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석 교수, “죽산(竹山)의 ‘교회정치 이해’에 관한 연구”

교회정치에 대한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이해는 무엇인가?
 
김순정 기사입력  2014/11/17 [11:18]



이 글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의신학을 교수하는 최홍석 교수가 「신학지남」 2014년 가을호에 기고한 논문이다. 우리 교단과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틀을 세운 죽산 박형룡 박사의 교회정치 이해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요약 소개한다.

I. 들어가는 글

죽 산(竹山) 박형룡(朴亨龍, 1897-1978)의 『교회론』은 그의 교의학 시리즈의 제 6권에 해당되며, 「구원론」(救援論)과 「종말론」(終末論) 사이에 위치한다. 이로써 교회론은 구원의 ‘언약론적인 면’, 즉 ‘공동체적 차원’의 보다 포괄적인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종말론적 경륜 속에서 교회 자체의 존재 의미와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위치와 역할이 있음을 함의(含意)하고 있다. 이에 관해 죽산은 그의 『교회론』의 「서언」1과 제 5장에 해당되는 「교회의 임무」 부분2에서 밝혔다.

죽산의 『교회론』은 크게 2편으로 대별되는 바, 제 1편에서는 「교회」에 집중하였고, 제 2편에서는 「은혜의 방편」에 중점을 두어 논의하였다. 제 1편에서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칭과 사적 고찰」, 「교회의 성질」, 「교회의 정치」, 「교회의 권세」 그리고 「교회의 임무」로 이루어져 있다. 제 2편에서는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은혜의 방편 개관」,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 말씀」, 「성례개관」, 「기독교 세례」, 「성찬」 그리고 「기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산은 그의 저서,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교회론』의 기초는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1873-1957)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지만, 이 책의 배경에는 핫지(Hodge, 1797-1878), 워필드(Warfield, 1851-1921), 뎁니(Dabney, 1820-1898), 카이퍼(Kuyper, 1837-1920), 바빙크(Bavinck, 1854-1921), 보스(Vos, 1862-1949) 등 대표적인 개혁신학자들의 사상이 뒷받침 되어 있다고 하였다.

필자가 벌콥과 박형룡, 각자의 교회론을 비교하여 보았는데, 물론 큰 구조에 있어서는 유사점(類似點)이 있지만, 후자의 것에서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는 전자의 것에서보다 진전된 면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산은 자신의 신학적 주체성(神學的 主體性)을 가지고 이전 신학자들의 사상을 우리에게 전수(傳授)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므로 본서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바로 죽산 자신의 신학적 신념을 살피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大韓예수교長老會)의 초기 정치체제에 사상적 기반이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논문은 특별히 제 1편 3장인 「교회의 정치」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오늘날 기독교 교계 안의 혼란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교회의 정치에 관한 박형룡의 신학적 이해가 무엇이었는지를 잠시 고찰함으로써 우리의 나아갈 길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II. 본론

죽 산의 『교회론』의 제 1편 3장인 「교회의 정치」 부분의 전반부 내용은 자신이 성경적인 교회정체(敎會政體)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개혁파」(改革派) 혹은 「장로파」(長老派) 정치체제에 이르기 위한 과정적 단계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죽산은 구속사적 통찰력을 발휘하여 성경 자체의 내용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교회역사 속에 등장했던 다양한 유형(類型)의 정체(政體)들을 소개하며, 그것들을 성경의 교훈을 준거(準據)로 하여 평가하고 있다.

II.1. 「교회의 조직」에 관한 이해

II.1.1 불가피한 항존성(恒存性)

교회의 조직에 관하여 말하려는 죽산은 먼저 교회의 기원에 관해 질문을 제기한다. 여기서 죽산은 구속사의 진전(進展)을 고려한다. 그 결과,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여 호와의 교회(敎會)가 언제 성립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담이 범죄한 후에 구속(救贖)하실 허락을 주신 날로부터 교회가 성립되어(창3:15, 6:18) 그동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지내었고 계속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느니라(행7:38; 눅10:67-79; 요4:21-26; 출3:15, 16).」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신약(新約)의 예수 교회는 언제 세워졌느냐고 묻는다면 「예수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聖靈)을 보내심으로 세우셨느니라.」고(요20:21, 22; 행1:8, 2:1-47) 대답할 것이다[Hodge(郭安連 譯), 교회 정치문답 조례, 17, 18문답].

교회의 성립(成立) 혹은 수립(樹立)과 관련하여 죽산이 던진 두 가지 질문은 교회는 반드시 「조직」(組織)을 가진다는 전제 하에서, 그리고 구속사의 진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언약론적 사고 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교회란 타락 및 구속과 연계되어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죽산은 언약(言約), 곧 옛 언약(舊約)과 새 언약(新約)의 구도 가운데 새로운 언약이란 구속사의 전환 속에서 “여호와의 교회”의 성립과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그와는 구별될 수 있는 “예수 교회”의 수립을 대비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죽산이 사용한 “여호와의 교회”와 “예수 교회”란 표현은 이와 같은 언약론적 배경 속에 채용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죽산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유기적(有機的) 연관 및 통일 속에서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의 본질적인 연속성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구속사의 ‘언약론적 진전’이란 개념이 더하여지게 될 때, 비로소 핏셔(Fish)가 언급한 “맹아(萌芽)-발아(發芽)-결실(結實)”이란 유비(analogia)로 묘사된 교회의 존재양상(存在樣相)의 차이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신약시대의 전체를 통전적(通全的)으로 바라보면서 초기에는 교회의 ‘은사 공동체적인 면’이 강조점으로 드러났으며, 점차 시간이 경과할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직제’(職制)가 등장한다는 죽산의 이해는 전적으로 성경의 보도와 일치한다.
 
죽산이 사용한 “오순절 이전에도 (조직이) 배종(胚種)으로 존재하였던 것이다.”라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별세 이전에 배종(胚種)으로만 존재하던 신약 교회의 조직”이란 표현 등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죽산이 사용한 이 표현들을 혹시 구약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히 오해일 것이다. 이 표현들이 마치 신약에만 적용되는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죽산이 “여기서는 신약 교회의 조직에 대하여 본격적(本格的)으로 고찰할 것이다.”라고 논의의 영역(領域)을 제한한 이후의 문맥에 등장하는 것들이기에 그러하다.
 
사실 「언약」이란 개념은 ‘그림자와 실체’란 대응구조(對應構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에, 만일 구약과 신약의 전(全)경륜을 통전적으로 조망(眺望)한다면, 이 “배종”의 개념은 신약시대의 교회에 대비하여 구약시대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죽산이 교회의 조직과 관련하여 이 “배종”의 개념을 구약 시대의 교회에까지 적극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일에 - 필자가 보기에 - 소극적인 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그 개념을 전적으로 무시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산은 어디까지나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 사이에 연속성이란 전제를 깔고 그 위에서 교회의 조직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논의의 요점을 밝힌다면 지금까지의 논의 가운데 깔려 있는 근본적인 전제는 교회 조직의 형식은 시종일관(始終一貫)된 것, 곧 항존성을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죽산의 설명 속에 여러 번 강조되어 나타난 “배종”(胚種)이란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II.1.2. 조직의 형식

II.1.2.1. 미비와 오류

죽 산에 의하면 이와 같이 교회의 조직이란 구원사의 경륜 속에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항존성’(恒存性)을 지니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구속사 가운데 구체적인 정황으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가능성’ 곧 “배종”으로라도 「조직」이란 역사적인 교회와는 불가분적(不可分的) 관계에 있다는 것이 죽산의 견해이다. 죽산은 이처럼 상존(常存)하는 교회 조직의 형식에 관해 다양한 이론들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특별히 두 가지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가(加)하였다.
 
그 두 가지 이론들이란, 첫째로 네안더(Neander) 등에 의해 주장된 바, “교회 조직의 형식은 신약에 명확히 제정(制定)되지 않고 다만 편의에 의하는 사건이어서 신자들의 각 단체가 그것의 상태에 최선(最善)히 적합하는 조직의 방법을 채용하기로 허용된다는 이론(理論)”이며, 두 번째는 린세이(T. M. Lindsay)에 의해 소개된 것으로서 “사도 시대의 교회 정치에 적어도다섯 가지 상이(相異)한 형식들이 있었다.”는 이론이다.

첫 번째 이론에 대한 죽산의 평가는 양면적이다. 그 이론은 “영감(靈感)된 정경(正經)이 종결되기 전에 교회 조직이 이미 모든 근본적 원칙에서 완성되어 그것의 기록이 모든 후대 사람에게 속박적(束縛的)인 권위를 가진다는 관념을 제외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 이론이 어떤 규범적 원리의 확정성을 인정한다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그 이론이 신약의 교회들이 드러내었던 상반적(相反的)인 면(面)들, 다시 말해 어떤 확정적인 규범을 시행함에 있어서일지라도 신약의 교회들이 서로 같은 양상을 띠는가 하면, 반대로 서로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 두 양상들 사이에 첫 번째 이론은 후자, 곧 차이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애석하게도 미비(未備)정도의 차원을 넘어 오류(誤謬)를 범한 것으로 비판하였다.
 
두 번째 이론에 대한 죽산의 평가는 전적으로 비우호적(非友好的)이다. 만일 그 이론을 따라가게 된다면, 교회의 조직 형식이 결국은 개(個) 교회들의 사정과 필요, 혹은 그들의 선호하는 바를 따라 규범(規範)도 없이 자유롭게 결정되고 말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그것을 비판하였다.

II.1.2.2. 피하기 어려운 결론

앞서 죽산은 두 가지 이론들에 대해 자신의 신학적 입장(=개혁 신학적 입장)에서 나름의 비판을 가한 후, 그 대안(代案)으로서 장로주의 조직 이론을 제시하였다. 장로주의에 대한 죽산의 요약된 평가를 한 마디로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신약에 나타난 사도적 교회 정치의 조직 형식은 장로주의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여기서 “피하기 어려운 결론”이란 죽산의 소극적인 평가를 통해 얻게 되는 느낌은 신약성경으로부터 교회정치의 형식이 단선적(單線的)으로는 제시되지 않는다는, 그래서 복잡다단(複雜多端)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실로 그러하다. 그럼에도 죽산의 그 요약된 평가는 복잡하게 얽힌 미로(迷路)로부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유일(唯一)한 통로라는 의미를 시사하기도 한다. 그는 소극적 평가를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결코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입장에 빠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깊은 확신에 차있다:

개혁파 장로파 교회들은 그들의 교회 정치의 상세 전부(詳細全部)가 성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그 근본적인 원리들이 성경에서 직접 인출(引出)된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 정치의 근본적 원리(根本的原理)들은 장로주의보다 다른 것이 아니라는 데는 확신을 가지고 전진한다.
 
그 들은 사도시대(使徒時代)의 교회 조직의 형식은 장로직을 기본으로 하였다는 관념(觀念) 위에 움직이고 있다. 과연 사도들은 설립된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 장로들을 세우는 것으로 정치조직의 형식을 취하였던 것이다(행14:23, 20:17; 딛1:5). “단언”이란 말이나 “확신”이란 표현이 죽산의 신학적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단언”이란 단어를 채용했을 때 한자를 병기(倂記)하지 않았기에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필자로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끊을 단(斷)’ 혹은 ‘바를 단(端)’ 그 어느 문자를 ‘말씀 언(言)’자에 덧붙여 사용할지라도 죽산의 근본적 의도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또한 이와 같은 죽산의 확신은 전적으로 성경적 근거에 의존해 있음을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바, “피하기 어려운 결론”이란 소극적인 평가를 죽산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나름대로의 원인을 이 인용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원인은 인용문의 전반부에서 나타나는데 “교회 정치의 상세 전부(詳細全部)가 성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근본적인 원리들이 성경에서 직접 인출(引出)된다.”는 그 자신의 이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정치와 관련된 세목들이 일일이 결의법적(決疑法的)으로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외견상 - 다른 사람들이 볼 때 -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할 것 같은, 그러나 - 죽산 자신이 보기에는 - 결코 그럴 수 없는 확정된 원리만 성경 가운데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죽산으로 하여금 “소극적 평가”를 하게 한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 때문에 현실적으로 교회 정체(政體)의 다양한 이해들이 교회역사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추정(推定)한다.

II.2. 장로회 정치체제(政治體制)

지 금까지 논의한 내용들 가운데 그 핵심어(核心語)들을 연결시켜 본다면, 아마도 “두 가지 이론들” - “비판” - “대안(代案)” - “장로주의 조직” - “피하기 어려운 결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피하기 어려운 결론”인 “장로주의 조직”과 관련하여 죽산 자신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살피려 한다.

죽산은 장로회 정치체제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의 정치체제와 관련된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상 교회가 취한 정치 체제(政治體制)의 3대 전형(三大典型)이 있으니 감독정치(監督政治), 장로정치(長老政治), 회중정치(會衆政治)라는 것이다. 감독정치는 역사적(歷史的)인 감독직(監督職) 즉 우월한 교직자들의 서열(序列)의 계속에 크게 치중한다. 장로 정체에는 모든 교직자들이 동일한 수준에 있고 권위는 신도들의 선거를 받은 대표자들에게 있다.
 
회중 정체는 장로 정체와 같이 교직자들의 단일 서열을 인정하나 권위는 피선(被選)된 대표자들에게 있지 않고 신도들의 직접 결의(直接決議)에 있다. 이 3대 전형의 변이(變異) 혹은 보충(補充)으로서 다른 여러 형식의 교회 정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감독 정체의 확대인 로마 교회 정체와 국가의 권력에 의뢰하는 에래스티안 정체와 기원적 권력(起源的權力)을 전국적 교회(全國的敎會)에 두는 전국적 교회 정체와 정치조직 및 외면적인 형식을 전연 부정하는 퀘커파, 딸비파의 교회 생활 등이다.

죽산은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교회의 정치체제를 총 일곱 가지로 제시하였지만, 사실은 세 가지의 전형(typus)이 존재하며, 그 외의 유형들은 세 가지 전형의 “변이”(變異) 혹은 “보충”(補充)의 형식들이라고 말한다. 그 세 가지 전형은 “감독정치”, “장로정치” 그리고 “회중정치”이며, 그 외의 변이 혹은 보완된 형식은 “로마교회 정체”, “에래스티안 정체”, “전국적 교회 정체” 그리고 무교회주의(퀘이커파, 다비파 등)이다. 세 가지 전형 외에 죽산이 소개한 나머지 네 가지 유형들 가운데 “로마교회 정체”, “에래스티안 정체” 그리고 “전국적 교회 정체”는 감독정치의 변형이며,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는 정치체제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기에 세 가지 전형 가운데 어느 한 전형의 변형이라기보다는 반동(反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되나, 굳이 한 전형의 변이로 말한다면 그나마 회중교회 형식의 변이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여겨진다.

죽산의 예비적인 설명 가운데 고래(古來)로부터 교회역사상 등장했었던 세 가지 전형, 곧 “감독정치”, “장로정치”, “회중정치”는 결국 직분과 회중 사이 혹은 회중과 직분 사이에 놓이는 강조점의 무게가 어느 편에 편중(偏重)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 감독정치의 경우, 직분에 과도한 강조점이 주어질 것이며, 회중정치의 경우, 역(逆)으로 회중에 과도한 강조점이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장로정치의 경우는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직분과 회중 사이에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로정치는 성격상 감독정치와 회중정치, 둘 사이의 중간 지점에 놓일 것이다.

죽산은 장로회 정치체제의 특징을 대의정치(代議政治)로 보고 있다: 장로회 정체는 대의(代議)를 특징으로 한 교회 정치체제이다. 이 정체에서 권위는 신도들이 선거한 대표자들에게 있고 모든 교직자들은 동일한 수준에 있다. 이 정체는 한 편에 교회 정치가 단일 교장(單一敎長)의 수중(手中)에 들어가는 것과 다른 편에 그것이 회중 일반의 행동으로 되는 것을 아울러 반대하고 치리장로(治理長老)들을 대표자들로 선택하여 그들과 목사들로 하여금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행하게 한다.
 
지교회(支敎會)의 대의정치기관인 당회(堂會)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는 바 통상(通常)으로 장로는 목사보다 다수이다. 당회는 교회의 기원적 권세(起源的權勢)의 좌소(座所)요, 당회의 권세를 보다 더 넓은 범위로 행사(行使)하는 광대회의(廣大會議)들이 있어 여러 교회에 공통한 사건들과 소회의(小會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을 처리한다. 당회 이상의 광대회의들에서 교회의 대표자들인 회원들은 목사와 장로가 항상 동수(同數)로 된다. 그리하여 교직자와 평신도가 지위에서 평등임이 명시된다. 원칙적으로 목사도 장로의 일종으로서 치리와 교훈을 겸무함에서 치리만을 맡은 일반 장로들보다 다를 뿐이라 한다.

죽산은 장로회 정체의 특징을 “대의”(代議)라고 규정한 후, 곧 바로 “권위/ 권세”(exousia)의 문제를 논하였다. 권위/권세의 소재는 회중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에게 있으며, 모든 교직자들의 평등성(平等性)을 강조하였다. 죽산이 말한 이와 같은 장로회의 정체는 “권위/권세”의 문제와 관련하여 좌우(左右)의 양면적 허점(虛點)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교회의 정치가 “단일 교장(單一敎長)의 수중(手中)에 들어가는 것”, 이는 감독교회 정체가 지니는 허점이며,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정치가 “회중 일반의 행동으로 되는 것”, 이는 회중교회 정체가 지니는 허점이다. 장로회의 정체는 이 두 가지 허점들을 반대하는 것으로 죽산은 이해했다.

또한 죽산은 회중(會衆), 곧 “신도들”이 그들의 대표로서 치리장로들을 선출하고, 선택함을 받은 그들과 목사들로 하여금 대의정치를 하게 한다고 함으로써 당회를 대의정치기관(代議政治器官)으로 이해했다. 또한 이 당회가 “교회의 기원적 권세(起源的權勢)의 좌소(座所)”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비록 당회를 넘어서는 광대회의(廣大會議)들이 있을지라도, 교회의 권세가 기본적으로 지역교회(地域敎會)의 치리회인 당회에 있음을 적시(摘示)하였다. 이와 더불어 죽산은 또한 광대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들의 성격을 밝혔는데, 첫째로 여러 교회들의 공통된 사건들이며, 둘째로 소회의(小會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임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이 광대회의들은 “당회의 권세를 더 넓은 범위로 행사(行使)”하는 셈인 것이다.

그리고 죽산은 “권위/권세”와 관련해 “모든 교직자들은 동일한 수준에 있다”고 함으로써 이미 모든 교직자들의 평등성을 말하였지만,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교직자와 평신도가 지위에서 평등”함을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를 “광대회의들에서 교회의 대표자들인 회원들은 목사와 장로가 항상 동수(同數)”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처럼 “지위에서의 평등”을 지적한 죽산은 그로써 끝나지 아니하고 목사직과 장로직 사이의 구별을 사역적(使役的)인 차원에서 덧붙였다. “원칙적으로 목사도 장로의 일종으로서 치리와 교훈을 겸무함에서 치리만을 맡은 일반 장로들보다 다를 뿐”이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이해를 가진 죽산은 이에서 더 나아가 「성경」과 「전통」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혔는데, 장로회 정체에서는 “전통”이 “성경”에 종속됨을 분명히 확언(確言)하였다. 그리고 또한 사도들이 교회를 직접 명령함으로 치리하지 않았으며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다는 사실에서 「장로회 정체」가 성경적이라는 근거를 부연(附椽)하였다. 죽산은 또한 신중하게 덧붙이기를, “성경은 한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연합하여 당회 이상의 광대회의를 구성할 것을 솔직히 명령함도 없고 이런 회의들의 실례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묘사된 교회의 근본적 성질은 이 같은 연합과 광대회의들의 설치를 요구하는 듯하며 또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사도 시대의 교회들이 어떤 의미의 연합을 형성한 사실을 지시하는 듯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애매한 부분에 대한 죽산의 신중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죽산의 이와 같은 진술 속에서 그가 인간의 이념(理念)이나 신학체계를 위해 성경을 사용(이용)하지 아니하고, 먼저 성경의 말씀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며, 거기에 인간의 생각을 복종시키고자 하는 겸허(謙虛)한 신앙적 태도를 드러내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죽산은 장로교 정체가 지니는 특특한 면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절제된 언어로써 매우 신중함을 보였다. 그러나 ‘옥(玉)에도 티가 있다’는 옛 금언(金言)에서처럼 죽산의 설명 가운데 채용된 용어와 관련해 보다 나은 표현을 모색(摸索)했으면 하는 단어들을 한두 가지 적어본다면, “지교회”(支敎會)란 표현과 “평신도”(平信徒)란 용어이다. 이 표현이나 용어는 교단의 교회법이나 여러 신학저술들 가운데 이미 통용되는 것들이지만 보다 나은 표현이나 용어들이 있을지를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가지 “지”(支)자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감독교회나 로마교적인 교회관(敎會觀)에 익숙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판단에서 구라파나 영미 세계의 개혁교회/장로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표현을 따라 ‘지역교회’(地域敎會, plaatselijkekerk, local church) 혹은 ‘지역교회들’(plaatselijke kerken, local churches)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평(平)신도”란 표현도 비슷한 이유에서 보다 개혁 신학적인 사상에 적절한 성경적 용어들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찾아보면 ‘회중’(會衆), ‘신도’(信徒), ‘믿는 자들’ 등등 보다 나은 표현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사소한 것들이고, 성경의 가르침과 역사적인 통찰을 지녔던 죽산의 장로회 정치체제에 대한 설명은 이 시대, 조국의 교회들을 위해 너무나 절실한 금과옥조(金科玉條)임이 분명하다.

II.3. 성경적인 정체(政體)의 근본원리

교 회의 정치체제와 관련해 개혁파나 장로파가 지니는 신학적 입장은 동일하다.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 정치의 상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일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기지 않고, 다만 그 근본적인 원리들만 성경에서 직접 유래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II.3.1. 개혁파의 정치 원리

죽산은 개혁파의 정치 원리를 소개함에 있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미국분파인 「기독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교단」에 속한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박형룡의 저술 당시) 봉직하였던 신학자, 루이스 벌콥이 제시한 개혁파의 원리를 소개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필자가 판단해 볼 때 이와 같은 방법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당시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나 미국의 「기독개혁교회교단」은 서로 동일한 교회 정치원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리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와 권위의 원천, (2)말씀은 권위행사의 방편, (3) 교회에게 권세의 부여, (4) 대표적 기관들에 의한 권세의 행사, (5) 지교회 치리회(支敎會治理會)로부터 권세의 확장. 이제 죽산에 의해 소개된 이 다섯 가지 원리들에 대해 본 논자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 요약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1) 로마교는 교황의 수장권(首長權) 유지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으나, 개혁파는 이에 반대하여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唯一)한 원수(元首)임을 강조하였다. 실로 성경은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인 교회에 생명으로 채우시는 「생명적-유기적(有機的) 관계」를 가지시며, 영적으로 관할하신다는 사실을 교훈한다(요15:1-8; 엡1:10, 22, 23, 2:20-22, 4:15, 5:30; 골1:18, 2:19, 3:11). 또한 그리스도는 교회의 입법주(立法主)와 왕으로서 교회의 머리이심을 가르친다. 그는 무형교회의 머리이시며, 또한 유형교회의 머리이시다(마16:18, 19, 23:8, 10; 요13:13; 고전12:5; 엡1:20-23, 4:4, 5, 11, 12, 5:23, 24).37 이는 개혁파의 첫 번째 정치 원리에 속한다.

(2) 두 번째 정치 원리와 관련하여 죽산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다스리시되 무력적(武力的) 방법으로 아니하시고, 주관적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그리고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거(準據)로 하여 통치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의 직원들을 통하여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신다. 그런데 이는 자신의 권위를 사람에게 이양(移讓)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친히 교회를 다스리신다. 이 통치에서 단지 인간을 그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3) 교회 권세의 제 일차적인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로마교와 감독파는 같은 보조로 주장하기를 교회의 일반회원과는 구별되게 세움을 받은 계급인 직원들이라고 하였다. 반면 독립파(獨立派)는 이 권세가 교회 전체에 부여되었고, 직원은 단지 그 전체의 기관(방편)에 지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죽산은 위의 두 주장들과는 달리 “직원들은 교회에게 부여된 기원적 권세(起源的權勢)에 참여하고 그들의 직원으로서의 권위는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는다. 이 권위는 그들을 선거하는 교인들이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아니니 그들은 비록 교인의 대표자들일지라도 단순히 그들의 파송자(派送者)들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세 번째 정치 원리로 소개하였다.
 
이 는 루이스 벌콥이 소개한 내용의 일부를 발췌(拔萃)한 것으로서 벌콥의 글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적 차원에서 좀 더 덧붙인다면, 교회의 권세는 그리스도에 의해 일차적으로(actu primo) 교회 자체 곧 교회 전체에게 주어졌고, 이차적으로(actu secundo) 직원들에 부여되었다. 다시 말해 그 권세는 회중과 직원들 모두에게 위임되었지만, 직원들에게는 교회 안에서의 그들의 직임수행을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추가적인 권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4) 개혁파의 네 번째 정치 원리와 관련하여 죽산은 루이스 벌콥이 설명한 내용들 가운데 중요한 요지(要旨)만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간략히 소개하였다. “그리스도는 교회 전체에 권세를 위임하는 동시에 또한 이 권세는 교리, 예배, 권징의 유지를 위하여 따로 세운 대표적 기관들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또는 특정적으로 행사될 것을 규정하셨다.”

(5) 다섯 번째 정치 원리 역시 위와 동일한 방법으로 소개되었다. 죽산에 의하면, “교회치리회에 행사되는 이 권세는 기본적으로 지교회의 치리단체에 있고 그 단체에서 광대회의(廣大會議)에로 확장되는 것이다.” 죽산이 그의 『교회론』의 본문 속에 진술한 내용은 너무나 간단하여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데, 실은 동일 주제를 다룬 부분의 난외 주(註) 가운데 보다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그 난외주의 내용과 더불어 루이스 벌콥의 저술 가운데 나타난 내용들을 보완적 차원에서 첨언(添言)하려 한다. 벌콥의 설명은 매우 현실감이 있다.
 
“교회의 권세(power), 혹은 권위(authority)가 우선적으로 총회에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총회로부터 그 권세가 나와서 제이차적으로 지역교회의 치리회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그것은 그 근원적인 자리(its original seat)를 지역교회(the local Church)의 당회에 두고 여기서부터 노회, 대회, 혹은 총회로 확대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개혁파 혹은 장로파 정체(政體)의 근본원리 중 하나이다.” 이처럼 개혁파 혹은 장로파의 정체는 지역교회의 자치권(the autonomy of the local church)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동시에 지역교회에는 공통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하여(on a common confessional basis) 같은 신앙을 지닌 상사(相似)한 다른 교회들과 연합하며, 교리적(doctrinal), 사법적(judicial), 행정적(administrative) 목적을 위하여 서로 간에 의무와 권리를 정당하게 약정(約定)하는 보다 광대한 조직을 형성할 권리와 의무가 주어져 있음을 주장한다. 여기에 ‘지역교회의 자치권’과 ‘보다 광대한 조직’ 사이에 긴장(緊張)이 유발될 수 있으나 그럼에도 교회의 통일성을 견지하는 일은 성경이 요구하는 중요한 가치임이 분명하다(엡4:2-6).

II.3.2. 장로파의 정치 원리

죽산은 장로파 정치 원리를 소개함에 있어서 영미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 나타난 근본원리에 의거하여 설명하려 하였다. 그 원리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 제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양심의 자유
(2) 교회의 자유
(3) 교회의 직원
(4) 진리와 행위
(5) 상호관인(相互寬忍)
(6) 직원의 선거
(7) 치리권
(8) 권징

죽 산은 개혁파의 정치 원리와 장로파의 정치 원리를 나누어 소개하였으나, 루이스 벌콥은 그의 『조직신학-교회론』에서는 「개혁파 혹은 장로파 제도의 근본원리」(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Reformed or Presbyterian System)라는 제목 아래, 우리가 본 논문의 II.2.1.에서 논의하였던 다섯 가지 원리들에 대해 다루었다. 이는 아마도 개혁파와 장로파가 교회의 정치에 대한 원리들을 공유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죽산이 양파(兩派)의 정치 원리의 문제들을 비록 나누어 다루긴 했으나 나누어 접근한 것은 서로의 원리들이 달라서라기보다 다루어진 주제 및 내용의 독특성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어 양자를 상보적(相補的) 시각에서 통합적(統合的)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죽산이 영미 장로파 표준문서로부터 인용한 여덟 가지 원리들 가운데 처음 두 원리는 자유와 관련된 것으로서,
 
(1) 우선 「양심의 자유」에 관해 다루는데, 양심의 주재(主宰)는 하나님뿐이시며,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셔서 신앙과 예배에 대해 성경에 위배되거나 부당한 교훈과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하셨다는 내용이 그 중심을 이루며,
 
(2) 다음으로는 「교회의 자유」에 관해 다루는데, 어느 교파,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각 교인의 입회 규칙, 입교인(入敎人)과 직원의 자격, 교회의 정치조직 등 일체의 문제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가 있다는 내용이 그 핵심을 이룬다. 나머지 여섯 가지 원리들은
 
(3)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된 교회에 덕(德)을 세우기 위해 직원을 세우셔서 오로지 복음전파와 성례시행을 하게 하실 뿐 아니라, 또한 믿는 자들로 하여금 진리를 준수하며 본분(本分)을 다하도록 관리하며 권징을 시행하게 하셨다는 내용의 「직임과 직책」에 관해, 그리고
 
(4) 진리는 선행(善行)의 기초이며, 진리가 진리로서 입증되는 것은 성결케 하는 경향에 있으며, 그리고 신앙과 행위, 진리와 본분은 각각 상호 불가분적(不可分的)이라는 「진리와 행위의 관계」에 관해,
 
(5) 교회의 도리(道理)를 완전 신복(信服)하는 자로 교회의 직원을 선임해야 한다는 것과 선량한 성품 및 주의(主義)를 가진 자들일지라도 간혹 진리와 교회의 규칙에 대해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으나 그때에도 「서로 용서하며 인내함」에 대해,
 
(6) 교회 직원의 성격, 자격, 권한, 선거, 위임하는 규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어느 회(會)이든지 직원을 선출하는 권한은 그 회에 있다는 「교회의 직임을 선거하는 법례(法例)」에 대해,
 
(7) 치리권은 치리회가 행사하거나 혹 택하여 세운 대표자가 행사하거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봉사하며 선언하는 것일 뿐이며, 어느 교파의 치리회이든지 회원의 양심을 속박할 규칙을 자의적(自意的)으로 제정할 권리가 없다는 「치리권」에 대해, 그리고 (8) 교회 권징의 목적은 전적으로 도덕적이며 신령(神靈)한 데 있으며, 결코 세속적인 효력을 발생케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효력은 다만 권징 자체의 공정(公正)함과 모든 사람들에 의한 공인(公認)과 만국교회의 머리이신 구주의 권고하심과 은총 베푸심에 있다는 「권징」의 내용과 연관되어 있다.

II.3.3. 종합적 관점

개혁파의 정치 원리이거나 혹 장로파의 정치 원리이거나를 막론하고 그 어느 교파의 정치 원리이든지 그 모두 성경적인 정체(政體)가 되기를 염원함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죽산이 설명한 바를 따라, 양(兩) 교파의 정치 원리를 각각 소개하였는데 비록 외견상(外見上)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제 그 속에 담긴 신앙 사상적인 핵심(核心)은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이유들이야 물론 여럿일 수 있겠지만, 그것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근본적 요인(要因)은 바로 양 교파가 지닌 신학적인 전제(前提) -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전제와 인식론적(認識論的)인 전제 - 의 동일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양 교파는 성경의 영감(靈感)과 무오류(無誤謬)한 신적 권위를 인정하며, 그 성경이 계시(啓示)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하고, 그 성경의 교훈을 따라 「창조-타락-구속의 전망」, 「인간의 전적 부패」, 「전적 무능력」,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속죄」, 「유효적(有效的) 은혜」, 「성도의 궁극적인 견인(堅忍)」 등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공유(共有)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종말(終末)에 대해 특별계시 의존적인 신앙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 논자는 분석(分析)한다.

그리고 이른 바 외견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복음의 씨가 뿌려진 영적 토양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네덜란드 및 북구(北歐)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영역과 영미세계를 배경으로 한 장로파영역이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으로는 동일한 신학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지만,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으로는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자라고, 열매 맺을 영적 토양이 달랐던 것을 기억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양 교파의 교회 정치의 원리들은 상호 동심원적(同心圓的) 관계에 놓여있는 것으로, 그래서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으로 이해하며 수용해야 할 것으로 정리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III. 맺는 글

지 금까지 「죽산(竹山)의 교회정치 이해」와 관련해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그의 『교의학-교회론』의 제 1편, 3장(「교회의 정치」)의 내용을 중심으로 잠시 살펴보았다. 고찰한 바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표현하기에는 물론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지향(指向)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어찌하였든지 성경의 교훈에 충실한 교회의 정체(政體)를 추구/실현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죽산 자신의 견해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던 내면의 깊은 동기와 근본적인 이유, 역시 이 시대 교회들의 혼란상을 경험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경적인 방향에로의 전환이 가능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함이었다.

죽산의 확신은 교회역사 가운데 다양한 교회 정체이론(敎會 政體理論)들이 존재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개혁파」(改革派) 혹은 「장로파」(長老派)의 주장이 가장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죽산의 확신은 그가 성경자체의 증언에 뿌리를 두고 교회역사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그런데 옥(玉)에도 티가 있듯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죽산이 위와 같은 성경적인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 그 내용을 담아 낼 ‘어휘선택’과 관련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본론에서 충분히 논의하였기에 재론(再論)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죽산이 사용한 바, “지교회”(支敎會)란 표현보다는 “지역교회”(地域敎會), 그리고 “평신도”(平信徒)란 표현보다는 ‘회중’(會衆), ‘신도’(信徒), ‘믿는 자들’ 등이 보다 성경적 개념에 충실한 어휘들일 것이다. 가지 “지”(支)자와 위계적 어감을 지닌 “평”(平)자는 개혁교회나 장로교회의 정체에 익숙한 개념이라기보다 오히려 감독교회나 로마교회의 정체에 익숙한 것으로 판단되기에 갖게 되는 아쉬움이다.

죽 산이 이해하고 있는 「개혁파 혹은 장로파 정치체제」의 특징은 한 마디로 “대의정치”(代議政治)였다. 그것은 ‘감독정치’와 ‘회중정치’란 양극(兩極) 사이에서 성경적인 균형과 질서를 생명으로 여기는 정체다. 그것은 “모든 교직자들의 평등성”, 심지어 “교직자와 평신도가 지위에서 평등함”을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사역적(使役的)인 차원”에서 구별이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비록 “당회를 넘어서는 광대회의(廣大會議)들이 있을지라도, 교회의 권세가 기본적으로 지역교회(地域敎會)의 치리회인 당회에 있음”을 주장하며, “전통”이 “성경”에 종속됨을 교회의 본질적인 질서로 여긴다.

「개혁파 혹은 장로파 정치체제」의 제 1원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唯一)한 원수(元首)임”, 제 2원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시되, “성령”(聖靈)과 “말씀”에 의해 하신다는 것, 제 3원리는 교회의 권세가 그리스도에 의해 일차적으로 교회 전체에 주어지나, 이차적으로 직원들에게 그들의 직임수행을 위해 추가적으로 부여된다는 것, 제 4원리는 그리스도는 교회 전체에 권세를 위임하시는 동시에 회중에 의해 세움을 받은 대표적인 기관들에 의해 권세를 행사하게 하신다는 것, 제 5원리는 교회의 치리회에 행사되는 교회의 권세는 기본적으로 지역교회의 치리회에 있고, 거기로부터 광대회의(廣大會議)에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혁파 혹은 장로파의 정체」는 지역교회의 자치권(自治權)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공통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보다 광대한 조직을 형성할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여기에 “양심의 자유”, “교회의 자유”, “진리와 행위의 불가분성(不可分性)”, “상호관인”(相互寬忍), “직원의 선거”, “치리권” 그리고 “권징”을 주요내용으로 한 「장로파의 정치원리들」은 위의 원리들과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놓인다.

이제 본 졸고(拙稿)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교회 역사의 통시적(通時的) 차원에서 감독파(로마교)-유형과 독립파-유형 사이에 내재해 왔던 긴장이 공시적(共時的) 차원에서 오늘의 교회현실 속에 동일한 현상으로 경험되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 현실을 의식(意識)을 가지고 주목하는 자라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가 점점 세속화(世俗化) 되어가고, 점차 관료화(官僚化)되고 있다는 비판은 어느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 조국교회의 현실이요, 우리 모두가 당면한 고통의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구호(口號)만 외친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올바로 깨달은 성경의 진리와 그 정신(精神)을 목회현장에 실천해 내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다. 성(聖) 삼위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이 절대 필요하다. 이런 절박한 교회 현실에서 다시금 「개혁파(장로파) 교회의 정치 원리」를 성경의 빛에 비추어 “그것이 그러한가”(행17:11)란 태도로 날마다 상고(詳考)하며, ‘그것이 그러할 때’에는 아무 이유를 달지 말고 주님의 은총(恩寵)을 구하면서 그대로 순종하는 길만이 오늘의 교회들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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