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용 목사의 선교특강/ 21세기 선교한국 2

2. 어디에 선교할 것인가?

▲ 성남용 목사, 삼광교회 담임, 총신대학교 목회전문신학대학원 교수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 선교적 지형이 바뀌고 있으며, 도시화와 다원주의가 진전되고 보편화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화와 지역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영성주의와 세속주의도 부흥하고 있다.

a) 선교적 지형이 바뀌고 있다.

2/3 세계가 본격적으로 세계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선교학자들이 앞 다투어 예견한 그대로 모든 나라에서 모든 나라로의 선교가 시행되며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격차를 넘는 선교의 수평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벌써 아시아와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의 선교사들이 유럽과 북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변화된 선교의 패러다임이 실제로 시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의 국제선교단체에서 겪고 있는 변화이며 이런 변화는 더 확대될 예정이다.

b) 도시화(Urbanization)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1950년대에는 뉴욕과 런던만 천만이 넘는 도시였지만 오늘날 천만이 넘는 도시는 20개도 넘는다. 100대 도시 안에 들려면 최소한 3백만 명은 넘어야 할 정도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백만 명이 넘는 도시는 480개 정도나 된다.

도시화의 의미는 인구의 집중과 함께 기존 문화의 전통들이 상품과 용역의 교류 등으로 인하여 다른 문화의 전통들과 섞이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타문화를 경험하고 신세계를 체험한다. 그래서 도시는 언제나 변혁의 중심이 되어왔으며,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믿음, 새로운 지식, 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삶의 변화에 더 열려 있다.

특히 21세기의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은 지역과 문화를 막론하고 동일문화화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들 간의 문화적 유사성은 같은 지역의 어른들보다 더 많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4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세대를 위한 선교전략인 4/14 윈도우가 주목받고 있다.

c) 다원주의(Pluralism)가 보편화되고 있다.

중동이나 아시아의 일부 이슬람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어떤 특정한 믿음을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속사회로 다원주의를 지향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관점과 가치를 인정하도록 요구받는다. 다원주의가 종교의 영역에 들어오면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은 계시 종교는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각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 주도록 요구받는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닫힌 이슬람권이나 힌두권에서의 선교가능성을 엿 볼 수 있다. 반면에 기독교왕국이었던 서구나 그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기독교는 배타적이며 편협한 종교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고, 불교나 힌두교처럼 경전이 없는 비 계시종교는 그 범신론적인 성향 때문에 여러 진리중의 하나로 인정받기 쉽다. 이것이 서구의 다원주의 사회에서 동양종교가 관심을 받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의 지혜와 전통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사람들이 이성을 통해서 추론할 수 없기 때문에 계시를 통해서 증거되지 않으면 복음을 알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이성과 계시사이에 존재하는 철저한 불연속성 때문에 선교의 당위성이 존재한다.

d)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는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국가개념을 허물고 있는데 유럽이 그 예다. 세계 1,2차 대전 등의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의 경제체제로 통합되었다. 각 지역들이 경제적으로 단일시장을 지향하는 FTA와 같은 조약을 통하여 통합되어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통신혁명이 세계화를 더 촉진하고 있다. 고속 인터넷 등이 빛의 속도로 정보를 교류하게 하고, 그 범위는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아무리 낙후된 지역에서도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화상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다.

반면에 지역화를 가속화하는 나라들도 있다. 발칸지역의 분열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지금도 나라 안의 나라로 계속 나눠지고 있다. 북한과 같은 나라도 지역화를 가속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두 가지 흐름이 있지만 세계는 더 빨리 세계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e) 영성주의(spiritualism)와 세속주의(secularism)가 동시에 부흥하고 있다.

세속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고 이슬람과 같은 종교도 세속주의의 영향을 받아 쇠퇴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영적 영역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따라서 신흥종교나 신비주의 체험과 같은 자기중심적 영적세계에 대한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청소되고 수리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곱 귀신이 들어가 진을 치고 있는 셈이다(눅11:24-26).

우리가 선교하는 지역은 다양하다. 나라마다 다르고, 나라 안에서도 특정한 지역과 그룹에 따라 다르다. 자연히 선교전략은 현지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기독교 왕국은 세상 어디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의 세상은 마치 초대교회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가 세상속의 성도들을 가리켜 불렀던 흩어진 나그네처럼 겸손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벧전2:12, 마5:16). 초대교회에 복음이 그렇게 빨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는 바로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마가 기독교 왕국을 선포한 후에 교회는 끝없는 신학논쟁을 벌이며 투쟁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바른 신학이 세워졌지만 교회들은 신학적 입장에 따라 나뉘었고 이방신을 믿는 사람들보다 신학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혐오하고 미워할 정도로 분열되었다. 초기에 왕성했던 교회들이 힘없이 새롭게 일어난 이슬람세력에 무너진 것은 바로 교회내부의 신학적 논쟁과 그에 따른 교회의 분열 때문이었다.

이집트가 처음 이슬람의 침입을 받았을 때,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핍박하는 제국의 정통교회에 반발하여 나라를 통째로 이슬람세력에게 상납해 버린 것이 그 예다. 건강한 신학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신학을 확신하면서도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우리가 세속사회 앞에서 교회의 힘과 열정을 신학적 논쟁으로 소진하는 것은 우리가 기독교 왕국적 향수에 젖어있기 때문이 아닌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계속>

성남용 목사/ 삼광교회 담임, 전 나이지리아 선교사, 총신대학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교수


[ 김찬 기자 chantouch@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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