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종 목사의 평신도 신학 ⑴] 왜 평신도 신학인가?  
 국민일보&nbsp2003.7.21

최근에 평신도 신학이란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쓰 는 평신도 신학이란 말은 신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평신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신학이란 뜻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 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신학의 용어가 너무 어려워 평신도들에게 닫혀있는 벽을 헐기 위해서이다. 또 한가지는 성직자와 평신도라 고 하는 이분법적 신분의 구별을 없애고 싶어서이다. 사실 마르틴 루터가 세 가지 표어(이신칭의,오직성경,만인제사장주의)를 내걸 고 종교개혁을 했지만 아직도 만인제사장주의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신학이 목회자들만의 전유물로 남아 있는 데도 원 인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라틴어 성경만을 주장하다가 이제는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성직 자와 평신도간의 간격을 좁힌 것처럼 용어로 인해 생겨진 간격을 좁혀야 한다.전에 ‘교리도 재미있다’라는 글을 신문에 써본 경험 이 있기 때문에 욕심 없이 기독교의&nbspABC인 주기도문,사도신경,십계명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1)주기도문 서론

 
주기도문은 마태복음&nbsp6장&nbsp5~13절,누가복음&nbsp11장&nbsp1~4절에 나 온다.마태복음에는 주기도문이 산상설교 가운데 나온다.여기서 주님은 기도란 하나님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중언부언해서는 안된다고 강조 했다.조용히,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를 표현하라고 하였다.이처럼 기도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 다.누가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을 보면 그 배경이 좀 다르다.예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제 자들이 요청했다.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에 있다.주기도문은 앵무새처럼 외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 라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준대로 그런 정신과 그런 내용으로 우리의 기도를 하라는데 있다.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 리 아버지”라고 시작하고 있으나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아버지에게 부르듯 그냥 ‘아버지’하고 시작한다.내용도 “뜻이 하늘에서 이 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또 끝의 송영도 누가복음에는 없 다.사실 마태복음의 송영(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은 역대기 상&nbsp29 장&nbsp11절에서 후에 첨가된 것이다.

<대전월평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