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사회적 선교

 
호남신학대학교/ 노영상 교수
 

1. 사회적 목회로서의 사회적 선교

 

 &nbsp1) 선교의 정의

  선교(mission)는 라틴어 동사&nbspmittere(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한다. 그리 고 그 동사의 명사형인&nbspmissio는 '내보냄'(sending&nbspout)을 의미하는 바, 그런 의미에 서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입은 사람들이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으로 정의될 수 있 다.1) 이 선교의 정의에는 크게 네 가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와/ 보내심 과/ 그리고 그 보내심의 목적이다. 먼저 위의 선교의 개념은 선교의 주체가 인간이나 교회가 아니며, 보내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한 다. 기독교의 선교는 교회의 팽창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선교이기보다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선교 (Missio&nbspDei)이며 성령님에 의한 선교인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을 향해 보내신다. 교회가 세 상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교회-세상 의 구도에서, 하나님-세상-교회의 구도로의 전환이 요청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확장만이 선교의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같다. 무엇 을 위한 교회의 확장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선교를 하며, 항상 하나님의 보내심의 목적으로서의 샬롬의 구원 을 계속적으로 상기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의 목적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의 구원론의 문제와 연결된다. 하나님은 어떠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의 구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은 우리 선교의 방향정립과 직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고 부르신 사람들을 보내시는 일을 선교라고 정의할 때, 그 선교의 개념은 포괄적인 것이 될 수밖 에 없다. 이에&nbsp20세기 들어 다양한 선교의 개념들이 전개되었다. 보쉬 (David&nbspJ.&nbspBosch)는 이같은 다양한 선교의 개념들을 그의 책 『선교의 변 혁』(Transforming&nbspMission)에서 길게 다룬 바 있다.2) 그 다양한 선교의 개념 중에 증거 (witness), 봉사(service), 정의(justice), 치유(healing), 화해(reconciliation), 해방 (liberation), 평화(peace), 복음전도(evangelism), 교제(fellowship), 교회개척 (church&nbspplanting), 상황화(contextualization) 등이 포함된다. 어떻게 보면 선교의 개 념 가운데에 교회의 전 사역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 다양성을 좁은 정의로 환원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 러나 모든 것이 다 선교라면, 선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의 범선교주의(panmissionism) 를 경계하며, 선교의 의미를 나름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nbsp1950년대에 와서 선교의 개념이 호켄다이크 (Johannes&nbspC.&nbspHoekendijk)에 의거, 케리그마(선포), 코이노니아(교제), 디아코니아 (봉사)의 측면을 포괄하는 말로 정의된 이래, 선교는 복음전도라는 좁은 정의를 넘어서 통전적인 개념을 갖추게 되었다. 하나님의 복 음을 안 믿는 자들에게 증거(witness)하며 선포(proclamation)하고, 그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상호교제 (fellowship)를 나누며, 그러한 친교 가운데에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service)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선교라 는 것이다.3) 이후 선교의 개념 속엔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뿐 아니라, 디다케와 레이투르기아의 개념들이 덧붙여졌 는 바, 선교가 교회가 담당하는 목회의 전 사역으로 확대된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4) 

  지난 세기의 선교개념의 확대를 통하여, 선교는 교회의 전 목회사역에 걸쳐있는 일이 되었는 바, 이에 대한 나름의 설명 이 필요할 것같다. 먼저 우리는 기독교의 선교를 교회가 하는 전 목회사역과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의 교육과 양육 (nurture), 예전, 상담, 봉사 등의 전 사역은 교회의 선교의 일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과의 직접적인 연 관이라는 차원에선, 그러한 교회의 전사역이 선교의 개념 속에 포괄되어진다. 그러나 간접적인 연관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교 회의 사역들은 선교의 일과 구분되어진다. 이에 있어 우리는 교회의 일에서 선교만이 중요하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 다. 선교 외의 여타의 사역들도 교회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일들이다. 전통적으로 신학자들은 선교를 복음전도 (evangelism)로서 국한하여 정의하여 왔다. 보쉬는 복음전도를 정의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이 회개하 고 회심할 수 있도록 부르고, 죄의 용서를 선포하며,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살아있는 구성원들이 되도록 하며, 성령의 능 력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봉사하는 삶을 시작하도록 초청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해 선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5)  선 교의 사역의 중심(center)이나 핵심(core)은 복음전도이나, 그것은 교회의 여타의 사역들로서의 교제 및 봉사의 일과 깊 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러한 요소들을 선교 사역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바, 그것들은 선교의 적극적인 구성요소로서의 위 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선교를 말할 때, 복음전도를 중심적인 것으로 보아, 여타의 요소들을 이와의 관계에서 해석하고자 노력하 는 것이 필요하다.6)

 

 &nbsp2) 통전적 선교로서의 사회선교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선교의 개념은 기독교의 구원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구원의 개념이 넓어지 면 선교의 개념도 넓어지고, 구원의 개념이 좁아지면 선교의 개념도 좁아지게 마련이다. 기독교의 구원을 내세적인 영혼의 구원으 로 볼 때, 선교의 개념은 영혼을 구원하는 좁은 영역에만 국한된다. 그러나 구원이 인간의 영혼구원뿐 아니라, 육의 구원, 더 나아 가 사회에 대한 책임 및 구원과 만물의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확대되면, 그에 따라 선교의 영역도 넓어지게 된다. 전통적으로는 선교 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말씀의 선포와 복음전도에 국한하였다. 그러나 이후 확대된 선교의 개념 속에는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의 건설로서의 사회구원의 개념이 포괄되었다. 기독교의 구원엔 영의 구원과 함께 육이 구원이 포함된다. 또한 기독교의 구원은 개인구 원뿐 아니라, 사회구원의 의미도 담겨있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기독교인들의 사회봉사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기독교의 구원의 범주에 넣 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그릇된 선교개념의 설정에서 야기하는 것같다. 우리는 선교를 개인구원 (individual&nbspsalvation)+사회구원(social&nbspsalvation)이라는 두 개의 나누 어진 것을 하나로 더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사회의 구원 및 육의 구원은 그 내면에 영적인 구원의 문제를 담고 있다. 눈 에 보이는 육의 구원 이 세상의 구원은 눈에 보이는 문제만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의 문제 및 영적인 구원 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정치경제의 문제는 그것 자체의 문제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와 정신의 문제, 신학과 윤리의 문 제, 종교와 영성이 문제로 귀속되기 마련이다. 영이 없는 몸, 몸이 없는 영은 모두 공허한 허구이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이원적 인 것들의 결합의 문제가 아니며, 깊이의 차원에서 연결된 두 가지 다른 것의 통합으로 보아야 한다.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선교 (social&nbspmission)를 포괄한다. 전자는 말씀의 전파를 통한 개인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며, 후자는 말씀 의 실천을 통한 사회봉사와 사회변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봉사로서의 사회선교는 그것의 깊이에 있어 영적인 복음전도와 연 결되어 있다.

 

 &nbsp3) 사회적 목회와 사회적 선교

  다음에서 우리는 미국장로교 총회의 직원으로 있었던 헷셀(Dieter&nbspT.&nbspHessel) 의 사회적 목회(social&nbspministry)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사회선교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사회선교 는 사회적 목회의 일환이다. 이에 사회적 목회의 방향정립은 사회선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헷셀은 사회적 목회라는 말 을 사회적 목회들(social&nbspministries)이라는 복수와 구별한다.7) "사회적 목회들"로서의 복수는 목회 의 일과 구별된, 교회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는 별도의 일들을 언급한다. 무료급식소, 교회의 복지관,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 램, 지역을 위한 의료시설, 집 고쳐주기 운동 등 교회는 사회를 위해 이 일 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수로서의 사회적 목회 란 이런 일과는 다르다. 그 "사회적 목회"는 본질적으로 목회가 사회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저런 사회봉사를 함으로써 목회 가 사회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 자체를 사회적인 것으로 정위시키는 것을 말한다. 교회가 사회적 봉사를 한다는 것과 목 회 자체가 사회적이라는 말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적 목회"들"을 강조하는 목회자는 혹시 부족한 사회적 관심들이 없는가 하 며, 사회적인 행동들을 찾아 분주해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목회를 하는 자는, 그와 같이 분주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 다. 왜냐하면 전 교회의 삶이 애초부터 사회적인 방향으로 정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목회는 사회봉사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 다. 그것은 질의 문제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회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삶과 목회의 본질이 근본으로부터 사회 변혁적으로 연계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회는 목회이고 사회봉사는 사회봉사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 그 자체 의 일 속에 사회정의를 향한 행동이 포괄되어야 한다는 것이 헷셀의 주장이다. 목회의 한 부분으로서의 선교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다. 사회적 선교는 선교에 부가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선교는 사회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변혁의 문제 와 연계되어 생각되어지지 않는 개인 영혼의 구원이란 충분한 것이 못된다. 사회적 선교는 선교의 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 의 선교가 전체에 있어 사회적인 것으로 정위됨이 요청된다. 교회는 선교에 있어 개인의 영혼구원의 문제를 정치, 경제, 사회, 문 화, 교육의 문제와 연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겠다. 

  헷셀은 이전의 이원론적인 목회방식을 극복할 것을 말한다. 영적인 발달과 사회정의를 행하는 것 사이를 분리하는 것, 신앙 의 개인적인 면과 집합적인 명을 분할하는 것, 교회를 양육하는 것과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행동을 분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 다.8) 참다운 목회는 개인적인 동시 정치적으로 행동적이며, 연민(compassion)과 함께 용기를 강조한다. 또한 경축 (celebration)과 동시 도덕적 요구를 한다. 사람을 초대하여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며, 아울러 사회를 변혁한다. 영적인 갱 신과 사회참여는 다른 것이 아니다.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극단이 아니 며, 전체에 있어 하나이다.9) 개인적인 경건과 사회적인 행동, 영성과 정치, 믿음과 행함, 관상(contemplation)과 투 신(commitment), 기도와 행동,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영과 육, 종말과 역사,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 하늘 과 땅, 신앙과 해방은 우리의 목회에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헷셀은 사회적 행동이 목회에 연결되어 있으며, 목회를 통해 배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설교, 복 음의 증거, 교회교육, 교회의 행정, 목회적 돌봄과 상담을 통하여 이런 사회적 정의가 부각되고 실천을 향해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목회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내용 을 그 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일례를 들어 오늘의 실업 문제에 대한 교회의 참여에 대해 생각하여 보자.10) 이전의 생각들 은 그 실업의 문제를 교회의 목회나 예배에 상관없는, 하나의 목회 밖의 부가적인 교회의 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업의 문제는 하 나의 부가적인 일이 아니며, 목회 속에 끌고 들어와 구현하여야 할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예배 시 실업의 문제를 걱정하는 기도문 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성경 가운데에는 이러한 실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들이 얼마든지 많다. 성서의 말씀에 근거하여 실업에 대 한 설교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업의 문제를 다루는 찬송과 복음성가 만들기, 실업자들을 위한 헌금 등, 그러한 논의가 우리의 교 회 내의 활동을 통해 수렴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배는 예배이고, 사회적 행동은 다른 것이라는 투로 양자를 분리하여서는 아 니된다. 예배가 곧 사회적 행동이요, 사회적 행동은 예배 속에서 배태되는 것이다. 교회의 교육도 그렇다. 실업의 문제를 다루는 성 경공부 시리즈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주일학교의 공과공부를 통하여 인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정리할 수도 있겠 다. 교회의 행정도 교회만을 위한 교회 내적인 행동으로 국한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행정이란 사람과 재정을 목적에 맞게 조직하 는 일이다. 무엇을 위해 인력과 재력을 사용할 것인가? 우리는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면서 대사회를 위한 부분에 염두를 두어야 한 다. 헌금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서, 이는 이웃사랑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로 쓰여지게 된다. 사회문제를 예배 안에서 승화하고 예 배를 통해 사회문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사회적 목회"가 추구하는 바이다. 

  우리의 목회가 사회적 목회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선교는 사회적 선교로 정위될 필요가 있다. 선교의 일 중에 사 회적 봉사의 일을 포함함으로써 사회적 선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선교의 모든 일들이 사회변혁의 문제와 애초부터 연계되 어 전개됨으로서, 그 선교는 사회적인 선교가 된다. 우리의 복음전도는 사회의 봉사의 일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 서 경제의 문제는 세속적인 영역 내에 머물러 있지 않다. 경제는 그것의 깊이에서 신앙의 문제 및 기독교의 구원의 문제와 조우한 다. 경제나 경영(administration)을 말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하나님의 경륜 (dispensation)이나 청기기직(stewardship)라는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불러 그 자신과 함 께 세상을 경영하는 방식이 경제로서,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다.11)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의 선교의 개념 속엔 자연히 경제의 문제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 

 

 

2. 사회적 목회의 방법론에 따른 사회적 선교의 실천 과정

 

  필자는 헷셀의 사회적 목회이론에 근거하여 목회의 한 부분인 선교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적 선교의 이론의 틀에서 오늘의 경제상황 속에서의 교회의 선교의 방향에 대해 진단할 것이다. 이에 있어 사회적 선교는 선교 의 한 구성요소가 아니며, 선교가 전체적으로 사회적이어야 함을 필자는 앞에서 주장한 바 있다. 선교는 목회의 일부로서 전체적 목회 사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선교를 제외한 목회의 일들이 우리의 선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 다. 교회의 예배는 우리의 선교전략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목회자의 설교는 교회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교회교 육, 교회의 재정전략, 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성실성 등은 교회의 선교와 성장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교의 문 제를 논할 때, 교회의 전사역의 차원에서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의 여타의 사역에 무관심 한체, 선교의 일 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길은 없을 것이다. 

  헷셀은 자신의 사회적 목회의 방법적 과정을 그의 책 『사회적 목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먼저 이슈 (issue&nbspselection)의 선택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분석(analysis)의 과정이, 그리고 교육 (education)과 행동(action)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헷셀은 교회가 이슈를 정하는 과정에 원칙이 있음을 설명하였 다.12) 다음으로 분석의 과정 중엔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반성의 단계가 포함된다. 이후 행동의 실천이 이어지며, 다음 단계로 수행 한 실천에 대한 피드백 과정이 계속된다. 그는 이 같은 각 과정 중에 제기되는 질문들을 그의 책 『사회적 행동 입문』에서 설명하 고 있다.13) 먼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특별한 사회적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슈의 선택 단계에서 제기된다. 다음으로 분석 의 단계에선 왜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셋째 단계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된다. 우리는 그것에 관하 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떠한 처방이 필요하며, 그것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변화를 위해 어떤 정책과 실천 을 수행하여야 하는가? 누가 힘을 가지고 있으며, 누가 힘을 필요로 하는가? 네 번째의 질문은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떻 게 움직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같이 하여야 하는가 등의 작동 단계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이 필요 하다. 마지막의 질문은 어떻게 그 행동이 상황을 변화시키는가의 문제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며, 그러한 해결책에서 새롭게 야기되 는 문제는 없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중요하다. 사회적 목회를 위해서는 그와 같이 먼저 사태를 파악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 한 분석을 수행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그 분석에 따른 그에 대한 성서적이며 신학적인 반성이 요청된다. 그 다음 실천이 이어진 다. 이에 있어 교회와 기독교인은 그의 실천이 목회적인 것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사회경제적 분석과 성서 적 신학적 고찰을 거친 다음, 그것은 목회의 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중심이 예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행 동은 예배와 함께 시작되어야 하며, 예배를 통해 배태되어야 한다. 

  위에서 헷셀의 사회적 목회의 방법론적 과정을 간단히 서술하였다. 그는 우리의 목회에 사회적인 행동이 부가되어야 한다 고 말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목회 자체가 사회적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과 목회는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것 이 되어서는 안된다. 땅의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천상적인 언어로만 우리의 신앙을 기술한다면, 우리의 목회는 우리의 삶과 무관 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또한 그것은 출애굽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 는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 및 자연과의 관계로 이어져야 하며,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이며 신비 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의 목회위기는 우리의 설교와 전도가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자유와 해방 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선교를 위해 구체적인 현실상황을 분석하여야 하고, 그것에서 하나님의 구원 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겠다. 선교의 성공은 지역 주민과 지역사회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전제한다. 선교와 전도를 성공적으로 수 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구체적인 고민과 지역의 근본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지역주민들이 안고 있는 영적이며 정신적 인 문제들, 지역의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 지역사회가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일들에 대한 이해가 명백하여지면 질수 록, 우리의 목회와 전도는 초점을 갖게 되며, 그로 인한 복음의 적용도 더욱 첨예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설 교할 수 있도록 하는 신학교육, 우리의 삶의 문제 심리적인 갈등 등이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승화되는 기작을 연구하는 신학 등의 실 천적 신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겠다. 왜 영의 문제가 육의 문제이며, 육의 문제는 영의 문제인가? 우리는 이러한 영과 육 의 연결, 하늘과 땅의 연결, 신앙과 삶의 연결에 대해 치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제의 문제도 결국에는 영성의 문제 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경제의 문제가 근본에서 종교의 문제라고 말하며, 영적인 문제만을 다루면 자연 눈에 보이는 빵의 문제 는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환원주의적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nbsp. 

 

 &nbsp1) 사회적 분석

  먼저 사회적 분석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14) 사회적 분석은 사회적 상황의 역사적이며 구조적인 관계성들을 탐색 함에 의해서 그 사회적 상황에 대한 더 완전한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15) 사회적 선교를 위해서는 이러 한 분석의 단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분석이 없는 신학적인 반성이나 결단은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것이 되어 그릇되고 무관한 판 단이 되고 만다. 사회적 분석은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목회를 보다 원활하게 한다. 사랑은 상황의 분석을 요청한다. 그렇지 않 을 경우, 사랑한다는 열정이 남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남을 진정 사랑하는 자는 사랑의 대상이 처한 환경에 무관심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분석을 통해, 우리의 이웃이 처한 상황을 분명히 알게 되고, 그로 인하여 남을 사랑할 수 있 게 될 것이다. 이그나티우스 전통에 따른 영성적 용어에 "판별하는 사랑"(discreta&nbspcaritas)이라는 말 이 있다.16) 그 사랑이 충분한 것이라면 사회적 분석을 통한 판별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우리의 목회가 이 같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분석 노력을 통해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설교나 선교는 더욱 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물론 사회적 분석 자체가 하나의 답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답변을 위한 반성에 정보와 사실의 자료들 을 제공하는 하나의 도구적인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같은 도구적인 역할이 선행됨이 없는 신학적인 답변은 공허한 것이 되 고 말 것이다. 질문을 통해 답변은 더욱 초점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를 다루는 선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를 통한 사회적 선교 를 위해서는 오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사회적 분석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실업, 인플레이션, 굶주림과 같은 사회적 이슈(issues)를 다루는 차 원, 실업대책이나 통화규제 등의 사회정책(policies)을 다루는 차원 및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제도들의 체계 (systems)를 다루는 차원 등의 세 가지이다. 특히 이 중에서의 마지막 차원인 사회적 체계의 분석에는 시간적인 분석으로서 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nbspanalysis)과 공간적인 분석으로서의 구조적 분석 (structural&nbspanalysis)의 두 가지의 분석이 포함된다. 역사적인 분석은 사회체계의 변동에 대한 분석이 다. 구조적 분석은 주어진 시간에 나타난 체계의 틀거리에 대한 단면을 제시한다. 또한 이 사회적 분석 단계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 은 객관적 분석과 주관적 분석으로서의 구분이다. 객관적 분석은 다양한 조직관계, 행동패턴, 제도 등의 내용분석에 의해 수행되 며, 주관적인 분석은 의식, 가치, 이데올로기 등의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실상을 분석해 낼 때마다 그 에 개입되는 이 같은 주객관적 전제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17)

  홀랜드(Joe&nbspHolland)는 사회적 분석을 위와 같이 역사적인 면과 구조적인 면으로 구분하였다. 역사 적인 분석은 그러한 상황이 생기게 된 과거의 배경과 그에 따른 오늘의 상황 및 미래에 대한 전망을 통해 파악되어진다. 또한 구조적 인 분석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구조, 정치적인 구조, 사회적인 구조와 관계성, 문화적인 구조 등 다차원적인 구조에 대한 인식이 요청 된다. 이런 사회적 분석은 분석자가 가지고 있는 전망(perspective)과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의 방 법 및 그가 사용하는 이론(theory)적 방법 또는 그것의 받침이 되는 가치(value)관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18) 경제적 인 문제를 다룬다고 하여, 사회적 분석을 경제적인 면만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된다. 경제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사회제 도 및 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의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을 정치, 사회, 문화, 종교, 교육, 윤 리 등, 제반 분야와의 연관 관계에서 서술하여야 할 것이다. 캠머는 사회적 분석의 궁극이 하나의 관계성의 그믈망 (the&nbspweb&nbspof&nbsprelationship)을 도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한 바 있 다.19) 사회적 분석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connection)되어 있음을 파악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20)

 

 &nbsp2) 성서적, 신학적, 윤리적 반성

  이 사회적 분석은 다음 과정에서 신학적이며 성서적인 반성(reflection)으로 이어진다. 이에 있어 사회적 분석 과 신학적 반성은 서로 엄밀히 구획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분석에는 이미 신학적인 반성과 성서적인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 로, 양자가 서로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수행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신앙과 가치관,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은 우리의 사회적 분석을 향 한 질문에 방향성을 제시한다. 반대로 우리의 신학적인 반성은 내적으로 사회적인 분석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신학적인 반성은 그 가 속해 있는 전통과 사회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우리는 이러한 신학적인 반성의 일을 진척함에 있어, 그것이 기도와 함 께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21) 

 

 &nbsp3) 목회적, 사회적 실천

  다음으로 실천의 단계가 계속된다. 실천에는 크게 두 가지의 실천이 있는 바, 하나는 목회적 실천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 적 실천이다. 물론 이 둘의 구분은 형식상의 구분이며, 실제에 있어 이 둘은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적 실천엔 '케리그마 ',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디다케', '레이투르기아'의 제반 요소들이 포함된다. 그것들은 증거의 일, 교제, 봉 사, 교육, 예전 등의 교회의 사역을 말한다. 선교는 특히 복음을 전파하고, 안 믿는 자들은 교회로 초대하는 일을 사역의 중심되 는 일로 하고 있으나, 여타의 제반 목회 사역과 연관되어 있음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사회적 실천의 일에는 두 가지의 일이 포함 된다. 먼저는 사회봉사(social&nbspservice)이며, 다음은 사회정책(social&nbsppolicy)적 인 면의 개선 및 사회적 행동(social&nbspaction)의 일이다. 사회봉사는 사회에 있어 경쟁에 쳐진 자들을 보호 하며 격려하는 사회사업으로서의 일이며, 사회정책의 일이란 그러한 경쟁의 낙오자를 양산한 사회의 구조를 비판하고 정책적인 대안을 제 시하고 개선하는 사회적 행동(social&nbspaction)이다. 

 

 &nbsp4) 피드백(feedback)

  사회적 목회는 예배를 통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예배는 사회적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목회는 위에서 언급 한 바대로 여러 가지의 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역의 중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선교의 일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이다. 선교의 일은 복음의 전파나 사회적인 봉사의 일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역은 예수 안 믿는 자들을 교회에 초 대하고, 특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구체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목회로서의 사회적 실천은 다 시 예배를 통해 피드백되어지고 수렴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후의 교회의 예배는 사회적 실천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하 는 모임이 된다. 모든 하나님의 일에는 기적이 따른다. 하나님의 은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들에 대해 간증하는 순서를 가지 는 것이 좋다. 실천을 거친 기도는 이전의 기도와 같을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천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하 나님의 더 크신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찬양을 고무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같은 실천을 통 해 더 적나라한 실천을 예비할 수 있게 되고, 참다운 실천에로 나가게 된다. 사회적 실천에 대한 평가방법에는 두 가지가 포함된 다.22) 먼저는 우리 노력의 외부지향적인 효과(the&nbspeffectiveness)에 대한 질문이며, 두 번째는 우 리 노력의 내부지향적 가치(the&nbspvalue)에 대한 질문이다. 전자는 우리의 실천이 우리 외부에 영향을 미친 바 를 탐색하는 것이며, 후자는 우리의 실천을 통한 우리 자신 내의 변화를 평가하는 것이다. 사회적 선교를 통해 우리의 주변이 변하 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우리 스스로의 생각과 삶의 스타일이 변화하는 것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3. 경제와 사회적 선교:&nbspIMF시대의 사회적 선교 방안

 

  위에서 헷셀이 제기한 사회적 목회의 방법론에 대해 언급하였다. 선교는 목회의 일환으로 우리는 그같은 사회적 목회의 방법 에서 사회적 선교의 방법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오늘과 같은 경제적인 위기 상황에서 교회의 사회적 선교는 어떠한 모습으 로 전개되어야 좋을지를 검토하겠다. 이를 수행함에 있어, 앞서 제시한 방법의 순서에 따라&nbspIMF시대의 사회적 선교 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nbsp1)&nbspIMF의 실상에 대한 분석

  먼저 사회적 분석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목회자가 사회적 이슈(issues)들을 선택하여 자기의 목회 속에 고 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교단들과 같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어떤 선택된 안을 제시하지 못하 는 형편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혼자 연구할 수밖에 없으며, 혼자 기획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짐이 무겁 다. 이에 두 가지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단적인 입장에서 오늘의 사회상황들을 분석하여, 연구결과물을 각 교회의 목회자들 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총회와 노회 단위의 세미나와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사회적인 문제를 분석함에 각 교회와 교 단 내에 있는 평신도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nbsp21세기의 목회는 목회자 혼자만의 독단적인 목회여서는 안 된 다. 평신도들을 목회의 일에 끌어들여 함께 봉사하는 평신도 목회(lay&nbspministry)로 발전됨이 필요하 다.23) 물론 평신도들에게 목회자의 고유한 일은 맡길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를 분석하는 일은 평신도들이 더 잘 할 수 있 다고 본다. 목회자는 평신도들의 역량을 이용하여 사회의 일들을 분석하는 세미나 등을 교회내에서 개최하고, 그것의 결과를 자신의 목 회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nbspIMF 위기를 분석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문제를 분석하 는 데에는 세 가지의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다음으론 오늘의 현실을 인정하는 한도내에서 우리의 나 갈 방향을 정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실천적 질문의 문제가 대두된다. 

    (1) 근본적인 질문들: 사회적 체계(social&nbspsystem)에 대한 분석

  첫째 이러한 위기가 신세계질서를 통해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세계 화 추세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 자체 내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란 쉽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둘째 오늘의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 체제를 인정하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대안적 이데올로기나 세계질 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결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속에서 의&nbspWTO,&nbspIMF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그에 저항하고 나름의 다른 세계질서를 모 색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인지를 계속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오늘과 같은 경제제일주의와 물질주의적 사고방식 및 문화구조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 국 오늘이 이런 문제들의 저변엔 윤리적이며 영성적인 문제가 게재되어 있다. 보프(Leonardo&nbspBoff)는 그 의 책 『생태학과 해방』에서24) 생태-정의(eco-justuce)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그것이 다차원적인 문제임을 언급한 바 있 다. 과학기술의 측면, 사회적인 측면, 윤리적인 면, 정신적인 측면, 마음과 영성의 측면 등이다. 보프는 환경의 문제가 오늘의 과 학기술의 문제만으로 보는 것을 천박한 견해로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종교와 영성의 문제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 그의 생각이다. 경제의 문제도 그렇다. 경제의 문제는 얼듯 보아,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문제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내면 을 분석하면 그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종교적이며 영성적인 문제임을 파악할 수 있다. 경제적인 물질의 문제가 신앙의 문제이며 신 학의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혜안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신학교육의 방향정립이 요청된다. 

    (2) 현실적인 질문들: 사회적 이슈(social&nbspissue)와 정책(policy)으로서의 분석

  지난 정부와 그 정부의 일을 맡았던 사람들과, 기업들이 좀더 주의하였더라면 오늘의 위기에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 해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정부의 외환관리에 대한 실정, 기업의 방만한 경영, 관치금융의 문제, 정경유착, 불합리하고 비효율적 인 법률 및 행정체계 등, 오늘의 상황하에서라도 잘만 하였더라면,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을 그르치게 한 그러한 문제들 을 드러내며, 다시는 그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3) 실천적인 질문들

  실천적인 질문이란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나와 내가 속해 있는 단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 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분석은 그 자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실천을 향해 정위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분 석은 사회적 실천의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실천적 질문은 사회적 분석과 사회적 실천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라 볼 수 있 다. 

 

 &nbsp2) 성서적, 신학적, 윤리적 반성

  다음으로 목회자는 위와 같은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하여, 나름의 신학적이며, 성서적인 반성을 가할 필요가 있다. 특 히 이 부분에 있어서의 목회자의 역량이 요구되는 것으로, 목회자는 이런 과제를 평신도들에게 위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회자는 경 제적 위기에 대한 문제를 성서적 규범을 통하여 먼저 고찰하여야 하며, 다음으론 신학적 전통 속에서, 마지막으론 오늘의 신학자들 의 견해를 종합하여 그에 대한 반성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의 문제에 대한 반성은 성서적 반성만으로 마무리되지 는 않는다. 부의 문제에 대해 기독교교회는 기나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급진적인 견해로부터, 부에 대해 허용적인 이후 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부의 문제에 대해 갈등적 견해를 제기하여 왔다. 목회자는 이런 문제들을 다룰 때, 역사적 교회의 윤 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 다.&nbspIMF,&nbspWTO,&nbspTNCs(transnational&nbspcorporations) 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이전 성서의 시대엔 세계무역기구니, 초국적기업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었다. 그럼에 도 목회자가 이런 경제적 이슈에 대한 답변을 성서에서 찾으려고만 한다면,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서는 우리에게 유 용한 행동의 규범을 제시한다. 그러나 성서는 오늘의 세세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포괄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은 작금 의 문제들은 동시대의 신학자들의 견해로부터 더 확실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기독교윤리학자들의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많 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헷셀은 교회가 공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윤리학자의 입장과 역사학자의 입장이 서로 만나 어우러질 필요가 있다 고 하였다.25) 윤리학자는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것에서 윤리적인 결단을 이끌어내려 하는 바, 그러한 일의 수행을 위해서는 과 거를 고찰하는 역사학자의 통찰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교회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비근한 일들을 처리 한 경험이 있는 바, 우리가 그러한 교회의 대처들을 고찰함으로써 오늘의 현실에서의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보다 원활히 수행할 수 있 을 것이다. 

 

 &nbsp3) 교회의 사회적 실천 

  사회적 선교의 다음 단계는 교회의 실천(praxis)이다. 이것엔 두 가지의 내용이 포함된다. 먼저는 목회적 실천이 며, 다음으론 사회적 실천이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나, 편의상 두 문제로 나누어 다루고자 한다. 우선 목회자는 목회 적 실천을 통하여 오늘의&nbspIMF의 문제를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문제를 다루는 교회교육, 경제적 위기에 처 한 사람들에 대한 목회상담,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서의 우리의 결단을 향한 예배의 구상, 오늘의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 에 대한 조명 등 목회적인 여러 실천의 일들이 요청된다. 

    (1) 사회적 실천의 원칙

  교회의 사회적 실천(social&nbsppractice)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사회구호적 봉사 (social&nbspservice)의 일과 사회정책(social&nbsppolicy)적이며 사회개량적 측면에서 의 사회구조적 봉사이다.26) 전자는 경쟁에 쳐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며, 후자는 부정의한 사회구조를 변혁하기 위해 법제화의 일 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과 같은 사회적 어려움의 시기에 교회가 할 수 있는 봉사의 일과,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무엇인 가? 교회는&nbspIMF의 파고를 넘기 위해 처철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먼저 그러 한 사회적 실천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함에 있어 몇 가지의 규칙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소극적인 입장의 표현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교회와 교인이 하여야 할 일들은 적극적인 내용의 것들이 좋다. 무엇 을 하지 말라는 전략보다는 무엇을 하라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사치하지 말라는 표현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표현이 더 적극적이 다. 남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의 씀씀이를 당연히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일을 정함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가급적이면 실천운동의 내용으로 피하는 것이 좋다. 오늘의 신자유주 의 세계질서를 그대로 인정하여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저항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 다. 그러한 의견이 갈리는 문제를 교회의 구체적 실천과제로 정하기는 어렵다. 정확하기 않은 분석, 확신 없는 진단은 문제를 복잡하 게 만들뿐이다. 물론 이러한 말이 오늘의 전체적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교회는 더 나은 경제체 제의 대안을 향한 연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일은 그것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진 후 운동의 내용으 로 삼는 것이 좋다.  

  셋째 무엇보다도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구현하는 입장에서 행동강령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독 교적인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반영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악덕 기업인들을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투쟁하는 일이 교회의 주 된 실천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 같다. 

  넷째 가능한대로 실천의 목표는 단순한 것일수록 좋다. 너무 복잡하면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교회 가 하여야 할 일을 여러 개로 정하는 것은 실천을 복잡하게 만든다. 가능한대로 한 가지의 실천 과제를 정하여 초점 있게 일을 추진 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nbspIMF 시대의 십계명 등, 실천항목을 여러 가지로 늘어놓는 것은 가급적으로 피하 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하나의 상징성을 가지는 일을 택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부분적인 작은 일이지만, 전체적인 문제를 그 속에 담 고 있는 일을 선정함이 필요하다. 오늘의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적 주장은 사람을 경쟁시킨다는 데에 있다. 교회는 그러한 경쟁 의 역기능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교회는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룰 수 없다. 어차피 그 많 은 문제들 중에 한 문제를 정하여 실천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한 가지의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이 사회의 여러 문제들 과 연관되어 있음을 금방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교회의 사회적 봉사는 분명하고 단순한 하나의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 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실천은 그것의 실천범위를 확장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교회가 벌인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불법이주하 는 난민을 돕기 위한 피난처(sanctuary) 운동은 이러한 하나의 예가 되고 있다. 교회는 처음 불법이민자를 돕는다는 단순 한 발상에서 그 일을 시작하였으나, 그 문제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의 다양한 면에 연계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독립 된 별개의 문제란 없다. 모든 문제는 하나의 큰 구조로 얽혀져 있다. 그러므로 부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전체의 문제를 다루는 것 이다. 

  여섯째 전 교인이 쉬게 동참할 수 있는 일을 목표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 명만 참여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일 에 참여하기 어려운 일을 선택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nbspIMF 시대에 교회의 행정을 간소화하기 등의 운 동은 국한된 몇 명의 논의로도 충분히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일들은 교회의 직원 및 행정당사자들의 사적인 일일 수는 있어 도, 전체적 운동의 전략으론 부족한 감이 있다. 

  일곱째 사회적 실천의 일은 교인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일이어야 한다. 실제적 봉사를 필요로 하는 일을 전략적인 과제 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헌금과 봉사를 통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구체적으로 투여하여 하는 일들이 실천운동으로 바람직하다. 

  여덟째 사회적 실천의 일들은 추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구체적인 제시가 따라야 한다. 오늘의 시대에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자라는 막연한 말로는 곤란하다. 구체적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하게 된다. 

  아홉째 몇 주만에 끝나는 일보다는&nbsp1-2년 정도 지속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좋다. 하루의 행사로 끝나 는 헌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nbspIMF의 극복을 위해, 교회가 일 년에 한 번 바자회를 열어 일회적인 행사로 모든 일 을 다 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실업자를 돕기 위한 한 주의 헌금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하였다고 여겨서도 안되겠다. 모 든 일은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다. 그리고 행사는 지속적 실천을 위한 붐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기획되는 것 이 좋겠다. 

  열째 어떤 사람이나 단체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이 주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오늘의 위기는 기업인에게서, 또 는 정치인에게서, 금융인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등의 책임추궁이 교회실천의 주된 목표가 되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태 에 이르게 한 당사자들의 책임을 정치적인 차원에서 추적하는 것은 필요하나, 그것이 교회의 주된 목표여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다. 

  열 한째 그 일을 통해 가시적인 도움을 사회 및 어려운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일을 사업으로 전하면 좋다고 생각한 다.&nbspIMF 시대에 검소하게 살자라는 등의 구호는 가시적 실천을 야기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남들에게 가시적인 도움 을 줄 수 있는 일들을 목표로 함이 필요하다. 

  열 둘째 교회의 사회적 실천의 일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기도 중에 정하라는 것이다. 목회자 는 여러 일들의 목록을 놓고 어느 것이 우리 교회의 할 사업인가를 정함에 있어 하나의 직관과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하나 님 앞에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할 일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2) 오늘과 같은 경제 위기 시대의 교회의 사회적 실천의 내용

  이러한 원칙에 의거, 오늘과 같은&nbspIMF 시대에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일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다. 먼저 사회구호적 일에 있어 교회는 "양식은행"(food&nbspbank)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무료급식소만의 운 영으론 충분하지 못하다.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는 일이다. 그러한 무료급식소와 함께 가공 치 않은 양식을 어려운 주민에게 주는 것을 포함한 양식은행의 체계가 요구된다. 그러나 사회적 실천은 사회구호적 사회사업의 일로 마 무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정책적인 법제화의 문제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의 경제적인 위기를 대처하는 데에 가장 시급하게 고쳐 야 할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그것에 대한 법제화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모든 법을 한꺼번에 다 고 칠 수는 없다. 먼저 시급하게 하여야 할 상징적인 일을 하나 선택하여 노력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법제화의 문제선정에 있어 서도 위의 열 두 가지의 원칙들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생각하여 볼 때, 오늘에 있어 교회의 법제화의 노력에 당 면주제는 무엇인가? 본인은 그것을 실업문제를 다루는 입법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에 주장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견지하기 위해서 는, 실업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사회안전망"(social&nbspsafety&nbspnet)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 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정리해고, 노동시장의 유연함이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모는 일이다. 그러한 실업에 대한 사회보장법의 마련 은 광범위한 세제개혁을 수반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특히 불노소득자들로부터 많은 세원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 바, 부동산 에 의한 소득, 이자소득, 상속세, 호화사치품에 대한 세율인상, 의사, 변호사, 연예인 등 고소득층으로부터의 세수확보 등 복지정책 을 향한 재정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정책적인 일들은 사회봉사의 일들과 함께 병행되는 것이 좋다. 실업을 통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도움 을 주지 않으면서, 법적인 장치만을 바꾸라는 구호를 외쳐대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도우면서, 바 른 법제화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요긴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회구호 없는 법제화의 노력은 공허하며, 법의 개정을 도외시한 일방 적인 사회봉사로는 부족한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런 일들을 위해 분석 연구 교육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양식은행 및 사회안전 망의 문제에 대한 교회적인 세미나를 개최하고 교육 및 예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사회봉사는 사적이며 시혜적 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로서 제도의 개혁은 우리의 책임이며 당위의 문제이다. 

  사회적 목회의 실천에 있어 마지막으로 중요한 일은 이런 일을 위해 주변의 기관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개교회만의 노 력이 아니라, 노회적이며 총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검토, 지역의 주변교회들과의 연대, 교파와 종교를 초월한 사회에 대 한 실천 등은 우리의 일들을 더욱 활기있게 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범세계적인 교회단체들과 연대하는 것도 필요하 다.&nbspWCC,&nbspWARC,&nbspCCA 등과의 협력을 통해 이런 일들을 추진한다면 더 풍성 한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비종교적인 사회운동 단체들과의 연대 및 그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후원 또한 요긴한 일이다. 

    

 &nbsp4) 새로운 대안적 경제체제에의 모색

  사회적 선교는 다양한 영역들을 포함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제반 분야에 대한 사회선교적 접근이 가능 하다. 특히 본 논문에 있어서는 경제분야에 있어서의 사회적 선교의 입장이 부각되어 설명되고 있다. 오늘의 경제위기에 있어서의 사회 적 선교의 과제는 사회봉사로서의 양식은행의 운영이며 사회정책적인 면에서의 사회안전망의 구축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사회선교의 내 용은 이 둘의 과제로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남은 문제는 세계 경제체체의 대안에 대한 모색이다. 인류는 그간 여러 가지 의 경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여 왔다. 그러나 아직도 이상적인 경제체제의 실현에는 요원한 느낌이며, 그러나 이상향이 우 리에게 쉽게 주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현 경제질서에 대한 계속적인 비판을 통하여, 보다 나은 사회발전을 모색하 려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경제체제의 문제는 무엇이며, 그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이 되겠는가? 이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결 코 쉽지 않은 것으로,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을 누가 우리 대신 해주지는 않 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경제체제를 향한 실험에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이같은 대안적 경제체제의 모색을 위해, 지난 경제학사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같다. 먼저 전체적 조망을 위하여 아래에 그림으로 나타내보았다. 

 

<그림&nbsp1: 현대 경제사의 흐름>

 

자유방임 자본주의 (18 세기)                               공산주의

laissez-faire&nbspcapitalism                                   &nbspcommunism

Adam&nbspSmith                                            &nbspKarl&nbspMarx

 

신고전주의 (19세기 중엽)

neo-classical&nbspschool

Alfred&nbspMarshall

 

                  수정 자본주의 (케인즈의 복지국가 자본주의,&nbsp1920년대-)

                 &nbspwelfare-stste&nbspcapitalism

                 &nbspJohn&nbspMaynard&nbspKeynes

 

                  사회민주주의 (전후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nbspsocial&nbspdemocracy

                  미국의 최소복지주의와 공산주의 통제경제의 통합

                  독일 사민당

               사회적 시장경제

              &nbspsocial&nbspmarket&nbspeconomy

              &nbspLudwig&nbspErhard/ 독일 기민당

 

신자유주의 (1970년대-)

neoliberalism

시카고학파/Milton&nbspFriedman

 

신보수주의 (1980년대-)

neoconservatism

William&nbspF,&nbspBuckley

 

                  제3의 길 (1980년대 이후의 사회민주주의)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극복

                 &nbspAnthony&nbspGiddens

 

                  공동체주의 (1980년대 중반-)

                 &nbspcommunitarianism

                 &nbspHenry&nbspTam

 

                  인간적 사회생태적 민주적 시장경제

                 &nbsphumanitarian&nbspsocio-ecological&nbspdemocratic&nbspmarket&nbspeconomy

   자유방임 시장경제/사회적 시장경제(독일)/민주주의적 시장경제(스웨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중국)/인간적 시장경제(체코)/생태학적 시장경제

 

 

<그림&nbsp2: 경제문제에 대한&nbsp19,&nbsp20세기 기독교의 대응>

 

<영국>                               <미국>                    

 

19세기 말&nbsp20세기 초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부작용: 사회적 기독교

기독교사회주의(맨체스터)               사회복음

Christian&nbspsocialism                    &nbspsocial&nbspgospel

Frederick&nbspD.&nbspMaurice                  &nbspWalter&nbspRauschenbusch

* 독일 종교사회주의 (religious&nbspsocialism)

 

사회주의의 수용과 극복

William&nbspTemple (사회적 개혁주의)      &nbspReinhold&nbspNiebuhr

                     &nbspKarl&nbspBarth (스위스)

 

1940-50년대 (2차 대전 후)

                                       기독교현실주의

                                      &nbspChristian&nbsprealism

                                      &nbspReinhold&nbspNiebuhr

                                      &nbspPaul&nbspRamsey

                                      &nbspJohn&nbspC.&nbspBennett

 

60년대: 자유적 진보주의의 시대 (시민권운동과 반전)

이 시대는 앞의 두 견해인 사회복음과 기독교현실주의 이론을 종합함

                      사회민주주의

Ronald&nbspH.&nbspPreston                     &nbspJ.&nbspPhillip&nbspWogaman

                     &nbspJ.&nbspMoltmann

 

                      해방신학

                     &nbspliberation&nbsptheology

                     &nbspGustavo&nbspGutierez

                     &nbspLeonardo&nbspBoff

                     &nbspUlrich&nbspDuchrow (독일)

                    

70-80년대 이후:&nbsp89-91년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의 붕괴

                      신보수주의

(대처리즘)           &nbspneoconservatism    (레이거노믹스)

Brian&nbspGriffiths                          &nbspMichael&nbspNovak      

                                        &nbspRichard&nbspNeuhaus                     

 

90년대: 생태 위기와 자본주의 폐해를 다시 검토

                      공동체주의 (공동선에 대한 강조, 개인주의 반대)

                     &nbspcommunitarianism

                     &nbspJohn&nbspB.&nbspCobb, 

                     &nbspStanley&nbspHauerwas

                     &nbspRobert&nbspBellah

 

 

  이상에서 어느 정도 경제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들을 대충 정리한 것같다.27)&nbsp19세기 중반 이후 도 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기독교는 자본주의 속에 있는 모순을 발견하고,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 의 낙관론과 이상주의는&nbsp1,&nbsp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다. 이후 신학자들 은 그같은 사회주의를 수용 극복하며, 인간의 죄성과 사회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면서 기독교현실주의를 태동시켰다.&nbsp60 년대 들어 이전의 사회복음 운동과 전 시대의 기독교현실주의에 대한 통합의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그러한 입장에 서있는 신학자들이 프 레스턴과 워거만이라 할 수 있겠다.&nbsp80년대 말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경향이 득세하게 되 었으며, 그러한 연장 선상에서 우리의&nbspIMF 위기가 발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운 동은 극히 우편으로 편향된 입장의 사상으로서,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며, 미국의 주요 교단들도 (mainline&nbspchurches)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실정이다.28) 

  이제 인류는 더욱 바람직한 경제체계를 세우기 위해 진통하고 있는 바, 대체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경제적 효율 을 위해 시장 경제의 큰 축이 유지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방임의 시장경제 체제엔 많은 모순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 며, 이에 그러한 시장의 논리에 통제를 가하는 여러 장치들이 부가되었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노동과 자연자원의 착취라는 두 가 지 큰 문제로 나타난 바 있다. 이에 국가가 어느 정도 기업과 시장의 횡포를 견제하여 노동의 착취를 제재하고, 또한 생태친화적 인 시장경제로의 노력이 필요한 바, 그런 입장의 시장경제체제가 사회-생태적 시장경제(socio- ecological&nbspmarket&nbspeconomy)라 할 수 있다. 

  미래의 경제체제를 위한 노력들을 검토하기 위해, 최근 출판된 큉(Hans&nbspK&uumlng) 의 책 『세계윤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29) 먼저 큉은 경제 논리가 모든 논리에 우선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 는 시장경제가 궁극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인간적 시장경제 (human&nbspmarket&nbspeconomy)는 정의를 구현함으로 인간의 위엄을 지키고, 공동체 (community)의 규범적인(normative) 면의 강화를 통해 사회적 목표(social&nbspgoal)를 구현 해 나가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장을 종교화하거나, 경쟁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nbsphand)을 신 화화(mythologizing)해서는 안된다. 경제 자체도 하나의 서브시스템(sub-system)으로서, 정치, 법률, 과학, 문 화, 윤리와 대등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그는 언급하고 있다. 경제가 모든 것을 좌우해서는 안된다.30) 그는 오히려 정치의 논리 가 경제 논리에 우선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 윤리가 이같은 정치경제의 논리에 선행하는 것임을 말한다.31) 

  우리는 경제학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실증경제학(positive&nbspeconimics)이 며, 다른 하나는 규범경제학(normative&nbspeconimics)이다. 실증경제학은 어떤 현실적(실제적) 상황이 나 가상적(잠재적) 상황의 해석을 시도하며, 때로는 이러한 상황의 어떤 측면이 변화를 일으켰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평가하거나, 그러한 상황이나 변화가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한 편 규범경제학은 실제적인 상황과 가상적인 상황 및 그의 변화에 대한 평가와 가치판단을 시도한다. 전자는 어떤 상황을 실제적 사실 (what&nbspis)이나 가상적 사실(what&nbspmight&nbspbe)로서 있는 그대로 설명하 고, 후자는 여러 가지의 상황을 비교하여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어떠해야 하는가 (what&nbspought&nbspto&nbspbe)를 평가하고 판단한다.32) 실중경제학은 사실에 바탕으 로 한 경제의 효율(efficiency)에 강조점을 두는 반면, 규범경제학은 당위에 근거한 가치(value)평가로서의 윤리문제 에 그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 둘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다.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인 분야가 아니며, 시장의 효율 과 함께 부의 고른 분배에까지 관심을 두어야 하는 도덕과학이 첨예하게 부각되는 분야이다. 

  이 같은 경제에 대한 규범적이며 윤리적인 접근은 그간 구미의 학자들의 하나의 관심이었다. 미국에서는 지 난&nbsp1975-85년 즈음 기업윤리(business&nbspethics)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였다. 이에 신학 자들도 이러한 논의에 참가하여 경제에 대한 기독교윤리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는 바, 거스탑슨 (James&nbspM.&nbspGustafson), 맥코이(Charles&nbspMcCoy), 맥칸 (Dennis&nbspMaCann), 스택하우스(Max&nbspStackhouse), 워거만 (Philip&nbspWogaman),  노백(Michael&nbspNovak), 스텀 (Douglas&nbspSturm) 등이 이러한 작업에 앞장섰었다. 조금 늦게 독일에서도 이러한 기독교적인 규범경제학 분야 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독일에서는 이 분야가 경제윤리(Wirtschaftsethik)라고 칭하여졌으며, 리히 (Arthur&nbspRich), 슈피겔(Yorck&nbspSpiegel), 두크로 (Ulrich&nbspDuchrow) 등이 이를 위해 노력하였다. 

  큉이 두 번째로 제기한 것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이다.33) 세계화를 미국이나 일본 또는 어떤 어두 운 세력의 음모로 보고 그것은 추진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슈피겔지의 두 명의 편집위원이 쓴『세계화의 덫』이 나 초스토프스키(Michel&nbspChossudovsky)의『빈곤의 세계화』는 어느 정도 이런 입장의 생각을 방영한 다.34) 그러나 세계화는 그러한 부정적인 시야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오늘의 피할 수 없는 현상이란 것이 큉의 설명이다. 또한 경 제학자들도 위의 책들이 경제적 분석이나 이론적 통합성에서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구의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의 당연한 귀결로 서,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되고 무역의 규모가 커짐에 따른 피치 못할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 변혁을 다시 되돌린다는 것 은 어느 정도 무모한 일이며 헛된 일이다. 물론 이 세계화는 두 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 능성을 줌과 동시, 여러 가지의 위험도 동시에 표출시키고 있다. 어떻든 세계화의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세 계화에 있어 부정적인 요소는 가급적으로 줄이고, 긍정적인 요소를 높여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화의 방 향이 모두 예측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세계화가 전혀 통제될 수 없는 것도 아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세계화는 기 상(weather)의 문제와 같이 우리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또한 노력한다면 기상예보 이상의 어느 정 도 자세한 예측이 가능한 분야이다. 무역규모가 커져 경제가 국제화됨에 따라, 이전의 국내적 경제규제들 (national&nbspeconomic&nbspregulations)만을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 다.&nbsp1929년의 세계공황은 국제적 경제질서의 필요성을 인식시켰으며, 이에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세계경제를 통 제하는 두 개의 커다란 체제가 형성되었는 바, 먼저는 국제무역의 문제를 담당하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며, 다음은 국제적인 통화의 질서를 위한 '브렌튼우즈 체제'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nbsp1944년 발족한 브렌 튼우즈체제(Bretton&nbspWoods&nbspSystem)에 의거&nbsp1947년부터 업무를 개시하였 고, '가트'도 같은 해에 발족된 바 있다.&nbsp1995년에 가트는 '세계무역기구'(WTO)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 고 있다. 세계는 이제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경제규모로 전환되었으며, 또한 기존의 경제체제 속에 있는 모순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 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는 보다 나은 국제경제의 관계정립을 위한 제도화의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힘써 야 할 일은 그러한 경제질서의 바탕이 되는 가치체계로서의 세계윤리(global&nbspethics)의 구상이다. 큉은 바람 직한 세계윤리를 '세계적, 경쟁적, 사회적, 환경적 질서 '(a&nbspglobal,&nbspcompetive,&nbspsocial&nbspand&nbspenvironmental&nbsporder) 로 표현한다.35) 그 말은 '인간적, 사회생태적, 민주적 시장경제'(humanitarian,&nbspsocio- ecological&nbspdemocratic&nbspmarket&nbspeconomy)의 세계화를 의미하 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있어 이같은 세계윤리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규제력이 있는 국제법이나 국제기구의 운용에 대한 연구 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의 위기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대응책에 대해 검토하여 보자. 장상환 교수 는 그 대응책을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세계화의 시야에서 조망되는 내용들이다.36) 첫째&nbspIMF 는 스스로가 지적하는 것처럼 국제 금융위기시 국내의 파산법과 같은 채무해결을 위한 법적 장치가 없다. 이에 국제적 채무해결 과정 에 대한 하나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둘째 국제적 투기 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특히 헷지 펀드 (hedge&nbspfund)와 같은 도박성이 큰 단기성 투기자금에 대해서는 각 나라가 국가적 안전의 차원에서 규제하여 야 할 줄로 안다. 셋째로 점진적으로 자본의 자유화가 수행되어야 한다. 마지막 네 번째로 아시아 국가의 통화협력 강화가 필요하 다. 오늘의&nbspIMF체제는 상대적으로 제3세계 국가에 대해 불리한 점이 있다. 이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포함한 제 3세계의 국가들은 연대하여 나름의 협력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상에서 보는대로 오늘의 경제문제는 상품의 수출입 을 통한 무역에서의 문제보다는, 금융시장에 확산되는 세계화가 문제인 바, 특히 국제적 자본에 대한 합리적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 본 다.37) 아울러 세계교회는 가난한 나라의 빚을 탕감해주는 '희 년&nbsp2000'(Jubilee&nbsp2000)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은 또한&nbspIMF 나&nbspWB(the&nbspWorld&nbspBank)가 경영을 투명하게 하며, 지탱지속적이고, 참여적이 며, 적합한 발전(development)을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4. 경제적 사회선교와 복음전도의 연계

 

  사회적 목회는 사회선교와 복음전도를 이분화하지 않는다고 멀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둘은 깊이의 차원에서 서로 하나인 것 이다. 우리는 경제를 통한 선교에서 이러한 사실을 놓지지 말아야겠다. 사회봉사는 사회봉사이고, 복음전도는 복음전도인, 서로 상관 이 없는 선교를 가지고는 온전한 사회적 선교에 이를 수 없다. 본인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우리의 사회적 봉사가 하나님께 드리 는 예배로 해석되지 못하며, 우리의 예배가 이웃에 대한 봉사로 이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선교적 노력은 부족한 것이 된다는 것이 다. 우리의 사회적인 봉사가 영적인 구원과 분리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우리의 사회적 봉사가 영적인 면과 연대하고 있어야 한 다. 예전과 봉사의 하나됨, 영성과 사회변혁의 하나됨,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하나로 하는 신앙-정의(faith-justice) 의 통합구조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있어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예전을 통해 하나님과의 심오한 만남 을 경험한다. 다음으로 그러한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강화한다. 여기서 예배와 봉사의 하나됨이 시작된다. 셋째 로 그러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이웃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넷째 이웃에 대한 구체적 관심분야 가운데 하나인 경 제적 봉사의 측면에 대한 고려를 증진한다. 다섯째 이웃에 대한 구체적 사랑의 실천 중에서 그들을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초대하 며, 그들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다시 느껴본다. 봉사의 영적인 의미가 부각한다. 여섯째 그러한 사회봉사가 기독교 의 예배 속에서 다시 회상되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드림 안에서 승화된다. 곧 우리의 사회선교는 예배와 함께 출발되고, 예배와 함 께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배(헬라어 '프로스퀴네오')와 봉사(헬라어 '레이투르기아')의 하나됨,38) 기도와 노동의 하나 됨, 믿음과 행함, 영성과 해방의 하나됨이 우리의 전 사회적 선교의 과정에서 견지되어야만, 우리의 선교의 통일성이 약화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입장의 견해를 예배 중심의 사회적 목회 (a&nbspworship&nbspcentered&nbspsocial&nbspministry)나, 예 배 중심의 사회적 선교 (a&nbspworship&nbspcentered&nbspsocial&nbspmission)라고 부르 고 싶다. 예배가 없는 봉사로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끌 수 없다. 그런 봉사로는 사람들을 영적인 깊이에로 인도하지 못한다. 기 도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세를 가지고, 이웃에 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예배 속에서 어떻게 이웃사랑의 정신을 배태할 수 있으며, 사회봉사 중에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정신을 견지하 고, 다시 그 사회봉사를 예배로 수렴할 수 있겠는가하는 구체화된 방법적 문제가 대두된다. 먼저 예배의 사회변혁적 차원의 의미에 대 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받는 영적이며 신비한 의미가 있음과 동시, 사회변혁의 의미를 담 고 있다. 우리는 성만찬 중에 빵을 나누면서, 양식은 서로 나누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상하귀천의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식사함 을 통하여 인류가 모두 평등함을 인식케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기림을 통해, 우리도 이 사회에서 자신을 드 려 헌신하여야 함을 느끼게 된다. 성만찬은 개인의 구원임과 동시, 우리를 억압된 사회적 상황에서 해방하는 능력이다. 또한 샌마이어 (H.&nbspPaul&nbspSantmire)가 제시한 우주적 예배(cosmic&nbspworship) 의 개념은 생태학적 구원에 대한 의미를 우리에게 제시한다.39) 샌마이어는 고대 기독교회의 세례식과 성만찬 의식에는 우주적 구원 의 요소가 게재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고대교회는 세례식을 팔각형의 천장 밑에서 거행하였다. 그것은 하늘을 뜻하는 것으로, 세례 를 통해 그 세례를 받은 사람뿐 아니라 하늘과 땅 전체가 변화받음을 의미하였다.&nbsp8은 천지를 창조 한&nbsp7일의 다음날로서, 부활과 우주의 창조가 완성되는 날을 상징한다. 골&nbsp5:12-20은 고대교회 의 세례의식문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 본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온 만물 과 하나님의 화해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곧 전체적인 만물의 구원이라는 범주 내에서 인간의 구원을 상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총 체적 행동으로서의 창조와 구속과 완성의 전 파노라마를 예식문 속에 삽입함을 통하여, 전 우주적 변혁이 세례의 종말적 성격과 함 께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였던 것이다. 이전의 성만찬상(table)은 의식을 여는 건물의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천장으로부터의 빛 이 그 상을 향하여 비취도록 하였다. 성만찬 시 빵과 포도주의 변화는 우주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변화로서, 그 변화가 전 우주적 차 원으로 퍼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있어 우리는 이런 우주적 그리스도와 우주적 구원을 기리는 예배 속에서 우주적 책임의 에토스 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우리는 예전에서 사회적 여러 의미들을 배태시킬 수 있으며, 그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 의 사회적 선교가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사회봉사는 비신자들과의 접촉기회를 확대함으로 전도의 길을 우리에게 더 넓혀준다. 사회봉사를 통해 교회 는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한 더 좋은 이미지를 심을 수 있게 된다. 비신자들은 교회의 사회봉사를 경험함으로써, 교회에 대 한 접근이 더욱 용이해지게 된다. 그들은 교인들의 봉사 안에 내재하여 있는 영성과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간접으로 경험하게 된 다. 물론 이를 이해 교회의 사회봉사는 영성 안에서, 예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여 러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성적 분위기를 그들에게 심을 수 있어야겠다. 사회선교, 문화선교, 교육을 통한 선교등의 여러 분야들에 서 교회는 기독교의 복음과 구원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교회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접촉된 자들에게, 교회는 기독교의 복음과 구원 을 소개하는 책자를 줌으로써, 그들을 기독교 영성에 접촉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을 교회의 예배에 초대하여 함께 교제하 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다. 

  사회적 목회의 실천을 통한 예배는 이전의 목회와 다른 감격이 있어야 한다. 예배의 감격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더욱 고조 된다. 예배에 의해 사회적 선교로 들어가고, 그러한 사회적 선교와 실천이 예배와 간증 속에서 다시 음미되며, 그것을 통해 우리 는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 삶과 실천을 바치는 예배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 이러한 경축으로 서의 예배엔 세 가지의 요소가 포함된다. 우선은 실천을 통한 기쁨을 예배 중에서 맛보는 일이다. 둘째는 실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 나님의 은총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지난 실천을 통해 이웃사랑과 사회개혁을 향한 새로운 비전과 희망 을 발견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념하며 실천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의 예배이다. 우리의 사회적 선교는 예배에서 싹이 트고, 예배 안에서 열매맺게 된다. 우리의 실천은 우리가 주체가 된 실천이 아니 라,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실천이었다. 그러함에 우리의 사회적 운동과 실천은 우리만의 실천이 아니며, 하나님을 위한 또 한 교회를 위한 실천이 된다. 기독교인의 실천이 인간적 실천으로만 끝날 때에는 한계를 갖게 된다. 사회적 선교의 활동은 교회공동체 의 활동이며, 우리 모두의 활동이지 나만의, 나를 위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활동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것을 통해 영광 을 받으시고 있다. 사회적 선교와 행동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찬양케 하며, 기도하게 하고, 다 시 주님의 말씀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예배중심적 사회적 선교를 우리는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명찰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 싶다.40) 바빌로니아 탈무드 속에 있는 "안식일을 사랑하였던 요셉"의 이야기이다. 요셉 은 주일 내내 열심히 일해야만 했던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안식일을 위해 준비할 것을 사려고 거의 노예와 같이 일을 하였다. 그 는 소랍의 가정을 위하여 일하였는 바, 소랍은 그를 위해 얼마 안 되는 수당을 지불하였다. 한 번은 요셉이 임금을 올려줄 것을 요 청하였으나, 소랍은 그늘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그의 말에 대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셉은 안식일을 기다리 며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는 작은 임금을 받아 금요일 저녁 안식일을 위해 여러 좋은 것들을 마련하였다. 맛있는 음 식도 사고, 예쁜 초도 사고 하여 그는 안식일을 소중히 준비하였다. 그는 땀내 나는 더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안식일을 위해 고 운 옷을 차려입었다. 그는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촛불을 켜고, 하늘의 별들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남 은 음식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나누었다. 요셉은 주간 내내 피곤하고 지쳤지만, 안식일의 쉼과 샬롬을 고대하며 그러한 어려 움을 참곤 하였다. 하루는 소랍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의 모든 재산과 토지가 다 요셉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보름이 지 나기 전에 그의 전 소유가 다 요셉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소랍은 소스라치며 일어나,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고 마음에 되뇌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꿈에 천사는 다시 나타나 그런 말을 다시 되풀이하였다. 소랍은 근심에 쌓이게 되었다. "결 코, 그럴 수는 없어!"를 외치며 소랍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아주 귀한 붉은 루비와 바꾸고는, 멀리 이사가기 위해 배를 타게 되었 다. 마침 강한 바람이 불었는 바, 소랍은 갑판에서 떨어져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요셉은 다른 주인을 만나 어려 운 생활을 하며, 안식일의 평안을 기다리는 삶을 계속하였다. 그는 금요일이 되어 어려운 노동을 마치고 안식일을 준비하였다. 시장에 서 여러 물건을 사고, 또한 생선도 한 마리 샀다. 생선가게 주인이 요셉의 안식일을 위해 남겨놓은 비교적 큰 생선이었다. 그 는 그 날도 옷을 갈아입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기쁜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생선요리를 먹다가 큰 돌이 하나 씹 혀, 그 돌은 골라내어 보았더니, 값이 비싼 큰 루비임을 알았다. 그는 그 루비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요셉은 사 람들을 초대하여, 자신의 행운을 말하였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축복이라고 하였다.  그는 부자가 된 다음에 도 열심히 일하며, 안식일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보냈으며, 안식일을 사랑하여 그 날을 항상 감사와 기쁨 중에 지냈다. 

<끝>

 

 

1) 이광순, 이용원, 『선교학개론』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nbsp1993),&nbsp18. 

2) &nbspDavid&nbspJ.&nbspBosch,&nbspTransforming&nbspMission:&nbspParadigm&nbspShifts&nbspin&nbspTheology&nbspof&nbspMission (New&nbspYork:&nbspOrbis&nbspBooks,&nbsp1993),&nbsp349&nbspff. 

3) 이광순, 이용원, 『선교학개론』,&nbsp168. 

4)&nbspD.&nbspJ.&nbspBosch,&nbspTransforming&nbspMission,&nbsp511-512. 

5) 위의 책,&nbsp10-11. 

6) 서정운 교수는 선교 를&nbspM(mission)=E(evangelism)+N(nurture)+S(service)[S.S.(social& amp;nbspservice)+S.A.(social&nbspaction)]+F(fellowship)라는 공식으로 표현하 고 있다. 이에 있어 사회봉사는 구제 등은 교회가 하는 사회사업을 의미하며, 사회적 행동은 사회의 구조악, 제도 등을 개선하기 위 한 사회정책적 측면의 관여를 말한다. 그는 선교에 복음전도뿐 아니라, 사회봉사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이 양자 에 있어 어느 것이 우선(priority)적인 것이냐는 논의는 올바르지 못하며, 오히려 복음전도가 선교의 중심(center), 핵 심(core), 심장(heart)이며, 나머지는 그 중심에 연관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언급하였다. [서정운, "선교신학에 서 본 사회봉사," 이삼열 편, 『사회봉사의 신학과 실천』 (서울: 한울,&nbsp1992),&nbsp41-43.]

7)&nbspDieter&nbspT.&nbspHessel,&nbspSocial&nbspMinistry,&nbspresived&nbspedition (Louisville:&nbspWestminster/John&nbspKnox&nbspPress,&nbsp1992),&nbsp8. 

8) 위의 책,&nbsp24. 

9) 위의 책,&nbsp25. 

10) 환경에 대한 헷셀의 "사회적 목회"로서의 논의는, 그 의 책&nbspDieter&nbspT.&nbspHessel,&nbsped.,&nbspFor&nbspCreation's&nbspSake:&nbspPreaching,&nbspEcology &&nbspJustice (Philadelphia:&nbspThe&nbspGeneva&nbspPress,&nbsp1985) 에 나타난다. 

11) 강원돈, "신학적 경제윤리 형성을 위한 시론," 채수일 편, 『기독교 신앙과 경제문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nbsp1993),&nbsp86. 

12)&nbspDieter&nbspT.&nbspHessel,&nbspSocial&nbspMinistry,&nbsp193-194. 

13)&nbspDieter&nbspT.&nbspHessel,&nbspA&nbspSocial&nbspAction&nbspPremier (Philadelphia:&nbspWestminster&nbspPress,&nbsp1972),&nbsp68. 

14)&nbspJoe&nbspHolland,&nbspPeter&nbspHenriot,&nbspSocial&nbspAnalysis:&nbspLinking&nbspFaith&nbspand&nbspJustice,&nbspresived&nbspand&nbspenlarged&nbspedition (New&nbspYork:&nbspOrbis&nbspBooks,&nbsp1983),&nbsp14&nbspff. 

15) 위의 책,&nbsp14. 

16)&nbspFred&nbspKammer,&nbspSalted&nbspwith&nbspFire:&nbspSpirituality&nbspfor&nbspthe&nbspFaith-justice&nbspJourney (New&nbspYork:&nbspPaulist&nbspPress,&nbsp1995),&nbsp42. 

17) 사회적 분석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위의 책,&nbsp98 이하를 참조하시오. 

18)&nbspJoe&nbspHolland,&nbspPeter&nbspHenriot,&nbspSocial&nbspAnalysis,&nbsp98-100. 

19)&nbspFred&nbspKammer,&nbspSalted&nbspwith&nbspFire,&nbsp44. 

20) 일례를 들어 보프(Leonardo&nbspBoff)는 그의 책 『생태신 학』(Ecology&nbspand&nbspLiberation)에서, 생태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을 하면서, 그같 은 생태문제가 다른 여러 측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급한다. 생태문제는 과학기술의 문제에서 야기된 것임과 동시, 정치와 사회적 인 측면에서, 윤리적인 면에서, 더 나아가 정신적이며 영성적인 차원에서 야기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그는 그러한 연관성을 생태기술 학, 생태정치학, 사회생태학, 생태윤리학, 정신생태학, 우주적 신비의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레오나르도 보 프, 『생태신학』, 김항섭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nbsp1996),&nbsp27&nbspff.]

21)&nbspJoe&nbspHolland,&nbspPeter&nbspHenriot,&nbspSocial&nbspAnalysis,&nbsp103-104 를 참조하시오. 여기서 저자는 신학적 반성의 단계가 하나의 성서묵상 방법과 비슷한 양식으로 진행될 것을 말하고 있다. 

22) 위의 책,&nbsp110-112. 

23) 헷셀은 세 가지의 목회를 말한다. 평신도에 의한 목회 (a&nbspministry&nbspby&nbspthe&nbsplay&nbsppeople), 제 도적인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목회 (a&nbspministry&nbspthrough&nbspthe&nbspinstitutional&nbspchurch), 제 도적인 교회 속에서 일어나는 목회 (a&nbspministry&nbspwithin&nbspthe&nbspinstitutional&nbspchurch) 이다. 세 번째의 목회는 예배, 교육, 상담, 선교, 행정 등으로 구성되며, 두 번째의 목회는 사회적 봉사와 사회정책적 개선의 노 력으로 구성되고, 첫 번째의 목회는 평신도들의 사회 속에서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헷셀은 사회적 목회가 위와 같 은 세 개의 차원을 갖는다고 하면서, 평신도들의 사회 속에서의 정의를 위한 행동을 목회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 다. (D.&nbspT.&nbspHessel,&nbspSocial&nbspMinistry,&nbsp137.)

24) 레오나르도 보프, 『생태신학』. 

25)&nbspDieter&nbspT.&nbspHessel&nbspand&nbspJames&nbspHudnut-Beumler, "The&nbspPublic&nbspChurch&nbspin&nbspRetrospect&nbspand&nbspProspect,"&nbspDieter&nbspT.&nbspHessel,&nbsped.,&nbspThe&nbspChurch's&nbspPublic&nbspRole (Grand&nbspRapids:&nbspEerdmans,&nbsp1993),&nbsp296&nbspff. 

26) 이삼열, "사회봉사의 신학과 실천 과제," 『사회봉사의 신학과 실천』,&nbsp17&nbspff. 

27)&nbsp19,&nbsp20세기의 기독교 사회윤리의 윤곽에 대해서 는&nbspEd.&nbspby&nbspJohn&nbspAtherton,&nbspChristian&nbspSocial&nbspEthics:&nbspA&nbspReader (Cleveland:&nbspThe&nbspPilgrim&nbspPress,&nbsp1994) 와&nbspGary&nbspDorrien,&nbspSoul&nbspin&nbspSoceity:&nbspThe&nbspMaking&nbspand&nbspRenewal&nbspof&nbspSocial&nbspChristiamity (Minneapolis:&nbspAugsburg&nbspFortress,&nbsp1995) 를 참조하시오. 

28) 물론 오늘의 경제 위기가 서구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전부 책임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9)&nbspHans&nbspK&uumlng,&nbspA&nbspGlobal&nbspEthics&nbspfor&nbspGlobal&nbspPolitics&nbspand&nbspEconomics (Oxford:&nbspOxford&nbspUniversity&nbspPress,&nbsp1998). 

30) 위의 책,&nbsp208 큉은 경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경제제국주의(economic&nbspimperialism)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31) 위의 책,&nbsp209-215. 

32) 김세열, 『경제윤리』(대전: 한남대출판사,&nbsp1985),&nbsp50-51. 

33)&nbspH.&nbspK?ng,&nbspA&nbspGlobal&nbspEthics,&nbsp159&nbspff. 

34) 한스 피터 마르틴, 하랄드 슈만, 『세계화의 덫』, 강수돌 역 (서울: 영림카디널,&nbsp1998). 미셀 초스도프스키, 『빈곤의 세계화』, 이대훈 역 (서울: 당대,&nbsp1998). 

35)&nbspHans&nbspK?ng,&nbspA&nbspGlobal&nbspEthics,&nbsp217. 

36) 장상환, "국제금융기관의 본질과&nbspIMF 경제체제," 『신학사상』, 제&nbsp101집 (1998 가을),&nbsp41&nbspff. 

37)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한상진, 박찬욱 역 (서울: 셍각의 나무,&nbsp1998),&nbsp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