로 세속화된 문화를 생산하 고&nbsp20세기의 비극과 격변을 안겨준 장본인이 아닌가? 많은 신학자들이 모더니티의 환상에서 벗어난 현 시점을 긍정적으 로 보고 지금이야 말로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포스트모던을 주장하는 자 들이 우리에게 아군이라면 어떠한 종류의 아군인가? 모더니티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포스트모던적 조건'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더니티와 는 다른 새롭고 납득할 만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가? 모던적 기획을 믿는 사람들의 희망과 열정을 앗아가버리려는 그들은 "왜 사는 가?"라는 물음에 대한 더 나은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믿어야하는가?  포스트모던적 상황은 복음전도를 위한 새 로운 기회인가? 아니면 복음에 적대적인 또 하나의 암울한 시기인가?       

1.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이라는 유사 개념과의 구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더니티가 역사 적으로 비교적 최근인 한 시대를 총칭하는 개념인 반면 모더니즘은 신학과 예술에서 나타났던 특정한 운동과 모던의 이념이라는 두 가 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언하자면, 첫째로 우리는 로이지Alfred&nbspLoisy, 티렐 George&nbspTyrrell, 그리고 부오내우티Ernesto&nbspBuonaiuti와 같은 신학자들에 의 해 민주주의나 합리적 비평 방법rational&nbspcriticism등이 수용된 현대 카톨릭 신학을, 그리고 근본주의 가 전면전을 선포했던 개신교 내의 자유주의를 '모더니즘'라고 부를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파리학파, 인터내셔날 스타 일,&nbsp12음 기법과 같은&nbsp20세기의 다양한 시도들을 지칭한다. 두번째로 모더니즘은 단순히 모던 시대 의 이념이나 확신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볼 경우 모더니즘은 하나의 철학내지는 교의doctrine라고 까지 말할 수 있으 며 분명히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사이에는 그 개념에 있어 상당 부분 중첩되는 것이 사실이다.
  모더니티는 모더니즘보다는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 단어의 역사를 살펴 보는 일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 만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라틴어 형용사인 '모데르누스modernus'의 기원은 최소한&nbspAD&nbsp5세 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단어는 당시 공인된 기독교 시대를 과거 로마의 이교적 시대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 되곤 하였다. 영 어 명사인 '모더니티modernity'는&nbsp16세기에 처음 사용되었으나, 현재의 의미를 띠게 된 것 은&nbsp19세기 중반에 들어와서인데, 특히 드 고티에De&nbspGauthier와 보들레르Baudelaire 의 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더니티의 핵심은 엄격히 역사적, 사회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nbsp17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시작되 어&nbsp19,&nbsp20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휩쓴 거대한 혁신의 바람을 말하는 문화 양식이다. 모더니티 는 하나의 이상ideal인 동시에 현실이었고 과학, 예술, 경제, 사상, 가정 생활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영향을 끼쳤다. 단 순화시켜서 표현하자면, "모더니티는 전통적인 양식에서 새로운 양식으로의 거대한 전환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 티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념, 즉 모더니즘이다.
  모더니티의 도래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설명 중에 하나는 프랑스 역사가인 뽈 아자르Paul&nbspHazard에 의 한 것이다. 『유럽의식의 위기 The&nbspCrisis&nbspof&nbspthe&nbspEuropean&nbspConsciousness』 라는 책에서 그는&nbsp1680년 부터&nbsp1715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들을 연구하였다. 아자 르는 그 변화들의 공통된 특징을 '안정에서 동요로', '고전에서를 모던으로', '정통에서 이단으로' 라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나는 클리버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 하면서도, 모더니즘이 가진 이원적(二元的)인 특징을 강조하고 싶다. 성경은 여러 곳에 서 우상을 이원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우상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둘은 어떤 경우에는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 는 개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리차드 카이즈Richard&nbspB.&nbspKeyes는 이러한 두 종류의 우상 을 근신(近神,&nbspnearby&nbspgod)과 원신(遠 神,&nbspfaraway&nbspgod)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그 시기에 합리주의, 기적의 부정, 경험주의 같은 생각들이 보편화되었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신앙에 있어서도 커다 란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뽈 아자르가 연구한 사람들은 그 당시 유명한 철학자들이나 과학자였다. 그 러나 그 연구를 이어 받은 사회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일상적인 사회 생활의 영역까지 그 연구 범위를 넓혀나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를 통해서 생활의 사회적 측면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nbsp18세기에 살롱에만 묶여있었던 것들이&nbsp19세기 에 와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아자르가 주목한 모더니티의 정신성, 즉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모더니즘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분석 이 행해져왔다. 그 중에서 클리버Lonnie&nbspKliever는 모더니티의 정신성을 '주관성', '보편성', '편재성' 이라는 세 범주를 가지고 설명한다. 나는 클리버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 하면서도, 모더니즘이 가진 이원적(二元的)인 특징을 강조하 고 싶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상을 이원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우상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둘은 어떤 경우에는 복합적으로 나 타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리차드 카이즈Richard&nbspB.&nbspKeyes 는 이러한 두 종류의 우상을 근신(近神,&nbspnearby&nbspgod)과 원신(遠 神,&nbspfaraway&nbspgod)으로 표현하였다. 사람들이 근신으로 섬기는 우상은 이사 야&nbsp44장10-20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금이나 돌로 만든 상(象)이고, 원신으로 섬기는 우상은 이사 야&nbsp65장&nbsp11절에서 나타난 '행운', '운명'과 같은 초월적인 개념들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우상 이 함께 등장하는 부분은 사도행전&nbsp17장에 기록된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설교이다. 바울은 금이나 은이나 돌로 새긴 형 상으로서의 우상(근신) 뿐아니라 알지 못하는 신(원신)에게 바치는 제단도 있음을 지적한다.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 역시 이원론적이 고 변증법적인 사고가 인본주의적 세계관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코넬리우스 반틸도 무신론적 사고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 나로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사이의 긴장을 들었다. 
  이처럼 모던적 사고를 떠바치는 하나의 기둥은 합리주의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것만이 지식으 로 인정받는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모두 인간의 이성에 속하였고 이성만이 지식의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대부분 의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지식을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여겨 진보progress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이성이 세계 를 더 자유롭게 파악하면 할수록, 인간이 직면한 문제들은 하나 둘씩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뜻하지 않게 역 사주의를 낳고 만다.
  첫번째 것과 정반대되는 모던적 사고의 두번째 기둥은 주관적인 자유(비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과학이 적용되 는 현상계phenomenal&nbsprealm 이외의 또 하나의 영역, 즉 종교적 도덕적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인 지식을 판별하는 과학적 기준들은 이러한 본체적인noumenal 영역에 적용될 수 없으므로 인 간은 비합리적인 비약을 통해서 이러한 영역에서 의미를 찾으려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로부터 개인주의에 대한 모던의 지나친 강조가 나 온다. 낭만주의 운동 역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합리성을 포기해야 된다는 이러한 사상에 크게 빚지고 있다. 낭만주의에 있어 아름다 운 것은 이성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며, 그것은 비록 인간이 만들었지만 만든 자를 초월하여 인류를 진리로 인도할 수 있는 것으로 받 아들여졌다.
  이러한 두 기둥은 서로 융합되지 못한 채 함께 묶여져왔다. 모더니티의 철학적 기원은 데카르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만, 위에서 말한 모더니티의 변증법적 특징은 임마뉴엘 칸트에 이르러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보통 칸트를 가리켜, 과학을 '살린 ' 동시에 종교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은' 자라고 평가한다. 먼저, 칸트는 자신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명명한 이론에서 흄 에 의해 제기된 과학에 대한 회의를 극복한다. 그는 과학을 단지 감각 경험을 통해 얻은 자료들의 합으로 보지 않고, 자료들이 선험 적인 감성과 오성에 의해 체계화되고 질서지워진 확실한 지식으로 과학을 국한시킨다. 이러한 시도는 장차 변할 지도 모르는 개별적 인 사건만을 제시하는 감각 경험에 선험적인 기초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도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는 종교를 도덕을 위해서 반드시 존속되어야만 하는 실천적인 요청으로 봄으로써 아무런 논증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순 수한 자유의 영역에 가져다 놓는다. 이처럼 그는 과학을 '살리기 위해서' 합리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나, 종교에 대한 '여지 를 남기기 위해서는' 비합리적인 비약을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무신론적 사고에 깃든 이러한 변증법적 요소를 끄집어냄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따라서 칸 트 이론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 세대를 향해 해줄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칸트에 반대하거나 칸트 에 동의하면서 철학을 할 수는 있어도 칸트 없이는 철학 할 수 없다는 말처럼, 오늘날의 철학은 칸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 다. 합리주의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변증법적인 사고는 칸트를 위시하여 가장 최근의 철학자에서까지 발견된다. 
어떤 이는 합리주의적인 면에 치중하고 다른 이들은 비합리주의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누구 도 순전한 합리주의자요, 완전한 비합리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다. 합리주의는 항상 최초의 전제를 논의의 기초로 해야 하며, 그 전 제 역시 당연히 합리적인 것이어야하나 사실은 비합리적인 신뢰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비합리주의는 논의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까지도 비합리적인 방법을 따라야 하나 실제로는 자신의 논의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입장에 일관되 지 못함을 보여준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확실하고 명료한 지식에 이르려면 철학적으로 의미 없는 명제들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가지 판단 기 준,&nbsp1)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의 의미를 통해서 명제의 참· 거짓이 드러나는 명제(분석명제)&nbsp2) 감각 경험에 의해서 그 명제의 참· 거짓이 드러나는 명제(종합명제)를 제시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하시가?" "절대적인 도덕 이 가능한가?"와 같은 신학적, 형이상학적, 윤리적 명제들은 그 두 가지 기준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참도 거짓도 아 닌 아무 의미 없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철학적으로 의미있는 명제는 분석명제이거나 감각 경험으로 증 명되는 종합명제이다"라는 명제는 과연 어떤 종류의 명제인가?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이 명제 역시 분석명제도 증명 가능한 종합명제 도 아니어서 아무 의미없는 주절거림일 뿐이다. 이처럼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전제를 자신들의 논의의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모습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체험의 상징으로 보는 현대 개신교 신학자들의 이론에서 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는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 감 독 우디 앨런Woody&nbspAllen의 예를 들어 보자. 그의 필름에서는 대부분 두 가지 사실들이 동시에 나타난 다. 즉 정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는 모습과  동시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자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고 삶에 대해 진지 한 자세를 포기해버리는 모습이 공존한다. <한나와 그 자매들>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신이 없다면 삶이 무슨 의미 가 있는가?" "사후 세계가 존재하는가?" 라는 심각한 질문을 해댄다. 그는 이런 질문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훈계하기까지 한다. 그 러나 결국에 가서는 심각한 질문 일랑은 집어치우고 그냥 코믹영화나 보고 삶을 즐기자라는 식으로 바뀐다.

2. 모더니티의 사회적 측면

  모더니티의 정신성, 즉 모더니즘만큼 모더니티의 사회적 측면을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모더니티는 사회에서 다양한 모 습으로 수용되었는데, 여러가지 사회 제도나 현상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더니즘을 반영할 뿐 아니라 촉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나는 그것들 중 다섯 가지를 간략히 언급한 뒤, 여섯번째 것은 비교적 상세히 다룰 것이다.
 &nbsp1) 첫번째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생이다. 이것은 개방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계층 의 확대, 사유 재산권의 보장등을 의미한다.&nbsp2) 두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기술과 산업의 발달이다. 모던적 의미에 서 이것은 생산량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늘릴 수 있는 도구와 기계의 사용을 의미한다.&nbsp3) 빠른 통신수단의 발달 도 들 수 있는데, 전보   전화 등의 의사 전달 수단과 사람들이 신속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 등은 과거의 통신 수단과 비 교해 볼 때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nbsp4) 이러한 현상들과 아울러 도시화   세계화도 빼놓을 수 없 다. 최근&nbsp2세기 동안의 여러 통계 자료를 볼때,&nbsp1800년대에 세계 인구의&nbsp5%에 불 과하던 도시 인구가&nbsp2000년 대에는&nbsp5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nbsp5) 다섯번째 모던 적 현상으로 민주주의의 발달을 들을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통치 권력은 계승되거나 소수 엘리트에 집중되지 않고 대표자들을 통 해 직   간접적으로 국민들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nbsp6) 여섯 번째 현상은 세속화secularization로 약간의 긴 설명이 필요하다. 이 '세속화'라 는 말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로는 권력과 교회의 분리 혹은 국교폐지와 평신도 계층의 지위 상승이다. 세속화 의 이러한 측면은 때때로 정교 분리laicisation라고 불려지곤 하였다. 세속화라는 말이 가진 두 번째 의미는 삶에 질서를 부 여했던 기독교 세계관의 쇠퇴 혹은 기독교 신앙의 상실을 뜻한다. 이러한 개념은 세속주의secularism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 며, 오늘날 세속화라는 말은 주로 이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모더니티에 있어 종교에 관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세속 화에관한 이야기이다. 모던 시대에 세속화는 일반적으로 권력으로부터 교회가 분리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정교 분리를 의미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 의회의 성립과 같이 비교적 평화롭게 이루지기도 하였으나, 프랑스 혁명처럼 폭력을 수반하기도 하였다. 그 러나 이와 같은 세속화의 첫번째 개념으로부터 논리상 신앙의 쇠퇴라는 결과가 당연히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치적인 연루 에서 벗어난 교회는 일반인의 삶에 과거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세속화는 기독교를 모든 권위 의 근원이라는 보좌에서 끄집어내려 사회의 제영역(諸領域) 중의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이로 인해, 종교는 점점 더 개인적인 문제 가 되어버렸고, 더 이상 보편적인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세속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대도시의 건물이 다.&nbsp19세기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교회가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높은 건물은 교회가 아니 다. 뉴욕시의 트리니티 교회는 월 스트리트의 고층 빌딩들에 압도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파리에는 에펠 탑과 몽빠르나스 Montparnasse가 어떤 교회보다도 높다. 
  그러나 세속화를 이해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세속화가 언제나 신앙의 쇠퇴를 야기한 것만 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종류의 세속화는 필연적인 관련성이 없다. 사람들은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모든 종류 의 신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라도 반드시 쇠퇴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세속 화에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은 여러 종류의 신앙이 부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버Max.&nbspWeber 이후의 사회학자들 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는 종교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산업화된 나라 중에 하나인 미국의 예를 들자 면,&nbsp193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교회를 다니는 인구수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42%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 다. 오늘날 미국 인구 중&nbsp94%가 신을 믿는다고 하였고&nbsp84%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을 인정하며&nbsp34%이상이 자신은 거듭난 혹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모던 사회에서는 이방적인 신앙 역시 번창하고 있다. 또한 치료술, 음식 요법, 심령술, 뉴에이지와 같은 유사 종교적 프로그 램을 동반한 새로운 이단들이 속출하고 있다. "어떻게 세속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종교가 더 부흥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두 가 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기술과 산업의 발달이라는 세속적인 흐름은 신비적인 것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영적인 진공 상태 를 만들어 놓았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첫번째와는 반대로, 기술의 발달이야 말로 종교의 부흥에 있어 유일한 촉매제였다는 설명이 다. 이것은&nbsp1970-80년대 근본주의자들이 복음 전도를 위해&nbspTV와 같은 대중 매체를 적극 이용했다 는 점을 볼 때 쉽게 이해가 된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모던 시대의 세속적인 상황에서는 본래적인 의미의 종교 뿐아니라 사회주의, 과학주의, 인본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도 종교처럼 신봉되었다는 점에서 종교의 부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의해야 할 두번째 사실은 서구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각 나라마다 세속화 의 과정은 매우 상이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마틴David&nbspMartin은 『세속화에 관 한 일반 신학 A&nbspGeneral&nbspTheology&nbspof&nbspSecularization』에 서 세속화 과정의 다양한 모습들을 연구해 놓았다. 그는 크게 독점적   다원적   복합적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세속화 과정에 대 해 말하고 있다. 독점적 형태의 나라는 국가와 하나의 교회(일반적으로 그리이스 정교나 카톨릭)사이의 연합이 이루어진 곳이다. 세속 화가 닥쳤을 때,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너무나 심해서, 그 혁명적인 이념과 교회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전쟁을 치루고 나서야 문제 가 해결된 경우이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러시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다원적인 형태는 어떤 하나의 종교만을 믿을 의무가 없는 나라이다. 이러한 곳에서 세속화란 종교 그 자체와는 그리 큰 관 련이 없기 때문에 각 종파들과 교단들은 자유롭게 발전하게 된다. 미국은 이러한 다원적 형태의 전형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 은 종교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묵시적으로 공인된 종교(예를 들어, 의회 내에서의 기도)가 있으며, 이 종교가 문 화를 세속화로부터 지키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복합적인 형태는 종교가 부분적으로 국가로 부터 국교로 인정을 받으나 부분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는 나라이 다. 영국이 이러한 나라이다. 영국에서는 공인된 종교인 성공회가 세속화의 흐름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형태의 변형으로 는 마틴이 '복점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즉 두 개의 공인된 종교가 존재하는 나라인데, 화란과 아일랜드가 좋은 예이 다. 이 두 나라에 있어서는 작은 교회일수록 더 개혁주의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3. 모더니티의 기원

  모더니티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폴 존슨Paul&nbspJohnson의 견해를 따르려고 하는데, 그는 모더 니티가&nbsp1815년부터&nbsp1830년까지&nbsp15년동안에 그 구체적인 모습이 형성되었다고 주 장 한다. 이 기간 동안 삶의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그 시기는 뉴올린즈에서 앤드류 잭슨이 영국에, 웰링톤이 나폴레 옹에 승리를 함으로써 시작되었고, 그 세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비인 체제가 유럽을 이끌어 갔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막강 한 산업적   문화적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미국에서는 서양문명이 틀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 동 안 모더니티는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측면에서 주도권을 잡았던 것이다. 
  모더니티와 같은 불확실한 개념의 명확한 기원을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는 상이한 입장에 서 모더니티의 기원에 접근하려는 논의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역사가들은 모더니티의 시작을 르네상스나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 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은 문화와 철학에 있어 중세의 신 (神) 중심적인 입장으로부터 탈피하여 인간(人間) 중심적인 사고를 하였기에 모더니즘 발생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 른 학자들은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권위가 개인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자본주의, 과학, 민주주의와 같은 모던적 현상들이 야기 되었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견해와 맥을 같이하는 입장으로는 종교개혁이 세속화를 가속시켰다는 이론이 있다. 이 '제 무덤 파는 자' 이론 에 따르면, 종교개혁적 세계관의 세속적인 성격때문에 세상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십계명 중 제&nbsp2 계명 에 대한 엄격한 해석에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천상의 것에 대한 어떠한 모형도 이 지상에서는 허용하지 않았고 이러한 입장은 교회 와 국가의 분리, 근대 과학의 발달, 개인의 자유의 신장 등을 가져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종교의 자유는 종교로부터의 자유로, 근대 과학은 과학주의로, 개인의 자유는 개인의 자율로 각각 극단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모더니티의 부수적인 조건은 될 수 있을망정 근본적인 원인으로 까지는 볼 수 없다고 생 각한다.  사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강조가 있었으나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고귀 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이지(특히 종교개혁에 있어서), 신본주의적 세계관을 뒤집어 놓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앞 의 '제 무덤 파는 자'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주목해야했을 점은&nbsp18  &nbsp19세기의 사상이 종교개 혁과는 달리 '근거 없는 이성의 자율성'을 너무 맹신 했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이 원하던 바는 질서와 권위의 파괴가 아니라 성경 적 진리로의 복귀였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한 종교개혁은 일종의 보수적인 운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모더니티의 간접적인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 직접적인 원인은&nbsp17세기 후반 에 시작되어,&nbsp19세기에 이르러 문화적, 사회적 현실이 되어버린 '유럽 의식의 위기'였다. 모더니티의 중심되는 주제 는 '초월에서 내재로'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제 삶을 질서 지우는 원칙에 있어 인간적인 것들이 신적인 것을 대신하게 된 것이 다. 
  모더니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놓았는가? 모더니티의 미래는 어떠한가? 오늘날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모더니티에 대 한 다양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두 부류를 각 각 살펴봄에 따라 구체화 될 것이다. 모더니티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첫번째 부류의 입장은 오늘날 여러가지 모더니티의 문제점이 드 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모더니티의 기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두번째는 모더니티는 이제 그 힘이 다했고 모더니티 의 기획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난 지 오래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제 우리는 이 두 부류의 입장을 각각 살펴볼 것이다.

4. 모더니티의 기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모더니티에 대해서는 수 많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오스 기니스는 말하기를, "모더니티라는 개념은 너무나 복잡해 서 한 권의 책으로 혹은 하나의 관점에서 그 개념이 가진 여러 내적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는 "하지만 이 개념의 복잡성과 그 복잡성으로 인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모더니티에 관한 논의를 아주 마비시키는 결 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라는 점도 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모더니티를 평가하고, 그것이 가진 본질적인 특징과 피상적인 현상을 구별 하여 모더니티의 앞날을 예측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작업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모더니티의 기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모더니티의 구조는 우리 삶에 너무나 깊 숙히 뿌리박혀 있어서 쉽사리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피터 버거Peter&nbspBerger는 모더니티 를 '숙명에서 선택으로의 운동'이라는 긍정적인 정의를 내린다. 즉 과거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과 전통에 의해 숙명지어졌지 만 모던 시대에는 자신이 직접 내린 선택에 의해 삶을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빠른 통신 수단   교통 수단과 같은 기술 역시 이 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버거는 "오늘날 인간의 삶에서 기술이 갖는 필요성과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이 운동은 쉽 사리 반전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니엘 벨Daniel&nbspBell과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은 모더니티가 현재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 남 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경제적 합리성   절제   인내 등의 가치를 기저로하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기본적으로 건전하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문제점은 여러 문화적 영역에서 비판 정신과 자유가 과도하게 남용되어서 학문이 진보하기보다는 그라마 톨로지와 해체의 기획에 말려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앨런 블룸Allen&nbspBloom은 『미국 정신의 종말 The&nbspClosing&nbspof&nbspthe&nbspAmerican&nbspMind』 에서, 드 수자Dinesh&nbspD'Souza는 『편협한 교육illiberal&nbspEducation』에 서, 좀 완화된 어조이긴 하지만 벨과 마찬가지로 모더니티 구조는 계속해서 존속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주 로 모던적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것이다. 블룸은 오늘날의 대학들이 모더니티를 송두리채 부정하고 있는 현재의 기류에 편승하여 서구 의 건전한 정신을 팔아먹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몽주의란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삶 모두를 철학과 과학의 후견 아래에 놓으려 는 가장 과감한 시도이다"라고 평가하면서, 대학이 이러한 시도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대학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문화적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블룸은 우리 시대가 표현주의 와 상상력으로 이성을 대신하고 관능의 힘으로 절제라는 덕을 대치하고 있다고 말한다. 드 수자D'Souza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미 국의 명문 대학에서 유행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nbspcorrect'이라는 운동은 합리성에 반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와 대학의 존재 목적을 파괴시킬 지도 모를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블룸과 드 수자 모두 계몽주의 야말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는 전제 하에 현재의 문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 The&nbspEnd&nbspof&nbspHistory&nbspand&nbspthe&nbspLast&nbspMan』 에서 볼 수 있는 후쿠야마의 견해는 한 층 더 놀랍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최근 들어와 조금 누그러뜨리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그 이 론의 기본적인 틀에는 큰 변함이 없다.&nbsp1989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획기적인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는 공산주의가 완전 히 몰락했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류가 '역사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탱하고 있는 서구 의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최후의 정부 형태이고 온 세계가 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인류의 진화 에 있어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적 낙관론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기에 큰 반향을 불 러일으켰다.
  모더니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더욱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가지고 펼치는 자들은 비판 이론 학자들이다. 하버마 스J&nbsprgen&nbspHabermas, 아펠Karl&nbspOtto&nbspApel, 골드버거 Paul&nbspGoldberger같은 철학자들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더니티의 기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 며 여전히 좋은 것들을 캐낼 수 있는 보고(寶庫)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베버Max&nbspWeber의 논의를 계승하면 서, 사회적 영역들의 다양한 분화인 '합리화'는 인간의 해방과 문화의 발달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역설적으로 인간 소외   억압   물상화 같은 '병리'와 '비합리화'를 수반한다고 보았다. 
  그 이유로 그들은 본래적으로 이성은 효과적인 수단의 측량과 함께 목표의 정당성도 따지는 포괄적 이성이었으나, 모던의 합 리화 과정에서 이성은 그 본질적 포괄성을 상실하고 단지 도구적 이성으로 변질되어 목표에 대한 자기비판과 성찰이라는 고유 임무를 포 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도구적인 이성만의 강조가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전체주의 시대를 배태했다고 보고, 이성 의 본래적인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강조하면서 이성의 도구적인 측면(과학· 기술)과, 규범적 이고(윤리, 그들의 계획에 의하면 정치 까지도) 해방적인(미학) 측면 사이의 결합을 시도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신보수주의자들의 오류는 자본주의의 선(善)한 면과 자본주의 문화의 악(惡)한 면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는 점이다. 특별히 그들은 종교로의 회귀를 통해 문화의 회복을 꾀했다는 점에서 크게 잘못되었고 한다. 하버마스는 여러 학자들이 모 더니티란 우리 사회의 의사 소통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매우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모던적 문화에 대한 염려없이 모더니티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여전히 모더니티에 머물면서, 모더니티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자족적인 이성-- 그러나 세가지 모습을 가진 이 성--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해석학(의사 소통적 이성)이 해방적 이성에 의해 올바르게 이끌려 질 때 최고의 사회 비판 방 법으로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고 한다. 참된 인간 해방을 위하여, 우리는 해석학을 이용해 단순한 시장 경제와 정치적 통제를 넘어 서 더욱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사회를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오늘날의 병리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더니티를 내 팽겨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티의 기획을 완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과 같은 모더니티의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합의라는 방 법으로 책임있게 사용되는 한 여전히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5. 모더니티의 기획은 끝장났다.

모더니티를 앞의 경우와 다르게 평가하는 부류는 모더니티의 근본적인 명맥이 유지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견해 에 따르면, 모더니티가 품었던 기획은 이제 미궁에 빠져버렸고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해 주는 단어가 바로 '포스트모던'이라 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이란 광범위하게는 사상계의 새로운 조류를 총칭하는 말인데, 그 중에는 그럴 듯한 주장이 있는가 하면 황당무개 한 것도 있다. 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의 주 활동무대가 대학이고 그 중에서도 인문과학 분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모더니즘 의 기원이 철저하게 학문적인 것만도 아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함의(含意) 역시 학문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모더니티와 모더니즘과의 구분을 꾀했던 것처럼 포스트모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 역시 가능하다. 그렇지만, 전자의 경 우와는 달리 후자는 단순히 시대와 정신성(이념)으로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 보다는 일반적인 상황(포스트모던)과 그 런 상황들을 규정지어 놓은 것(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구별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 둘 간의 차이는 미미하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을 정 의하는 데에는 몇 가지 아이러니컬한 점들이 뒤따른다. 우선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 어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떻 게 '나중' '지금'이라는  단어가 성립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반박할 수 있을 만큼 문제가 그렇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문제시되는 것은 지금contemporaneity이 아니라 바로 모더니티modernity이기 때문이 다. 두번째 아이러니컬한 점은 다음과 같다.  어떤 면에서 보면,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는 실존주의, 표현주의 등과 같이 논의 에 앞서 그 개념을 규정해야만 하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용어이므로 모더니즘의 핵심-무정형성, 유동성-을 표현하기에는 더할 나 위 없이 적합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그 단어의 모호성은 그것을 '일관되게'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 고안된 것이라는 점이다.
어원적인 분석이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어근으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모더니티의 기획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이 가진 최소한의 의미라는 점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 역시 모더니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용어의 기원을 연구해서는 별 다른 수확을 얻기가 힘들 것 이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관련된 여러 영역 중에 지표가 되는 두 가지 영역을 자세히 살펴보 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살필 첫번째 지표는 건축이다. 건축은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 가장 쉽게 일반인의 눈에 드러나 는 양식이다. 서구 사람들은 모더니티의 경험을 대담하게 건축으로 표현하였는데,&nbsp1919년에 독일에 설립된 바우하우스 Bauhaus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건축가들의 활동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시각 예술 분야에서 바우하우스가 끼친 영 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
 바우하우스 학파의 모더니스트 건축가 중 세 명의 선구자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nbspGropius, 앙 리 르 꼬르뷔지에Henri&nbspLe&nbspCorbusier,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nbspvan&nbspder&nbspRohe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건축은 사용된 재료면에서 나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이어야만 했다. 즉, 건축물 자체와 내부 가구들, 도색 작업 등이 전통적인 양식 과는 달리 실용성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르 꼬르뷔지에가 말한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 다&nbspUne &nbspmaison&nbspest&nbspune&nbspmachine  &nbsphabiter" 에서 우리는 그 당시 건축의 경향(기능성의 과도한 강조)을 읽을 수 있다. 이제 건축의 미는 그 건물의 장식이나 상징적인 형태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에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엔지니어가 진정한 예술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러한 모더니스트 건축가들 의 주장은 유토피아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창한 바우하우스 선언Bauhaus&nbspManifesto 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우리 다같이 새로운 미래의 예술을 바라고, 꿈꾸고 창조해 냅시다. 그것은 건축과 조 각, 회화 모두를 하나로 아우를 것이며, 훗날 수백만의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서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건축의 영향을 받아 여러 문화 영역에서 기능주의를 주조로 하는 '국제주의 양식 International&nbspStyle'이 그 발전 토대를 미국에 내리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거대 도시들은 대부 분 모더니즘의 양식을 따른 네모반듯한 건물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nbspLloyd&nbspWright가 그러한 철학을 극단화시킨 대표적인 건축가이다. 이와 같은 모더니스 트 건축의 눈에 띄는 획일성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
그 반작용 역시 미국을 필두로 해서 일어난다. 로버트 벤추리Robert&nbspVenturi, 한스 홀라인 Hans&nbspHollein, 찰스 무어Charles&nbspMoore를 비롯한 많은 건축가들은 포스트모던적 입장 을 취하게 되었다. 자신의 책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스스로를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 사용의 선구자라고 지칭한 찰스 젠크스의 견해 에 따르면, 오늘날 중요한 건축물들이 모더니즘에게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 적인 온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기능주의적 건물에서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모더니스트적 건축은&nbsp1968년 에 운명을 달리했으며,&nbsp1972년에는 그 징후로 두 개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물이 자연 붕괴와 폭파에 의해 사라 져 버렸다. 모던적 건물들의 붕괴와 더불어 우리가 당면한 사회 문제들을 테크놀로지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역 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떠난 텅빈 자리를 과연 무엇이 채울 수 있단 말인가? '환영'과 무지목매함의 암흑 속에 갇혀 있던 모 던 이전 시대로 회귀할 리는 만무했다. 찰스 젠크스는 그 자리에 '이중-코딩(double-coding)'을 추천하고 나선다. 다 시 말해, 모더니즘을 뒤이어 등장한 건축 양식은 단순히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실제 그 건물을 사용 하는 사람들에게 안락함(편리함)과 유희적(익살스러운) 요소를 동시에 주기 위해서, 모더니스트적 건축의 기능성과 그 외의 다른 요소 들(예를 들어, 고전적인 건축 양식에서 '인용해 온' 요소들)의 조합을 꾀했다. 모더니즘을 떠나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 다원적 인 양식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제 주도적으로 군림하는 건축 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던한 건축이 자족성(自足性)을 기본 원리로 해서 '일관된' 양식을 추구했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은 다양한 의미 와 상징들을 건축에 담아 퍼뜨리려고 한다.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건물들이 뉴욕에 있 는&nbspAT &&nbspT 건물과, 뉴저지주 프린스톤에 있는 고든 뷔 식당 Gordon&nbspWu&nbspDining&nbspHall이 다.&nbspAT &&nbspT 건물의 아래 부분은 인터네셔널 스타일인데 반해 지붕은 로코코 양식으로 되 어 있고, 고든 뷔 식당은 서리아나Serliana양식을 도입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가장 탁월한 예로 손꼽히는 건물 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네우 슈타츠 미술관Neue&nbspStaatsgalerie이다. 이 건축물의 중심부 는&nbsp18세기적인 석조건물인데 반해 건물의 테두리는 빨간색 철골 구조가 둘러치고 있으며, 이 철골 테두리 외에도 코믹 한 터치가 두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건물 측면의 벽에 마치 이빨이 빠진 것처럼 구멍을 뚫어놓은 것과 건물 외부에 입방형 철골 구조 로된 원시오두막 형태의 택시승강장이 그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건축에 있어서 위와 같은 조류는 단순한 절충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 면, 위에서 살펴본 이중-코딩 양식은 단일한 의미나 단일한 질서가 가능하다는 모던적 사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라고 할 수 있 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적인 모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고이다. 일관된 진리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 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모더니즘의 근거 없는 주장들을 거부한 데 대해 찬사를 보내야 한다. 모더니스트들 이 주장한 순수한 기능성에 기초한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합리주의자들의 기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이 모더니스트들의 부정적인 것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면서 긍정적인 것들까지 통째로 내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차 가운 합리주의 대신 낙관적 비합리주의를 취한 것 뿐이었다. 이 글의 결론 부분에서 다룰 내용을 약간만 언급해 보자면, 포스트모더니 스트들도 모더니티가 가진 합리주의-비합리주의 딜레마를 극복해 내지 못했다.
 포스트모던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펴볼 두번째 지표는 이 글의 첫부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장-프랑스아 리오타르 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정보 사회에서의 지식의 위상』이다. 퀘백 정부 산하 대학 정책 자문 위원회의 요청으로 제출한 이 책은 제목 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커다란 파급 효과를 끼쳤다. 그 이유로 우리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이 책이 당시 문 화의 주된 흐름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음과 동시에 그러한 흐름을 확산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포스트모더 니즘의 또 다른 선구자인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nbspJameson이 앞의 책을 영어로 옮긴 번역본 서문에서 제시 한 것으로서, 리오타르의 책이 여러 영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포스트모던 논의의 교차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리오타르 의 책이 미국에 일으킨 반향 역시 그 책에 담긴 논의가 과학, 기술, 지식의 통제 등 여러 영역을 포괄하고 있었다 점에서 기인한다 고 볼 수 있다.
그 책의 논지는 한마디로 우리가 더 이상 '거대 이야기 metanarrative(le&nbspgrand&nbspr&nbspcit)'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 던 이전의 사람들은 지식의 정당성을 '이야기'를 통해 획득하였다. 그러나 지식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모 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야기와 정당화 사이의 관계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예를 들어 과학적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제 이야 기에 호소할 수 없고, 자신의 주장을 실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모던 시대가 자기 정당화라 는 원시적이고 권위적인 이야기 구조로부터 탈피해 객관적인 기준들에 의해 지식의 정당성을 확보하였으므로 한층 진보한 것 같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던 시대의 지식 역시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예를 들어, 모던 시대 를 탄생시킨 과학적 방법론은 온 우주를 지으신 합리적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 들은 계몽주의의 이념인 '진보: 이성의 빛을 통해 모든 억압으로부터 인류의 해방' 이라는 거대 이야기 속으로 통합되고 체계 화 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리오타르에 따르면, 제&nbsp2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 동안 그 '진보'라는 모던적 거대 이야 기는 신뢰를 상실했다고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야기들은 힘을 잃어왔고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에 의해 계속해서 교체되어 왔기 때문 에, 모던 사회를 정당화 시켜온 거대 이야기가 이제 그 힘을 상실하고 다른 거대 이야기에 의해 대체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 다. 그러나 이 상황은 거대 이야기의 전이(轉移)가 아니라 거대 이야기 자체의 몰락(沒落)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그 성격을 완전 히 달리한다. 이제 여러 상이한 이야기들을 체계화 시켜주고 통합시켜줄 거대 이야기가 없어진 것이다. 제&nbsp2차 세 계 대전 이후 급속도로 진전된 과학의 과도한 분화와 생태학적 문제 의식은 이러한 상황을 알리는 전조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거대 이야기라는 중심이나 총체성으로 환원되지 않은 채, 서로 이질적 인 상태로 공존하는 작은 이야기들의 장(場)에 서 있는 것이다. 리오타르는 비트겐슈타인이 사용한 개념을 인용해서 상이한 각각의 이 야기들을 '언어 게임linguistic&nbspdoing'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통합해 온 거 대 이야기의 위엄과 작별하고 분화된 작은 이야기가 자율성을 만끽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이야기가 사라진 지 금 과학 역시 통제되기 어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학술적인 토론 등으로 보편적인 합의에 이르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리오타르는 오히려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 한다. 이제 과학은 보편적인 합리성이나 진리에 의해 수행되는 것 이 아니라 실용성이나 힘의 논리에 의해 조작될 위험에 처해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과학은 이제야 비로서 상상력의 자유를 획득 했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사고 양식이라고 알려진 '배리성(背理性,&nbspparalogy)'을 이용하여 우리 는 이성을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새로운 탐구의 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거대 이야기가 아 닌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전체주의적 지식의 '테러'에서 벗어나서 지역적이고 제한된 계약의 한계 내에서 미시적인 언어 게임 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지표, 즉 새로운 건축양식과 리오타르의 책은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의 긍정적인 면 뿐아니라 문제점까지 도 제시해 준다. 포스트모던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은 아무래도 학문적인 연구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포스트 모던이 학문적인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스트모던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쳐왔다.  우리는 그 흔적을 다양한 영역에 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우선 포스트모던 록 음악의 등장이 그 예이다. 
 또한 '심슨네 가족들The&nbspSimpsons'나 '비비스와 버트헤드 Beavis&nbspand&nbspButthead'같은&nbspTV 만화는 포스트모던 건축 양식에서와 마찬가 지로 이중-코딩 요소를 보여준다. 포스트모던의 학문적인 내용과 일반문화의 상호 관계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첫째, 그 둘 사이에 는 삼투압 현상 같은 효과가 있었다. 즉, 포스트모던 학자들이 강의한 내용은 그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 의해 널리 퍼져나가고 유행하 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로, 그 둘은 특별한 인과관계 없이 나란히 발전해 나간 경우도 있었다. 포스트모던의 학문적인 요소는  일 반 문화로서의 포스트모던을 위한 풍향계로 작용했을지는 모르나 양자는 서로 분리된 상태로 각각 발전해 나가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 일어난 학문적인 논의야말로 포스트모던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더 니스트들 중 일부는 우리 시대를 가장 암울한 시기라고 평가할만큼 극도로 회의적인 사람들이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 들은 오늘날과 같이 파편화된 시대 속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 대신에 찰나적인 통찰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로티 Richard&nbspRorty 역시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실용성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미 국 독자들을 매혹시켰던 자끄 데리다Jacques&nbspDerrida는 롤랑 바르트Roland&nbspBarthes 의 이론을 받아들여, 순간적인 쾌락만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본다. 이와 달리 우리시대를 긍정적으 로 평가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있다. 그들은 포스트모던을 여성이나 소수에게 행해졌던 억압 같은 과거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 는 좋은 기회로 여긴다. 
 많은 신학자들이 포스트모던 이론을 나름대로의 목적에 따라 이용해왔다. 마크 테일러Mark&nbspTaylor는 조 물주-피조물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이원론'을 배격한 무신론적 신학을 주장한다. 그는 신학이란 '상징적 이해를 통해 드러난' 상대 적 진리를 기반으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존 밀뱅크John&nbspMilbank는 사회비평에 포스트모던과 기독교 모두를 이용 하려 든다.
그는 포스트모던 분석은 실증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전통 사회학 이론의 오류를 바로 잡는데 유용하다고 보았 으며, 기독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자기 모순성과 거대이야기의 부정으로 인해 '차이'만이 존재하게된 포스트모던 사회의 통합과 조화 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알렌Diogenes&nbspAllen, 오든Thomas&nbspOden과 같은 신학자나 월쉬 Brian&nbspWalsh같은 기독교 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복음전도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알렌은 흄이나 칸 트 같은 모던 시대의  정적(政敵)들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 세계 전반 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다. 
위에서 언급한 오든은 자유주의적 배경으로부터 복음적인 신앙으로 돌아선 사람이다. 그는 역사를 '모던 이전 시대:정통주 의, 모던 시대:정통주의로부터 이탈, 포스트모던 시대:정통주의의 회복'이라는 식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모던 시대를 자율적 인 이성, 세속화 뿐아니라 이와 병행해서 일어난 신학적 오류들, 즉 형식뿐인 경건주의,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탈신화화 등으로 얼 룩진 시기로 보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오든은 포스트모던 시대야말로 정통주의를 회복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본다. 월쉬는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포스트모던 상황이야말로 기독교 세계관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

6. 우리 시대를 위한 복음 전도

  모더니티에 대한 상이한 평가들에 직면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우기 오 늘날 우리에게 닥친 철학적 난제들을 모두 해결할만한 만능열쇠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현 상황의 복잡성을 인식하면 서도 우리는 이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관통하는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이제 앞에서 살펴본 모더니티를 바라보는 두 부류 의 입장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를 각각 살핀 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보도록하자.
  첫째, 모던니티의 기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는 자들의 주장은 많은 부분 설득력이 있다. 나 역시 모더니티 의 몇몇 특징들은 우리 삶에 너무 깊히 뿌리 박혀있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본주의, 기술, 빠른 통 신, 도시화와 같은 사회적 현상들은, 그것들이 비록 중립적인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혹독한 비난과 모더니티 내에서 의 비판적 반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던 사회에 살고 있고, 이 사실 은 가까운 장래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티에 대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접근은 몇 가지 기본적인 면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 우선 그들은 모더니티 내 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의 구조적인 관련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니엘 벨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본주의 사회 와 그 문화적 위기를 자꾸 분리해서 생각하려 한다. 개인주의, 쾌락주의, 소비주의, 자본주의, 인종 차별 등은 계몽주의의 자율적 인 철학과 깊숙히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합리주의라는 우상의 어두운 측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담 스미스에 의해 주창된 자 유 시장 기능을 가진 순수한 자본주의는, 늘 보아왔던 것처럼, 필연적으로 작업 환경, 부의 분배, 인종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 어서의 왜곡을 가져온다. 하층민이나 가난한 자들은 자본주의의 적자생존원리 속에서는 성공할 가치도 없는 자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앨런 블룸과 드 수자의 대학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첫째로 그들이 대학의 현 상황을 너무 과장하였고 둘째로 그들이 대 안으로 제시한 것 역시 타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대학의 퇴조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만, 우리는 가능한 한 대학의 현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필 필요가 있다.&nbspPBC방송국이 마련한 그 유명한 토론회에 서, 토론자들은 두 편, 즉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는 운동이 오늘날 대학가에 만연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다 고 하는 사람들으로 나누어졌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보수주의자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 다. 더우기 신보수주의자들은 인권의 신장과 소수 보호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진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대학 의 교과과정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들은 서구 문명의 협소한 경쟁의식을 바로잡는데 기여하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오해의 뿌리는 고등 교육에 대한 계몽주의 프로그램을 너무 과신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들은 오늘날 모더니티의 이념 중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인 '인간의 자족적, 자율적인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