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 무디와& R.A.토레이의 성령이해와 사역
 

R.A.토레이
1. 성령의 인격
 성령에 대해 오해하고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공연한 열정과 열심을 내서 광신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이 되는 중요한 원인은 성령을 인격자로 인식하지 않고 그 역사하심만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인격자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기독교인으로서의 경험을 원만히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 다. 성부이신 하나님과 성자이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성령이신 하나님을 모른다면 기독교적인 신관을 확실히 갖지 못한 사람이며 충분 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경험을 얻지 못한 신자이다.

&nbsp1. 성령의 인격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nbsp1) 성령은 인격자이시며 신격자이시고 또한 실재하시는데, 다만 비인격적인 감화력이라든지 능력에 지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마땅히 성령께 드려야 할 예배와 사랑과 믿음과 확신과 순종을 성령에게서 약탈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 다. 
&nbsp2) 우리가 성령을 감화력이나 능력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늘 어떻게 하면 성령을 붙잡아서 이용 할 수 있을까만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가지신 인격자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나 를 붙잡으셔서 나를 이용하시게 할 수 있을까를 원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단지 감화력이나 능력으로 여기면 결국 자만심과 자고심과 스스로 자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기는 성령을 받았다 고 광신하는 나머지 특별히 뛰어난 그리스도인이나 된 듯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거룩하신 인격자로서 우리의 마음속 에 거하셔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시고 당신의 지혜에 비추어서 합당한 대로 우리를 쓰신다는 성서의 위대한 진리는 사람을 더 겸손하 게 만들고 또한 겸손한 태도로 생활하게 하는 할 것이다.
&nbsp3) 성령에 대한 인격의 교리는 경험상으로 보아서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신자들이 성령은 한 인격자이시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기들의 신앙 경험과 봉사 정신이 전적으로 변하였음을 간증한다. 

2. 성령이 인격자이심을 증명하는 네 가지 사실
&nbsp1) 성령의 인격의 특성이 모두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고전&nbsp2:11, 고 전&nbsp2:11, 롬&nbsp8:27, 롬&nbsp15:30, 느&nbsp9:20, 엡&nbsp4:30). 
&nbsp2)인격의 특성은 지,정,의 곧 지식과 감정과 의지이다. 그러므로 신체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알고 생각하며, 느끼며, 뜻을 가지고 있는 실재는 다 인격자인 것이다. 
&nbsp3) 성령은 인격자만이 행하는 여러 행동을 갖는다.
 고전&nbsp2:10에서는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통달하시는 분, 롬&nbsp8:26에서는 기도하는 분, 
요&nbsp14:26에서는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nbsp4) 인격자의 속성만 될 수 있는 속성이 성령의 속성으로 되어 있다.
 요&nbsp14:16-17에서는 보혜사로 즉, 친구처럼 가까이 계시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표현된다. 

2. 죄인을 회개시키는 성령
 요&nbsp16:7-11을 보면 성령의 역사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을 한다.

&nbsp1. 세상의 죄를 깨우치시는 성령
 사람들은 남의 죄와 결점에 대해서는 눈이 날카롭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 아무도 세상의 죄를 깨달을 수 없으 나, 성령의 역사는 죄인들로 하여금 각성하게 하여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자기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게 하며, 또한 자기들은 하나님에게 큰 죄를 범한 사람들임을 인식하게 한다. 

&nbsp2. 성령은 세상으로 하여금 의를 깨닫게 하신다.
 누구든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죄가 무엇이며, 그 죄를 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 도의 의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두신 의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따라 서 사람이 성령에 의하여 견딜 수 없을 만큼 죄를 통회하게 되면 성령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여 주신다. 그러면 그 는 곧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준비해 두신 그 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nbsp3. 성령은 세상에 심판을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에게 임할 때에는 영원한 형벌과 심판을 깨닫게 된다.

&nbsp4. 성령은 신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깨우치신다.
  성령은 사람이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지만 그의 역사를 우리, 곧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행하신 다. 즉, 성령은 신자에게 오셔서 그 신자를 통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를 깨우치신다. 성령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을 통하지 않고서 는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도달할 방도가 없기에 성령은 신자들에게로 오셔서 그 신자를 통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죄를 통회하게 하 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께서 불신자에게 나아가는 길이 막히지 않도록 더욱 성의껏 헌신하여 성령께서 조금도 지장 받지 않고 역 사 하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3.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nbsp1.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증명하시는 성령(요&nbsp15:26-27, 고전&nbsp12:3)
 성령이 모든 일을 들어서 우리에게 선포하여 줌으로써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성령이 친 히 사람의 증거를 대신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며 직접 우리의 심령에 설명하여 주셔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깨달 아 알 수 있다.

&nbsp2.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요&nbsp3:3-5, 딛&nbsp3:5)
&nbsp1) 중생이란 허물과 죄로 인하여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어주는 것이다 (엡&nbsp2:1). 우리는 다 나면서부터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송장인 것이다. 그런데 중생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살아나 게 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 는 분은 성령이시다. 곧 중생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nbsp2) 중생의 두 번째 정의는 새로운 성품 곧 하나님의 성품, 즉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 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진리에 어두운 마음과 마땅히 미워해야 할 될 것을 사랑하는 부패한 애정과 옳지 못한 의지를 가 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에 눈이 뜨이는 지적으로 새로운 성품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좋아하는 정적 성 품과 새로운 의지적 성품을 받게 된다. 이 성품을 주는 분은 곧 성령이시다.

4. 완전하고 영원한 만족
&nbsp1. 완전한 만족(요&nbsp4:14, 요&nbsp7:37-39)
 위의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성령이며 그는 그 성령을 주심을 믿는 자와 그에게 그 선물(성령)을 간구하 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성령을 자기의 심령 속에 계실 분으로 진정 모셔들이는 사람은 완전하고도 영원히 만 족하게 될 것이며, 또한 이것이야말로 완전하며 영원한 만족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환경이나 소유물에 의해 기쁨을 가진다면 그 기쁨은 언제나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 리의 환경이란 무상한 것으로서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환경에 처하게도 되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원치 않는 환경에 처할 수도 있 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의 원천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있어서 샘이 솟아오르듯 기쁨이 솟아오른다면 환경이나 사정이나 또는 재물이 있 고 없는 데는 전혀 관계없이 언제나 기쁠 것이다.

&nbsp2. 영원한 만족
 사람이 그의 심령에 만족과 기쁨의 샘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는 세상의 기쁨의 근원에는 전혀 의지하지 않게 된다. 이 런 사람은 무도나 노름이나 극장이나 또는 그 밖의 어떠한 다른 세속적인 유쾌감에도 별 호기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 맑 은 수정과 같은 샘물이 있는데 누가 케케묵은 흙탕물이 들어 있는 웅덩이로 가겠는가! 세상의 어떤 유혹물이라 하더라도 이 성령의 샘 을 그 심령 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복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크리스천이니까 그런 곳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에서 가 아니라 그런 곳을 원치 않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그런 곳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으로서 세속적인 향락을 취하 러 가는 사람들은 아직껏 그들은 성령을 그들에게 내재시키는 생명과 희락과 만족의 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샘 이 막혀버린 탓일 것이다. 참으로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이 성령의 샘을 못 가졌거나 막혀 있을 리가 만무하다.   

5. 성령 세례의  의의
&nbsp1. 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첫째로 성령 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한 가지 역력한 경험이다. 사도행전&nbsp1 장&nbsp4,&nbsp5절에 있는 말씀은 성령의 세례는 자기가 그 세례를 받은 여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경험이 다. 사도행전&nbsp19장&nbsp2절에도 에베소에 있던&nbsp12사람은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를 분명히 알았다.
 둘째로 성령 세례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에 덧붙여서 하여 주시는 역사이 다. 환언하면 성령에 의하여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도행전&nbsp1 장&nbsp5절에는 사도들이 아직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였고 며칠이 지나야 받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령으로 세 례 받는 것과 거듭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거듭날 그 당시에 바로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예 로 고넬료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사실이다.
 셋째로 성령의 세례는 주로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이다.

&nbsp2. 성령 세례의 결과
 성령 세례의 결과는 한 마디로 말하면 권능이다.(행1:8)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권능이 누구에게 나 다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nbsp12장에서는 성령 세례는 하나이지만 성령으로 받는 한 세례 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는 여러 모양이라는 것과 또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은사는 각기 그 부르심을 받은 일의 종류 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6. 성령 세례의 필요성
&nbsp1. 어떤 사람에게 성령 세례가 필요한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어떠한 봉사를 하려면 먼저 중생케 하시는 권능과 우리의 심령 속에 내재하시는 존재자로서 의 성령을 받을 뿐 아니라 능력을 입히움, 곧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성령으로 새롭 게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주님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어렵다. 사도행전&nbsp2:4에 보면 베드로가 또 다시 성령의 충만함 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충만함'이라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이것은 전에 충만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 충만하다는 뜻이 다. 사도행전4:3절에도 '충만하여'라는 말도 바로 즉석에서 생긴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함에 있어 서 당하는 새로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때그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노 력할 때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 즉 어느 일정한 은혜를 위하여 그에 합당한 기도를 함으로써 구하여야 한다.
 성령을 새로 충만하게 하는 것과 성령 세례를 새롭게 받는 것은 같지 않다. 그 이유로 첫째는 세례라는 말에는 처음이라 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요, 둘째는 성서에는 결코 성령을 새로 충만하게 받는 것을 세례라는 말로 표현한 일이 없기 때문이 다. 

&nbsp2. 누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성령 세례는 온 교회사를 통하여 어떤 시대를 물론하고 모든 자녀에게 베푸시는 것임이 분명한 말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 의 약속은 우리 모든 신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약속을 받기에 합당한 일을 하면서 이 약속하신 것을 요구하 면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다. 또한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이 성령의 세례는 반드시 받아야 할 책임이 모든 신자들에게 있다 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만일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성령 세례를 못 받았기 때문에 성령 세례만 받았더라 면,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하였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지지 않 을 수 없다

7.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
 성령 세례를 은사로 받기 원한다면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하나님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도행전&nbsp2:38에서 "회개하여"라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은 마음의 변화다. 즉,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변 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의 변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마음을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 자가에 못박던 마음의 태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모셔들이는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 는 일이 첫 단계다. 
 둘째 단계는 죄를 단념하는 것이다. 
 이 회개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로서 곧 죄를 사랑하고 죄에 빠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로부터 죄를 배척하는 태도로 변하는 것이다. 즉, 모든 죄와 인연을 끊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죄에 대한 회개를 완전히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죄를 완전히 고백해야한다. 그 회개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방법이 바로 세례이 다. 세례란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였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간증하는 일이다. 성령 세례 는 은밀하게 예수를 믿는 시람들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인 것을 간증하는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다. 
 넷째 단계는 절대적으로 맡기는 것이다.(순종)
 사도행전&nbsp5:32에서보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다'라고 하면서 순종에 대해서 나온 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한 가지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뿐 아니 라 하나님이 명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순종의 본 뜻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다섯째 단계는 강력한 갈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보람있는 봉사를 하려면 성령 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어떠한 희생을 해서라 도 이것을 얻어야 되겠다고 갈망하는 지경에 이를 때에 이 성령 세례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성령 세례 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바라는 욕망이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령 세례 를 갈망하지 안으면 안 된다.
 여섯째 단계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눅&nbsp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 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분명한 성령 세례를 받게 하여 달라고 분명히 구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이다. 
 일곱째 단계는 믿음이다. 
막&nbsp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 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즉 우리가 구하는 성령의 세례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주시리라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무디(Dwight.&nbspL.&nbspMoody)
드와이트.&nbspL. 무디(1837~1934)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여는 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nbsp.... 유익하니"(딤후&nbsp3:16) 
무디이 이 말씀이 그동안 실제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많이 무시되어 왔고, 그 결과가 증거와 사역에서의 능력 부족으로 나타나 고 있는 것이 사실임을 직시하고, 사역에 임하는 사역자들이 참된 능력의 원천을 알고 열심과 지식을 모두 가지고 주의 일에 더욱 더 진력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위로부터 오는 이의 능력'을 받아야만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은 영적 생명을 주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은 영적 생명을 주는 것이다. 생명이 없으면 능력도 없다. 성령은 이 생명을 부여하시고 난 후, 우리를 시들 어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끊임없이 도우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몰라서 는 안 된다. 

무디가 생각하는 성령의 신분과 성품에 대해서
 "증거하시는 이는 셋이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nbsp5:7) 이 말씀 은 아버지가&nbsp1위이시며, 그리스도이신 말씀은&nbsp2위이며, 아버지와 아들과 연합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직 무와 사역을 완성하시는 성령은&nbsp3위인 것을 가리키고 있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집행하시며 성령은 적용하신 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계획하시고 일하신다. (위의 구별에 관한 성경구 절 마&nbsp3:16-17, 요&nbsp14:16, 엡&nbsp2:18)
 성령은 이해하고(to&nbspunderstand), 의지하고(to&nbspwill), 행하고 (to&nbspdo), 부르고(to&nbspcall), 느끼고(to&nbspfeel), 사랑하는 (to&nbsplove) 모든 능력을 속성으로 가지신다. 성령은 오직 인격에 해당되는 속성들을 갖는데, 행위와 행동은 기계 나 감화력이나 결과로서 수행될 수 없고, 그분에 의해서만 수행된다. 

무디&nbsp- "복음선포와 성령은 분리될 수 없다"
 복음선포와 성령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성령이 능력으로 복음과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복음 전파의 노력은 헛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무덤에서 살아나셨고, 그리스도의 죽은 몸을 살리려고 행사된 그 능력이 우리의 죽은 영혼도 살려 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 능력을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며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 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nbsp28:19-20) 이 마지막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우리는 성령과 성자가 성부와 동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으며 가서 모든 족속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나 혹은 적당하고 생각하는 것만 취하거나 어두운 이성 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감동시키고 선포된 말씀을 확증시키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께 관한 것 을 선택해서 우리에게 계시하는 일은 성령의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의 거룩한 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 말씀을 전하였다. 

성령의 인격성?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성령을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단순한 감화력이 아닌 한 인격으 로 말씀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요&nbsp14:16,&nbsp17,&nbsp26) 성령은 삼위 중 의 한 분, 곧 하나님의 한 인격이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그리스도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사랑이시다. 우리는 사랑이 성령의 열매임을 알고 있다. "소 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nbsp5: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사랑을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에 그 사랑이 부 은 바 되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준비가 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사랑과 인내에서도 역시 온전 하라 고 가르친다.(딛&nbsp2:2)  

성령, 진정한 충만이란?
 만일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사랑을 부여하는 것이 성령께 서 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고후&nbsp5:14) 바울은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니면 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레미야는 사악한 세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였다. 어떤 희생에도 불구하고 침묵 할 수 없었다.(렘&nbsp20:7-10)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임하시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쉬워질 것이다. 

소망을 잃은 사람은 쓰지 않는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nbsp15:13)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 일에 소망을 잃은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소망 을 잃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떠나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망을 나누어주는 것은 성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가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과 봉사를 위해 우리 위에 임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과 봉사를 위해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시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모세의 성막이 완성되 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성막에 충만하였다.(출 &nbsp40:3-50)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이기심과 야망과 자기본위 와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는 모든 것이 비워지자마자 곧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의 마음 구석구석을 채우실 것이 확실하다. 충만하려면 비 워야 한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였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그 성전을 충만케 하였다. 그런데 신 약성경으로 넘어가면서 성막과 성전 대신에 신자들이 성령의 전임을 알게된다. 오순절 날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성령이 강력 한 권능으로 임하셨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전&nbsp6:&nbsp19-20) 성경은 모든 신자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요&nbsp14:17, 요일&nbsp4:4, 고전&nbsp3:16) 그러나 그는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 고, 마땅한 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안에 성령이 거하시기는 하지만 아직도 성령께서 는 그 능력으로 그들 안에 거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능력 없는 아들딸을 많이 두고 계신다. 

성령의 능력의 임한 사람은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된다.
 교인들 중에서 십 분의 구 이상이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능력도 자유 함도 없고, 그리 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당연히 갖고 있어야만 하는 사랑도 없다. 하나님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가졌던 능력이 다. 만일 우리의 교회가 그 능력을 가진다면, 새로운 생명력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영적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원 하며 성령이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입혀 주시기를 원한다. 그러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성령 의 검"을 사용하는 법을 알 것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법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교 회가 대적을 물리칠 수 없는 이유는 성령의 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엡&nbsp6:14-17)

성령의 검은 말씀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이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된다. 회의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 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홀로 못하실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도구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성 경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게 해드린다면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만 전했다.
 성경 전체를 통해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만을 전하였고, 자신을 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만을 전하였던 것이다. 세례요한의 부친 사가랴(눅&nbsp1:67-70, 눅&nbsp1:76-80), 엘리사벳과 마 리아(눅&nbsp1:42-55), 시므온(눅&nbsp2:25), 베드로(행&nbsp2:14-41), 스데반 (행&nbsp6:10), 바울, 바나바,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성령 충만을 받고 말씀을 전하였다. 성령이 교회에 강림하셔 서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으면 말씀이 거리거리에 도회지의 골목골목에 시골의 구석구석에 널리 전파될 것이다.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요&nbsp4장에 사마리아의 우물에 물을 길러 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구원의 잔을 내미 셨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것은 그녀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14절)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 장 잘 표현된 것을 보기 위해&nbsp7장을 보면 주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 라"(38절)라고 되어 있다. 성령이 봉사를 위해 우리 위에 임하셔서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으면, 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아들을 증거 할 능력을 갖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충만하여 더 이상 억제할 수 없게 되면,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재 하셔야 한 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과 육체와 악마를 이길 수 있는 어떤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혈기, 교만 등 모든 악들을 이 길 수 있는 어떤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비울 때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아들을 증거할 능력 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성령 없이 어떻게 그 일을 하려고 하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 없이 어 찌 그 일을 하려고 하는가? 

능력을 받지 않고 일을 하면 실패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nbsp20:22) 주님이 제자들에 게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이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때 성령을 받은 것은 분명하 다. 그러나 그것은 후에 그들이 사도의 직무를 위해 자격을 갖추었을 때와 같은 큰 능력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님이 그 당시 에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은 충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능력을 받으려고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름 바 름도 없이 일하러 나선다. 그들은 능력을 받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 물라"(눅&nbsp24:49)고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nbsp1:8) 성령이 우리 안에(in)에 거하시는 것과 그리고 우리 위(on)에 임하시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성령 의 임하심 없이 일하는 사람은 결국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능력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복음증거의 열매 를 맺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머무르는 것은 참된 봉사의 임무이다.  

성령 충만을 유지하려면 그릇을 샘가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성령이 두 번째로 강림하셔서 땅이 진동하였으며, 그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함을 입게된다. (행&nbsp4:31) 우리는 새는 그릇이어서 그리스도의 충만을 유지하려면 그 그릇을 언제나 샘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계 속 새롭게 공급받을 수 있다. 이전에 받은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공급된 것, 즉 새로운 기름부음 과 새로운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목이 말라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생수를 부어주신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불모지와 같은 사람과 성령 충만하여 싱싱한 월계수와 같이 열매를 맺 고 있는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른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부어주시기 때문이 다. 기름부음을 구하는 자에게 간절히 소원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것이다. 주의 일꾼들을 파괴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 아 니라 능력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종은 꼭 붙어 다녀야 한다.
 엘리야와 엘리사에 관한 아름다운 기사 있다.(왕하&nbsp2:1-15) 엘리사는 엘리야를 꼭 붙어다녔다. 엘리야 가 엘리사에게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라고 묻자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의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대답 하였다. 엘리야가 하늘보좌로 취하여 감을 입자 스승의 겉옷을 집어들고 돌아가는 길에 요단에 이르러서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께 부르짖 었는데,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마른땅을 건너게 되었다. 그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 사 위에 머물렀다"고 말하였다.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 임했던 것이다. 엘리야의 영감이 나에게 머물기를 원한다면 구하면 얻 게 될 것이다.  

닫는 말
19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였던 무디, 그는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은 바로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었다. 성령이 그와 함께 하셨을 때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성령관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선입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종이 되겠다는 자세로 무디를 관찰하면 무디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적 능력의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것이다. 

  < 참고도서 >
R.A.&nbspTorrey,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한국양서,&nbsp1983.
R.A.&nbspTorrey, 성령의 사역, 기독교문서선교회,&nbsp1984.
R.A.&nbspTorrey, 성령론, 대한기독교서회,&nbsp2000.
D.&nbspL. 무디, [무디의 능력의 비결], 정명신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nbsp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