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대상으로서의 북한 사회 
박완신 교수
 
북한선교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사회에 대한 바른 진단과 예측이 있어야 하겠 다. “Seeing&nbspis&nbspbelieving” 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북한이라는 견해도 있다. 물 론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폐쇄 노선을 걸어 왔기 때문에 겉만 보고는 믿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체제임을 경험해 왔다. 그러 나 &nbsp2000년&nbsp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는 북한이 세계 속에 보다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 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공항에 나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함으로써 세계 속에 드러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 치 행태(行態:behavior)도 지금까지 서방 세계에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다른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북한선교 와 평화통일 전략의 효율화를 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일 환경 변화에 따른 북한 사회의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북한 당국이 전략적 목표를 바꾸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통일 환경변화에 따라 사회 체제의 신축적인 전술상 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조선식 사회주의 폐쇄 노선을 취해왔다. 그러 나&nbsp1995년 노동당 창당&nbsp50주년을 계기로 제한적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모기장 이론이 그것 을 입증하고 있다. 이 모기장 이론은 선진국의 자본 기술 등은 시원한 바람에 비유하여 들어오게 하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사조 는 파리 모기에 비유하여 차단한다는 논리이다.

1999년에도 “모기장을 든든히 치자” 고 하여 다시 제한적 개방정책을 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진 선봉의 제한적 개방이나 금강산 관광 등을 허용한 것에서 입증되고 있다. 
필자는&nbsp1999년&nbsp2월과&nbsp6월 두차례에 걸쳐 금강산 관광객 대상으로 ‘평화 통 일’ 주제 강연차 북한의 금강산,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마을 등을 다녀온 바 있는데 온정리 마을의 담장이나 관광도로 주변 철조 망에서도 모기장 이론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nbsp2001년&nbsp8월 평양과 북한의 여러 지방을 돌 아보면서 북한 사회가 총대, 사상, 과학기술을&nbsp3대 기둥으로한 강성대국 사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총대가 강하면 나라는 작아도 나라는 발전할 수 있다”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강성대국, 총대철학에 기초하여 북한당국은 미사일개발,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생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북한의 핵문제가 한반도 안보에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전쟁도 평화도 하나 님 손에 있음을 믿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평화적으로 북한핵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다 만 앞으로 북한이&nbsp99년부터 주장해 온 ‘강성 대국’ 논리를 어떻게 전개해 갈 것인가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은&nbsp2003년&nbsp1월&nbsp1일 신년 공동 사설에서 “강성대국 “논리를 강조하 고 있음을 볼 때 앞으로도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체제보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이 강성대국 정착을 위해 북한당 국은&nbsp1998년 헌법 개정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보다 강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nbsp2000년 에 들어와서는 강성대국 건설 본격화를 위한 “사상, 총대, 과학 기술” 등&nbsp3대 기둥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서 사상은 당=수령을 강조하면서 주체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체제 기강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총대는 모든 부문에서 최우선시 해야 할 국사 중의 제일 국사라고 하면서 인민군대는 강성대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양성해야 함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과학 기술 면에서는 새로운 과학 연구와 기술 혁신 안 수용 및 과학 기술 행정 등을 강화하면서 경제 건설 역량을 집중한다 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회는 강성대국 건설에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강성대국 논리가 지속되 는 한 북한 체제는 그 발전이 둔화 될 것이며 경제난은 심각하게 되어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로 이어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북한에서는&nbsp1995년 이 후부터 홍수 한해 등으로 농산물 수확량이 감소하여 지금까지&nbsp3백 여 만 명이 기아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한의 식량소요량은&nbsp6백7십 여만 톤인데, 생산량 은&nbsp3백7십 여만 톤밖에 되지 않아&nbsp3백 여만 톤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북한동포돕 기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기아로 인해 굶어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돕는데 앞장서야 할 것 이다.  

북한은 강성 대국 체제 유지로 경제난은 가중되어 주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게 되어 탈북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 실이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탈북자들이 증가할 것을 대비하여 철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탈북자가 계속 증가하자 북한의 김정일은 “간첩 하나 잡는 것 보다 탈북자 하나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시를 하달, 주민들의 이동 및 출근 여부 통제와 동향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② 조·중 국경지역을‘전쟁지대’로 선포하여 취약지역에‘지뢰매설’을 하였다.
③ 국경경비를 전담하는‘10군단’을 창설, 압록강 지역에 전면 배치하였다.
④ 국가보위부 요원과 현지 공관원으로‘탈북자 체포조’를 만들어 러시아, 중국 등지에 파견, 적극적인 탈북자 체포 활동을 벌이고 있다.
⑤ 탈북자가 러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체포될 경우,‘반역자’로 간주하여 철사로 코를 꿰거나 마취, 족쇄, 깁스를 하여 북한으로 끌고 간다.
⑥ 탈북어린이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nbsp1998년&nbsp7월부터 어린이도 잡히면 발목이 잘리는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⑦ 북한당국은 끌고 간 탈북자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하고 심지어는 고문한 후 공개처형까지 하고 있다.
⑧&nbsp1996년&nbsp5월말 한국으로 망명하려다 러시아에서 체포되어 북한당국에 넘겨졌던 탈북주민&nbsp1명을 북한당국이 국경지역 현장에서 즉결 처형해버린 사실이 러시아 연해주 당국에 의해 확인되었다.
⑨&nbsp1998년&nbsp6월 중국 훈춘에 은신 중이던 탈북 일가족&nbsp4명이 체포되어 처형되기도 하였다.  

향후 탈북자 대책 및 북한선교에 관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 내에서 건전한 통일선교문화 창출을 위 해 범교회적인 노력을 함께 펼쳐가야 하겠다. 특히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해 정책이나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채 혼돈을 가져 와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둘째,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 교육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종 교 등 객관적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래서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장, 단기계획을 수립, 시행해 야 하겠다.
셋째, 영적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먼저 탈북자들의 마음의 안정을 기하도록 하고 생활안정을 위한 물질적 지원은 물론 직업알 선, 그리고 직업훈련 등을 통한 한국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선교 사역을 감당하도록 비전을 심 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대책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사회를 진단해 보았는데, 앞으로 남북관계가 보다 활발하게 진전되므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는 많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선언한&nbsp5개항의 합의문이 실천에 옮겨지면 남북 관계가 보다 발전될 것이며, 남북 종교교류 도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렇게 되었을 때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앞 으로 북한 당국이 종교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한국교회는 예의 주시하면서 창조적으로 대북 선교·통일정책을 수행해 가 야 할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종교는“민중의 아편”이라 하여 종교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서방 세계와의 개방화가 이루어지면서 공산권 국가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적이나마 인정하기 시작했다. 

북한도&nbsp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종교 단체의 활동을 정치적 이유에서나마 인정하기 시작했 다.&nbsp1973년 평양신학교를 개교했고&nbsp80년대 중반에는 성경과 찬송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 고&nbsp1988년에는 최초로 평양의 봉수교회가 세워졌고&nbsp1992년에는 칠골교회가 헌당 되었다. 그리고 북 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에는 가정교회가&nbsp520여 개가 있고 기독 교 신자는&nbsp1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드러난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변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북한 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교회가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는 북한의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북한의 기아·탈북자 문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 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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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선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